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아랍에미리트(UAE) 국빈 방문 중 300억달러(약 37조원) 대(對) 한국 투자유치를 이끌어낸 윤석열 대통령이 한·UAE 비즈니스포럼 기조연설서 “우리나라가 원전 건설을 통해 UAE와 진정한 형제 관계로 발전했으며, 바라카 원전 현장을 방문해 우리가 쌓아 올린 금자탑을 확인했다”고 과거 업적을 치하했다.
그러면서 “양국 정부가 체결한 ‘포괄적·전략적 산업 첨단기술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기반으로 제조업의 디지털화, 모빌리티, 우주항공, 스마트팜, 부품 소재와 바이오산업에 이르기까지 미래성장동력을 함께 육성해나가겠다”고 미래 도약의 의지도 밝혔다.
윤 대통령이 한·UAE 간 과거 업적과 미래 도약을 언급하면서 미래 도약은 직설적으로 표현한 반면, 과거 업적은 ‘쌓아 올린 금자탑’이라고 비유적으로 표현했다. 국제무대서 비유적인 표현은 메시지를 강조할 때 주로 사용한다. 윤 대통령이 우리나라의 원전 건설 업적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다.
금자탑은 한자 금(金)자 모양이 거대한 탑 안에 왕이 안치돼있는 피라미드와 닮아서 피라미드를 금자의 탑, 즉 ‘金字塔’으로 비유한 데서 유래했다. 이는 길이 후세에 남을 뛰어난 업적을 일컫는 말로, 현재 옥스퍼드 영어사전(세계 표준어 사전)에 등재되진 않았지만, 한자 문화권에서는 표준어로 사용되고 있다.
금자탑 비유는 윤 대통령이 한·UAE 비즈니스포럼 기조연설서 말한 것 외에 “현대자동차가 미국 누적 판매 1500만대 금자탑을 쌓았다” “GS25 원소주 스피릿이 누적 판매량 400만병 금자탑을 쌓았다” “손흥민 선수가 아시아 선수 최초로 EPL 250경기 출전 금자탑을 쌓았다” 등 최근 우리 언론에도 자주 등장하고 있다.
금자탑은 원래 신조어였지만, 많은 사람이 사용하면서 널리 알려져 중국을 넘어 아시아권에서 표준어로 자리 잡았다. 중국 문자인 한자의 위력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필자는 금자탑에서 힌트를 얻어 한글 모양을 응용한 신조어 ‘슈자선’을 만들어 2019년 출간한 칼럼집 <생각 연습>에 소개한 적이 있다.
슈자선은 한글 ‘슈’자 모양이 우주를 향해 치솟는 우주선과 닮아서 우주선을 슈자의 선으로 비유해 만든 신조어다. 이는 추진력 있는 미래 도약을 일컫는 말이다. 과거의 위대한 업적에 방점을 둔 금자탑과 달리, 슈자선은 미래의 희망찬 도약에 방점을 둔 한글 신조어다.
필자는 윤 대통령의 한·UAE 비즈니스포럼 기조연설 기사를 보면서, 윤 대통령이 “바라카 원전 현장을 방문해 우리가 쌓아올린 금자탑을 확인했고, 이제는 우리가 UAE와 미래성장동력을 함께 만들어가는 슈자선을 쏘아 올리겠다”고 언급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윤 대통령이 아랍어로 “슈크란 자질란(매우 감사합니다)”이라고 외치며 기조연설을 마쳤는데 ‘슈크란 자질란‘의 약자는 ’슈자‘다. 한글 슈자는 우주선 모양이라며 우주선처럼 미래를 향해 함께 도약하자는 의미의 “슈자선!”도 외치며 우리 한글을 홍보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만약 그랬다면, 우리 언론과 전 세계 언론이 한글 모양을 따서 만든 신조어 슈자선에 대한 해석과 함께 “윤 대통령이 UAE서 금자탑을 기반으로 슈자선을 쏘아 올렸다”고 대서특필했을 것이다.
우리 정부가 얼마 전 세계 7대 우주강국을 넘어 5대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미래 우주경제 로드맵‘을 발표했다. 우선 올해 우주항공청을 설립하고, 2032년 달 착륙 목표를 위해 10년간 약 2조원을 투입하고, 차후에 화성까지 갈 수 있는 우주선을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10년 후 우리나라 우주선이 달 착륙에 성공할 때도 우리 언론과 전 세계 언론이 “한국이 드디어 달나라에 금자탑을 쌓고, 이제는 화성을 향해 슈자선을 쏘아 올렸다”는 제목의 기사를 쓰면 좋겠다. 과거지향적인 금자탑뿐만 아니라 미래지향적인 한글 신조어 슈자선도 함께 써야 우주강국으로서 우리나라의 위상이 더욱 빛날 수 있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한글 기원 단어 등재가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한글 기원 단어 등재는 전 세계의 각기 다른 언어권에서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등재된 한글을 사용할 때 영어로 번역해서 사용하지 않고 한글 자체를 그대로 사용해야 한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한복을 ‘korean traditional dress’가 아닌 한글 ‘한복’을 영어 문자로 바꾼 ‘hanbok’으로 쓰고 읽고 말해야 하고, 그 뜻을 알려면 한글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한글이 국제무대서 우리 문화자산으로 그 영역을 넓히면서 이제는 한글 디자인, 한글 상표 등 한글 관련 콘텐츠가 K-문화와 함께 전 세계를 누비는 시대가 됐다. 슈자선처럼 한글 모양을 따서 만든 신조어도 머지 않아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등재돼 한글의 우수성을 알리는 데 일조하리라 믿는다.
한자 금자탑이 아시아권에 널리 통용되면서 중국의 위상을 보여주고 있듯이, 슈자선 같은 한글 신조어도 전 세계에 널리 통용되면서 한국의 위상을 보여줘야 한다. 대통령의 해외순방 때도 방문국과의 외교, 안보, 경제 분야의 협력 외에 우리 한글의 우수성을 알리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신조어 슈자선이 한국서 널리 사용돼 한국 표준어가 되고, 나아가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도 등재되길 기대해본다.
※본 칼럼은 <일요시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