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오염수’ 논란의 IAEA 보고서 대해부

일본 자료만 보고…책임은 나 몰라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후쿠시마 오염수’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최종 보고서가 공개되면서 여야 간 대립도 최고조에 달했다. 윤석열정부는 IAEA 보고서를 존중한다는 입장이지만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오염수 방류에 대한 여론의 반대도 절정에 달하고 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방류를 결정하면 사실상 막을 방법은 전무한 상황이다.

“예상했던 바와 큰 차이가 없다. 일본 측 자료로만 평가해 공정하다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후쿠시마 오염수’에 관한 국제원자력기구(IAEA) 최종 보고서를 들여다본 한 전문가의 말이다. IAEA는 수년간 직접 설비 없이 점검해왔다. 보고서 도입부에는 “책임지지 않는다”고 명시돼있다. 공정성 논란이 지속되는 이유다.

전제만
깔았다

IAEA 최종 보고서는 2021년 4월 일본 정부가 방류 계획 발표와 함께 IAEA에 안전성 검토를 요청해서 발표된 결과물이다. IAEA는 같은 해 7월 일본의 요청을 수락하고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IAEA의 전문 인력뿐 아니라 한국과 미국, 중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호주, 캐나다, 베트남, 아르헨티나, 마셜제도 11개국의 전문가들이 TF에 참여했다.

한국은 김홍석 원자력안전기술원 책임연구원이 TF의 일원이었다.

IAEA는 당시 일본에 전문가들을 파견해 검토 일정을 합의했다. 일본의 방류 계획을 검증하기 위한 구체적인 일정과 범위 등은 이때 정해졌다. 전문가들은 오염수 보관 탱크가 있는 후쿠시마 제1원전을 직접 찾아 일본 전문가들과 협의하면서 관심을 두고 살펴볼 장소를 파악하기도 했다.


1단계 작업은 일본 도쿄전력이 제공한 데이터를 분석하는 작업이었다. 이후로 현장 조사를 통한 본격적인 검증이 진행됐다.

검증 방향은 ▲오염수 처리와 시설 내 안전관리, 방류 절차 등이 환경을 보호하면서 안전하게 수행되는지를 평가 ▲일본 원자력 안전 당국이 이를 제대로 규제·감독하는지 확인 ▲오염수 등 환경 영향 요인이 될 시료를 독립적으로 채취하고 데이터를 확인·분석하는 세 가지로 크게 나뉜다.

이를 위해 IAEA TF는 지난해 2월부터 최근까지 5차례 일본을 공식 방문했다. TF는 일본의 오염수 처리시설과 방류시설 조성 현장 등을 찾았고, 일본 원자력규제위원회(NRA)와 접촉해 규제·감독 현황을 점검했다.

일본이 오염수서 방사성 핵종을 제거하기 위해 운영하는 다핵종제거설비(ALPS·알프스)를 거쳐 나온 오염수 샘플을 확보하고, 후쿠시마 제1원전 주변 바닷가서 해수와 해양 퇴적물, 물고기 등을 샘플로 수집하는 작업도 이뤄졌다.

방류를 위한 해저터널 건설이 어떤 설계를 토대로 진행되는지도 점검 대상이었다. 현장 조사 과정서 IAEA 요청에 따라 일본이 자료를 수정·보강하기도 했다.

TF가 오염수 샘플을 분석하는 데 객관성을 보장하기 위해 제3의 연구기관에 분석을 맡기기도 했다. 후쿠시마 제1원전 내 오염수 탱크서 채취한 샘플을 IAEA는 산하 연구소 3곳과 함께 같은 해 한국·프랑스·스위스·미국의 연구시설에도 분석을 의뢰한 것이다.

국제 기준 부합 예정된 결과 막을 방법 전무
알프스 성능 논란 현재진행형…검증도 안 돼


오염수에 어떤 방사성 핵종이 남아 있는지, 도쿄전력이 핵종 분석을 위해 채택한 방법이 적절한지 등을 비교 평가하는 작업도 진행됐다.

이 같은 작업을 마친 IAEA는 후쿠시마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하기 위한 일본 정부의 계획을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하자가 없다는 내용이지만 신뢰성이 있느냐는 의문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일본 정부서 제출한 자료를 기반으로 알프스에 대한 기술적 검증이 빠진 게 크다.

일본 측이 넘긴 자료를 토대로 알프스의 성능에 문제가 없다는 전제하에 보고서를 발표한 것이다. 최종 보고서를 통해 IAEA는 “일본의 방류 계획이 IAEA의 안전기준에 부합한다”며 “오염수 방류가 사람과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한 수준이 될 것”이라고 적시했다. 그러면서 “알프스를 거친 오염수를 방류하기 전과 후에 일본과 협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성능 논란 중심에 선 알프스는 후쿠시마 원전에 설치된 방사능 물질 정화 장치로 62개 핵종을 거르는 역할을 한다. 기본적인 작동 원리는 정수기에 달린 필터와 같다. 그러나 후쿠시마 오염수가 알프스 처리를 거친 이후에도 스트론튬-90과 세슘-134, 세슘-137, 이루테늄-106, 아이오딘-129, 안티모니-125 등 6개 핵종이 남아 논란이 된 바 있다.

정부는 해당 6개 핵종들의 경우 2019년 이전 사례로, 최근 실시한 검사에서 추가 핵종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힌 바 있다. 정부는 별도 자료를 통해 “현재 1070여개 탱크에 저장된 오염수가 그대로 해양으로 방출되는 것은 아니다”며 “오염수는 방류 전 K4탱크로 옮겨져 농도 측정 과정을 거치며, 이때 삼중수소 외 배출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오염수는 다시 알프스로 보내져 처리 과정을 반복하게 된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일본이 본격 해양 방류를 시작한 이후엔 사실상 알프스 성능 검증을 위한 수단이 제한되지 않겠냐는 우려가 나온다. 방류 도중 사고가 발생할 경우, 정확한 검증을 위해 알프스를 통과한 오염수에 대한 ‘직접 시료 채취’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문제 없다”
신뢰성 의문

한병섭 원자력안전연구소장은 언론 인터뷰서 “이번 IAEA 최종 보고서에는 알프스의 안전성과 성능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다”며 “알프스가 잘 돌아가면 이런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내용이 적혀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알프스가 믿을 수 있는 방사능 정화 장치인지를 가려내기 위해 IAEA가 자체적으로 설비를 뜯어보는 식의 검증은 없었다고 봐도 무방하다는 지적이다.

보고서의 도입부도 논란이다. 한 소장은 “이번 최종 보고서의 도입부를 보면 ‘IAEA와 회원국은 이 보고서의 사용으로 발생할 수 있는 결과에 대해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는다’는 구절이 나온다”며 “IAEA는 견해만 발표했을 뿐 법적인 책임은 지지 않는다는 의미로 이해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최종 보고서는 바다에 오염수를 방류하는 것을 전제로 만들어졌다. 대형 저장탱크 건설을 통한 육상 보관 같은 대안을 고려하지 않고 있는 것도 문제다. 오염수 방류가 한국 등 인접국에는 어떤 이득도 주지 않고, 크든 작든 피해만 준다는 점도 적시되지 않았다.

IAEA는 환경 모니터링 결론 도출을 위한 환경 시료 분석 결과를 내놓지 못했다. 실제 최종 보고서에도 3차례 진행하기로 했던 오염수 시료 분석과 관련해 “(지난해 10월 채취된 2·3차)두 시료에 대한 분석이 포함된 보고서는 2023년 후반에 발행될 예정”이라고 적혀 있다.

시료 분석은 안전성 검토의 3가지 구성 요소의 하나인 ‘독립적 샘플링, 데이터 확증 및 분석 활동’의 일부다.


최종 보고서는 오염수 시료뿐만 아니라, ‘환경 시료’ 분석 결과도 나오지 않은 상태서 공개됐다. 사실상 일본이 제출한 자료에만 의존해 정확성과 신뢰성을 확인하는 과정인 ‘확증’이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서 문제가 없다고 결론 내린 셈이다.

이 밖에도 IAEA가 직업적 방사선 노출을 판단하기 위해 진행한 실험실 간 교차분석(ILC) 결과도 나오지 않았다. ‘직업적 방사선 방호’는 원자력기구 안전성 검토의 8가지 기술적 주제 중 하나다. IAEA는 이 결과 역시 “올해 말에 제공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언제 버리나
카운트다운

IAEA가 주요 시료에 대한 분석을 끝마치기도 전에 ‘일본의 방류 계획이 국제 안전기준에 부합한다’는 결론을 내린 것을 두고선 비판이 나왔다.

한 소장은 특히 오염수 시료 분석을 한 차례만 하고 끝낸 점을 문제로 지적했다. 그는 “시료 분석은 신뢰 있는 값을 얻기 위해 3회 실시하는 게 화학 분석계의 ‘국룰’(모두가 지키는 규칙)”이라며 “IAEA도 세 번은 하기로 했을 텐데 1회 결과만 나온 상태서 보고서를 냈다는 것은 분석 결과에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스스로 입증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원자력안전기술원 출신의 또 다른 안전규제 전문가는 “IAEA가 가능한 한 보고서를 빨리 정리해줬으면 하는 일본 입장서 용역 기간을 바짝 당겨 완성되지도 않은 결과를 낸 게 아닌가 싶다”며 “이것은 신뢰성에 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일본 정부는 ▲방류설비 완성 ▲IAEA 최종보고서 ▲일본 NRA의 사용 전 검사를 오염수 방류를 위한 3가지 전제로 삼아왔다. 일단 조건은 충족된 상태인데, 문제는 일본 내의 부정적 여론이다.

일본 국내에서는 후쿠시마현 및 인근 지역의 어민, 관광업계 종사자들의 불안이 강하다. 후쿠시마현 어업협동조합연합회는 지난달 30일 총회를 열어 “오염수 해양 방류에 반대하는 것은 조금도 변하지 않는다”는 네 번째 특별결의를 만장일치로 내놨다.

전국 여론조사(민영 뉴스네트워크 JNN의 지난 1∼2일 조사)에서 반대 의견이 40%로 찬성 의견(45%)보다 낮기는 했지만 만만찮은 비율이다.

일본 정부는 주변국 여론도 예의주시 중이다. 일본 언론이 최근 방류에 대한 더불어민주당의 반대와 거부감 등을 비교적 자세히 소개하고 있는 것이 근거다. 중국 정부의 대응에는 불만이 역력하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지난 3일 “일본 외무성은 중국에 데이터를 준비한 설명을 하겠다고 몇 번이나 제안했지만 거부당했다”고 보도했다. 태평양도서국에 대해서는 정상회담, 특사파견 등으로 공을 들여왔다.

기시다, 여론 봐가며 여름 중 방류 시기 결정
IAEA, 시료 분석 못 끝내고 보고서 발표 강행

방류 시점에 대해 일본 정부는 이날도 ‘올해 여름쯤’이라는 기존 방침을 반복하며 “변경은 없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오염수 방류의 안전성에 대한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방사능=공포’라는 공식이 깨지길 바라는 쪽이 있는 반면, IAEA 최종 보고서의 신뢰도에 문제를 제기하며 그로시 사무총장과의 공개토론을 제안하는 전문가도 있다.

임만성 KAIST 원자력및양자공학과 교수는 언론 인터뷰서 “과학적으로(방류는)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중요한 것은 앞으로 오염수 방출 과정서 우리나라 등 주변국이 참여해 함께 모니터링할 수 있도록 협력하는 것”이라며 “이번 오염수 방류 논란이 방사능을 향한 대중의 막연한 공포를 바로잡는 계기로 거듭나야 한다”고 밝혔다.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명예교수, 이준택 건국대 핵물리학과 명예교수 등은 서울 광화문 한국프레스센터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서 명예교수는 “IAEA는 일본 도쿄전력이 떠다 준 깨끗한 물을 갖고 깨끗하다는 보고서를 냈을 뿐”이라며 “IAEA 보고서는 지록위마(指鹿爲馬,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한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오염수의 해양 방류 외에도 방법이 있는데 IAEA는 단 한 번도 심도 있게 따져보지 않았다”며 “그로시 사무총장이 방한하면 전문가 대 전문가로서 이런 문제를 짚고 넘어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 명예교수도 IAEA 보고서의 신뢰성을 지적했다. 그는 “대학서 학생들을 가르쳐 보면 일부는 미리 실험 방향을 잡아놓고 목표대로 수치를 조작하는 걸 볼 수 있다. IAEA 보고서가 그렇다”며 “세상엔 2000종 이상의 핵종이 있는데 IAEA는 입맛대로 64종으로 제한했다. 그러면서 바닷물에 희석하면 안전하다고 말하는 건 창피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마쓰노 히로카즈(松野博一) 관방장관은 최근 기자회견서 한국 정부의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 규제 방침 관련 질문을 받고 “처리수(오염수)의 해양 방출 안전성에 대해 높은 투명성을 갖고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국제사회의 이해가 심화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 내부도
반대 극심

마쓰노 장관은 “동일본대지진 뒤 일본산 식품 수입 규제를 철폐하는 게 계속된 정부의 중요 과제며, 부처 간에 협력하면서 적절한 형태로 대처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미 도쿄전력은 지난달 12일 오염수 방류 설비 시운전에 들어갔다. 현지 어민들은 계속해서 반대 의사를 전달하고 있다. 방류 외에 콘크리트 용기 설치 후 보관이나 증발 등 다른 대책을 요구하는 일본 내 목소리도 있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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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총질 ‘친명 전쟁’ 서막

내부 총질 ‘친명 전쟁’ 서막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당내 울려 퍼지던 비명(비 이재명)계 소리가 사라졌다. ‘내부 저격수’가 사라졌으니 이제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 중심으로 똘똘 뭉쳐 국회를 꽉 잡을 것이란 희망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다른 한쪽에서는 우려의 뜻을 내비친다. ‘이재명 독주’ 체제로 완성된 민주당이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22대 총선서 압승을 거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큰 폭으로 물갈이에 나섰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주요 자리에 친명(친 이재명)계 인사들을 대거 투입했다. 친명 위주의 인선을 단행해 원팀 민주당을 꾸리겠다는 셈이다. 공천 파동을 딛고 살아남은 친명 의원들이 일제히 한 보 전진했다. 피바람 잦아드니… 지난 21일 이 대표는 사무총장에 김윤덕 의원을 임명했다. 김 의원은 이번 총선서 전략공천관리위원회 위원을 지낸 인물로 지난 20대 대선 경선 당시 이재명 후보의 열린캠프서 활동한 바 있다. 조직사무부총장은 황명선 당선인,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에는 김우영 당선인, 전략기획위원장은 민형배 의원 등 친명계가 이름을 올렸다. 민주당의 정책을 이끌 민주연구원장에는 이 대표의 ‘정책 멘토’로 알려진 이한주 전 경기연구원장이 선임됐다. 이 원장은 이 대표의 ‘기본소득’을 설계한 인물로 민주당이 제시한 ‘25만원 지원금’에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법률위원장에는 이 대표의 대장동 변호를 맡은 박균택 당선인이 낙점됐다. 이 밖에도 당 대표 비서실장에는 천준호 의원,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에는 김우영 당선인, 교육연수원장에는 김정호 의원, 수석대변인에는 박성준 의원, 대변인에는 한민수·황정아 당선인이 자리했다. 이날 한민수 대변인은 인사 소개를 마친 후 당직 개편에 대해 “4·10 총선의 민심을 반영한 개혁 과제 추진에 있어서 동력을 형성한다는 의미가 있다”며 “신진 인사들에게 기회를 부여한다는 의미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인선은 이 대표가 국회에 입성한 후 진행된 두 번째 물갈이다. 2022년 8월 이 대표가 취임 직후 단행한 인선을 두고 ‘친명 일색’이라는 거친 비판이 터져 나왔다. 곧바로 한병도·권칠승·고민정 등 대표적인 친문(친 문재인)계 인사를 등용하면서 논란을 잠재웠지만 이번 총선서 친명이 주류를 이루면서 이들을 당에 대거 투입한 것으로 풀이된다. 22대 국회 문턱을 넘은 친문 세력은 약 스무명 안팎인 것으로 전해진다. 한때 민주당 180석을 지탱하던 핵심축이었지만 총선을 거치면서 세력이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민주당 공천을 두고 ‘비명횡사 친명횡재’라는 말이 나오자 고민정 최고위원은 위원직을 사퇴했다가 다시 복귀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이처럼 공천 피바람이 당내를 휩쓸었지만 총선 이후 이 대표를 비판하던 목소리가 단숨에 잦아들었다. 총선 결과 이후 이 대표 체제는 더욱 견고해졌다. 이 대표를 거칠게 비판하며 당을 떠나거나 새로운 둥지를 꾸린 이들이 줄줄이 낙선하면서다. ‘친명’ 타이틀 달고 꽃밭 안착 둥지 떠난 탈당파 줄줄이 낙선 새로운미래 이낙연 공동대표는 이 대표와 대립각을 세운 뒤 탈당해 새로운 당을 꾸렸다. 이번 총선서 광주 광산을에 출사표를 던졌지만 민주당 민형배 당선인에게 62.25%p로 크게 밀려 패배했다. 이 공동대표가 야심 차게 창당한 새로운미래는 지역구 한 석에 그치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개혁신당과 손을 잡은 이원욱 공동선대위원장 역시 지역구서 낙선했다. 탈당 후 국민의힘으로 이적한 ‘5선 중진’ 이상민 의원과 김영주 의원(국회 부의장)도 고배를 마셨다. 홍영표·설훈 등 다른 비명계 의원 역시 줄줄이 낙선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당을 떠나면 춥다는 걸 몸소 보여줬다”며 “소위 비명계로 분류됐던 이들이 모두 당을 떠났으니 당내 파열음이 나오지 않는 건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대부분 여의도를 떠나게 됐으니 당분간 ‘내부 저격수’로 불리는 이들의 목소리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친명 체제에 화룡점정을 찍을 원내대표 선출 결과에도 눈길이 쏠린다. 내달 3일, 선출을 앞둔 차기 원내대표 선거가 사실상 친명인 박찬대 의원의 독무대인 만큼 ‘친명일색 민주당’이 완성될 것이란 해석이 우세하다. 박 의원은 지난 21일, 일찌감치 출마 기자회견을 열고 “이재명 대표와 강력한 투톱 체제로 개혁 국회, 민생 국회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최고위원직을 사퇴한 박 의원이 신호탄을 쏘아 올리면서 자천타천으로 물망에 오른 의원들은 속속 불출마를 선언했다. 서영교 최고위원은 지난 22일 원내대표 출마 선언을 위한 기자회견을 예고했지만 돌연 취소했다. 당 대표 ‘원픽’ 이와 관련해 서 최고위원은 “(박찬대 의원 포함)2명 다 최고위원직을 사퇴하면 제가 원내대표에 당선돼도 최고위원 두 자리가 비게 된다”며 “총선에 압도적으로 이긴 이 대표 체제에 문제가 된다는 게 처음부터 고민이었는데 사전에 조율하지 못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4선 김민석 의원도 “당원 주권의 화두에 집중해 보려고 한다”며 불출마를 시사했다. 인재위원회 간사였던 3선 김성환 의원과 원내수석부대표인 박주민 의원 역시 불출마 입장을 표했다. 민형배·진성준 의원도 하마평에 올랐지만 각각 전략기획위원장, 정책위의장에 임명되면서 자연스레 출마가 불발됐다. 이로써 원내대표 출마 후보군은 박 의원 한 명으로 압축됐다. 친명계 핵심인 만큼 이 대표의 의중인 ‘명심’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당초 10명 안팎의 후보군이 난립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물밑서 이 대표가 교통정리에 나섰다는 해석이다. 당 대표의 노골적인 선거개입이라는 비판이 나왔지만 당을 좌우하는 명심에 대항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친문 인사가 끼어들 틈도 없이 빠르게 상황이 흘러갔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설명이다. 민주당 원내대표 겸 의장단 선출 선거관리위원회 간사인 황희 의원은 지난 24일, 선거관리위원회 1차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당규상 민주당서 원내대표 선거는 결선투표가 원칙으로 기본적으로 과반 득표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후보자가 1인일 경우 찬반 투표를 하기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원내대표 다음으로 주목받는 자리는 바로 차기 국회의장이다. 당내 우직한 이력을 가진 후보들이 기싸움이 이어가면서 명심이 누군의 손을 들어줄지 주목되는 상황이다. 민주당에서는 6선에 성공한 조정식·추미애 당선인과 5선인 정성호·우원식 의원이 22대 전반기 국회의장 출마를 밝혔다. 이들은 일제히 “기계적 중립은 없다”는 입장을 강조하며 강경 성향 의원의 표심을 얻기 위한 선명성 경쟁에 나섰다. 완벽한 시나리오 먼저 정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기계적 중립만 지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민주당 출신으로서 다음 선거의 승리를 위해 보이지 않게(그 토대를) 깔아줘야 된다”고 말했다. 여야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을 경우 다수결의 원리에 따라서 다수당의 주장대로 갈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정 의원은 이 대표의 사법연수원 18기 동기로 알려졌다. 40년 가까이 알고 지낸 만큼 ‘원조 친명’이자 ‘친명계 좌장’으로 통한다. 이 대표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7인회’ 핵심 멤버기도 하다. 친명 후발주자인 추 당선인도 국회의장 도전에 대해 “주저하지 않겠다”며 “국회의장도 물론 좌파도 우파도 아니다. 그렇다고 중립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정치적 유불리를 계산하지 않고 유보된 언론개혁, 검찰개혁을 해내겠다는 의지를 거듭 밝히면서 강성 지지자의 호응을 유도했다. 민주당 조 전 사무총장도 “여야 합의가 될 때까지 무한정 기다릴 수 없다”며 “국회의장이 되면 긴급 현안에 대해서는 의장 직권으로 본회의를 열어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과반석을 차지한 만큼 당내 경쟁도 치열해진 양상을 띠고 있다. 국회의장 경선에 당원투표를 반영하자는 주장까지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강성 지지층의 힘이 크게 작용하는 만큼 후보들은 당심을 겨냥하기 위해 명심을 강조할 수밖에 없다. 당의 주요 인사들이 ‘이재명과의 호흡’을 강조하고 나선 만큼 이 대표의 의중인 ‘명심’은 당을 좌지우지하는 강력한 무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를 앞세운 메시지가 앞다퉈 나오면서 입법 독주에 대한 우려 섞인 목소리도 커질 전망이다. 국민의힘은 “너도나도 ‘명심팔이’를 하며 이 대표에 대한 충성심 경쟁을 하니 국회의장은커녕, 기본적인 공직자의 자질마저 의심스러울 정도”라며 “협치라는 말을 머릿속에서 아예 지워버려야 한다는 망언을 빙자한 민주당의 속내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상임위를 독식하겠다는 위헌적 발상도 서서히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솔솔 올라오는 ‘대표 연임설’ 대세는 ‘명심’…친문계 주목 총선 승리 이후 일부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서 “협치는 없다”는 기류가 흐르자 이를 꼬집은 것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당내 주요직이 속속들이 친명으로 배치되는 가운데 친문에게 더 이상 핵심적인 역할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여기에 이 대표의 연임설까지 불거지면서 ‘이재명호’ 민주당은 한층 견고해질 전망이다. 이 대표 임기는 오는 8월28일까지다. 이제까지 민주당서 당 대표가 연임한 역사는 없지만 당헌·당규상 이를 금지한 조항도 없다. 이 대표가 마음만 먹는다면 몇 번이고 당 대표를 연임할 수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이 대표는 20대 대선 패배 직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와 전당대회에 연이어 출마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선례를 남기기도 했다. 총선 승리 직후부터 친명 의원 중심으로 “민주당에 압승을 가져다준 이 대표가 한번 더 당 대표를 맡아야 한다”는 여론이 일면서 친·비명 간의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정성호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국회가 본연의 역할을 하고 민주당이 윤석열정권의 무능과 폭주하는 이 상황을 막아야 된다는 측면서 당 대표가 강한 리더십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며 “그런 면에서 연임할 필요성도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총선이 끝나고 이 대표를 만나 “강한 당 대표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달했다고도 덧붙였다. 해남·진도·완도에 승기를 꽂은 박지원 당선인 역시 “만약 이 대표가 계속 대표를 한다고 하면 당연히 해야 한다. 연임해야 맞다”며 “이번 총선을 통해 국민이 이 대표를 신임했다”고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줬다. 반면 친문계 핵심으로 꼽히는 윤건영 의원은 이 대표 연임에 대해 “전당대회가 넉 달이나 남은 상황서 민주당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이슈”라며 “지금은 총선서 나타난 민의를 충실하게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어 “당의 리더십에 관한 것은 시간을 두고 차분하게 풀어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의도 정가에 밝은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친명 체제를 두고 외부서 걱정하는 모양이지만 정작 당내에서는 후폭풍이 불 수 없는 상황”이라며 “비명 의원끼리 바람을 일으키려고 해도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폭풍 전야 잔잔한 미풍 일제히 이 대표의 의중만 바라보는 민주당은 친명과 찐명 그리고 ‘신명(새로운 친명)’만 존재하게 된다. 이런 상황서 “당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실현되겠냐”는 비판이 물밑으로 조용히 들려온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애초에 이 대표의 목적은 자신만의 민주당을 만드는 거였고 이번 총선을 통해 결국 이뤄냈다”며 “친명 민주당이라는 날카로운 검을 어떻게 사용할지 결국 이 대표의 손에 달려 있다. 이 대표는 임기를 마치는 날까지 자신의 영향력 밑에 당을 두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속 타는 조국혁신당 교섭단체 구성에 난항을 겪는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의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앞서 조국당 조국 대표는 여러 차례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 ‘범야권 연석회의’를 제안했지만 이 대표는 만찬 회동으로 갈무리하는 데 그쳤다. 민주당 내에서는 “아직 그럴 시기가 아니다”라며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이 대표와 어깨를 나란히 하려는 조 대표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하지만 캐스팅보트 역할을 쥔 것 또한 조국당인 만큼 22대 국회 개원 이후 민주당과 협상 테이블에 앉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