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부 들어 한중일 정상회의는 한 번도 개최되지 않았다. 언제 성사될지 예측조차 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나 한미일 정상회의는 두 번이나 개최됐다.
첫 번째 한미일 정상회의는 지난해 6월29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가 열린 스페인 마드리드서 개최됐다. 북핵 문제에 대한 안보 협력이 주요 의제였다. 당시 국내 언론들은 “한일관계의 경색으로 중단됐던 한미일 안보 협력이 복원되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두 번째 한미일 정상회의는 같은 해 11월13일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정상회의가 열린 캄보디아 프놈펜서 개최됐다. 북핵 문제에 대한 안보 협력과 글로벌 공급망 안전성 확보가 주요 의제였다. 당시 세계 언론은 “경제 안보 협력을 담은 프놈펜 성명이 중국을 겨냥했다”고 지적했다.
안보 협력 의제로 시작된 마드리드 한미일 정상회의(NATO 정상회의 기간 중)가 5개월 후인 프놈펜 한미일 정상회의(아세안 회의 기간 중)에서는 경제 안보 협력 의제까지 추가되면서 대(對) 중국 공조로 확대된 셈이다.
문제는 한미일 정상회의가 거듭되면서 한국과 일본이 중국과 모호한 외교 상황에 직면하게 됐고 한중일 3국의 협력관계도 금이 갔다는 점이다.
거기다 우리 외교부가 프놈펜 한미일 정상회의 직전 “한중일 정상회의는 ‘아세안+3(한중일) 정상회의’를 의미하는 것”이라며 “한중일 3국 간 별도의 정상회의는 계획된 바 없다”고 발표했고, 중국과 일본 외교부도 한중일 정상회의에 대한 별도의 반응 없이 우리와 같은 맥락의 의중을 보였다.
한중일 3국이 “한중일 정상회의는 매년 정례화된 정상회의이기에 국제기구 회의가 열리는 곳에서 일시적으로 잠깐 갖는 정상회의가 아니다. 그래서 아세안 정상회의가 열리는 프놈펜서 한중일 정상회의는 계획된 바 없다”고 해도 됐을 텐데, 왜 굳이 한중일 정상회의 협의체를 격하시키는 모습을 보였을까?
사실 프놈펜서 아세안 정상회의가 열리기 3개월 전까지만 해도 아세안+3 정상회의 의제를 미리 검토하기 위한 외교장관회의서 박진 외교부 장관이 3년 동안 개최되지 못한 한중일 정상회의를 조속히 갖자고 제안했다.
한국이 한중일 정상회의 다음 번 의장국으로서 한중일 국가 간 역사, 외교갈등으로 장기간 공전하는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중국과 일본에 던진 메시지였다. 그런데 불과 3개월 만에 왜, 우리 외교부가 일시적인 한중일 정상회의에 불과하지만 그마저 없다고 했고, 중국과 일본도 아무 말 없이 동조했던 걸까?
이는 서울에 사무국까지 두고 14년 역사를 가진 한중일 정상회의 협의체가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다는 속내를 드러낸 한중일 3국의 모습이 아닐 수 없다.
한국 대통령이 참석하는 주요 정상회의는 우리가 숱하게 들어왔던 한미 정상회의, 한중 정상회의, 한일 정상회의, 한미일 정상회의, 한중일 정상회의 등이 있다. 이 중 한중일 정상회의만 유일하게 정례화된 정상회의고, 나머지는 상황에 따라 열리는 일시적인 정상회의다.
한중일 정상회의는 한국, 중국, 일본 3국이 합의해 2008년부터 매년 개최키로 한 국가 정상급 회의다. 주로 경제협력과 관계 개선을 목적으로 하고 있고, 한국·일본·중국 순으로 돌아가면서 의장국이 돼 주관하고 있다. 그런데 코로나19 여파로 2019년 중국 청두서 열린 8차 정상회의를 마지막으로 아직까지 열리지 못하고 있다.
다음 9차 한중일 정상회의는 한국서 열릴 차례다. 성사 여부의 책임이 의장국인 우리에 있다. 중국과 일본은 급할 게 없지만 한국은 한중 정상회의나 한일 정상회의를 통해서는 풀기 힘든 외교적 불편과 역사적 갈등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서라도 한중일 정상회의 개최를 서둘러야 한다.
한미일 정상회의는 멀리 떨어져 있는 막강한 군사력을 가진 미국이 끼어 있고 한미일 3국의 안보 협력을 주요 의제로 다루면서 대중국 경제 압박을 도모하는 반면, 한중일 정상회의는 이웃나라끼리 정상회의로 한중일 3국의 경제협력과 관계 개선이 주요 의제다 보니 미국을 끌어들이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우리가 미국의 개입이 없는 한중일 정상회의서 중국이나 일본과의 갈등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경제 안보시대에 걸맞게 우리가 한미일 정상회의를 통해 경제안보를 챙겨야 한다는 정부의 외교적 판단에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러나 한중일 경제공동체가 전 세계의 GDP 25.5%, 교역 19.7%, 외환보유 40.1%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우리 정부가 휴면상태에 있는 한중일 정상회의를 빨리 회복시켜 한중일 경제공동체를 통해서도 새로운 경제발전의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
한미일 정상회의도 3국이 매년 돌아가면서 개최되는 정례화된 협의체로 발전해야 한다. 그래야 한국이 국방안보와 경제안보를 더 튼튼하게 구축할 수 있다. 한미일 정상회의가 정례화돼있지 않으니 국제기구가 열리는 행사장서 고작 20여분 정도 갖게 되는 것이다.
20여분 정도의 정상회의(마드리드 25분, 프놈펜 15분)로는 한미일 3국이 국방안보와 경제안보를 공고히 해 나갈 수 없다. 정례화된 정상회의를 통해 치밀하게 준비하고 협력 방안을 모색해야 한미일 3국의 공동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우리 정부가 한중일 정상회의는 회복하고, 한미일 정상회의는 정례화하는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본 칼럼은 <일요시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