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가해자가 피해자 아는 이유

이름, 주소, 직장…그놈은 다 알고 있다

[일요시사 취재1팀] 옥지훈 기자 = 지난달 21일, 국회 본회의서 소송 당사자와 대리인의 개인정보 비공개 조치를 도입하는 ‘민사소송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소송 과정서 당사자나 대리인이 법원에 제출하는 서면에 주소나 연락처 등 개인정보 노출을 막기 위해서다. 개정 전에는 피해자가 민사소송 청구 과정서 신변노출을 우려해 소송을 꺼렸다. 최근 사회적 공분을 일으킨 범죄자들의 신상 공개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피해자 신변 보호를 향한 문제 해결은 갈 길이 멀다. 

“피해자의 집 주소를 안다. 그때 때린 것보다 2배로 때릴 것이다.” 지난해 부산 서면서 20대 여성을 무차별 폭행한 이른바 ‘부산 돌려차기’ 사건 가해자가 보복을 암시하면서 한 말이다. 1심서 징역 12년을 선고받은 가해자는 “형이 너무 무겁다”며 항소했다. 반성문에는 “묻지 마 범죄 형량이 제각각인데 왜 징역을 받아야 하느냐”고 써 공분을 일으켰다.

지난달 2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민간소송법 개정안에는 민간 생명 또는 신체에 위해가 될 우려가 있을 경우 제3자나 당사자에게 공개하지 않도록 보호 조치하는 내용이 담겼다. 그동안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 등이 같은 내용에 민사소송법 개정안을 발의했었지만 상임위 문턱을 넘지 못했다.

‘묻지 마’ 범죄
솜방망이, 왜?

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현실적 문제도 뒤따랐다. 현 민사사건이 전자소송으로 이뤄지면서 현행 전자소송 시스템 전체를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전자소송 진행 시 개인정보를 일부 가리는 준비기간이 필요해 피해자 신변 노출 문제가 당장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난 3월에는 전자소송시스템 개편 작업 지연으로 인해 민사 재판에 차질을 빚었던 바 있다.


박영재 법원행정처 차장은 “전자소송 시스템 변경과 개선이 필요하다”며 “올 하반기 차세대 전자소송 시스템 개편이 이뤄진 이후 1~2년 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2024년까지 그간 종이문서로 진행된 형사사법절차가 전면 전자문서화된다.

당시 법원 관계자는 “형사사법절차의 전자화를 실현함으로써 형사사건의 투명성과 신속성이 증진될 것”이라며 “기록 열람·복사 등에 편의성을 증대해 피의자나 피고인의 방어권이 보장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피해자는 형사재판서 증인의 역할을 수행한다. 피해자가 범죄를 당한 사실을 증언하는 것은 피고인의 유무죄를 판단할 증거가 된다. 최근 대법원 판례서도 특정 범죄를 대상으로 피해자의 증명력을 가볍게 배척해선 안 된다는 판단이 있었다.

돌려차기 사건 가해자 A씨는 2심 판결에 불복해 상고했다. 앞서 부산고법 형사 2-1부(재판장 최환)는 항소심서 공소사실을 전부 유죄로 인정해 징역 20년을 선고했던 바 있다. 반면 검찰은 공소사실이 전부 유죄로 인정돼 ‘양형부당’을 이유로 삼을 수 없다며 상고하지 않기로 했다.

피해자는 “언제까지 직접 증명해야 하나. 평등한 재판을 받는 게 왜 이렇게 어렵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건과 무관한 목격자나 증인이 없다면 피해자는 피해 소명을 위해 홀로 증인신문에 나서야 한다. 

2021년에는 도심 대형매장서 처음 본 10대 여학생을 남자 화장실로 끌고 가 성폭행한 20대 남성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해당 사건은 돌려차기 사건과 같이 가해자가 여학생을 남자 화장실로 끌고 가는 모습이 포착됐는데, 재판부는 반성하는 태도와 피해자가 선처를 원하는 점을 들어 이 같은 양형을 내렸다.


반성·합의 시 무조건 집행유예?
“어쩔 수 없이…보복 두려워서”

지난 5월에도 중고거래 피해자가 교도소에 수감돼있는 사기꾼에게 협박성 편지를 받았다. 사기꾼은 전과 5범으로 출소 3개월 만에 범행을 저질러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아 수감 중이었다. 피해자는 배상명령 신청과 영치금 압류 신청을 통해 사기당한 돈을 돌려받을 수 있었다.

피해자는 가해자로부터 온 편지를 받고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는 “편지를 받고 나서야 배상명령 신청을 한 사람들의 이름과 주소가 전부 다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피해자 신상정보가 범죄자에게 들어간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민사소송은 개인과 단체 간의 권리·의무에 대한 불이익을 해결하는 데 주요 목적이 있다. 소송 당사자인 원고와 피고를 동일선상에 두고 권리를 판별하는 것이다. 인적 사항을 기재했던 이유는 원고가 피고를 특정해 어떤 권리와 의무를 주장하는지 확인해야 했기 때문이다.

특정 범죄를 다루는 것이 아닌 개인 간 문제를 법적으로 다루는 만큼, 어떤 상대가 소송을 냈는지 인적 사항이 없으면 동명이인이 한 개인으로 특정하지 못하는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

묻지 마 범죄를 막는 예방책은 전문가들 사이서도 입장이 갈린다. 묻지 마 폭행이 ▲대부분 여성 혐오범죄고 중범죄라는 인식을 줘야 한다는 입장 ▲정신질환 문제로 인한 범죄로 사회적 시스템 구축을 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나뉜다.

그러나 묻지 마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들은 징역형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경우가 다반사고, 동종 범죄를 저지르는 사례도 많다. 범죄를 특정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되지 않아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통상 징역 5년 이상일 경우 집행유예가 불가하다.

동종 범죄로 형사 처벌을 받은 전력이 있는데도 또다시 집행유예를 받은 사건도 있다. 지난해 1월 인천 미추홀구 한 도로서 아무 이유 없이 운행 중인 택시 안에서 40대 남성이 60대 기사를 2차례 폭행했다. 당시 가해자는 아무 이유 없이 “죽여버리겠다”며 폭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갈 길 먼
신변 보호

당시 재판부는 “사건 범행 이전에도 여러 차례 동종 또는 이종 범죄로 형사 처벌을 받은 전력이 있다. 다만 가해자가 범행을 인정하고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며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 선고 및 40시간의 사회봉사도 명령했다.

동종 범죄를 여러 차례 저지른 범죄자가 집행유예 기간이 끝난 뒤 범행을 저질렀음에도 또다시 같은 양형기준을 적용한 것이다.

묻지 마 범죄자가 집행유예를 선고받을 경우, 구치소에 복역되지 않는다. 재판부의 이 같은 선고에 피해자는 항소할 수 있지만 실상은 달랐다. 민사소송에선 2차 가해를 우려한 피해자들 대부분이 오히려 가해자에 대한 선처 탄원서를 제출하면서 1심서 일단락되는 경우가 많다.


신상정보를 공개 대상 범위는 성범죄자·아동 범죄자·재범 확률이 높은 범죄자 등이다. 국민의힘과 정부는 범죄자 신상 공개 범위를 두고 테러·마약·묻지 마 폭력 등까지 확대하는 특별법을 제정하기로 했다. 이는 부산 돌려차기 사건 같은 범죄가 재발하지 않도록 방지하기 위해 후속대책이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 가해자의 경우, 기소 이후 DNA가 검출되고 성범죄 증거가 나왔지만 아직 피고인 신분이라 신상 공개는 이뤄지지 않았다. 현실적으로 가해자가 2심 판결에 상고해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신상 공개는 불가능하다. 

이에 현재 피의자로 한정된 신상정보 공개 대상을 ‘기소 이후 피고인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수사 단계서 신상 공개할 정도의 강력범죄나 성범죄 물증이 나오지 않다가 재판 중 추가로 나오기도 하기 때문이다.

범죄자 신상 공개 때마다 실물과 사진이 달라 논란이 일기도 했다. 당사자 동의 없이 현재 모습을 촬영할 수 없었던 터라, 주로 신분증의 과거 증명사진을 공개했다. 최근 신상 공개가 결정된 흉악범들도 제도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다. 

‘머그샷’
득실은?

미국의 경우 머그샷(범죄자 인상착의 기록사진)을 공개한다. 당정은 논란을 해소하기 위해 미국처럼 수사기관이 범죄자의 얼굴을 촬영해 30일 이내 모습을 공개하는 특별법을 넣기로 했다. 피의자의 인권보호가 필요하다면서 신상 공개에 소극적이었던 제도를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유상범 수석대변인은 피의자 인권침해 우려에 관해 “신상정보 공개는 검사 청구에 의해 법원이 결정해서 이뤄지는 것이고, 내부적으로는 위원회의 심의를 통해 결정하게 된다”며 “인권 침해적 측면을 막기 위한 장치는 마련돼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민주당서도 묻지 마 폭력 범죄자 신상을 공개하고 머그샷도 공개하자는 법안을 낸 것으로 아는데, 적극적인 협조를 바란다”고 말했다.

강력범죄 피의자 신상 공개를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자, 헌법재판소도 신상 공개 제도의 위헌성을 심리한다. 

헌재는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25조 1항의 위헌성을 따져 달라는 서울고법 춘천재판부 행정1부(황승태 부장판사)의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지난해 11월 접수했다. 해당 조항은 검사나 사법경찰관이 성폭력 범죄 피의자가 죄를 범했다고 믿을만한 증거를 바탕으로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해 신상을 공개할 수 있다고 명시돼있다.

이번 위헌법률심판을 두고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인 이른바 ‘N번방’ 구매자로 실형을 확정받은 피의자는 경찰이 신상 정보를 공개하기로 하자 이를 취소해달라는 신상 공개 처분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해당 조항이 어떤 절차나 규정 없이 대상자 정보 공개 여부가 사법경찰관의 결정에만 의존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는 헌법서 명시한 적법 절차 원칙과 무죄 추정의 원칙에 위반 소지가 있으며 피의자의 인격권과 개인정보 자기 결정권을 침해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신상 공개 추진…위헌 지적도
“피해자도 기록 열람하게 해야”

재판부는 “피의자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진 대상을 넘어 사회적 비난의 대상이 되고, 유죄 판결이 확정되기 이전에 유죄가 낙인되는 효과까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며 “무죄 판결이 나더라도 그 사실이 잘 알려지지 않기 때문에 피해를 해소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지적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여성에 대한 강력범죄 가해자들의 신상 공개 확대 방안을 신속히 추진하라”고 법무부에 지시했다. 그러나 당정이 추진하는 특별법이 헌재 결정에 따라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 국민권익위원회는 2주 간 국민생각함을 통해 ‘강력범죄자 신상 공개 확대 방안’에 대한 국민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생각함은 국민권익위가 운영하는 범정부 차원의 정책 소통 플랫폼으로 결과는 신상 공개 제도 개선의 기초자료로 활용될 예정이다. 

범죄 피해자가 형사 재판 과정서 당사자에서 제외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형사소송법 등 현행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피해자에게 사건 관련 사실을 통지하고 수사 진행 상황 등 핵심 사안은 의무 통지 대상으로 정하자는 것이 골자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는 1심 재판이 끝날 때까지 수사와 기소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재판부에 열람을 신청했지만 거부당했다. 일면식도 없는 가해자의 신상 공개를 요구했지만, 피해자는 재판의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1심 형사소송에선 사건의 진상규명과 범죄 당사자의 신분 및 형벌 결정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피해자는 재판 당사자서 제외된다. 그러나 형사소송법에선 형사사건 피해자의 공판기록 열람 신청권을 인정하고 있다.

형사소송법 제294조 4항에 따르면, 소송이 진행되는 상황서 소송기록 열람 또는 등사권을 재판장에게 신청할 수 있다. 재판장은 신청이 있을 때에는 검사·피고인·변호인에게 그 취지를 통지해야 한다. 소송기록을 열람한 경우 재판 관계인의 명예나 수사에 지장을 주지 않도록 해야 한다.

피해자는 당시 JTBC <뉴스룸>과 인터뷰서 “처음에는 나도 재판의 당사자라고 생각해 재판부에 정보 열람을 신청했는데, 재판 당사자가 아니라고 해서 하지 못했다”며 “그때부터 민사로 신청해 자료를 1심 끝나고 받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민사 뿐”
대부분 포기

피해자는 구체적인 이유 없이 열람 불허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재판장에 의해 열람·등사권이 거부당했을 경우, 이에 불복할 수 없고 불허 판단에 대해 명시할 법적인 필요가 없다고 형사소송법에 명시돼있기 때문이다.

피해자의 입장에선 1심 재판이 끝나기 전까지 재판기록을 기다려야만 한다. 이후 민사소송을 통해 관련 기록을 확보해야 하는데, 이때 노출된 신변이 가해자에게 노출된다. 추후 보복 범죄에 대한 우려를 발생시키는 대표적인 원인이다. 

<ojh34522@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 ‘묻지 마 범죄’ “대책 없다”
범죄통계는 아직 데이터 확보 ‘난항’

전문가들은 묻지 마 범죄가 발생하는 주원인으로 사회적 불평등을 주로 꼽는다.

그러나 묻지 마 범죄가 증가하는 상황과 불평등 때문으로만 단정할 수 없다.

원인을 분석할 충분한 데이터가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1월부터 경찰은 묻지마 범죄를 이상동기 범죄로 정의하고 통계를 작성해 범죄 대책을 세우겠다고 했으나, 아직 성과가 미미하다.

경찰 관계자는 “묻지 마 범죄에 대한 정의조차 애매모호해서 명확히 판단할 수 없다”며 “통계를 작성하려면 정의나 분류 기준이 명확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통계 작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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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광로 내각’ 눈에 띄는 이재명 사람들

‘용광로 내각’ 눈에 띄는 이재명 사람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11개 부처 장관 후보자와 국무조정실장 인선을 발표했다. 취임 후 첫 개각인 만큼 이 대통령의 국정 철학과 정부의 방향성을 가늠할 수 있다. 초대 장관인 데다가 이력도, 배경도 독특한 이들이 합류하면서 주목도는 배로 높아졌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에는 배경훈 LG AI연구원장이, 외교부에는 조현 전 1차관이 후보자로 지명됐다. 이 밖에도 ▲통일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동영 의원 ▲국방부 민주당 안규백 의원 ▲국가보훈부 한나라당 권오을 전 의원 ▲환경부 민주당 김성환 의원 ▲고용노동부(이하 노동부) 김영훈 전 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 위원장 ▲해양수산부 민주당 전재수 의원 ▲여성가족부 민주당 강선우 의원 ▲중소벤처기업부(이하 중기부) 한성숙 네이버 대표이사 ▲국무조정실장 윤창렬 LG글로벌 전략개발원장 등이 후보자로 임명됐다. 가리지 않고 사람만 보고 큰 폭의 내각 변화가 일어난 가운데 유독 주목을 받는 인물이 있다. 이력이 독특하거나 발탁 배경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등 청문회 과정 역시 순탄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이슈는 국방부 장관으로 내정된 안규백 후보자다. 안 후보자는 5선 국회의원으로 약 20년 동안 국회 국방위원을 지내며 의정 활동 대부분을 국방 분야에서 보냈다. 내란 사태 당시 ‘윤석열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내란 특위)’ 위원장 등을 맡기도 했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안 후보자는 국회 국방위 간사·위원장 등 5선 국회의원 이력 대부분이 국방위 활동이기에 군에 대한 이해도가 풍부하다”며 “64년 만에 문민 국방 장관으로 계엄에 동원된 군의 변화를 책임지고 이끌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 후보자는 지난해 12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군은 문민통제가 돼야 한다. 비상계엄 당시 문민통제가 공고했다면 대통령이 내란을 지시하더라도 시작 단계부터 군이 반대해 따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안 후보자가 청문회를 통해 최종 임명된다면 64년 만에 민간인 출신 국방부 장관이 탄생한다. 첫 민주노총 출신 장관이 탄생할지에도 이목이 쏠린다. 김영훈 후보자는 현직 철도 기관사로, 1992년 철도청(현 코레일)에 입사해 올해로 34년째 근무 중이다. 장관 후보로 지명되기 전날까지 김 후보자는 경부선 부산-서울 구간에서 새마을호 열차를 운행했다. 국민의힘은 김 후보자가 민주노총 출신인 점을 거론하며 이번 인선이 일종의 ‘청구서’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원석 원내대표는 “내각이 아니라 민주당 선대위 같다”며 “능력이나 전문성보다 논공행상이 우선된 거 아닌가 하는 국민적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진행된 노동 개혁 성과는 후퇴하고,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과 중대재해처벌법 등 주요 현안에 대한 새 정부의 반 기업적 스탠스를 명확히 못 박아두는 인사 아닌지 우려된다. 민주노총의 정치적 청구서가 본격적으로 날아오는 신호탄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고 밝혔다. 김 후보자가 노동부 장관으로 임명된다면 지난 3년간 거부권에 가로 막혔던 노란봉투법을 비롯한, 주 4.5일 근무제 등이 거대 여당을 등에 업은 채 졸속으로 처리될 것이란 비판이 나온다. 민간 국방 장관, 기관사 노동 장관 파격 인사에 국민들 관심도 ‘쑥’ ↑ 이를 의식한 듯 김 후보자는 쟁점 법안에 대해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면서도 “명분만으로 밀어붙이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주 4.5일 근무제가 어려운 기업이 있다면 무엇이 어렵게 하는지 정부가 잘 살펴보고 공동의 길을 모색해보겠다”고 설명했다. 교수 출신 인사가 없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번 개각 명단을 보면 대부분 실무형 인사 위주로 곧바로 실전에 투입할 수 있는 실용성 있는 인재를 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기업인이 과기부·중기부 장관 후보자 등으로 내각에 포함된 것 역시 궤를 같이한다. 강 대변인은 “배경훈 과기부 장관 후보자는 AI 학자이자 기업가로서 초거대 AI 상용화로 은탑산업훈장을 받은 인물”이라며 “하정우 AI미래기획수석과 함께 AI 국가경쟁력을 높일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앞서 이 대통령은 네이버 클라우드 AI 랩 소장, AI 미래포럼 공동의장 등을 지낸 하정우 수석을 대통령실 AI 미래기획 수석으로 지목했다. 이재명정부는 “100조를 투자해 AI 강국을 만들겠다”고 선언한 만큼 하 수석과 배 후보자가 손발을 맞춰 글로벌 시장의 주도권을 잡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배 후보자는 서울 종로구 광화문우체국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단 사무실로 출근하며 취재진과 만나 “이 대통령의 1호 공약인 AI 3대 강국이 되기 위해 3강의 정의부터 해봤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로선) 우리가 3위를 한다고 해도 미·중과 너무 차이가 크다. 1·2위에 근접한 3위가 돼야 하며 사실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며 “AI 3강 목표를 반드시 2∼3년 이내에 달성해야겠다는 사명감이 있고, 소속됐던 기업에서 좋은 사례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중기부 장관 후보자로는 한성숙 네이버 고문이 내정됐다. 한 후보자는 지난 2017년 네이버 최초로 여성 최고경영자(CEO)에 선임됐으며 같은 해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제13대 회장을 맡은 인물이다. 역대 중기부 장관을 살펴보면 통상 관료나 정치인이 낙점된 만큼 민간 기업 출신 후보자라는 점에서 신선하다는 평이 나온다. 중소기업계는 한 후보자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일꾼도 실용주의 중소기업중앙회는 논평을 내고 “중소기업계는 이재명정부 초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으로 한성숙 후보자가 지명된 것을 환영한다”며 “한 후보자는 네이버 등 IT산업에 오랜 경험을 가진 기업인 출신으로 산업 대전환기에 중소기업·소상공인의 AI·디지털화를 촉진하는 등 디지털 생태계를 구축할 적임자”라고 평가했다. 이처럼 정부와 중소기업이 한 후보자에게 기대를 걸고 있지만 과거 국정감사 이력이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고용노동부 등 국정감사 ‘단골’로 불릴 만큼 여러 차례 소환됐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2021년 네이버 직장 내 괴롭힘으로 한 직원이 극단적 선택을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의원들의 질책이 잇따랐다. 민주당 노웅래 의원이 당시 네이버 대표였던 한 후보자에게 “최인혁 (네이버파이낸셜) 대표를 징계했느냐”고 묻자 “네이버에서 본인이 사임을 했다”고 짧게 답했다. 노 의원이 “징계를 했느냐”고 재차 물었지만 한 후보자는 “징계가 있었다”면서도 정확히 어떤 처분이 내려졌는지 답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노동계 등에서는 “전형적인 꼬리 자르기”라는 비판이 나왔다. 이 밖에도 뉴스 편집 조작과 댓글 여론 조작 방조 의혹 등으로 2017년부터 4년 연속 국감 증인으로 소환됐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박상웅 의원은 한 후보자 지명과 관련해 “거대 포털과의 전략적 야합이라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한성숙 후보자 지명은 과거 민주당의 규제를 통한 견제가 아니라 포털과의 인사 유착을 통해 정권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시도로 비쳐질 수 있다”며 “플랫폼 권력과 정치 권력의 야합이라는 심각한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는 것이 국민적 시각”이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2021년 국감을 언급하며 “직원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극단적 선택까지 했던 괴롭힘의 현장을 방치한 책임자가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를 지원해야 할 부처의 수장으로 지명된 것은 납득할 수 없는 결정”이라며 “국민 신뢰를 저버린 매우 전략적이고 노골적인 이번 인사는 즉각 철회돼야 한다”고 거듭 지적했다. 성급했나? 잡힌 발목 실용과 통합을 위한 지명도 이뤄졌지만 여야 모두에게 질책을 받으면서 오히려 자충수라는 비판이 나온다. 윤석열정부 출신인 송미령 농식품부의 장관 유임과 한나라당 권오을 전 의원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송 장관이 유임된 배경에 대해선 “첫 국무회의에서 대부분 사의를 표한 후라 소극적이고 구체적이지 않은 답변이 많았던 반면, 송 장관은 상당히 구체적으로 대통령 질문에 답하고 국정 방향에 대해 미리 준비하고 적극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여러 안을 가지고 왔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일할 수 있는, 준비된 현직 국무위원이라고 판단한 것 아닌가 하는 짐작을 해본다”고 설명했다. 강 대변인은 “이 대통령은 지난 24일 유임을 발표한 뒤 첫 국무회의에서 송 장관에게 ‘사회적 충돌, 혹은 이해관계에 있어서 다른 의견이 있다면 유임된 장관으로서 적극적으로 들어보고 갈등을 조정하는 데 직접 역할을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고 부연했다. 아울러 “(송 장관이) 그에 대해서 수긍한 것으로 본다”며 “유임 결정까지는 대통령실에서 한 것이지만, 이후에 갈등 조정 기능도 내각에 임명 혹은 내정된 분들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송 장관의 유임을 두고 민주당, 특히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이하 농해수위) 소속 의원을 중심으로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는 분위기다. 지난 3년 동안 양곡관리법 등을 반대하고 이를 ‘농망법’이라고 부르는 사람을 기용하는 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다는 게 주된 이유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 진보당도 목소리를 높였다. 혁신당 박웅두 농어민위원장은 논평을 통해 “이재명정부의 ‘국민통합정부’ 의지를 높이 평가한다”면서도 “남태령 응원봉의 주역이자 이재명 대통령 당선에 뜻을 함께했던 농민들은 송 장관의 유임에 당혹감과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송 장관은 윤석열 농정에 대해 공식적으로 참회와 반성, 사과와 유감의 발언도 없었고 공개적인 평가의 과정과 책임의 경중을 논의한 바가 없는데 누가 송미령을 장관으로 추천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식량주권에 대한 손톱만큼의 애정이 있다면 유임 결정을 즉각 철회하라”고 밝혔다. 농해수위 소속인 진보당 전종덕 의원 역시 “농망 장관”이라며 지명 철회를 촉구하는 1인 시위에 나섰다. 통합용 지명? 여야 모두 아우성 ‘윤의 사람’ 그대로 품은 이유는? 일부 야권에서도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송 장관은 민주당이 추진한 양곡법과 속칭 농민3법을 농업의 미래를 망치는 농망법이라며 대통령 거부권 행사까지 건의했다”며 “그런데 이재명정부의 농림부 장관으로 지명되니 ‘새정부 철학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추진하겠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장관을 오래하려면 송미령 같이’라는 자조가 공직사회 전반에 퍼지지 않겠느냐”며 “금번 인사를 보니 이 대통령이 말하는 실용주의의 정체를 알겠다. 그건 실용의 이름으로 포장된 기회주의이자 국익으로 덧발라진 밥그릇 챙기기”라고 꼬집었다. 논란에 대해 한 민주당 관계자도 “나름 탕평 인사로 가장 탈이 안 날 것 같은 인물을 유임시킨 것 같은데 아마 이 대통령도 뒷말은 예상했을 것”이라며 “내란 종식을 내걸고 정권을 잡은 만큼 모순된 면이 있다. 그날 밤(12월3일) 용산에 모인 국무위원을 내란 동조자, 내란 방관자라고 하더니 ‘일을 잘하니 함께 가겠다’라는 건 국민에게 조금 더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권 전 의원이 보훈부 장관으로 지목된 것 역시 탕평 인사로 분류된다는 해석이다. 권 후보자는 지난 4월 6·3 조기 대선 당시 이재명 후보 캠프에 합류에 눈길을 끌었다. 친유승민계로 분류되는 권 후보자는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을 거쳐 바른정당에서 최고위원을 지냈다. 보수 인사였던 그는 이재명 캠프에 합류하면서 “대구와 경북의 정치적 발언권을 보장하기 위해 참여하게 됐다”며 “민주당의 중도 보수 지향에 대해 힘을 보탤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훈식 대변인은 권 후보자가 보훈부 장관으로 지명된 것에 대해 “경북 안동에서 3선 의원을 역임했다”면서 “지역과 이념을 넘어 특별한 희생에 특별한 보상이라는 보훈 의미를 살리고 국민통합을 이끌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권 후보자는 보수와의 소통에 힘을 쏟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국민통합을 강조하며 “소통의 장을 자주 마련하면 광화문 태극기 부대와 촛불 부대가 서로 소통이 되고 이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통령께서 국민통합이라면 소통의 장을 마련해 각자가 논리의 주장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해보고 들어봐서 반영하라고 하셨다”며 “그래도 자기 진영 논리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면, 이해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을 자주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유임된 송 장관을 제외한 10개 부처에 대한 개각이 이뤄지면서 국회 역시 각 상임위가 바쁘게 돌아갈 예정이다. 시기상 장관 후보자 청문회는 7월 말에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 청문회를 겪은 국민의힘은 남은 장관 후보자들에 대해서도 ‘송곳 검증’을 하겠다며 벼르고 있다. 격돌의 7월 관전 포인트 다만 한 야권 관계자는 “김민석 후보자의 청문회가 이틀 동안 진행됐지만 총리로서의 자격 검증은 뒷전이고 돈 문제만 물고 늘어졌다”며 “물론 총리 후보자의 부도덕한 면을 부각시킬 수 있겠지만 총리 후보자 청문회인 만큼 더 다양한 각도에서 질문을 해야 했다. 곧 있으면 다른 장관에 대한 청문회도 진행될 텐데 지금처럼 (청문회를) 진행해서는 국민의힘도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