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이치 사카모토는 어릴 적 유치원에서 처음 피아노와 작곡을 접했다. 자신의 경험이 음악으로 재탄생한 순간에 ‘근질거리는 듯한 기쁨’과 ‘위화감’을 동시에 느꼈다는 그는 10대 시절 내내 음악을 계속 공부하며 클래식 음악과 팝은 물론 현대음악으로까지 천천히 자신의 세계를 넓혀갔다.
한때는 자신을 드뷔시의 환생이라고 여기기도 했지만, 이윽고 서구권의 음악을 넘어 인도, 오키나와, 아프리카 등 민족음악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그렇게 ‘민중을 위한 음악’을 지향하며 전자음악에서 음악의 대중화 방안을 모색하기도 했다.
호소노 하루오미, 다카하시 유키히로와 함께한 YMO 밴드 활동은 대학원 졸업 후 ‘일용직’ 연주자로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그에게 일대 전환을 가져다줬다. 류이치 사카모토를 설명하는 수식어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의 이름을 대중적으로 알린 장르는 영화음악일 것이다.
그는 이 책에서 자신에게 영화음악가로서 명성을 안겨준 영화 <마지막 황제> 작업기를 애정을 담아 서술한다.
애초 배우로 이 영화에 참여했던 그는 제국주의자 아마카스 마사히코 역할을 맡아 깊은 고민에 빠지기도 하고, 일제의 괴뢰국 만주국의 흔적이 남은 촬영장에서 위화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던 중 베르톨루치 감독의 갑작스러운 요청으로 현장에서 사용할 생음악을 작곡한 것을 계기로 영화음악 전체를 맡게 되었다.
인터넷이 발달하지 못했던 당시 사카모토와 영화 제작팀은 BBC와 NHK의 회선을 이용해 데이터를 주고받는 방식으로 2주일 만에 음악을 만들어냈고, 그는 이 음악들을 통해서 아시아 최초로 아카데미 음악상을 거머쥐었다.
류이치 사카모토는 일본의 대표적인 학생운동인 전공투 세대의 일원으로서 10대로서는 드물게 학생운동을 주도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교복과 교모의 철폐, 시험 및 생활 통지표 폐지 등을 외치며 수업 거부 운동을 이끌던 그는 대학에 진학한 뒤에도 교정보다는 데모에 나가 민중과 함께 호흡하고자 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사카모토가 직접 목격한 9·11테러를 계기로 더욱 공고해졌고, 그가 평화와 반전(反戰)에 목소리를 높이는 방향으로 이어졌다. 그는 내전과 기아의 문제가 본질적으로 환경 문제와 이어진다는 의식하에 모어 트리즈(More Trees) 프로젝트를 시작해 지구 온난화를 막는 데 힘썼다. 책의 말미에서 류이치 사카모토는 자신이 스스로 음악가임을 자처할 수 있는 것은 순전히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 덕분이었다고 말한다.
그에 걸맞게 이 책에는 사카모토에게 영향을 준 음악, 문학, 영화 등 다양한 예술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 가족과 친구, 연애와 결혼 이야기 등 사적인 일들까지 기록돼있다. 어린 시절부터 그가 접하고 흡수한 것들은 죽기까지 그의 예술세계를 직조했다. 류이치 사카모토가 직접 이야기한 자신의 반생을 사진과 함께 생생하게 보여주는 이 책은 그가 세상에 내놓은 최초의 자서전으로서, 국내 팬들에게 더없이 좋은 선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