김영권의 <대통령의 뒷모습>은 실화 기반의 시사 에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임 시절을 다뤘다. 서울 해방촌 무지개 하숙집에 사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당시의 기억이 생생히 떠오른다. 작가는 무명작가·사이비 교주·모창가수·탈북민 등 우리 사회 낯선 일원의 입을 통해 과거 정권을 비판하고, 그 안에 현 정권의 모습까지 투영한다.
“그래도 그렇게 꽤 유명짜한 사람이 상습적으로 거짓 협잡질 행각을 해서야 피해 입는 사람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돼. 우리 선녀님 같은 박근혜 여왕님을 자기 애인이니 약혼녀니 설레발 풀다가 이미 감옥살이까지 했잖냐 말여. 반성을 할 줄 알아야지! 오히려 한 수 더 벌이는 낌새랑게. 하늘궁인지 뭔지 대궐 같은 궁전을 지어 올려 놓고설랑 황제나 교주인 양 떡하니 화려한 옥좌에 앉아 노닥거리던데… 그 돈이 다 어디서 나왔겠어, 응?”
사이비
“내가 어찌 알겠어요. 아마 신도들이 헌금한 거겠죠 뭐.”
“자발적인 헌금이라고 말하더라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는 것 같아. 어떤 신성한 사업에 동참 동업하자고 해서 많은 돈이나 부동산을 냈는데, 알고 보니 사기술에 속은 것 같아 돌려 달라고 하면… 큰 재앙을 당한다면서 겁박하는 바람에 땡전 한 푼 못 찾고 알거지가 된 사람도 있다더구먼. 그런 식의 금전 갈취는 만고불변하는 사이비 녀석들의 수법인데 왜 그리 멍청하게 당하는지 몰라. 헹, 고약스러운지고!”
“혹시 부러워서 질투하는 거 아닌가요?”
“당찮은 소릴! 혹세무민이 염려스러워하는 얘기일 뿐이야. 앞으로 두고 보랑께. 점점 노추해지고 기력이 쇠약해져 정치적으로 황제의 꿈을 펼칠 수 없겠다는 판단이 들면 서서히 사이비 종교로 방향을 틀 게야. 지금도 그런 조짐이 보이니깐 두루 조심해야 할 텐디 말여….”
영감은 자기 자신의 야릇한 행각에 관해서는 전혀 사이비라고 생각지 않는다는 듯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양동 뒷골목의 허름한 여인숙 같은 데 깃들어 매춘하는 여자들에게 교주 영감은 선물 대신 돈을 직접 건네었다. 그러고는 여체를 탐하는 대신 그녀들의 영혼이 갱생하길 바라는 심정을 담아 교설을 폈다.
“여인이여, 그대는 큰 착각을 하고 있습네다. 그대 자신이 이 세상의 맨 밑바닥을 기어 다니는 한 마리 벌레라고…. 허지만 이곳은 결코 밑바닥 시궁창이 아닙네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스스로 자신에게 침을 뱉지 말고, 오염된 진흙탕 구정물을 정화시키며 피어나는 아리따운 한 송이 연꽃처럼 현실 고해의 세파를 극복하고 반 걸음 한 걸음씩 상승하며 새로운 인생을 열어 나가야 하는 것입네다!”
“호호호, 그런 어려운 일은 골치 아파서 싫어요.”
“물론 어려운 일이지요. 그건 우리 인간의 힘으로는 어려우니 절대적 구세주이신 신을 믿어야 가능한 것입네다! 그러면 어느 날 그대는 여왕이나 선녀 혹은 천사와 같은, 스스로 마음 깊이 진심으로 원하는 존재로서 거듭나 있을 것입네다!”
“그러지 말고 그냥 이불 속으로 들어와서 간단히 한탕 뛰고서 몸이나 풀고 가세요. 이미 상할 대로 상해버린 몸뚱인데 어찌 백합 같은 천사가 될 수 있겠어요, 응?”
무조건적 “신 믿어야 한다”강조
여인숙 구석서 ‘선도 포교 활동’
“가련한 여인이여, 절대로 아니올시다! 전지전능하신 신은 언제나 우리를 굽어 살피시며 우리가 지성껏 바라는 것을 이루어 주십네다. 절망보다는 희망! 마음가짐이 중요합네다. 과학적으로도 증명되는 사실입네다. 우리 몸은 원자로 구성돼 있습네다. 원자 수준에서 보면 피부는 6주마다, 간은 8주마다 새로 바뀐다고 합네다. 뼈는 3개월이고, 그리하여 일년이면 신체의 대부분이 바뀐다는 사십입네다.”
영감은 헛기침을 한 후 말을 이었다.
“더구나 우리 몸을 순환하는 원자들은 공간적으로 소나 개 혹은 닭의 몸을 순환했던 것이고, 시간적으론 저 먼 옛날 선덕여왕이나 광개토대왕의 몸을 순환했던 것일 수도 있습네다. 즉 우린 매일같이 자기 몸의 일부를 내버리고 다른 몸의 일부를 받아들이고 있는 셈인 것입네다. 자, 따라서 우리가 마음을 새롭게 바꾸면 몸도 차츰 바뀐다고 할 수 있습네다. 우린 결코 똑같은 몸뚱이에 두 번 꽃을 담글 수는 없습네다. 다만 우리의 기억이 그 사실을 은폐하고 있을 뿐입네다. 고정된 기억이 흐르는 몸속에서 동일한 작용을 하기에 비유하자면, 간은 바뀌는데 간암은 남는다는 사실입네다. 꼭 기억하시오! 몸은 언제나 흐르는 것…. 우리가 나쁜 기억의 감옥에서 벗어난다면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는 것입네다!”
과연 영감이 침을 튀는 설교로 몇 명의 여인을 구렁창에서 건져냈는지는 모른다. 어쩌면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 한 발짝 더 그 구렁창 속으로 깊이 들어가야 했는지도 모를 노릇이다.
마치 부처님이 중생들을 건지기 위해 지옥 속으로 내려가고 예수님이 불쌍한 사람들과 고통을 함께 했듯이. 아무튼 괴교주 영감은 언제부턴가 하숙집 옥탑방으로 잘 들어오지 않고 외박하는 날이 잦았다.
피에로씨에게 슬쩍 물어보니 양동 여인숙 구석에서 ‘선도 포교 활동’ 중이라 대꾸했는데, 때때로 그 자신도 전도 활동을 돕는답시고 낯짝이 보이지 않았다.
어느 날 저녁 어스름이 내릴 무렵, 나는 서울역 정류장에서 내려 걸어 오르다가 동자동 쪽방 골목으로 슬슬 발길을 옮겼다. 특별한 목적이 있어서라기보다 일종의 변덕 같은 행각인 셈이었다.
하늘 한 귀퉁이에 걸려 쓰러져 가는 노을이나 도시의 길바닥에 내리는 땅거미, 혹은 그 둘이 합작하여 빚어낸 기묘한 영향 때문이었을까.
버스에서 본 해쓱하고 예쁘고 수심 깊은 어떤 아가씨를 그냥 두고 온 아쉬움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선도 활동
나는 천천히 걸어 어둑한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그 묘이(妙異)하게 아리따운 여인은 대체 어떤 사람이며 어떤 사연을 지녔길래 요즘 같은 세상에 고뇌를 정신적인 미로 승화시켰을까?
나는 계속 생각하며 걸었다. 길가에 주저앉아 소주병을 들고 홀로 중얼대는 노인을 지나쳐 어느 건물 앞에 섰다. 처음 와본 곳이었다.
주변에 비해 번듯한 3층짜리 건물인데 잔뜩 낡아빠져 노인네처럼 허름해 보였다.
입구의 문이 열려 있어 어둑어둑한 안쪽이 왠지 문득 궁금증을 자극했다.
나는 한 발짝 다가섰다. 위로 오르는 계단이 희미하게 보였다.
<다음호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