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원·태영호발 국힘 리스크 딜레마

실수? 더는 안 봐준다

[일요시사 정치팀] 차철우 기자 = 두 달 만에 국민의힘 지도부에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한 사람도 아닌, 한꺼번에 두 명이 날아가 버렸다. 끊임없는 설화를 만들어냈던 인사들은 엄벌에 처해졌지만 이것만으로는 속이 개운하지 않다. 오히려 지금부터가 위기일 수 있어서다. 가까스로 버텨내고는 있지만, 다음 행보에도 비슷한 실수가 나온다면 정말 위태로워진다. 과연 계속되는 살얼음판의 김기현호는 괜찮을까?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 태영호 의원에 대한 징계 수위가 결정됐다. 윤리위원회는 김 최고위원에게 ‘당원권 정지 1년’, 태 의원에게 ‘당원권 정지 3개월’ 징계를 내렸다. 김 최고위원은 여전히 버티는 반면, 태 의원은 징계 수위가 결정된 날 최고위원 사퇴를 통해 한숨 돌렸다. 

공백 생긴
당 수뇌부

황정근 윤리위원장에 따르면 두 인물의 징계 사유는 각각 세 가지다. 김 최고위원은 5·18 헌법 전문 수록 반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의 우파 천하 통일 및 제주 4·3 사건 발언이 결정적이다. 태 의원은 제주 4·3 사건이 북한 김일성 지시라는 주장, 대통령실의 공천 개입 녹취록, 더불어민주당을 사이비 종교 단체인 JMS에 빗댄 발언이 문제가 됐다. 

앞서 국민의힘 지도부는 통상 월요일, 목요일마다 열었던 최고위원회를 두 차례 개최하지 않았다. 표면상 미개최 이유는 다른 일정 때문이었으나 일각에서는 사실상 김 최고위원·태 의원의 자진 사퇴의 종용을 위한 게 아니었냐는 해석도 나왔다. 

앞서 윤리위는 이들에 대한 징계 논의에 대해 한 차례 결정을 미뤘던 바 있다. 징계 결정을 두고 두 인사가 최고위원직서 물러날 경우 양형에 반영되냐느는 질문에 황 위원장은 “정치적인 해법이 등장하면 징계 수위는 예상하는 바와 같다”고 답했다. 결국 정치적 해법은 사퇴로 이어진 태 의원만 받아들인 모양새가 됐다.


자진 사퇴한 태 의원의 징계 수위는 윤리위서 어느 정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윤리위 4차 회의가 열렸던 지난 10일 오전, 기자회견을 열고 최고위원직 사퇴를 선언했다.

태 의원은 “부족함으로 당과 윤석열정부에 큰 누를 끼쳤다”며 “당과 대통령실에 누가 된 점 진심으로 사죄한다”고 고개를 숙였다. 윤리위도 태 의원이 스스로 물러난 것을 감안해 징계 수위에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버티는 김 최고위원과 징계 수위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당 일각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는 말이 나온다.

자진 사퇴 시 차기 총선서 공천 신청이 가능하지만, 버틸 경우 기회조차 주지 않을 가능성이 다분히 높기 때문이다. 같은 당 김용태 전 최고위원은 두 인사의 처신에 대해 ‘용산의 의중이 아니냐’고 추측하기도 했다. 버티던 태 의원이 사퇴 카드를 꺼낸 이유가 일종의 거래가 있었냐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국민의힘 당헌·당규에 따르면 징계는 ▲가장 낮은 수위인 경고 ▲당원권 정지 ▲탈당 권고 ▲제명의 4단계로 돼있다. 

당내에선 두 인물에 대한 징계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돼왔다. 한 최고위원도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서 “김 최고위원·태 의원의 중징계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징계 이야기가 끊임없이 나왔던 초반, 이들은 자신들은 잘못이 없다는 입장을 되풀이하며 여론전을 펼쳤다.

버티면 1년, 물러나면 3개월
당원보다 입김 센 전국위 표


지난 6일, 김 최고위원은 자신의 SNS에 징계를 반대하는 온라인 탄원서에 참여를 부탁한다며 지지자들을 독려하고 나섰다. 라디오 인터뷰서도 자신의 억울함을 알리는 데 집중했다. 앞서 그는 김기현 대표로부터 경고를 받고, 한 달간 자숙하는 시간을 보냈으며 제주도를 방문해 4·3 사건 유족들에게도 사과했다.

그럼에도 여론은 점점 악화됐다. 

태 의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지 않았고 오히려 반박에 힘을 쏟았다. 날을 세우기도 했다. 자신은 때릴수록 강해진다며 태영호 죽이기에 의연하게 맞서겠다면서 물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공천 개입 녹취록 논란으로 징계 수위가 최대 1년이 나올 수도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자 결국 꼬리를 내렸다. 

두 인물을 향한 비판이 끊임없이 나오자 내부서도 김 대표가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주장이 팽배했다. 논란 초기만 해도 김 대표는 두 인물을 옹호했던 바 있다. 지도부에 날을 세우고 있는 홍준표 대구시장을 오히려 상임고문서 해촉하는가 하면, 경고 발언으로 논란을 종식시키려 했다. 

결국 두 인물의 징계 수위가 결정되자 김 대표는 “일부 최고위원의 설화로 당원과 국민에게 심려를 끼쳐 송구하다”며 머리를 숙였다. 그러면서 앞으로 언행에 신중해야 한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윤리위가 열리는 동안 김 대표는 “잠시 (최고위원이)결원인 경우가 있지만 어떻게 그게 공백이냐? 다른 지도부는 투명 인간이냐?” 등 다소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끊임없는 설화가 터지는 사이 중도층은 줄줄이 등을 돌리며 이탈했고, 더불어민주당 김남국 의원의 ‘60억 코인’ 의혹이 눈덩이가 됐지만 국민의힘은 전혀 반사이익을 얻지 못하고 있다. 

다시 또
비대위?

게다가 강성 보수층을 의식하지 않을 수밖에 없는 국민의힘으로선 과도한 우클릭으로 인한 이탈표까지 신경써야 한다. 

김 최고위원과 태 의원의 징계가 이뤄진 강성 보수층만 바라보기에는 위험 요소가 따른다는 지도부의 계산이 깔려있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전당대회를 거치면서 국민의힘은 점점 극우 이미지가 극에 달했다. 

윤석열 후보와 단일화를 통해 정권교체를 이끌었으며 국민의힘과 합당을 했던 안철수 후보는 전대 기간 내내 색깔론에 휘말렸다. 심지어 최고위원, 당 대표 후보에 극우 유튜버들이 출사표를 던졌고, 자신의 조직을 과시하는 모습도 자주 보였다. 대부분 컷오프되긴 했지만, 국민의힘 안팎에는 판을 뒤흔들 만큼 극우 세력이 컸다. 


이번 김 최고위원의 징계 결정으로 잠시나마 극우 프레임서 벗어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앞으로다. 김기현호가 출범한 지 불과 두 달여 만에 곳곳서 사고가 발생한 데다 현재 선출직 최고위원 5명 중 2명이 공백 상황이다.

최고위원은 당원권 정지 시 사고로 규정하며 탈당 권유부터 궐위로 인정된다. 탈당 권유 또는 제명에 따른 최고위원 궐위 시에는 30일 이내에 전국위원회를 소집해 후임을 선출할 수 있다. 당원권 정지는 궐위가 아닌 직무정지에 해당해 공석이 유지된다. 

김 최고위원이 버티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당원권 정지가 의결돼 현재로선 지도부서 김 최고위원을 내칠 방법이 딱히 없다. 대신 지도부는 태 의원의 자리를 빠르게 채울 계획이다. 조만간 최고위에서는 최고위원 보궐선거 선관위를 구성하는 등 후임 선출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국민의힘 당헌 27조에 따르면 선출직 최고위원 궐위 사유가 발생한 날부터 한 달(30일) 이내에 전국위원회서 최고위원을 선출해야 한다. 데드라인은 다음달 9일까지다. 

위태로운
김기현호

전국위원회 구성은 당 대표, 원내대표, 정책위의장, 사무총장, 최고위원, 상임고문, 시도당 위원장, 당 소속 국회의원, 시장·도지사 등 1000명 이내로 구성되며 통상 보궐선거가 진행된다. 선관위 구성 후 선출 규정을 준용하게 돼있으나 선관위 의결로 지도부가 다른 방식을 선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규정은 맞추기 나름이다. 내부에선 지명직으로 바꾼다는 얘기까지 나온다”며 “지명직이든 선거를 치르든, 말만 선거다. 후보 등록 기간을 주고 나서 등록해도 100% 당원 선거보다 힘이 세다”고 말했다.

지도부 의중이 상당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셈으로 후임 최고위원의 관건은 친윤(친 윤석열)이냐 아니냐가 될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이미 ‘친윤 일색’이라는 비판서 자유롭지 못했던 만큼 영남권 후보와 비영남권 후보 중 누구를 선택할지 고심하고 있다.

만약 또다시 친윤 인사로 채울 경우 지역 배제 논란에 휩싸일 수도 있다. 

당내에서는 벌써부터 최고위원에 도전했던 허은아 의원, 김용태 전 최고위원이 하마평에 올랐으나 정작 당사자들은 출마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현실적으로 출마를 해 이득을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닌 탓이다.

또 다른 후보군으로 직전 원내대표 선거서 비윤(비 윤석열)계의 파란을 일으켰다고 평가받았던 이용호 의원이다. 국민의힘 내 유일한 호남(전북 남원임실순창)을 지역구로 두고 있는 이 의원은 대선 기간 무소속에서 당적을 옮겼다. 

이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최고위원직에 대해)아직까지는 제안이 없었다”고 말했지만 요청이 올 경우 최고위원직에 도전할 수도 있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게다가 김 대표가 취임 직후 연포탕(연대·포용·탕평) 원칙을 내세웠던 만큼 비윤계 인사의 지도부 입성 가능성도 배제할 수만은 없다. 

다급해진 지도부 최고위원 고심
용산의 뜻에 따라 다시 비대위?

문제는 대통령실의 ‘입김’으로 또다시 비대위설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닻을 올린 지 두 달 밖에 되지 않은 김 대표 입장에서는 비대위 구성은 최악의 시나리오로 최고위원을 이른 시일 내에 선출해야만 한다. 비대위설은 실제 가능성은 많지 않지만 마냥 불가능한 이야기도 아니다. 

앞서 이준석 전 대표 시절에도 최고위원들이 잇따라 사퇴하면서 비대위가 구성된 바 있다. 사퇴하지 않고, 비대위를 반대한 인물은 김용태 전 최고위원뿐이다. 

이와 관련해 김 전 최고위원은 “남아 있는 최고위원들이 하루, 이틀 뒤에 줄줄이 사퇴했다”며 “비공개 회의서 대통령실의 의중이 어딘지, 권한대행 체제를 유지할 것인지, 사퇴를 통해 비상 상황을 유발시킬 것인지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결국 당시에는 최고위원들의 줄사퇴로 이어졌다. 김 전 최고위원은 이번에도 용산의 의중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다. 그는 “나는 국민의힘이 비대위 체제로 가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윗선서 비대위로 간다, 혹은 지도부를 유지한다는 결정이 서면 최고위원들이 의중을 파악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2명의 최고위원이 사퇴할 경우, 두 달 만에 김기현호는 침몰할 수도 있는 만큼 이른 시일 내에 공석인 최고위원을 채워 넣어야 한다. 대외적로는 윤석열정부 출범 1년을 갓 넘긴 상황서 집권여당이 또다시 비대위 체제로 진입할 경우, 리스크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관리형·안정형 대표로 선출된 김 대표지만, 의지와 상관없이 이 전 대표와 마찬가지로 최고위원들이 용산의 의중을 좇는다면 김 대표 입장에서는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 최고위원 4명 전원 사퇴 시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 

직접 나서
수습해야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최고위원 공백 문제를)김 대표가 빠르게 수습해야 한다. 현 상황을 제대로 수습해내지 못하면 김 대표 역시 상당히 힘든 상황에 빠질 수 있어 보인다”며 “총선까지는 1년도 채 남지 않았다. 하루 빨리 재정비가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ckcjfdo@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공천 개입 의혹 수사 나서는 공수처

윤석열 대통령과 이진복 대통령실 정무수석에 대한 공천 개입 의혹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특별수사본부(이하 공수처)가 수사를 맡는다.

지난 9일 공수처는 이 정무수석,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 공천 발언과 관련한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 고발 사건을 특수본에 배당했다.

최근 한 언론에 의해 폭로된 태 의원의 녹취 발언과 관련해 한 시민단체가 이 수석을 직권 남용, 윤 대통령이 배후에 있다며 직권 남용 혐의로 고발한 바 있다.

지난 2월 신설된 특수본은 비직제 기구로 김진욱 공수처장의 직속으로 운영된다.

특수본은 다른 수사 부서와 달리 통상의 결재선도 거치치 않고, 김 처장에게 직접 보고하고 지시받는 구조다.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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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