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은 점점 양극화되어가고 있다. 우리나라만 노동 조건이 각박하지, 다른 곳은 사정이 다를 거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영국인 저자가 제시하는 수많은 사례를 보고 있으면, 오늘날 가시화되는 노동 착취는 2008년 경제위기 이후 계속된 스태그네이션과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으로 전 세계적으로 고도화된 현상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대표적으로 긱경제(정규직보다 필요에 따라 임시직, 계약직으로 사람을 쓰는 경향이 큰 경제)에 따른 가짜 자영업(법적으로는 직원으로 간주되며 직원에 준하는 권리와 혜택을 누리지만, 사측서 자영업으로 등록하도록 권유한 경우)의 등장을 예로 들 수 있다.
아마존 창고처럼 인력 교체가 쉽고, 직원들을 결속시키는 노동조합이 이리저리 쪼개져 있는 곳에서는 일 때문에 부상을 당한 직원들에 대한 책임을 방기하기 쉽고 그만큼 업무 강도를 높이는 일에 대범하다.
코로나19가 창궐했던 시점을 생각해보라. 의료진, 택배 기사, 슈퍼마켓 관리자가 없었다면 우리가 집 안에 틀어박혀 안전한 일상을 영위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또 정부의 방역지침에도 불구하고 대면 근무를 강행하고, 여성의 집안일을 줄이기 위해 또다른 여성에게 노동을 전가하는 행태는 모순적이다.
현 시대 경제의 전형을 보여주는 ‘코워킹 스페이스’를 거처로 삼고 즐기며 일하는 스타트업 직원 또한 소수에게만 해당되는 특전을 누린다. 그들이 재미있는 일을 도모하는 동안 대부분의 노동자는 그들의 공간을 청소하고 간식을 채워 넣어야 한다.
최근에는 일하면서 쉰다는 ‘워케이션’ 개념을 발전시켜 숙소 패키지 상품으로 내걸고 있으니, 이보다 더 일과 삶이 밀접하게 연결된 시대는 없었던 것이다. 일의 퓨즈를 끄지 못한 채 늘 과부하 상태로 살아가기에 덤으로 따라오는 잔잔한 번아웃 증상은 친구로 삼을 만큼 익숙하다.
그렇다면 정녕 우리가 느끼는 이 끝없는 무력감과 분노를 해결할 방법은 없는 걸까? 일터에서 생기는 스트레스의 가장 큰 원인은, 우리가 일하는 조건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직 고용주들만이 우리의 다음주 스케줄을 알고 있으며, 우리가 쓸 장비를 고를 수 있다.
그래서 혹자는 직장에서 할 수 있는 합법적인 농땡이를 피움으로써 일에 저항한다. 업무 시간에 인터넷 쇼핑하기, 흡연을 핑계로 나가기, 심지어는 다른 일자리 찾기까지. 하지만 이런 소소한 업무방해 행위가 실질적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저자는 다시금 노동자들이 힘을 합칠 것을 당부한다. 일에서 생기는 급여 미지급, 성희롱 같은 문제를 마주했을 때 노동자 개인이 대처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으므로 노동조합으로 노동자들의 힘을 키우자는 것이다. 2016년 우버 운전자들이 자영업자가 아닌 노동자로 인정받고, 2020년 위탁양육자들이 지역 의회를 통해 정식으로 고용된 피고용인으로서 권리를 얻어낸 것처럼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서로에게 총을 겨누는 제로섬 게임이 아닌 아래로부터의 혁명이다. 일을 구하는 것은 곧 삶을 구하는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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