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쭉날쭉’ 흉악범 얼굴 공개, 왜?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3.01.09 13:35:45
  • 호수 1409호
  • 댓글 1개

누군 덮고 누군 까고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택시 기사와 동거녀를 살해한 이기영의 신상이 공개됐다. 이때 공개된 이기영 사진은 운전면허증 사진으로, 공개되자마자 실물과 다르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이 같은 반응은 처음은 아니었으며 실제로 흉악범들의 사진이 공개될 때마다 제기돼왔던 문제다.

경기 파주시에서 전 동거녀와 택시 기사를 잇달아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이기영(31)이 지난 4일 검찰로 넘겨졌다. 그는 지난해 12월 음주 운전으로 택시와 접촉사고를 낸 뒤 60대 택시 기사를 집으로 데려와 둔기로 살해하고 시신을 옷장에 유기한 혐의를 받는다. 

그 사진이
이 사람?

이보다 넉 달 앞선 지난해 8월에는 파주시 집에서 동거하던 50대 여성을 둔기로 살해하고 시신을 파주시 공릉천변에 매장한 혐의도 있다. 경기 일산동부경찰서는 이날 이기영에게 강도살인 및 살인, 사체은닉, 절도, 사기, 여신전문금융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사건을 의정부지검 고양지청으로 송치한다고 밝혔다.

당초 이기영은 전 동거녀와 택시 기사에 대한 살인 혐의만 적용됐으나 택시 기사 살해 당시 재정 문제 등 전반적인 정황을 토대로 강도살인 혐의가 추가됐다. 

이기영은 검찰에 송치되면서 얼굴을 가렸다. 지난 4일 오전 9시, 경기 일산동부경찰서 정문 밖으로 나와 취재진 포토라인 앞에 선 이기영은 패딩 점퍼 후드를 눌러쓴 채 고개를 숙이고 마스크를 써서 얼굴을 완전히 가렸다. 


이날 포토라인 앞에서 얼굴이 공개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지만, 이기영은 지급된 마스크를 스스로 착용해 얼굴을 거의 가린 것이다. 이기영은 “피해자 유가족에게 할 말 없냐”는 취재진 질문에 “죄송합니다. 살인해서 죄송합니다”라고 답했다. 

포토라인에서 이기영의 얼굴을 볼 수 없었지만, 이미 이기영의 신상은 공개됐다. 경찰은 지난달 29일, 신상정보 공개 심의위원회(신상공개위원회)를 열고 이기영의 나이와 얼굴 사진을 공개했다. 신상을 공개하기 앞서 경기북부경찰청 신상공개위원회가 이기영의 얼굴과 나이를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이기영이 최근 촬영한 사진 공개를 거부하면서 예전에 찍은 운전면허증 사진이 배포됐다. 현행법상 당사자가 거부하면 최근 사진을 공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피의자 신상 공개가 시작된 것은 1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계기는 2009년 강호순 등 연쇄살인범 검거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흉악범의 얼굴을 공개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졌다.

당시 강호순의 신상 공개에 문제시된 것은 다음과 같다. 입법조사처는 ▲언론의 자유와 피의자의 인격권 및 무죄 추정 원칙 ▲(범죄와 형법의 대상 관련)명확성 원칙의 문제 ▲이중처벌금지의 원칙 위반 및 범죄자 사회복귀 저해 요인의 문제 ▲프라이버시 침해의 문제를 근거로 제시했다.

2009년 강호순 계기로 신상 공개 시작
심의위원회 내부 3명, 외부 4명 구성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었지만 피의자 신상 공개가 결정됐다. 2010년 4월 ‘특정강력 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제8조의 2(피의자의 얼굴 등 공개)가 신설됐다. 같은 시기 제정된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서도 제23조(현행 제25조)를 두어 피의자의 얼굴 등을 공개하도록 했다.


특정강력 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제8조의 2는 ▲범행 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특정강력 범죄 사건일 것 ▲피의자가 그 죄를 범했다고 믿을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을 것 ▲국민의 알 권리 보장, 피의자의 재범방지 및 범죄 예방 등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할 것 ▲피의자가 ‘청소년 보호법’ 제2조 제1호의 청소년에 해당하지 않을 것을 명시하며 피의자 신상 공개 여부를 설명하고 있다.

성폭력 범죄도 비슷한 맥락이다.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25조에는 ▲검사와 사법경찰관이 성폭력 범죄의 피의자가 죄를 범했다고 믿을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을 때 ▲피의자의 재범 방지 및 범죄 예방 등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할 때 신상 공개를 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 이전에도 신상 공개 제도가 있었지만 성격은 다르다. 성폭력처벌법 제42조 이하 및 청소년성보호법 제49조 이하 규정과 같이 법원 확정 판결에 따른 보안처분의 성격을 지닌 것으로 재범 방지를 위한 목적을 띤다. 즉, 확정판결 받은 자를 대상으로 했다는 점에서 일종의 형사제재로서 가능했다.

이젠 법이 바뀌었다. 이제 피의자 신상 공개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공개한다. 당연히 피의자 신상 공개는 절차가 정해져 있다. 공개의 주체는 검사와 사법경찰관이다. 2015년부터 경찰서나 지방경찰청별로 신상공개위원회가 신설돼 이곳에서 공개 여부를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신상 공개 시점은 피의 사실에 대한 법원의 1차 판단이 완료됐다고 볼 수 있는 구속영장 발부 시점 이후를 원칙으로 한다. 하지만 이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대부분 국민과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고, 이미 실명이 공개된 피의자의 경우는 충분한 증거가 확보됐을 시 구속영장 발부 전에 신상공개위원회 결정을 거쳐 공개한다.

만약 수배 대상자라면 ‘경찰 수사 사건 등의 공보에 관한 규칙’에 기반해 ▲얼굴 사진 ▲성명 ▲나이 ▲직업 ▲신체의 특징 등 신상에 관한 구체적인 정보까지 공개한다. 그러나 이미 신병이 확보된 피의자의 경우는 ▲얼굴 ▲성명 ▲나이 등으로 범위가 축소된다.

식별 불가
밝히나마나

우선 특정강력 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에 의해 신상 공개가 결정된 피의자는 2020년부터 지난해 마지막으로 공개된 이기영을 포함한 총 15명이다.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의해 결정된 피의자는 총 9명이다. 특히 성폭력 범죄로 인해 신상 공개된 이들은 아동 성 착취물 제작 및 유포 혐의로 공개됐다.

문제는 피의자 신상 공개 기준 자체가 주관적이라는 것이다.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 ‘충분한 증거’ ‘공공의 이익’이라는 기준 자체가 불분명하다. 

2021년은 피의자 신상 공개 제도로 흉악범의 신상이 이례적으로 많이 공개된 해다. 총 10명으로 ▲노원 세 모녀 살인사건 김태현 ▲인천 노래방 손님 살해사건 허민우 ▲서울 중구 오피스텔 살인사건 김병찬 ▲송파 전 여자친구 가족 살인사건 이석준 ▲인천 미주홀구 강도 연쇄살인사건 권재찬 ▲제주 중학생 살인사건 백광석, 김시남 ▲남성 미성년자 성 착취물 제작 및 유포 최찬욱 ▲남성 불법 촬영 나체 영상 유포 사건 김영준 ▲송파 전자발찌 훼손 연속 살인 사건 강윤성이 있다.

이 중 비수도권에서 신상 공개가 이뤄진 피의자는 제주 중학생 살인사건의 백광석과 김시남이 유일하다. 이런 상황이니 피의자 신상 공개가 수도권 지역에서만 주로 이뤄진다는 점도 하나의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우선 경남 지역에서 신상 공개된 대표적인 피의자는 ▲2019년 진주 아파트 방화 및 흉기 난동 살인 사건 안인득 ▲2017년 창원 골프연습장 납치 살인사건 심천우, 강정임이 있다. 


하지만 경남에서 일어난 강력 범죄 중에서 신상 공개가 되지 않은 사례도 있다. 2020년 11월 일어난 양산 동거녀 살인 사건과 2020년 12월 성탄절에 벌어진 응급구조사 폭행, 방치 살인 사건이 대표적이다.

양산 동거녀 살인 사건은 2020년 11월23~25일쯤 경남 양산의 자택에서 A(61)씨가 사실혼 관계인 B씨가 잔소리하는 것에 화가 나 B씨를 살해하고 시신을 잔혹하게 토막 내 유기한 후 사체에 불을 지르기까지 한 사건이다. A씨는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으나 이후 2심 재판부로부터 징역 35년을 선고받았다.

성탄절 응급구조사 사건은 2020년 성탄절 전날인 12월24일, 경남 김해의 한 응급이송단 대표 C(44)씨가 직원인 응급구조사를 12시간가량 폭행하고 이튿날까지 방치해 숨지게 한 사건이다. 재판부는 C씨에게 징역 18년을 선고했다.

언론 집중도 
사회 관심도

이들은 강력 범죄임에도 신상이 공개되지 않았다. 이런 주관적인 판단이 개입될 수밖에 없는 것은 신상공개위원회 구성으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신상공개위원회 심의위원은 총 7명으로 구성되며 논의를 통해 피의자 신상공개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이때 7명 위원 중 3명은 경찰 측 내부 위원, 4명은 시민단체 혹은 관련 전문가 등 외부 위원으로 구성된다. 여기서 외부 위원이 전체의 과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구멍이 발생한다. 


물론 다양한 전문가와 시민단체 등 의견을 취합하고 일정 부분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만큼 외부 위원의 주관적인 판단이 신상 공개 결정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또 신상공개위원회 개최 여부에 명확한 원칙이 없다. 보통은 사건에 대한 언론의 집중도 혹은 사회의 관심도가 신상공개위원회 개최 여부를 결정한다.

이 같은 문제가 직접적으로 드러난 사건이 제주 중학생 살인사건이다. 이 사건에서 제주 경찰은 당초 피의자 2명에 대해 “신상 정보 요건에 부합하지 않아 신상공개위원회를 개최하지 않겠다”고 결정했다. 하지만 사건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고, 전국에서 관심을 갖는 사안으로 떠오르자 경찰은 “신상공개위원회를 통해 신상 공개 여부를 심의하겠다”고 말을 바꿨다.

이와 관련해서 경찰은 “잔인성 및 공공의 이익 등에 부합할만한 범죄사실이 수사 과정에서 새롭게 인지됐다. 신상공개위원회 개최에 대한 필요성이 커졌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경찰이 제주 중학생 살인사건 피의자 신상 공개 결정의 근거로 제시한 요건은 모두 수사 초반부터 언론 측에 공개한 내용이었다. 계획된 범죄인 점, 피의자가 범행을 자백한 점, CCTV 등을 통해 피해자 자택에 침입하는 과정이 촬영된 점 등은 모두 “신상공개위원회를 개최하지 않겠다”고 경찰 결정이 내려지기 전 언론을 통해 밝혀진 내용이다.

이처럼 현재 경찰의 자의적인 해석, 혹은 언론과 여론의 관심도가 피의자 신상 공개 결정에 상당 부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언론이 피의자 신상을 먼저 공개한 사례도 있다. 대표적으로 SBS가 텔레그램을 통해 박사방을 운영하며 성 착취물을 제작‧유포한 조주빈 사진을 단독 보도했다. 

“실효성·기준 모호” 지적
사진과 다른 실제 모습들

당시 SBS 측은 “이번 사건이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잔혹한 성범죄인 동시에 피해자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중대 범죄라고 판단했다. 추가 피해를 막고 아직 드러나지 않은 범죄를 찾아 수사에 도움을 주자는 차원에서,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저희가 단독 취재한 내용과 함께 구속된 피의자의 얼굴과 이름을 공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피의자 신상 공개 기준이 모호한 것이 문제지만, 신상 공개를 해도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최근 공개된 이기영의 사진과 현재 모습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신상 공개가 결정된 피의자가 검찰에 송치될 때 얼굴을 공개하고, 사진도 함께 배포한다.

그때 당사자가 동의하면 체포 후 촬영한 현재 사진(머그샷)을 찍어 공개하지만, 거부하면 신분증 증명사진을 공개한다.

앞서 언급했듯 이기영은 운전면허증 사진을 공개했는데, 네티즌들은 이기영 계정으로 추정되는 SNS에 올라온 사진과 차이가 있다며 신상 공개 제도의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이 밖에도 김태현, 갓갓 문형욱, 안승진, 허민우, 조주빈, 고유정 등 신상공개 대상자도 실물이 달랐다.

논란이 거세지면서 국회에서도 흉악범 신상이 공개될 때 실물을 알아볼 수 있도록 최근 촬영한 얼굴 사진을 사용해야 한다는 법안이 잇따라 발의됐다.

국민의힘 송언석 의원은 살인·강간 등을 저지른 흉악범의 신상은 최근 30일 이내에 촬영한 얼굴의 사진을 사용하도록 특정강력 범죄 처벌 특례법 개정안과 성폭력 범죄 처벌 특례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송 의원은 “범죄 피의자 얼굴을 대중이 식별하는 데 용이해져 제도의 실효성이 커질 것이며, 궁극적으로 범죄로부터 국민 안전이 더욱 강화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민주당 안규백 의원도 피의자를 식별할 수 있도록 촬영해 공개하는 규정을 추가한 특정강력 범죄 처벌 특례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안 의원은 “실효성 없는 신상 공개로 인해 오히려 무분별한 신상 털기 같은 불필요한 논란과 사회적 갈등이 발생하고 있다.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고 피의자의 재범 방지, 범죄 예방을 도모하려는 신상 정보 공개의 취지를 달성하려면 피의자의 최근 얼굴 공개를 통해 피의자를 식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관적 판단
기준 필요해

일각에서는 이번 국회에서 발의된 신상 공개 개정안에 대해 헌법상 무죄 추정의 원칙에 반하는 것이므로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법안 상정 이후 충분한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전문가들은 신상 공개 제도가 실효성을 갖추려면 사회적 합의를 거쳐 보다 명확한 기준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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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건희 일가 연루 의혹 ‘선라이즈F&T’ 주주명부 공개

[단독] 김건희 일가 연루 의혹 ‘선라이즈F&T’ 주주명부 공개

갈수록 증폭되는 평택 논란 이제야 공개된 소소한 흔적 쉽게 거두지 못하는 의심 의미심장 세력 교체 과정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소문이 어느덧 사실처럼 인식되고 있다. 명확한 물증이 없는 가운데 파편적인 의혹이 덧씌워진 양상은 좀처럼 바뀌지 않고 있으며, 흐름을 파악할 만한 유의미한 흔적이 이제야 겨우 나왔을 뿐이다. 증폭된 의혹 뒤편에서 여전히 진실은 빼꼼히 잘 보이지 않는다. 2010년 9월 설립된 ‘선라이즈에프앤티’는 황해경제자유구역에 자리 잡은 유일한 농산물 가공 업체로, 그간 심심치 않게 밀수 의혹을 받아왔다. 가공 목적으로 수입한 농산물을 가공 없이 시중에 유통시켜 엄청난 차익을 봤다는 꼬리표가 뒤따랐다. 의혹하는 눈초리 선라이즈에프앤티가 취급했던 대다수 농산물이 고관세 품목이라는 점은 이 같은 의혹을 부채질했다. 그간 선라이즈에프앤티는 ▲녹두 ▲콩나물콩 ▲다대기(혼합양념) ▲생강 ▲마늘 ▲참깨 ▲팥 ▲서리태 등 높은 세율이 붙는 고관세 품목을 주로 수입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한 예로 콩나물콩의 경우 그대로 들여와 국내에 유통하면 487% 관세가 부과되지만, 콩나물 재배 목적으로 수입하면 27%만 반영된다. 평택세관에 몸담았던 다수의 전직 세관공무원이 기업 출범 및 운영에 관여했다는 점도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부정적으로 보게 만들었다. 심지어 선라이즈에프앤티 이사진에 포함됐던 특정 세관 출신 임원이 한때 다이아몬드 밀수 사건에 이름이 오르내린 사례도 존재한다. 수년 전부터는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동일선상에서 바라보는 경향이 강해졌다. 선라이즈에프앤티의 밀수 의혹을 수차례에 걸쳐 제기했던 공익 제보자 이성열씨가 재판에 연루되는 과정에서 김건희씨의 모친인 최은순씨가 거론됐던 게 이 같은 흐름에 불을 지핀 형국이다. 이런 가운데 정치평론가인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이 최근 ‘평택항’을 언급하자,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 간 연관성은 사실처럼 받아들여질 정도가 됐다. 장 소장은 SBS라디오 <김태현의 뉴스쇼>가 운영하는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김건희씨 일가의 수상한 물건 수입 의혹과 관련한 이야기를 전했다. 장 소장은 “최은순씨가 주인으로 있는 농수산물 수입업체에서 이상한 것을 들고 오려고 하다가 걸려서 (김건희) 오빠와 김건희씨가 그것을 무마시키려고 여러 가지 이상한 (일들을 했다고 한다)”며 “어떤 물건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부적절한 물건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말했다. 급기야 선라이즈에프앤티의 폐업이 알려지자, 의혹은 그야말로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양상이다. 선라이즈에프앤티는 국세청 사업자 과세 유형 조회 결과 지난 10일자로 폐업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폐업자로 조회된 지난 10일은 김건희 특검법이 공포된 시기와 맞물린다. 물론 꾸준히 의혹이 제기된 것과 별개로,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 간 연관성을 입증할 만한 확실한 단서는 없는 상황이다. 특히 주주명부가 지금껏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다는 게 의혹과 진실을 구분 짓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일요시사>가 최초 입수한 주주명부는 간접적으로나마 의문을 풀 수 있는 열쇠로 작용할 여지를 남긴다. 의문 해소 첫 단추 2022년 10월 작성된 ‘카리나에프앤티(선라이즈에프앤티에서 2020년 9월 상호 변경) 주주명부’를 검토한 결과 주주는 총 17명, 발행주식은 91만8400주(1주당 5000원)로 확인됐다. 2010년 9월 자본금 5억원으로 설립된 선라이즈에프앤티는 수차례 증자를 거쳤고, 해당 시기에 자본금을 45억9200만원으로 늘린 상태였다. 일단 주주명부에서는 김건희씨 일가의 이름을 찾을 수 없다. 대신 경영권 교체 과정이나마 엿볼 수 있을 뿐이다. 법인 등기와 주주명부를 교차 검증한 결과를 토대로 추정하면, 표면상 선라이즈에프앤티 지배 세력은 ‘전직 세관공무원(설립~2018년 중순)→지엔티에이치(~2020년 중순)→킴스에O엔O(~2022년 초순)→동OO앤에스(~2025년 6월)’ 순으로 변경된 흐름이다. 첫 번째 경영권 교체는 ‘펀딩하이 연체 사건’과 함께 발생했다. 펀딩하이는 중국·동남아시아에서 농산물을 수입하는 업체에 돈을 빌려 주고, 투자자들에게 15% 이상 수익을 보장하는 펀딩 상품으로 인기를 끌던 P2P 업체였다. 그러나 펀딩하이는 2018년 6월20일 ‘마늘 시즌2-17차(모집 금액 3억원, 차주 승리산업)’ 펀딩 상품의 연체를 시작으로 ▲세척 당근 시즌2-18차(모집금액 5억원, 차주 지엔티에이치) ▲김치 펀딩 2차(모집금액 1억2000만원, 차주 상아농산) ▲번데기 펀딩 1차(모집금액 1억8000만원, 차주 월량완코리아) 등에서 차주의 투자금 상환 실패를 알렸다. 연체 금액은 ▲지엔티에이치 29억원 ▲승리산업 33억원 ▲상아농산 11억8000만원 ▲월량완코리아 1억8000만원 등 총 75억6000만원에 달했다. 급기야 펀딩하이는 연체율 100%를 찍은 채 영업을 중단했다. 상환 실패 이후 차주 사이에 관련성이 드러났다. 지엔티에이치와 승리산업에서 대표이사였던 윤석호씨는 두 회사 지분을 각각 60%, 100% 보유 중이었다. 또한 월량완코리아 사내이사로도 등재돼있었다. 연체가 발생한 직접적인 사유는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대상으로 한 지분 투자였다. 지엔티에이치는 펀딩받은 금액을 농산물을 들여오는 데 쓰지 않고,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매입하는 데 활용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이를 계기로 지엔티에이치는 2018년 6월경 주식 16만1400주를 확보한 선라이즈에프앤티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지엔티에이치가 지배력을 확보한 이후 선라이즈에프앤티 임원 명단에 변화가 목격됐다. 선라이즈에프앤티 초창기부터 함께했던 사내이사와 부친에 이어 회사에 몸담았던 대표이사를 대신해 지엔티에이치가 끌어들인 얼굴들이 등기임원 자리를 꿰찼다. 정작 지엔티에이치는 연체 발생 넉 달 후인 2018년 10월 보유 중이던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란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에 넘겼다. 펀딩하이 투자자들과의 소송전이 불거지자 중국에 본거지를 둔 우군에 주식을 양도한 모양새였다. 거듭되는 교체 수순 두 번째 경영권 교체는 ‘킴스에O엔O’ 측이 선라이즈에프앤티의 주체로 올라서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충청권에 본적을 둔 킴스에O엔O는 2022년 10월 기준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10만8200주를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킴스에O엔O 대표이사의 친인척이 보유한 주식 13만2800주를 합산하면 우호 주식은 24만주 안팎이다. 기존 지엔티에이치 측 우호 세력(란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 16만1400주+마송재 3만주)과 비교해 5만주 가까이 격차를 벌린 셈이다. 킴스에O엔O 측이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대량 매입한 시기는 2020년 중후반으로 추정된다. 이 무렵 선라이즈에프앤티 등기임원 구성이 크게 요동쳤다는 점을 통해 짐작 가능한 사안이다. 실제로 지엔티에이치가 지배력을 발휘하던 2018년 7월 대표이사에 선임됐던 김정일 대표는 2020년 3월 해임됐다. 2018년 9월 취임했던 또 다른 대표이사 역시 당해 10월을 넘기지 못한 채 사임했다. 공석이 된 주요 등기임원 자리는 킴스에O엔O 측 인물로 채워졌다. 킴스에O엔O 대표이사가 2020년 10월 선라이즈에프앤티 대표이사로 취임했고, 해당 시기에 사외이사, 감사 등 등기임원 전원이 새 얼굴로 교체됐다. 킴스에O엔O에 이어 지배 세력으로 등장한 곳은 식료품 제조업을 영위하는 동OO앤에스였다. 이 회사는 2022년 10월 기준 주주명부에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41만주(지분율 44.64%)를 보유한 단일 최대주주로 등재돼있다. 여기에 우호 세력(글로O포O 1만주+김성수 2만주+김종봉 788주)의 주식을 합산하면 지분율은 50%에 육박한다. 동OO앤에스는 사실상 선라이즈에프앤티를 인수하고자 만든 업체로 비쳐질 여지를 남긴다. 2022년 2월 출범 당시 자본금 10억원짜리였던 동OO앤에스는 불과 두 달 만인 2022년 4월14일 자본금을 21억원으로 두 배 이상 키웠다. 공교롭게도 동OO앤에스가 설립 이후 8개월 사이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41만주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투입한 금액은 총 20억5000만원이었다. 이는 동OO앤에스 자본금 21억원이 선라이즈 주식 41만주를 매입하는 데 쓰였을 가능성에 주목하게 만든다. 게다가 선라이즈에프앤티는 기존 61만8400주였던 발행주식을 2022년 4월22일 91만8400주로 30만주 확대했다. 동OO앤에스가 자본금을 21억원으로 확충한 지 8일 만이다. 선라이즈에프앤티가 발행주식을 30만주 늘린 덕분에 동OO앤에스는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주식 41만주를 확보한 형국이다. 동OO앤에스가 선라이즈에프앤티를 지배하는 위치로 올라설 무렵에 선라이즈에프앤티 임원 구성은 또 한 번 바뀌었다. 동OO앤에스 대표이사가 사내이사, 글로O포O 대표이사가 사외이사에 이름을 올렸고, 김성수 대표이사가 신규 선임됐다. 이후 김성수 대표는 선라이즈에프앤티 폐업 전까지 자리를 지킨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되짚어보는 연결고리 한편 일각에서는 김건희씨 일가에서 선라이즈에프앤티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시기는 지엔티에이치 측이 지배력을 상실한 이후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나마 킴스에O엔O 혹은 동OO앤에스와의 연관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김건희씨 일가에서 선라이즈에프앤티에 관여한 직접적인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만약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시기를 2021년 이후로 특정해볼 수 있을 것”이라며 “항간에 떠도는 마약 적발 여부는 2022년 근방으로 얘기가 오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heaty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