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한국만…’ 살인 형량 낮은 이유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3.07.10 14:20:29
  • 호수 143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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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 아냐” 깎아주고 “심신 미약” 낮춰주고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살인범죄 재판서 가해자들은 모두 “고의가 아니었다” “심신미약 상태였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대부분 재판 과정서 형량이 줄어든다. 이 문제는 한국의 살인 범죄 유형이 세분화돼있지 않기 때문이란 의견이 있다.

살인 범죄가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주요 강력범죄 신고접수 건수가 전년도 같은 기간보다 10% 이상 늘어났다. 살인·강도·성폭력 등이 모두 두 자릿수 증가율을 보였다. 이는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로 시민들의 외출이 늘어난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물가 상승·자산 가격 하락 등 경기 불안도 범죄 증가에 한몫했다. 

점점 느는
강력범죄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12월31일 기준 112 신고에 접수된 5대 강력범죄가 작년 동기 대비 각각 10% 이상 증가했다. 살인 범죄는 585건으로 전체 증가율이 23.4%에 달했다. 5대 강력범죄 중 가장 높은 증가율이다. 지난해에는 제주 유명 식당 대표 살인 사건, 이기영 살인 사건 등 흉악범죄가 사회에 충격을 안겼다. 범죄는 점점 잔혹해졌고, 발생 건수도 많아진 셈이다.

이처럼 살인 범죄가 증가하는 한편, 살인 범죄 양형기준은 모호해서 피해자 유가족들이 눈물 흘리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살인 범죄에 대한 양형기준은 매우 중요하다. 살인 범죄는 다른 범죄에 비해 발생 건수가 상대적으로 낮지만,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는 가장 극악한 범죄고, 피해를 돌이킬 수 없는 만큼 기준도 명확해야 한다. 살인은 피해를 돌이킬 수 없다는 점에서 가장 높은 형벌이 부과돼야 하는 범죄다.


이런 이유로 살인 범죄에 대한 양형기준은 다른 모든 범죄의 양형기준을 설정하는 하나의 기준점이 된다. 양형위원회서도 가장 먼저 의결한 1기 대상 설정 범죄 7개 범죄군 중 하나가 살인 범죄 양형기준이다. 7개 범죄군은 ▲살인 ▲뇌물 ▲성범죄 ▲강도 ▲횡령‧배임 ▲위증 ▲무고 범죄다. 

살인 범죄 양형기준은 2009년 7월1일 시행된 이후 지난 1일까지 네 차례 수정돼 현재 5개의 범죄 유형으로 나뉜다.

유형별로는 ▲참작 동기 살인(기본: 4~6년, 감경: 3~5년, 가중: 5~8년) ▲보통 동기 살인(기본: 10년~16년, 감경: 7년~12년, 가중:1 5년 이상, 무기 이상) ▲비난 동기 살인(기본: 15년~20년, 감경: 10년~16년, 가중: 18년 이상, 무기 이상) ▲중대범죄 결합 살인(기본: 20년 이상, 무기 감경: 17년~22년, 가중: 25년 이상, 무기 이상) ▲극단적 인명경시 살인(기본: 23년 이상, 무기 감경: 20년~25년, 가중: 무기 이상)이다.

이 같은 기준은 시대 흐름에 따라 변하는데, 살인 범죄 유형을 나누는 것 자체가 모호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부분의 살인 범죄의 형량이 너무 낮고, 1심서 높은 형량이 나오더라도 2심서 형량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타국에 비해 현저히 낮은 살인 형량
“범행 동기 이외 범죄유형도 구분해야”

실제로 중년 남녀를 연달아 살해한 혐의로 1심서 사형을 선고받았던 권재찬이 항소심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 그는 2021년 12월 인천시 미추홀구의 한 건물서 50대 여성 A씨를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후 A씨의 신용카드서 현금 수백만원을 인출하고 1100만원 상당의 귀금속도 빼앗았다.

권재찬은 A씨를 살해한 다음 날 인천시 중구 을왕리 야산서 공범인 40대 여성 B씨를 살해한 혐의도 받고 있다. 당시 권재찬은 B씨에게 A씨 시신이 부패할 수 있으니 야산에 땅을 파러 가자며 야산으로 유인한 뒤 살해했다. 경찰은 권재찬이 범행을 은폐하기 위해 공범 B씨를 살해한 것으로 봤다.


서울고법 형사7부(이규형·이지영·김슬기 부장판사)는 지난달 23일 오전 권재찬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1심서 인정한 기획 살인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강도 범행은 기획적 강도에 해당하나 살인은 기획 살인으로 보기 어렵다”며 “누구라도 사형이 정당하다고 인정할 수 있을 만큼 특별한 사정이 존재하는지 의문”이라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다른 중대 살인 사건과의 비교도 필요해 보인다. 20년간 법원서 사형이 선고된 사건은 18건인데, 피해자가 불특정 다수거나 중대범죄 결합사건으로 미리 계획한 살인죄에 해당한다. 원심의 사형 선고에 검토가 필요해 보인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피해자 유족들은 “저런 사람에게 인권이 있느냐”고 소리치며 법정 밖으로 나갔다. 해당 사건은 연쇄살인을 했지만 ‘기획 살인’이 아니기 때문에 사형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된 것이다. 사형 판결에 대한 부담감도 같이 작용했다.

유형 분류
모호 지적

또 다른 사건도 있다. 자신의 딸에게 신내림을 강요한다는 이유로 무속인 친누나를 폭행해 숨지게 한 혐의로 1심서 징역 20년을 선고받은 60대 남성이 2심서 감형받았다.

지난달 16일 서울고법 형사7부(부장판사 이규홍)는 살인 혐의로 기소된 이모씨에게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징역 12년을 선고, 5년간의 보호관찰을 명령했다. 또 원심서 내려진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 명령 청구도 기각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피해자를 계획적으로 살해할 목적이나 의도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가 신을 모시는 문제로 피고인의 가족을 괴롭혔고 범행 당일에도 딸에게 무당을 하라고 하자 우발‧충동적으로 살인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피해자의 상처와 사인 등을 종합할 때 피해자는 저항 없이 피고인에게 일방적인 폭행을 당한 것으로 보인다. 굉장히 횟수가 많고 강한 힘으로 폭행을 가한 사실이 인정된다. 피해 사망 예견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피해자가 동생인 피고인으로부터 부당하게 죽음에 이르는 과정서 느꼈을 정신적 고통은 가늠하기 어렵다. 피고인은 이전에도 종교 문제로 처를 사망에 이르게 한 처벌 전력이 있다. 친족 생명을 두 번이나 빼앗은 것은 좋지 않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범행이 고의가 있어 보이지 않고 우발적으로 보이는 점, 유족인 딸이 처벌을 바라지 않는 처벌탄원서를 제출한 점, 피해자 사망을 발견한 직후 119에 신고한 점, 자백하고 반성하는 점 등을 고려해 피고인의 양형부당 주장을 일부 받아들였다”며 “폭행치사 전력을 고려해도 불특정 시민이 아닌 가족 간 신을 모시는 특이사항서 일어난 범죄다. 재발 위험성 평가서도 일반인 수준의 점수가 나왔다. 향후 일반인을 살해할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잘못을 깊이 인정하고 있다”고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 명령 청구를 기각했다.

반성하고 
뉘우치면?


부모가 자녀를 출산한 후 자녀를 버리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검찰이 남자친구와 강릉 여행을 갔다가 몰래 출산후 사흘 뒤 병원서 아이를 데려와 영하의 날씨 속에 길에 내다버린 20대 친모에게 실형을 구형했다.

인천지검은 지난달 20일 오전 인천지법 제14형사부(재판장 류경진) 심리로 열린 결심공판서 이같이 구형했다.

검찰은 “피해 아동을 출산한 지 3일이 지난 시점서 주거지에 머물면서 휴식을 취하고 남자친구와 양육 문제를 상의했다. 이후 다시 병원에 가서 범행을 저질렀는데,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상태가 이어진 상황서 범행한 것이라고 전혀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친모로서 보호의 의무를 저버리고 생후 3일 된 피해자를 살해하려다가 미수에 그친 범행으로 사인이 중대하다. 피해 아동을 양육할 의지도 보이지 않았고 범행 전후의 태도도 불량한 점을 고려해달라”고 구형 이유를 밝혔다.

친모 측 법률 대리인은 “피해자는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서 범행한 것으로 영아살해죄가 인정돼야 한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강조했다.

친모는 최후진술을 통해 “진심으로 반성하고 뉘우치고 있다”고 말했다. 친모 측은 앞선 공판서 검찰이 기소한 죄명인 살인미수가 아닌 형량이 낮은 영아살해죄로 처벌해달라고 주장했다. 갑작스러운 출산으로 불안정한 정신 상태가 유지된 상태서 저지른 범행이라는 취지였다.


가해자 “계획한 범죄 아니다”
유가족 “살인자가 무슨 인권”

영아살해죄는 분만 중 또는 직후의 영아를 살해하면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돼있다. 영아살해죄보다 실인죄의 형량이 높아서, 영아살해죄를 주장하는 것이다. 이같이 살인범죄는 1심서 나오는 형량보다 감형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양형위원회서 발간한 <2021 양형위원회 연간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살인범죄는 전체 473건 일어났다. 이 중 양형기준이 적용된 사건은 전체 428건인데, 살인 189건 중 제2유형 보통 동기 살인이 157건으로 가장 많았다. 그 외 제1유형 참작 동기 살인은 17건, 제3유형 비난 동기 살인은 8건, 제4유형 중대범죄 결합 살인은 7건이었다.

살인미수 사건은 전체 239건으로 살인과 마찬가지로 제2유형 보통 동기 살인이 212건으로 가장 많았다. 제1유형 참작 동기 살인은 14건, 제3유형 비난 동기 살인은 9건, 제4유형 중대범죄 결합 살인은 4건이었다. 

즉, 살인미수를 포함한 살인범죄 양형기준 적용 대상 범죄의 대부분이 제2유형인 보통 동기 살인으로 그 비중이 가장 높았다. 이 같은 결과는 양형기준의 범죄유형 세분화에 문제가 있다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실제로 영국에서는 2010년 10월, 우발적 살인 대신 ‘살인에 대한 제한적 방어’를 인정하는 ‘자제력 상실에 의한 고의적 살인’ 조항이 ‘검시관 및 사법법’에 신설됐다. 영국은 고의적 살인과 우발적 살인을 구분하고, 구체적인 양형기준을 만들었다.

그러나 한국은 이런 구분이 없기 때문에, 피해자의 귀책사유가 인정되면 일반적인 살인보다 약하게 양형이 적용될 수 있다. 

우발적이냐
계획적이냐

<살인범죄 양형기준 고찰> 논문을 발표한 이재방 홍익대학교 법과대학 교수는 논문을 통해 “영국 살인 범죄 평균 형량은 20~25년으로 한국은 이보다 훨씬 낮다. 이는 한국 살인 범죄 대부분이 제2유형인 보통 동기에 속하게 때문”이라며 “양형기준 적용 대상의 80%가 제2유형에 해당된다면, ‘동기’ 이외의 새로운 기준에 의해 유형을 분류하든지, 아니면 현재의 유형 내에서 추가로 하위 세부 유형을 분류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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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 올인’ 민주당 그래도 불안한 이유

‘서울시장 올인’ 민주당 그래도 불안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내년 6월 치러질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는 단연 서울시다. 서울시에 깃발을 꽂는 쪽이 전체 선거의 승리라 봐도 무관하다는 해석도 나온다. 진보 진영에서는 당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오세훈 대항마’를 자처하는 후보군이 속속 등장했지만, 서울 시민의 마음까지 얻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전국 지역위원장 워크숍에서 제9회 지방선거(이하 지선) 승리라는 목표를 세웠다. 이달 중으로 지선 공천 룰을 확정해 빠르게 선거에 임하겠다는 방침이다. 큰 틀로는 ▲당원 민주주의 실현 ▲완전한 민주적 경선 ▲깨끗하고 유능한 후보 선출 ▲여성·청년·장애인 기회 확대 등 4대 방향이 제시됐다. 출사표 만지작 민주당은 이번 지선의 성격을 ‘완전한 내란 종식’으로 규정했다. 민주당 전국 지역위원장은 워크숍에서 ‘이재명정부 성공과 지선 승리를 위한 더불어민주당 전국지역위원장 결의문’을 통해 “국민의 준엄한 명령을 받들어 민생회복·내란청산·개혁완수라는 역사적 사명을 반드시 이루어 낼 것을 결의한다”고 밝혔다. 내년 지선서 압도적 승리를 이끌어냄으로서 ‘무능 부패한 국민의힘 지방권력’을 심판하고 ‘진짜 자치분권 균형성장’의 시대를 만들겠다는 방침이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 또한 “이정부 성공을 위해 당이 무엇을 할 것인지에 모든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다가오는 지선은 민주당의 책임과 기회의 시험대다. 당의 힘을 모아 이정부의 성공과 지선 승리라는 두 목표를 함께 이뤄낼 것”이라고 밝혔다. 주목도가 높은 서울시장 선거 최종 후보가 되는 것만으로도 존재감을 키울 수 있다. 차기 서울시장 임기는 2030년으로 21대 대통령선거 시기와 맞아떨어진다. 그동안 서울시장은 대선주자로 가는 지름길로 여겨졌던 만큼 정치인으로서 큰 꿈을 꾸는 이들에게는 ‘일생일대의 기회’다. 민주당은 서울시장 선거 본선행 티켓을 놓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원내 의원들의 공식 출마 선언 이후에도 자칭타칭 물망에 오른 진보 인사들이 시기를 재고 있어 다양한 경선 구도가 그려질 것으로 관측된다. 박주민 의원은 민주당 내에서도 가장 먼저 공식 출마 의사를 밝힌 인물이다. 그는 “서울이 ‘맏이’ 역할을 하며 지방 도시들과 함께 성장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며 일찌감치 선거판을 예열했다. 뒤이어 민주당 서영교 최고위원이 출사표를 던졌다. 조희대 대법원장 저격수를 자처하며 존재감을 키운 그가 이번에는 “서민을 위해 일 잘하는 시장이 필요하다”며 오세운 서울시장 대항마로 나섰다. 서 최고위원은 “(오 시장은) 토지거래허가구역을 무리하게 해제하면서 부동산 폭등을 자초했다”며 “이태원 참사의 충격이 채 가시지도 않은 시점에서 큰 책임이 있는 용산구청장에게 서울시 주최 지역축제 안전관리 대상을 주는 등 시민의 요구, 시대의 요구를 전혀 읽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전현희 최고위원은 “국정감사 이후 결단을 내리겠다”며 가능성을 열어뒀다. 그는 지난달 오마이TV ‘박정호의 핫스팟’과의 인터뷰에서 “정치적 중요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반드시 승리할 후보가 서울시를 탈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그런 자리에 과연 제가 적합한 후보인지 고민을 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큰 판 향하는 의원들 오세훈만 꺾으면 끝? 지난 조기 대선 당시 ‘민주당 골목골목선대위 서울위원장’을 맡아 서울시 정책 로드맵을 짜는 데 참여한 만큼 출마 명분은 충분하다는 평이 나온다. 마찬가지로 원내 인사인 박홍근 의원과 김영배 의원도 몸풀기에 나섰다. 특히 박 의원은 자신의 거취와 관련해선 지난해 8월 당시 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과 사전 논의가 있었던 점을 강조만 만큼 오랜 고심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낸 홍익표 전 의원도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생각하고 준비 중”이라며 도전을 시사했다. 홍 전 의원은 가장 민감한 서울 부동산 문제를 겨냥하는 등 오 시장의 강남권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를 집값 상승의 원인으로 꼽으며 저격에 나섰다. 박용진 전 의원의 출마 가능성도 점쳐진다. 박 전 의원은 “아직 정해진 건 없다”면서도 연일 오 시장을 때리며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최근에는 “민주당의 정치가 ‘영포티(젊어 보이려 애쓰는 40대)’ 정치로 전락하지 않도록 몸부림쳐야 한다”며 청년세대와의 통합을 강조하기도 했다. 원외에서는 정원오 성동구청장의 이름이 눈에 띈다. ‘K-브랜드지수’에서 서울시 지자체장 부문 1위 타이틀을 따낸 그는 활발한 SNS 활동으로 두터운 지지층을 보유한 인물이다. “나 서울 시민인데, 구청장님 좀 같이 씁시다” 등 밈(인터넷 유행 콘텐츠)이 온라인에 퍼지면서 팬덤을 등에 업고 민주당 원내 인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지 이목이 쏠린다. 민주당 후보군은 일동 ‘오세훈 때리기’에 집중하고 있다. 오 시장의 야심작인 한강버스가 연일 구설수에 오른 데 이어 최근 서울시가 최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서울 종묘 맞은편에 높이 145m 건물이 들어설 수 있도록 재정비촉진계획을 변경한 것을 두고 맹공에 나선 것이다. 지난 11일 민주당 문화예술특별위원회는 기자회견을 통해 종묘 재개발 논의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당내 서울시장 후보군인 박주민 의원과 서영교 최고위원을 비롯한 전현희·김영배·박홍근 의원 등이 대거 참석했다. 특히 박홍근 의원은 “차기 시장, 그리고 대권 놀음을 위해 종묘를 제물로 바치겠다는 것이냐”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서울 종묘가 서울시장 선거의 새로운 전장이 된 셈이다. 이리저리 혼돈의 표심 민주당에서는 윤석열정부 조기 퇴진으로 치러진 조기 대선 승리의 후광효과가 지선까지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번 지선 기조를 내란 청산으로 내세운 것 역시 ‘내란 VS 헌법 수호’ 프레임이 유효하다고 본 것이다. 다시 꺼내든 내란 종식 키워드가 내년 지선에서도 먹힐지는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지선 압승이라는 낙관론에 젖어 서울시 민심을 제대로 훑지 못한다면 ‘이정부 심판론’으로 되치기당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지점이다. 민주당 출신의 한 정치권 관계자는 “서울시 선거는 ‘오세훈만 꺾으면 당선’ 같은 일차 방정식이 아니다. 오 시장이 명태균 게이트, 한강버스 등 각종 리스크에 발목 잡혀 약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울시민이 내란 종식을 외치는 후보에게 표를 던지겠냐는 근본적인 질문에서 다시 출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구 특성만큼 변수도 많은 서울시 자체가 첫 번째 허들이다. 서울은 마포·용산·영등포·광진·동작·성동·강동·중구 등 13개 선거구를 일컫는 한강벨트를 따라 보수층이 포진해 있어 보수 텃밭으로 여겨지지만, 지난해 치러진 총선에서 민주당이 서울 48석 중 37석을 얻어 과반이 넘는 지역에 파란 깃발을 수놓았다. 그럼에도 조기 대선에서 당시 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서울시에서 각각 47.1%, 41.6%를 얻어 두 후보 간의 격차는 5.5%p에 불과했다. 여기에 범보수로 여겨지는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가 얻은 9.9%를 더하면 보수 진영이 진보 진영을 앞서게 된다. 비상계엄이라는 특수 상황을 경험했지만 40%에 달하는 서울 시민이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두 번째는 한강벨트를 따라 빼곡히 자리 잡은 부동산이다. 정부의 10·15 부동산 정책을 통해 서울시 민심을 움직이는 건 진영 간의 논리 싸움이 아닌 정책, 그중에서도 집값이라는 게 명확해졌다. 서울 전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과 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하는 이재명표 부동산 대책이 발표된 지 약 보름 뒤 민주당 지지율이 1주일 새 10%포인트 하락하며 국민의힘에 오차범위 내에서 역전됐다. 지지층에 휩쓸릴라 한국갤럽이 지난달 28~30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민주당의 서울 지지율은 31%로 전주 대비 10%p 떨어졌다. 반면 국민의힘은 12%p 오른 32%로 집계됐다. 서울을 대상으로 고강도 대책이 발표되자 서울 민심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이 나왔다. 이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전체 긍정 평가는 전주 대비 1%포인트 상승해 57%를 기록했지만, 민주당과 마찬가지로 서울 지역에서는 8%p 하락한 47%로 나타났다. 해당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로 응답률은 12.6%다.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와 한국갤럽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결국 이번 서울시장 선거는 진영 간의 대립구도가 아닌 인물과 정책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는 의견에 초점이 맞춰지지만, 진보 진영 후보들은 본선 진출을 위해 당원의 표심을 얻는 일을 우선해야 한다는 딜레마에 빠졌다. 지선을 앞두고 민주당 지도부가 권리당원 권한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밝힌 만큼 국민의힘과 잘 싸우는 ‘전투적인 후보’가 경선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하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차기 서울시장 후보 적합도를 묻는 여론조사에서 진보·여권 후보 가운데 정 구청장이 1위를 차지했다. 만일 정 구청장이 출마 의지를 굳히더라도 박주민·서영교 의원 등 쟁쟁한 원내 인사를 제치고 당원의 선택을 받을지 확신할 수 없다. 인지도면은 물론 민주당 지선 기조가 내란 청산으로 자리 잡은 한 12·3 비상계엄을 해제한 인물에게 더 많은 정치적 유산과 서사가 쥐어지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박 전 의원은 출마 가능성을 시사한 동시에 민주당 강성 지지층에게 집중적으로 질타 받았다. 2023년 8월 당시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이던 시절 체포동의안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던 중 불체포특권 포기 성명에 이름을 올린 31명의 의원 중 한 명인 만큼 경선 통과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반면 민주당 지지층으로부터 꾸준히 이름을 알려온 경우 경선 통과가 수월하지만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개딸(개혁의 딸들)이 밀어준 강경파 후보’라는 꼬리표가 붙는다면 정책이나 행정가로서의 자질은 묻히고 이에 거부감을 느낀 중도층의 표가 분산될 것이란 점에서다. 당원 마음 잡으랴, 중도층 안으랴 김민석·강훈식 ‘투톱’ 차출설도 경선과 본선을 놓고 민주당의 딜레마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 ‘김민석·강훈식 차출설’이 돌면서 서울시장 선거판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인지도가 높고 행정가 면모가 돋보이는 김민석 국무총리와 강훈식 대통령실비서실장을 서울시장 후보로 내보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국정 투톱이 또다시 정치의 한가운데에 들어섰다. 앞서 김 총리는 여러 차례에 걸쳐 서울시장 출마 가능성에 선을 그어왔지만 종묘 재개발 논쟁에 뛰어들면서 다시 불을 댕겼다. 지난 10일 김 총리가 서울 종묘 일대를 찾아 “무리하게 한강버스를 밀어붙이다 시민의 부담을 초래한 서울시로서는 더욱 신중하게 국민적 우려를 경청해야 한다”고 우려를 표했는데, 이를 두고 오 시장이 “국민 감정을 자극하려 하는데 이는 선동”이라며 지선을 겨냥한 발언이라고 의심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한 차례 서울시장에 도전했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이름도 다시 거론된다. 김 총리가 서울시장 대신 당 대표로 나서고, 직을 내려놓은 정 대표가 서울시장 도전 후 대권 코스를 밟는 시나리오다. 3대 개혁을 두고 당정 불협화음이라는 의심의 눈초리가 따라붙는 만큼 교통정리를 통해 당정 서로에게 윈윈(win-win)하는 방법으로 꼽힌다. 우선 민주당 관계자들은 앞선 두 사람의 출마 가능성이 극히 낮다고 보고 있다. 가장 중요한 시기에 총리나 대통령비서실장 자리에 생긴 공백은 국정 운영에 차질이 빚을뿐더러 정부 출범 1년도 되지 않은 시기에 지선 후보로 차출할 시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게 공통된 설명이다. 정 대표의 서울시장 도전 여부 역시 “이제 겨우 (취임) 100일이 지났다”며 일축했다. 이처럼 ‘스타 정치인’ 후보군이 물망에 오르자 당 일각에서도 지역 일꾼을 뽑는 지선의 의미가 퇴색될까 우려하는 모양새다. 경선 당락을 결정할 당원의 표심을 사로잡기 위해 지나친 선명성 경쟁이 이어질 경우 중도층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거라는 지적도 나온다. 수많은 변수들 여권 관계자는 “지선 결과를 미리 예단하기엔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차분하게 기다리면서 후보들의 공약을 분석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어 “앞으로 종묘 재개발 같은 이슈가 전방으로 나올 텐데 그때마다 (민주당도) 네거티브로 맞받아치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우리 당원도 내란 종식과 민생회복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사람을 최종 후보로 뽑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터줏대감 눈치 보는 국힘? 더불어민주당과 마찬가지로 국민의힘 역시 서울시장을 이번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로 보고 있다. 서울시 사수를 위해 후보군을 물색하고 있지만, 오세훈 시장의 임기가 남은 만큼 누구 하나 선뜻 도전장을 내밀지 못하는 분위기다. 이에 오 시장의 재도전이 유일한 방법으로 여겨지는 모양새다. 오 시장은 “시민들이 어떤 평가를 해줄지 지켜보며 거취를 분명히 하겠다”며 3선 도전 가능성을 내비쳤다. 명태균 게이트, 한강버스, 종묘 재개발 등 리스크를 안고 있지만 현역 프리미엄에 기댄다면 시도해 볼 가치가 충분하다고 본 셈이다. 한때 경기도지사 후보로 거론됐던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이 이번에는 서울시장 물망에 올랐다. 서울시장 출사표를 던진 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오 시장이 아닌 나 의원을 상대할 가능성이 있다”는 취지로 말하면서 이목이 쏠렸지만 정작 나 의원은 서울시장 도전 가능성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