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번갯불 콩 굽듯’ 유유제약 정리해고 흑막

성과 없는 황태자 혁신 내세운 꼼수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유유제약이 영업 조직개편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외부 대행업체를 활용해 비용 절감 효과를 누리겠다는 의중이 표면화된 모양새다. 다만 절차를 건너뛴 채 성급히 추진된 조직개편 작업은 작지 않은 문제를 양산했다. 홀대 수준을 넘어 사실상 정리해고 수순을 밟는 과정에서 잡음이 새나오는 형국이다.

지난 4일, 유유제약 측은 임직원을 대상으로 ‘혁신경영 체제 전환 안내(이하 안내문)’라는 글을 이메일로 전송했다. 해당 문서 작성자인 유원상·박노용 대표이사는 빠르게 변하는 산업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라도 유유제약 구성원이 기업경쟁력 향상을 위해 고민할 필요가 있음을 언급했다.

집토끼 
내치다

더불어 최고 경영진은 해당 글에서 과감한 혁신과 적응력 극대화가 생존과 성장을 위한 필수사항임을 강조했다. 이를 위해 실질적 대응 방안 마련이 필요하고, 모든 부서는 경영상 약점과 개선점을 철저히 파악해야 한다는 내용이 뒤따랐다.

두 사람이 혁신을 도모하는 차원에서 내놓은 핵심 추진 안건은 ‘수탁개발생산(CDMO) 비즈니스’ 강화였다. 기존의 단순한 수탁생산이 아닌 연구·개발·임상·생산 등을 총망라하는 비즈니스 모델에 힘을 쏟겠다는 의중을 내비친 것이다. ODM(제조사 개발 생산) 비중을 높이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여기까지만 보면 CDMO 비즈니스 강화 계획이 안내문의 핵심처럼 비춰지는 게 당연했다. 그러나 모든 구성원의 이목이 CDMO 비즈니스 강화 계획에 집중된 건 아니었다. 


몇몇 영업사원에게는 한 줄 남짓 분량으로 적힌 “영업과 마케팅에는 혁신적 구조변화를 통해 제약업계 트렌드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것”이라는 문구가 주목의 대상이었다. 직접적인 언급을 하지 않았을 뿐, ‘판매대행업체(CSO)’를 앞세우는 방식으로 영업전략이 개편됨을 암시한다고 해석될 여지가 충분했던 까닭이다. 

CSO는 제약 영업을 위탁받아 판매행위를 하는 도매상을 뜻한다. 제약사와 CSO 사이에 계약이 체결되면 제약사는 자사에서 취급하는 특정 품목에 대한 영업권을 CSO에 위탁하고 수수료를 제공한다. CSO를 활용하면 인건비를 줄이고, 판매 및 관리비 절감을 도모할 수 있다.

이 같은 장점이 부각되면서 중소형 제약사를 중심으로 CSO를 통한 영업 비중을 키우는 경향이 두드러지는 추세다.

앞서 유유제약 영업조직에서 목격된 변화의 조짐은, 안내문에 적힌 영업과 마케팅의 구조변화라는 문구를 CSO와 연결 짓게 한 계기로 작용했다. 유유제약은 안내문이 공개되기 일주일 전, 약국사업부 운영을 전면 중단한 상태였다. 이는 사내 3대 영업조직(종합병원사업부·의원사업부·약국사업부) 가운데 한 곳이 제 기능을 상실했음을 뜻했다.

예상대로 CSO가 의원사업부를 대체하는 구도가 표면화된다면 영업사원 입장에서는 중대한 변곡점을 맞이했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CSO의 중요성이 부각될수록 기존 사내 영업조직은 입지 축소가 불가피함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추측이 현실로 되돌아오기까지 걸린 시간은 반나절 남짓에 불과했다.

하루아침 
파리 목숨


지난 4일 오후경 유유제약 영업기획팀 팀장은 의원사업부 지점장을 대상으로 영업사원 권고사직 처리와 관련해 본사 측 입장을 발송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의원사업부를 12월31일까지 유지한다는 게 기본 골자였다.

사측은 메시지를 통해 오는 12월31일까지 사직서를 제출한 의원사업부 소속 영업사원에 국한해 권고사직으로 처리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또 내달 30일까지 사직서를 제출한 영업사원에 한해 2개월 치 위로금(일비 등 영업활동비 제외)을 지급할 계획임을 내비쳤다.

내달 30일을 넘겨 사직서를 제출한 영업사원은 권고사직만 인정하고, 위로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설명도 뒤따랐다.

눈여겨볼 부분은 CSO 활용 여부에 관한 언급이 일체 없었던 안내문과 달리, 영업기획팀 팀장이 지점장에게 보낸 메시지에는 CSO에 관한 직접적인 언급이 등장했다는 점이다. 의원사업부 소속 직원이 퇴사 후 CSO로 활동하면 기존 담당지역 내 병·의원에 대한 영업권과 신제품 출시 시 우선 판매권을 부여하겠다는 의도가 명확해진 것이다.

본사의 방침대로 퇴직 처리가 진행될 시 유유제약 영업부서는 올해 말까지 대대적인 조직개편이 뒤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20여명으로 운영됐던 약국사업부가 기능을 상실한 가운데 80명 규모로 구성된 의원사업부마저 해산될 경우 올해 1분기 기준 유유제약 정규직 직원(336명) 가운데 30%가량이 회사를 떠나게 되는 셈이다.

120여명으로 꾸려졌던 영업 부문은 종합병원사업부에 속한 20여명을 휘하에 둔 소규모 조직으로 쪼그라들게 된다.

시작된 인력 구조조정   
영업직 80% 순식간에… 

유유제약 관계자는 “영업조직을 개편하는 절차는 CSO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내려진 결정”이라며 “종합병원사업부는 변동이 없고, 기존 의원사업부 직원의 경우 퇴사 후 CSO 사업자를 내면 회사와 거래에 있어 우선권을 주는 방식을 계획 중”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현재 진행 중인 사내 영업 부문 축소 계획이 사실상 본사의 일방적인 인력 정리해고 수순쯤으로 비춰진다는 데 있다. 몇몇 의원사업부 직원은 지난 4일 이전까지 권고사직 처리와 관련된 어떠한 언질도 받지 못했다고 토로한 상태다. 

한 영업사원은 “영업사원을 CSO로 전환할 시 동종업계에서는 회사의 방침을 충실히 설명하고 퇴사를 결정한 영업사원에게 구체적인 혜택을 제시하는 게 일반적”이라며 “하지만 유유제약은 어떤 상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사직을 종용하고, 불복 시 뒤따르게 될 불이익만 부각시키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되자 일각에서는 경영진의 부진한 경영 성과를 덮는 차원에서 사내 영업조직 축소를 결정했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기대치를 한참 밑도는 신약 개발 성과와 나날이 수익성이 악화되는 현실에서 비용 절감 카드로 정리해고를 도모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시각의 중심에는 회사의 실질적인 후계자인 유원상 대표가 서 있다.

유유제약은 수년 전부터 유원상 대표를 축으로 하는 오너 3세 체제를 가동 중이다. 유원상 대표의 부친인 유승필 회장이 2021년 5월 대표이사에서 사임했고, 현재는 유원상 대표와 전문경영인인 박노용 대표를 중심으로 최고경영진이 꾸려져 있다.


경영진
일방 결정

컬럼비아대학교 경영대학원(MBA)을 졸업한 유원상 대표는 뉴욕 메릴린치 증권과 글로벌 제약사 노바티스를 거쳐 2008년 유유제약에 상무로 입사했다. 2014년 영업마케팅 총괄 부사장, 2019년 대표이사 부사장, 2020년 4월 대표이사 사장 등을 거치며 착실히 보폭을 넓혀왔다.

유원상 대표는 지배력 측면에서도 가장 높은 곳을 점유한 상태다. 그는 올해 1분기 기준 유유제약 지분 13.75%(보통주 237만22주)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특수관계인 지분율의 총합은 33.59%(보통주 580만6385주)다.

유유제약은 유원상 대표가 경영 일선에 나선 이후 신약 개발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안구건조증 치료제 후보 물질 ‘YP-P10’, 다발성경화증 치료제 후보 물질 ‘UCLA-MS’, 탈모 치료제 후보 물질 ‘YY-DUT’ 등을 주력 파이프라인으로 내세우면서 R&D 투자를 대폭 늘렸다. 

실제로 유원상 대표가 취임했던 2019년에 약 22억원이었던 R&D 비용은 지난해 98억원으로 4배 이상 증가했다. 매출 대비 R&D 비용 비중은 2.4%에서 9.2%로 4배 가까이 커졌다.

다만 신약 개발을 위한 투자는 아직까지 눈에 띄는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특히 ‘YP-P10’은 임상 1/2상 투약 종료 시점인 12주차에서 1차 평가지표인 TCSS(총각막염색지수)와 ODS(안구 불편감)가 개선되는 효과를 보였음에도 위약군 대비 통계적으로 유의미성을 확보하지 못해 임상에 실패했다.


나머지 신약 개발 프로젝트 역시 갈 길이 멀다. 개발 중인 탈모치료제의 경우 신약이 아닌 개량신약이라는 점에서 임상 실패로 인한 파이프라인의 축소를 걱정해야 할 처지고, 다발성경화증 치료제의 경우 아직 임상단계조차 진입하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유유제약의 주요 실적지표가 하향세를 나타내면서 유원상 대표의 경영 능력을 향한 의구심은 한층 커지고 있다. 유유제약은 지난해 연결기준 1389억원의 매출과 6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매출이 20.1% 증가했을 뿐, 영업손익은 적자 전환이 이뤄졌다.

덮고자
칼 뽑았나

매출 상승에도 적자로 돌아선 건 R&D 비용 부담과 함께 금리인상에 따른 금융비용 부담이 확대된 여파다. 유유제약의 금융비용은 같은 기간 24억원에서 47억원으로 95.8%나 급증했다. 그나마 올해 1분기에는 영업이익 20억원을 올리면서 전년 동기(5억7200만원) 대비 3.4배 증가했다는 게 위안거리다. 다만 지난해 1분기 기준 82억원이었던 단기차입금이 1년 새 375억원으로 급증하는 등 상환 압박은 계속되고 있다.

<heaty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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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