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방송대 총장 사태’ 1년 교육부 이상한 대처

후속 조치 물었더니…3줄짜리 답변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경고음은 이미 오래전부터 울렸다. 직접 소리 내서 알린 사람도 있다. ‘문제가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고 해결을 위한 대책 마련이 촉구됐다. 정부 기관에 신고가 접수됐고 시민단체의 형사 고발이 이어졌다. 정치권서도 좌시하지 않았다. 하지만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한국방송통신대학교(이하 방송대) 총장을 둘러싼 논란이 가시지 않고 있다. 학교 내부의 자정작용은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고 국립대의 관리·감독을 맡고 있는 교육부 역시 사실상 손을 놓은 상태다. 지난해 4월 <일요시사> 보도(1369호 <단독> 방송대 총장 알박기? 교육부 이중잣대 추적) 이후 이미 1년 이상 시간이 흘렀다.

총장 되면
면죄부?

불씨는 그보다 앞선 총장 선거 때부터 있었다. 총장 임명권이 이사장에게 있는 사립대와는 달리 국립대는 교육부와 청와대의 결정이 총장 임명 시 중요하다. 대학서 투표를 통해 선출된 1~2순위 총장 후보자를 교육부서 검증한 후 교육부 인사위원회를 거쳐 교육부 장관이 대통령에게 임명 제청을 요구하는 방식이다. 최종 임명 여부는 국무회의서 결정된다.  

고성환 방송대 총장은 2021년 11월 총장추천위원회가 진행한 선거를 통해 1순위 후보자로 결정됐다. 이후 지난해 2월 교육부의 임용 제청을 거쳐 같은 해 3월 국무회의를 통해 총장으로 임명됐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임기 막바지에 총장으로 발령나면서 ‘문재인정부 마지막 알박기 인사’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문제는 고 총장의 자질은 물론 임명 과정서 불거진 의혹이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이다. 고 총장은 ▲겸직 위반 ▲세금 체납 ▲재산신고 누락 등의 의혹을 받고 있다. 총장 선거가 진행될 무렵부터 방송대 내부서 관련 의혹에 관한 소문이 불거졌다.


교육부는 방송대 종합감사 시기(2021년 10월25일~11월5일)에 고 총장과 관련된 논란을 파악한 것으로 보인다.

한 방송대 관계자는 “고 총장은 최소 10년 이상 겸직한 사실을 숨겼다. 채무 문제로 급여까지 압류당하다가 총장 후보자로 선출되고 나서야 부랴부랴 정리했다. 국립대 총장을 해서는 안 되는 인물”이라며 “교육부는 이 같은 내용을 전부 알고 있었음에도 그를 총장으로 제청했다. 가장 말이 안 되는 부분”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고 총장은 방송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2004년 5월 설립된 한 주식회사의 이사, 대표이사, 사내이사 등을 지냈다. 방송대 전임교원 임용계약서에 따르면 교수는 ‘교육공무원’이다. 공무 외의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업무에 종사할 수 없고 소속 기관장의 허가 없이 다른 직무를 겸할 수 없다(국가공무원법 64조 영리업무 및 겸직 금지).

문제 제기했다 인사조치
권익위 “복직+임금 보전”

해당 회사는 2017년 12월에야 해산됐다. 그 사이 고 총장은 교무부처장, 인문대학장 등의 보직을 맡았다. 고 총장의 겸직 사실은 총장 선거에 이를 무렵에야 알려졌다. 여기에 회사의 자금 사정이 좋지 않아 세금 체납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사실도 뒤늦게 드러났다. 지방소득세 등 38건, 총 4200만원의 세금을 체납한 것.

또 회사를 운영하는 과정서 대출을 받아 10억원 이상의 채무가 발생했다. 원금과 이자가 더해진 액수로 고 총장은 당시 회사의 연대보증인이었다. 방송대는 국립대로 이 같은 상황이 벌어지면 ‘대한민국’이 제3채무자로 지정된다. 고 총장의 급여에 말 그대로 ‘압류 딱지’가 붙은 이유다.

숱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고 총장은 방송대 제8대 총장으로 취임했다. 고 총장의 임명은 그동안 수면 아래에 있던 교육부의 인사 검증 시스템을 끄집어 올렸다. 방송대 총장 선거 전에 종합감사를 진행한 점, 종합감사 시기에 다양한 경로로 민원이 제기된 점으로 미뤄봤을 때 교육부는 고 총장에 대한 의혹을 이미 알고 있었다고 보는 의견이 대다수다.


하지만 교육부는 차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인사위원회를 거쳐 고 총장을 임용 제청했다. 당시 교육부 차관은 정종철 현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다. 지난해 2월 방송대 관계자는 정 전 차관을 만나 고 총장에 대한 의혹을 언급했다. 그로부터 2주 뒤 교육부는 고 총장에 대한 임용 제청을 진행했다. 

교육부가 앞장서서 고 총장에게 ‘면죄부’를 줬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이뿐만 아니라 정 전 차관은 <일요시사> 보도 이후 방송대 관계자와의 통화서 ‘인사혁신처’를 언급했다. 정 전 차관은 “인사위원회가 되게 폭넓은 재량을 인정함에도 불구하고 인사혁신처가 그렇게 통보해 오는데…. (중략)”라고 말했다. 

논란·의혹
대부분 인정

당시 인사혁신처 관계자는 <일요시사> 취재에 “(인사혁신처에서는)행정 절차를 진행할 뿐 국립대 총장 후보에 대한 검증을 하지 않는다”고 거듭 강조했다. 총장 임용 제청 여부는 교육부서 인사혁신처로 전달하는 것이라는 입장도 밝혔다. 정 전 차관의 발언과 배치되는 지점이다. 

<일요시사> 보도로 총장 임용 과정이 ‘교육부-인사혁신처-청와대’가 아니라 ‘청와대-인사혁신처-교육부’로 이어지는 ‘톱다운’ 방식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됐다. 방송대 이외의 다른 국립대서 일어나고 있는 교육부의 총장 임명 거부와 관련해서도 의심의 목소리가 나왔다. 어떤 ‘입김’이 작용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방송대 총장 논란을 대하는 교육부의 소극적인 태도는 사태에 기름을 붓는 모양새다. 지난 1년여간 방송대 관계자를 비롯한 시민단체 등에서 고 총장 임용을 두고 다양한 방식의 문제 제기가 이뤄졌다. 이 과정서 강문희 방송대 전 부산지역대 학장(행정학과)은 보직해임 조치를 당하기도 했다. 

강 교수의 인사 발령 소식은 지난해 6월 방송대 앞에서 ‘고성환 총장 퇴진’을 외친 집회 당일 학내 게시판을 통해 알려졌다. 강 교수는 보직해임 조치 과정서 방송대 측이 사유를 밝히거나 공식적으로 통보하는 등의 절차를 밟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일방적인 인사 조치였다는 설명이다. 

국민권익위원회(이하 권익위)는 강 교수가 고 총장을 상대로 제기한 ‘신분보장 등 조치’ 신청과 관련해 “부산지역대학장 보직을 다시 부여하고 보직해임으로 인해 삭감된 임금을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또 강 교수에게 불이익 조치를 가한 고 총장을 검찰에 고발한다고 밝혔다.

소송서도
다 이겼다

강 교수에 대한 인사발령 조치가 문제 제기로 발생한 일종의 보복 조치였다는 점을 언급한 것이다. 

고 총장은 권익위 결정에 불복해 서울행정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1심(1월31일)에 이어 항고심(5월19일)까지도 권익위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고 총장은 권익위의 결정을 현재(지난달 30일 기준)까지 이행하지 않고 있다.

학내 인사의 문제 제기, 시민단체의 형사고발, 정부 기관의 결정 등 고 총장을 둘러싼 논란을 두고 수차례에 걸쳐 울리고 있는 경고음에 오로지 교육부만이 침묵을 지키는 모양새다. 급기야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고 총장 관련 논란이 언급되는 등 정치권의 목소리가 들어간 상황서도 교육부는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 10월19일 국회 교육위원회서 방송대에 대한 국감을 진행했다. 이날 국민의힘 소속 정경희 의원은 고 총장에 대한 논란을 언급한 뒤 ▲겸직 허가를 받았는지 ▲이로 인해 징계나 처벌을 받았는지 등을 질의했다. 고 총장은 정 위원의 질문에 모두 ‘아닙니다’라고 답했다. 논란을 일부 인정한 셈이다.

그럼에도 고 총장은 총장 사퇴 의사를 묻는 말에는 “답변을 곧바로 드리기 좀 어렵다”며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선거 과정서 방송대 구성원이 해당 사실에 대해 알고 있었고 그런 상황서도 자신을 총장으로 뽑아줬기 때문에 사퇴 문제는 구성원의 의견을 따라야 된다고 부연했다. 

지난해 국감서 언급
“수사 결과 보겠다”

정 위원은 “교육부는 방송대 총장 임명 과정서 드러난 여러 가지 문제점, 그리고 최근 제기된 직권남용 의혹 등 비리 의혹을 세밀히 감사해야 할 것”이라며 당시 국감에 참석한 김일수 고등교육정책실장을 향해 방송대 감사 계획을 보고해달라고 요청했다. 김 실장은 검토해서 보고하겠다는 답변을 남겼다. 

그로부터 8개월이 흘렀다. 그 사이 교육부는 고 총장과 관련해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국민의힘 정경희 의원실 질의에 대한 교육부 답변서는 단 3문장으로 구성됐다. 정 의원실은 지난해 국감 이후 교육부의 조치에 대해 총 4가지 질의를 보냈다.

‘방송대 관련 2022 국정감사 후속 조치’와 관련해 ▲2022 교육부 등 국정감사에서 정경희 의원이 지적한 방송대 고성환 총장의 각종 비리와 관련한 교육부의 후속 조치 상세내역 ▲2022 국정감사 이후 고성환 총장과 관련해 교육부와 방송대 간 주고받은 공문 사본 일체 ▲2022 국정감사에서 지적된 정종철 전 교육부 차관의 방송대 관계자 회유(고성환 총장 관련 건) 관련 교육부의 후속 조치 상세 ▲고성환 총장의 인사전횡(비리행위를 비판한 고속 교수에 대한 부당한 징계)과 관련한 세부 다툼 경과, 교육부의 조치 상세 등이다.


교육부는 정 의원실의 질의에 “의원님께서 요구하신 내용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변 드립니다” “요구내용에 대해 해당 내용이 없습니다” “현재 관련 내용은 경찰에서 수사 중에 있으며 수사 결과에 따라 필요한 경우 관련 법령에 따라 조치를 검토할 예정입니다”라고 답했다.

시민단체 등에서 진행한 고 총장, 정 전 차관 등에 대한 고발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움직이지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됐다. 

감독 기관이
남의 일처럼

앞장서서 문제를 제기했고 인사 조치까지 당한 강 교수는 황당하다는 입장이다. 강 교수는 “고 총장이 국감서 자신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대부분 인정했다. 고 총장에 대한 교육부의 인사 검증이 얼마나 부실했는지를 알 수 있는 부분 아닌가. 방송대 총장 사태서 교육부는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의원실에 한 답변만 보면 마치 제3자처럼 굴고 있다”고 비판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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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