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많은 사람은 전쟁을 겪어보지 않았다. 그러나 이 순간 전쟁 상황에 놓여 있는 사람도 많다. 전쟁이란 어떤 것일까. 비유로 흔히 쓰이는 ‘전쟁’이라는 말이 일상이 된다면, 지금까지 누리고 이루고 바라고 믿었던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무너지고 사라진다면, 순간순간 목숨을 지키는 일이 그날의 과업이 된다면, ‘내일’이나 ‘꿈’ 같은 단어들을 더는 떠올릴 수 없게 된다면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할까.
아무 잘못 없이, 아무 영문도 모른 채 벌어진 현실 앞에서 다 자란 성인에게도 참혹한 전쟁의 일상을 열세 살 여자아이의 몸으로 견디면서도 한 사람으로서 꿈꾸기를 멈추지 않은 안네 프랑크의 이야기가 그래픽 노블로 탄생했다.
안네 프랑크는 1929년 6월 12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암마인에서 유대인 가정의 둘째로 태어났다. 안네는 자신 있고 쾌활한 성격으로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았으며, 언어에 재능을 보여 작가와 언론인이 되기를 꿈꾸기도 했다. 열세 살 생일 선물로 받은 흰색과 빨간색 체크무늬 일기장에 ‘키티’라 이름 붙이고 내밀한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할 때만 해도 안네는 자기 앞에 어떤 생이 펼쳐질지 예상하지 못했다.
나치의 유대인 박해를 피해 독일에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이주한 안네의 가족은 네덜란드가 나치에 점령되며 1942년 7월부터 면적 약 100㎡의 부속 건물에서 은신 생활을 시작했다. 안네 가족을 포함해 여덟 사람이 함께 숨어 지내며 생필품이나 바깥소식을 외부에 있는 조력자에게만 의지해야 했다. 이 비참한 환경 속에서 안네는 매일같이 발각과 죽음의 공포를 견디며 마음 깊은 곳의 생각과 감정을 일기에 숨김없이 기록한다.
<안네의 일기>는 사춘기 소녀의 혼란한 내면에 관한 이야기이자 전쟁 동안 고통받고 죽어간 수백만 유대인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돌프 히틀러 본인을 제외하고 당대의 누구보다 나치 시대를 잘 알리는 사람은 안네 프랑크일 것”이라는 역사가 앨빈 로젠펠트(Alvin Rosenfeld)의 말처럼 <안네의 일기>에는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특별한 시기, 한정된 공간에 거주했던 유대인들의 일상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이 책에는 1942년 6월12일부터, 은신처가 발각되어 체포되고 수용소로 끌려가기 사흘 전인 1944년 8월1일까지 안네의 생활이 기록되어 있다. 가족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오토 프랑크는 작가가 꿈이었으며 종전 뒤 일기를 출판하고 싶어 했던 안네를 위해 1947년 안네가 쓴 일기를 출간하고, 수익금 전액을 자선과 교육 활동에 사용했다. 1963년에는 안네 프랑크 재단(Anne Frank Fonds Basel·AFF)을 설립해 자신의 유일한 포괄적 상속 기관으로 지정했다. 오토 프랑크 사후 <안네의 일기> 저작권을 소유한 안네 프랑크 재단은 기존 판본에서 삭제되고 편집되었던 내용을 모두 복구해 1991년 무삭제 완전판을 출간했다.
일기는 전 세계 65개 언어로 번역·출판되어 70년 이상 전 세계인에게 감동을 주고 있으며, 특히 오늘날의 젊은 독자는 수십 년 전 10대 소녀의 언어로 쓰인 일기에서 자신을 발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