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법의학계 큰 족적 남긴’ 서중석 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장

“이태원 참사에 법의학자는 없었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놈의 세상이 다 변해도 이거 하나만큼은 안 변하는 것 같습니다.” 스스로를 ‘동네 할아버지’라고 말한 노회한 법의학자는 수십년째 그대로인 법의학 환경에 한탄을 쏟아냈다. 무리의 선두에서 서서 ‘진군의 나팔’을 불었던 지난날에 대한 진한 아쉬움도 토로했다. <일요시사>는 서중석 전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원장을 만났다.

지난해 9월15일 서중석 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하 국과수) 원장을 만나기 위해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 위치한 에스제이에스(SJS) 법의학 연구소를 찾았다. 직원과 손님으로 북적이는 연구소에서 서 전 원장은 컴퓨터에 눈을 떼지 못한 채 취재진을 맞았다. 이날 인터뷰는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정신없이 이어졌다. 빽빽한 서 전 원장의 일정에 도망치듯 자리를 떠야 했다.

지쳐버린

지난 10일, 서 전 원장을 다시 만났다. 이전과 달리 서 전 원장은 조용한 연구소에서 혼자 기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4개월 전, 그는 “우리나라 법의학에 미래는 없다”고 말했었다. 2012~2016년 2대 국과수 원장을 지냈던 그는 2011~2013년에는 대한법의학회장도 역임했다.

국내 법의학계에 굵직한 족적을 남긴 인물의 발언은 묵직함을 넘어 충격으로 다가왔다. 

서 전 원장은 이날도 여러 차례 날카로운 말을 던졌다. 특히 지난해 10월29일 서울 이태원에서 일어난 참사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이태원 참사로 159명이 사망했고 196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300명이 넘는 사상자가 나온 대량 재해 현장에서 ‘죽음 전문가’인 법의학자는 찾아볼 수 없었다.


존재도 역할도 그야말로 무(無)였다. 서 전 원장은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법의학자가 ‘배제됐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분명하게 반박했다. 

“배제는 참석할 자리가 있는데 하지 못하도록 한 거죠. 이태원 참사 현장에는 법의학자를 위한 자리가 아예 없었어요. 대량 재해가 일어나면 매뉴얼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데 이태원 참사는 그 단계까지 가지도 않았습니다. 유명한 이야기 중에 ‘죽음보다 더 슬픈 것은 잊히는 것’이라는 말이 있죠. 이태원 참사에서 법의학자의 역할은 아예 잊혔습니다.”

300명 넘는 사상자 대량 재해
사인에 대한 논의 전혀 없었다

우리나라는 한 장소에서 수많은 사망자가 나오는 이른바 대량 재해가 주기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사고,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2003년 대구지하철 지하철 화재사고로 엄청난 사상자가 발생했다. 2014년 세월호 사고로 안산 단원고 2학년 학생을 비롯한 30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2017년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사고로 29명이 사망했다.

반복된 참사는 아이러니하게도 국과수 법의학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서 전 원장은 “법의학뿐만 아니라 유전자 감정, 유류품을 분석하는 법과학도 많이 발전했다. 예전에는 국과수에 치과의사가 없어서 대학에서 법치의학을 하는 사람이 와서 감정을 도와주곤 했는데 지금은 4명 정도 있다. 이들은 대량 재해가 일어날 때마다 현장으로 달려가 묵묵히 일하면서 매뉴얼을 만들었다. 혼란을 피하고 피해를 입은 국민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겠다는 의지였다”고 말했다. 

최근 이런 기조가 차츰 변질돼가면서 사건을 ‘쉽게, 쉽게’ 해결하려 한다는 게 서 전 원장의 생각이다. 특히 이번 이태원 참사에서 사망자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없는 점에 의문을 표했다. 좁은 장소에 많은 사람이 몰려 사고가 일어나 사망자가 발생하면 사인을 ‘압사’로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사람에 눌리거나 깔려서 사망했다고 보는 것. 

하지만 이번 이태원 참사처럼 좁은 장소에 많은 사람이 몰리면 압사 외에도 ▲코와 입이 막혀 질식하는 경우 ▲복부가 눌러 토사물이 역류해 질식하는 경우 ▲트라우마로 사망하는 경우 ▲공포스러운 환경에서 평소 앓고 있던 지병이 급격하게 악화돼 사망하는 경우 등 다양한 원인으로 죽음에 이를 수 있다.

서 전 원장은 이 부분에 대한 논의를 분명히 진행했어야 했다는 입장이다. 

“대량 재해가 발생했을 때 가장 기본적인 사항이 ‘당사자의 고통을 최소화하고 신속하게 복구하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이태원 참사 당시 상황을 보세요. 사체가 도처에 놓여있고 일반인이 CPR(심폐소생술)을 하는 모습이 말 그대로 생중계됐습니다. 이런 나라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법의학 의사 또는 인권을 컨트롤할 수 있는 사람이 (그 자리에) 있어야 했어요.”

문제는 이미 ‘피로 만든 매뉴얼’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수많은 대량 재해를 경험하면서 희생자가 남기고 간 것들이다. 2002년 4월15일 경남 김해 민항기 추락사고가 일어났을 당시 국과수는 비상설기구로 집단사망자관리단(KDMORT)을 발족했다.

미국의 재난대응팀 디몰트(DMORT)에서 착안했다. 디몰트는 재해로 사망한 사람을 안치할 수 있는 영안실과 사인 조사 등의 법의학 서비스를 제공한다. 

‘피로 쌓은’ 경험과 노하우
“아무도 자리를 주지 않아”

2018년부터는 경찰청과 국과수가 합동으로 재난희생자 신원확인 협력체계를 구축하고 경찰 과학수사관과 국과수 법의학자 등으로 구성된 ‘K-DVI’(재난희생자 신원확인팀)도 운영 중이다. 앞서 국과수는 2015년 <Waiting and Condolence(기다림과 애도)>라는 제목의 DVI 매뉴얼을 발간했다. 대량재해가 일어났을 때 개인식별하는 방법을 기술한 저서다. 

서 전 원장이 안타까워하는 지점은 바로 여기였다. 대량 재해를 직접 몸으로 부딪히며 노하우를 쌓고 매뉴얼을 만들어 직접 현장에 적용한 경험이 있는 법의학 전문가가 설 자리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그는 전문가 자체가 없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법의학을 하려는 사람은 점점 찾기 힘들고 국과수는 법의학자에게 더 이상 명예로운 곳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결국 도돌이표처럼 검시제도에 대한 비판이 나왔다. 지난해 9월 서 전 원장은 2014년 <세계일보>와의 인터뷰를 언급하면서 “지금은 의지가 다 닳았다. 아무리 얘기해봐야 달라지는 게 없다. 검시제도는 평생의 바람이었는데…”라고 말한 바 있다.

검시제도 관련 법안 7개 중 6개가 임기 만료로 폐지됐다.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이 발의한 법안도 ‘제자리 걸음’ 중이다. 21대 국회가 끝나면 다음 법안 발의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도 알 수 없다. 


서 전 원장은 몇 년 전부터 검시제도와 관련해 “지금처럼 검사가 검시권한을 행사하되 부검 여부를 결정하기 전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는 내용으로 법제화됐으면 한다”는 뜻을 비쳤다. 검시제도를 완전히 뒤엎는 방식이 아닌 전문가, 즉 법의학자의 역할을 점차 늘려가는 식으로 가자는 것이다.

“아쉽다”

서 전 원장은 인터뷰 동안 여러 번 ‘아쉽다’는 말을 반복했다. 4년간 국과수 원장으로 재직하면서 경험이 부족해 진행하지 못한 일 등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욕을 먹더라도 ‘진군의 나팔’을 더욱 불었어야 한다고도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인터뷰 마지막까지 법의학자에게는 대량 재해에서 사망자와 그의 유가족을 돌봐야 하는 임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 어렵게 쌓은 기술이 사라질 때까지 방기하지 말았으면 한다고 끝끝내 덧붙였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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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억 오세훈 한강버스, 아라호 흑역사 오버랩

1000억 오세훈 한강버스, 아라호 흑역사 오버랩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시가 돛을 올린 한강버스가 고장 끝에 결국 멈췄다. 과거 ‘아라호 사업’도 재조명되고 있다. 아라호 사업은 2010년대 초반 경인 아라뱃길을 중심으로 관광 활성화와 교통난 해소를 위해 인천시와 공동으로 수백억원을 들여 기획한 수상 교통 프로젝트였다. 아라호는 시민들의 외면과 운영 적자로 인해 자취를 감췄다. ‘반면교사’로 삼았던 걸까? 서울시는 한강을 따라 운행되는 수상 교통수단으로, 서울 전역을 연결하는 새로운 교통망을 구축하겠다는 계획으로 지난 18일 한강버스 운항을 시작했다. 여의도, 잠실, 뚝섬 등 주요 한강변 거점과 지하철역을 연계해 시민과 관광객 모두가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는 게 핵심이다. 관광이냐 출퇴근이냐 서울시는 한강버스를 통해 관광 교통수단을 넘어 서울을 ‘한강 중심의 스마트 모빌리티 도시’를 만들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그러나 정식 운항을 시작한 지 열흘 만에 운항이 중단됐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9일 오전 시청에서 열린 주택 공급 대책 관련 브리핑 도중 “한강버스 관련 입장을 밝히지 않을 수 없다”며 “시민 여러분께 송구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열흘 정도 운행 통해 기계적·전기적 결함이 몇 번 발생하다 보니 시민들 사이에서 약간 불안감 생긴 것도 사실”이라며 “이번 기회에 (운항을) 중단하고 충분히 안정화시킬 수 있다면 그게 바람직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시는 이날부터 10월 말까지 한강버스 시민 탑승을 중단하고 성능 고도화와 안정화를 위한 무승객 시범 운항을 한다. 시는 국내 최초로 한강에 친환경 선박 한강버스를 도입해 지난 18일 정식 운항을 시작했다. 하지만 지난 22일에는 잠실행 한강버스가 운항 중 방향타 고장이 발생했고, 같은 날 마곡행도 운항 준비 중 전기 계통에 문제가 생겨 결항했다. 26일에도 운항 중 방향타 고장이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운항 중단과 재개가 반복되자 운항 중단을 결정했다. 과거 아라호의 값비싼 교훈을 남겼지만, 실패 요인을 분석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해석되는 결과다. 한강버스 역시 또 하나의 혈세 낭비 사례가 될 수 있다. 서울시 한 관계자는 “아라호 사례를 철저히 분석해 이번에는 실질적인 시민 편익을 제공하고 지속 가능한 운영 모델을 구축하겠다”고 강조했다. 한강버스가 서울의 새로운 교통 패러다임으로 자릴 잡을지, 아라호의 전철을 밟을지는 향후 몇 년간의 운영 성과에 달려 있다. 서울시 아라호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첫 임기 때인 2010년 서울시가 예산 112억원을 들여 만든 2층 유람선으로 지난 2009년 5월부터 1년5개월을 들여 건조됐다. 오 시장의 지시로 건조된 아라호는 시민들에게 저렴한 요금으로 공연과 한강특화공원 관람이 동시에 가능한 선상문화체험 기회를 제공한다는 영리 목적보다 공공문화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차원에서 민자 유치 대신 재정이 투입된 사업이었다. 당초 아라호를 한강에서 인천 앞바다까지 운항하는 관광 크루즈선으로 활용하려 했으나 여덟 차례 시범 운항과 21회 시험 운항만 했을 뿐 사실상 사업은 중단됐다. 제작 당시부터 경제적 타당성이 부족하다는 논란을 빚었던 아라호는 정식 취항도 해보지 못한 채 팔렸다. 실제 운행이 어려운 상황에서 보험료와 유지비 등 관리 비용에만 연간 1억원이 들어간다는 점도 매각을 선택하는 데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112억원 들여 29억원에 판 아라호 출항 나흘 만에 고장…오, 좌불안석 아라호가 정식 운항에 나서지 못했던 배경에는 서해뱃길 사업을 둘러싼 서울시와 시의회의 갈등도 있었다. 오 시장의 아라호 활용 계획에 당시 더불어민주당이 다수인 시의회가 이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지난 2011년 10월 고 박원순 전 시장이 취임 후 사업 타당성 문제로 매각을 결정하면서 오 시장의 한강 르네상스 사업이 백지화됐다. 결국 서울시는 아라호 매각을 결정한 후 지난 2013년 5월, 106억원의 예정 가격으로 매각 입찰에 나섰으나 응찰자가 없어 유찰됐다. 이후 2차 입찰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알만한 이들은 알겠지만, 선박 사업은 수요를 찾기 어려운 사업 중 하나다. 결국 서울시는 3차 매각 입찰에서 최초 예정 가격에서 10% 인하된 95억원으로 깎았지만 이마저도 입찰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후 같은 해 11월, 4차 매각에서 15% 인하된 90억원에 입찰을 시도했지만 응찰자가 없어 가격 인하의 효과는 전혀 없었다. 그러다 서울시는 지난 2016년 아라호를 매각하지 못하자 결국 임대 쪽으로 사업 방향을 틀었다. 아라호가 정식 운항도 못한 채 6년 넘게 여의도 한강공원 선착장에 방치되면서다. 서울시가 제시한 사업 기간은 연말까지 8개월이고 한 차례 1년간 계약을 연장할 수 있었다. 당시 최저 임대료는 2억6300만원이었다. 아라호는 임대 사업을 시작해 건조 6년 만에 빛을 봤지만, 운항이 종료되는 시점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한강의 애물단지로 전락했던 아라호는 지난 2016년 민간업체인 레츠고코리아가 임대사업권을 낙찰받아 3년간 운영하다가 2018년 이랜드그룹 계열사 이랜드크루즈로 사업권을 넘겨줬다. 이랜드크루즈가 사업권을 따낸 시점은 지난 2018년 3월이지만 실제 운영은 2019년 6월부터 시작됐다. 이전 사업자인 레츠고코리아가 서울시의 계약 위반을 주장하며 유람선과 시설물 반환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랜드크루즈는 1년간의 법정 공방 끝에 지난 2019년 6월부터 운영을 시작했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수익성 악화로 아라호의 임대 운영 사업을 1년 만에 접어야 했다. 애물단지 전락하나 이랜드크루즈는 임대계약 갱신청구권(1년)마저 포기했다. 코로나19 팬데믹 무렵부터는 주식회사 수가 임대사업권을 이어받았다. 이후 마지막으로 인더라인25가 지난해 6월부터 올해 5월까지 사업하는 조건으로 서울시와 지난 2022년 12월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1년 단기 임대계약이 종료된 이후에도 인더라인25가 철거하지 않아 서울시는 골머리를 앓았다. 아라호 운항은 멈췄지만, 선착장을 한 달째 무단 점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더라인25는 계약 연장을 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서울시는 인더라인25를 상대로 명도소송, 점유 이전 금지 가처분, 행정 가처분 등 소송을 진행하기도 했다. 아라호가 실패한 가장 큰 이유는 수요 예측 실패와 운영비 부담이었다. 당시 서울시는 아라호가 연간 수십만명의 승객을 유치할 수 있다고 예상했으나, 실제 이용객은 예측치의 30%에도 미치지 못했다. 또 노선 설계가 시민들의 일상적인 통근이나 이동과 잘 맞지 않았고, 요금 역시 육상 교통수단에 비해 비쌌다. 결과적으로 관광객 유치에도 한계가 있었고,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아라호는 철수될 수밖에 없었다. 아라호는 건조한 지 15년 만에 민간에 팔렸다. 지난 1월 서울시 한강 유람선 아라호는 5차례 입찰 끝에 약 28억5780만원에 팔려 민간업체에 인도됐다. 2013년부터 총 9번의 입찰을 시도한 결과 3분의 1 가격에 달하는 헐값에 팔린 셈이다. 당시 서울시에 따르면 아라호는 2024년 11월 말 공개입찰을 진행한 뒤 지난달 주식회사 마이랜드와 매각 계약을 체결했다. 길이 58m에 688톤 규모의 아라호는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과 서강대교 남단을 오갔다. 승객은 총 310명까지 태울 수 있다. 음악회, 공연, 결혼식, 영화 상영을 위한 시설도 보유했다. 선착장에는 편의점, 치킨집 등 부대시설도 있었다. 아라호는 건조 후 15년 만에 매각되기까지 여러 우여곡절을 겪었다. 후임 고 박원순 시장이 2012년 사업을 백지화하면서 5년간 방치됐다. 2013년 5월 처음으로 공개입찰에 넘겨졌다. 시는 같은 해에만 총 4번의 입찰을 추진했으나, 입찰자가 없어 매번 무산됐다. 실패했지만 이번엔 달라? 서울시는 수의계약 방식으로도 매각을 시도했으나, 매각사의 자금 동원 문제로 불발됐다. 이에 시는 2016년 아라호를 매각하는 대신 민간 위탁하는 방향을 택했고, 2017년부터 민간 위탁을 통해 운영했다. 하지만 임대계약이 만료되면서 지난해 5월 말부터 운항이 중단됐다. 그러자 시는 다시 매각을 시도했다. 지난해 10월부터 총 5차례의 입찰을 진행했고, 같은 해 11월 말 입찰자가 나와 12월 매각 계약을 맺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그간 아라호의 위탁 운영은 선박 운항이 아닌 선착장 내 치킨집 등 부대시설 위주로 돌아갔다”며 “자연스레 선박도 노후화되고, 전반적으로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다시 매각을 추진하게 됐다”고 말했다. 법적 분쟁으로 얼룩진 아라호를 통해 한강에 배 띄우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경험했지만, 이번엔 다르다고 한다. 서울시는 이번 한강버스 사업에서 아라호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3가지 전략적 과제를 내세우고 있다. 먼저, 실제 수요 기반의 노선 설계를 강조했다. 또 관광 중심이 아닌, 출퇴근·생활 교통을 고려한 정류장 배치, 그리고 지하철·버스 환승과의 연계를 강화했다는 것이다. 합리적인 요금 체계를 내세우기도 했다. 기존 대중교통과의 환승 할인을 적용하고, 관광·레저용 프리미엄 서비스와 생활 교통 요금제의 이원화를 강조했다. 또 탄소 배출을 최소화한 전기·수소 하이브리드 선박을 도입했고, 실시간 교통 정보 제공 및 안전 관리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한다. 서울시가 한강버스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지난해 들인 초기 사업비는 약 542억원으로 향후 발생할 총 사업비는 약 1500억~1750억원으로 예상된다. 아라호 사업비보다 10배가량 많은 혈세가 투입될 예정이다. 한강버스는 출·퇴근용 선박인 만큼 이용객을 충족하기 위해 여러 척의 선박이 필요하다. 지난해 3월 한강버스 운영사는 6척의 선박을 납품받는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현재는 첫 출항 이후 3척이 운항 중이며, 향후 6척의 선박이 모두 납품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밖에도 선착장 시설, 운영 시스템, 접근성 개선 등 다양하고 복합적인 요소가 포함돼 총사업비가 1000억원대 중반까지 증가한다. 묻지 마 10배로 베팅 6시에 나와야 9시 출근 아라호는 ‘유람선 제작’이 중심이고, 공연시설 등이 포함된 문화를 제공하기 위한 목적의 선박이었다. 시설 설계가 크고 복잡한 부분이 있지만, 수량이 하나라 규모 면에서 제한적이기에 한강버스와 다르다는 결론이다. 반면, 한강버스는 여러 척의 선박을 건조해야 하고, 선착장 설치 또는 보수도 그만큼 갖춰져야 한다. 또 전기 또는 하이브리드 선박을 도입한 만큼, 유지비용도 클 뿐만 아니라 홍보, 안전, 시험 운항 등 여타 부대 비용에 민간투자금 및 보조금 등이 혼합돼있어 사업비 증액은 여러 원인으로 발생한다. 한강버스 사업비가 초기 대비 크게 증가한 이유로 업체 선정 과정에서 계약 조건, 예상보다 오래 걸린 공정률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를테면 선박 제작 능력이 있는 업체와 없는 업체 간의 차이를 분석했는데, 일부 업체는 인프라가 부족하거나 준비가 미흡했다는 평가를 받아 계약이 무산된 경우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강버스는 대중교통 기능이 강조되면서 ‘출퇴근 수단’ ‘교통망 보완’ 등의 역할이 기대되는 상황이다. 따라서 초기 투자비가 크더라도 지속 운영을 통한 수요 확보가 전제된다. 하지만 계획 대비 수요가 예상만큼 확보될지, 운영비와 적자 보전 부담이 얼마나 될지는 논란 중이다. 한편, 한강버스는 정식 운항 나흘 만에 선박의 방향타 고장 등으로 잇따라 멈춰 승객들이 불편을 겪었다. 지난 23일 기준 누적 탑승객이 1만명을 돌파하는 등 시민들의 큰 관심을 받은 한강버스가 정시성 확보가 중요한 대중교통수단으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을 지 의문이 커지고 있다. 매체에 따르면 지난 22일 오후 7시쯤 옥수선착장을 출발한 잠실행 한강버스가 강 한가운데서 20여분간 멈춰섰다. 결국 승객들은 종착지까지 가지도 못하고 도중에 내려야 했다. 한강버스 운영사는 고장 선박을 뚝섬 선착장에 접안한 뒤 승객들을 모두 하선시켰고, 뚝섬에서 잠실까지 구간의 운항을 취소했다. 지난 18일 정식 운항을 시작한 지 나흘 만에 발생한 일이다. 이 과정에서 제대로 된 안내 방송이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 탑승객은 “20분이 넘게 서 있었고, 안내 방송이 안 나오고 승무원도 안 계시고…. (뚝섬 선착장) 도착하기 2~3분 전에 승무원이 ‘이 배 잠실까지 안 간다’고 뚝섬에 다 내리셔야 된다고…”라고 말했다. 이 사고와 별개로 같은 날 오후 7시30분에 잠실 선착장을 출발할 예정이었던 마곡행 한강버스는 선박 고장으로 아예 결항됐다. 그 바람에 강서 방향으로 이동하려던 시민들은 황급히 다른 교통수단을 찾는 등 불편을 겪어야 했다. 승부수? 무리수? 서울시는 두 선박 모두 전날 밤 안정화 조치를 거쳐 다음 날인 23일 운항에는 차질이 없다고 밝혔다. 또 선내 안내 방송이 없었다는 주장에 대해선 한강버스 운영사가 이상을 감지한 뒤 원인을 파악하는 데 다소 시간이 걸려 안내에 일부 지연이 있었다는 설명이다. 현재 한강버스는 마곡-망원-여의도-압구정-옥수-뚝섬-잠실 28.9km 구간을 상하행 7회씩 총 14회(첫차 11시) 운항하고 있다. 소요 시간은 마곡에서 잠실까지 127분이다. 여의도에서 잠실까지는 80분이다. 추석 연휴 이후인 다음 달 10일부터는 출퇴근 시간 급행 노선(15분 간격)을 포함, 평일 기준 왕복 30회로 증편한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