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쭉날쭉’ 흉악범 얼굴 공개, 왜?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3.01.09 13:35:45
  • 호수 140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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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 덮고 누군 까고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택시 기사와 동거녀를 살해한 이기영의 신상이 공개됐다. 이때 공개된 이기영 사진은 운전면허증 사진으로, 공개되자마자 실물과 다르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이 같은 반응은 처음은 아니었으며 실제로 흉악범들의 사진이 공개될 때마다 제기돼왔던 문제다.

경기 파주시에서 전 동거녀와 택시 기사를 잇달아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이기영(31)이 지난 4일 검찰로 넘겨졌다. 그는 지난해 12월 음주 운전으로 택시와 접촉사고를 낸 뒤 60대 택시 기사를 집으로 데려와 둔기로 살해하고 시신을 옷장에 유기한 혐의를 받는다. 

그 사진이
이 사람?

이보다 넉 달 앞선 지난해 8월에는 파주시 집에서 동거하던 50대 여성을 둔기로 살해하고 시신을 파주시 공릉천변에 매장한 혐의도 있다. 경기 일산동부경찰서는 이날 이기영에게 강도살인 및 살인, 사체은닉, 절도, 사기, 여신전문금융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사건을 의정부지검 고양지청으로 송치한다고 밝혔다.

당초 이기영은 전 동거녀와 택시 기사에 대한 살인 혐의만 적용됐으나 택시 기사 살해 당시 재정 문제 등 전반적인 정황을 토대로 강도살인 혐의가 추가됐다. 

이기영은 검찰에 송치되면서 얼굴을 가렸다. 지난 4일 오전 9시, 경기 일산동부경찰서 정문 밖으로 나와 취재진 포토라인 앞에 선 이기영은 패딩 점퍼 후드를 눌러쓴 채 고개를 숙이고 마스크를 써서 얼굴을 완전히 가렸다. 


이날 포토라인 앞에서 얼굴이 공개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지만, 이기영은 지급된 마스크를 스스로 착용해 얼굴을 거의 가린 것이다. 이기영은 “피해자 유가족에게 할 말 없냐”는 취재진 질문에 “죄송합니다. 살인해서 죄송합니다”라고 답했다. 

포토라인에서 이기영의 얼굴을 볼 수 없었지만, 이미 이기영의 신상은 공개됐다. 경찰은 지난달 29일, 신상정보 공개 심의위원회(신상공개위원회)를 열고 이기영의 나이와 얼굴 사진을 공개했다. 신상을 공개하기 앞서 경기북부경찰청 신상공개위원회가 이기영의 얼굴과 나이를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이기영이 최근 촬영한 사진 공개를 거부하면서 예전에 찍은 운전면허증 사진이 배포됐다. 현행법상 당사자가 거부하면 최근 사진을 공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피의자 신상 공개가 시작된 것은 1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계기는 2009년 강호순 등 연쇄살인범 검거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흉악범의 얼굴을 공개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졌다.

당시 강호순의 신상 공개에 문제시된 것은 다음과 같다. 입법조사처는 ▲언론의 자유와 피의자의 인격권 및 무죄 추정 원칙 ▲(범죄와 형법의 대상 관련)명확성 원칙의 문제 ▲이중처벌금지의 원칙 위반 및 범죄자 사회복귀 저해 요인의 문제 ▲프라이버시 침해의 문제를 근거로 제시했다.

2009년 강호순 계기로 신상 공개 시작
심의위원회 내부 3명, 외부 4명 구성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었지만 피의자 신상 공개가 결정됐다. 2010년 4월 ‘특정강력 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제8조의 2(피의자의 얼굴 등 공개)가 신설됐다. 같은 시기 제정된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서도 제23조(현행 제25조)를 두어 피의자의 얼굴 등을 공개하도록 했다.


특정강력 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제8조의 2는 ▲범행 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특정강력 범죄 사건일 것 ▲피의자가 그 죄를 범했다고 믿을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을 것 ▲국민의 알 권리 보장, 피의자의 재범방지 및 범죄 예방 등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할 것 ▲피의자가 ‘청소년 보호법’ 제2조 제1호의 청소년에 해당하지 않을 것을 명시하며 피의자 신상 공개 여부를 설명하고 있다.

성폭력 범죄도 비슷한 맥락이다.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25조에는 ▲검사와 사법경찰관이 성폭력 범죄의 피의자가 죄를 범했다고 믿을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을 때 ▲피의자의 재범 방지 및 범죄 예방 등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할 때 신상 공개를 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 이전에도 신상 공개 제도가 있었지만 성격은 다르다. 성폭력처벌법 제42조 이하 및 청소년성보호법 제49조 이하 규정과 같이 법원 확정 판결에 따른 보안처분의 성격을 지닌 것으로 재범 방지를 위한 목적을 띤다. 즉, 확정판결 받은 자를 대상으로 했다는 점에서 일종의 형사제재로서 가능했다.

이젠 법이 바뀌었다. 이제 피의자 신상 공개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공개한다. 당연히 피의자 신상 공개는 절차가 정해져 있다. 공개의 주체는 검사와 사법경찰관이다. 2015년부터 경찰서나 지방경찰청별로 신상공개위원회가 신설돼 이곳에서 공개 여부를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신상 공개 시점은 피의 사실에 대한 법원의 1차 판단이 완료됐다고 볼 수 있는 구속영장 발부 시점 이후를 원칙으로 한다. 하지만 이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대부분 국민과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고, 이미 실명이 공개된 피의자의 경우는 충분한 증거가 확보됐을 시 구속영장 발부 전에 신상공개위원회 결정을 거쳐 공개한다.

만약 수배 대상자라면 ‘경찰 수사 사건 등의 공보에 관한 규칙’에 기반해 ▲얼굴 사진 ▲성명 ▲나이 ▲직업 ▲신체의 특징 등 신상에 관한 구체적인 정보까지 공개한다. 그러나 이미 신병이 확보된 피의자의 경우는 ▲얼굴 ▲성명 ▲나이 등으로 범위가 축소된다.

식별 불가
밝히나마나

우선 특정강력 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에 의해 신상 공개가 결정된 피의자는 2020년부터 지난해 마지막으로 공개된 이기영을 포함한 총 15명이다.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의해 결정된 피의자는 총 9명이다. 특히 성폭력 범죄로 인해 신상 공개된 이들은 아동 성 착취물 제작 및 유포 혐의로 공개됐다.

문제는 피의자 신상 공개 기준 자체가 주관적이라는 것이다.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 ‘충분한 증거’ ‘공공의 이익’이라는 기준 자체가 불분명하다. 

2021년은 피의자 신상 공개 제도로 흉악범의 신상이 이례적으로 많이 공개된 해다. 총 10명으로 ▲노원 세 모녀 살인사건 김태현 ▲인천 노래방 손님 살해사건 허민우 ▲서울 중구 오피스텔 살인사건 김병찬 ▲송파 전 여자친구 가족 살인사건 이석준 ▲인천 미주홀구 강도 연쇄살인사건 권재찬 ▲제주 중학생 살인사건 백광석, 김시남 ▲남성 미성년자 성 착취물 제작 및 유포 최찬욱 ▲남성 불법 촬영 나체 영상 유포 사건 김영준 ▲송파 전자발찌 훼손 연속 살인 사건 강윤성이 있다.

이 중 비수도권에서 신상 공개가 이뤄진 피의자는 제주 중학생 살인사건의 백광석과 김시남이 유일하다. 이런 상황이니 피의자 신상 공개가 수도권 지역에서만 주로 이뤄진다는 점도 하나의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우선 경남 지역에서 신상 공개된 대표적인 피의자는 ▲2019년 진주 아파트 방화 및 흉기 난동 살인 사건 안인득 ▲2017년 창원 골프연습장 납치 살인사건 심천우, 강정임이 있다. 


하지만 경남에서 일어난 강력 범죄 중에서 신상 공개가 되지 않은 사례도 있다. 2020년 11월 일어난 양산 동거녀 살인 사건과 2020년 12월 성탄절에 벌어진 응급구조사 폭행, 방치 살인 사건이 대표적이다.

양산 동거녀 살인 사건은 2020년 11월23~25일쯤 경남 양산의 자택에서 A(61)씨가 사실혼 관계인 B씨가 잔소리하는 것에 화가 나 B씨를 살해하고 시신을 잔혹하게 토막 내 유기한 후 사체에 불을 지르기까지 한 사건이다. A씨는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으나 이후 2심 재판부로부터 징역 35년을 선고받았다.

성탄절 응급구조사 사건은 2020년 성탄절 전날인 12월24일, 경남 김해의 한 응급이송단 대표 C(44)씨가 직원인 응급구조사를 12시간가량 폭행하고 이튿날까지 방치해 숨지게 한 사건이다. 재판부는 C씨에게 징역 18년을 선고했다.

언론 집중도 
사회 관심도

이들은 강력 범죄임에도 신상이 공개되지 않았다. 이런 주관적인 판단이 개입될 수밖에 없는 것은 신상공개위원회 구성으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신상공개위원회 심의위원은 총 7명으로 구성되며 논의를 통해 피의자 신상공개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이때 7명 위원 중 3명은 경찰 측 내부 위원, 4명은 시민단체 혹은 관련 전문가 등 외부 위원으로 구성된다. 여기서 외부 위원이 전체의 과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구멍이 발생한다. 


물론 다양한 전문가와 시민단체 등 의견을 취합하고 일정 부분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만큼 외부 위원의 주관적인 판단이 신상 공개 결정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또 신상공개위원회 개최 여부에 명확한 원칙이 없다. 보통은 사건에 대한 언론의 집중도 혹은 사회의 관심도가 신상공개위원회 개최 여부를 결정한다.

이 같은 문제가 직접적으로 드러난 사건이 제주 중학생 살인사건이다. 이 사건에서 제주 경찰은 당초 피의자 2명에 대해 “신상 정보 요건에 부합하지 않아 신상공개위원회를 개최하지 않겠다”고 결정했다. 하지만 사건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고, 전국에서 관심을 갖는 사안으로 떠오르자 경찰은 “신상공개위원회를 통해 신상 공개 여부를 심의하겠다”고 말을 바꿨다.

이와 관련해서 경찰은 “잔인성 및 공공의 이익 등에 부합할만한 범죄사실이 수사 과정에서 새롭게 인지됐다. 신상공개위원회 개최에 대한 필요성이 커졌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경찰이 제주 중학생 살인사건 피의자 신상 공개 결정의 근거로 제시한 요건은 모두 수사 초반부터 언론 측에 공개한 내용이었다. 계획된 범죄인 점, 피의자가 범행을 자백한 점, CCTV 등을 통해 피해자 자택에 침입하는 과정이 촬영된 점 등은 모두 “신상공개위원회를 개최하지 않겠다”고 경찰 결정이 내려지기 전 언론을 통해 밝혀진 내용이다.

이처럼 현재 경찰의 자의적인 해석, 혹은 언론과 여론의 관심도가 피의자 신상 공개 결정에 상당 부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언론이 피의자 신상을 먼저 공개한 사례도 있다. 대표적으로 SBS가 텔레그램을 통해 박사방을 운영하며 성 착취물을 제작‧유포한 조주빈 사진을 단독 보도했다. 

“실효성·기준 모호” 지적
사진과 다른 실제 모습들

당시 SBS 측은 “이번 사건이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잔혹한 성범죄인 동시에 피해자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중대 범죄라고 판단했다. 추가 피해를 막고 아직 드러나지 않은 범죄를 찾아 수사에 도움을 주자는 차원에서,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저희가 단독 취재한 내용과 함께 구속된 피의자의 얼굴과 이름을 공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피의자 신상 공개 기준이 모호한 것이 문제지만, 신상 공개를 해도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최근 공개된 이기영의 사진과 현재 모습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신상 공개가 결정된 피의자가 검찰에 송치될 때 얼굴을 공개하고, 사진도 함께 배포한다.

그때 당사자가 동의하면 체포 후 촬영한 현재 사진(머그샷)을 찍어 공개하지만, 거부하면 신분증 증명사진을 공개한다.

앞서 언급했듯 이기영은 운전면허증 사진을 공개했는데, 네티즌들은 이기영 계정으로 추정되는 SNS에 올라온 사진과 차이가 있다며 신상 공개 제도의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이 밖에도 김태현, 갓갓 문형욱, 안승진, 허민우, 조주빈, 고유정 등 신상공개 대상자도 실물이 달랐다.

논란이 거세지면서 국회에서도 흉악범 신상이 공개될 때 실물을 알아볼 수 있도록 최근 촬영한 얼굴 사진을 사용해야 한다는 법안이 잇따라 발의됐다.

국민의힘 송언석 의원은 살인·강간 등을 저지른 흉악범의 신상은 최근 30일 이내에 촬영한 얼굴의 사진을 사용하도록 특정강력 범죄 처벌 특례법 개정안과 성폭력 범죄 처벌 특례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송 의원은 “범죄 피의자 얼굴을 대중이 식별하는 데 용이해져 제도의 실효성이 커질 것이며, 궁극적으로 범죄로부터 국민 안전이 더욱 강화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민주당 안규백 의원도 피의자를 식별할 수 있도록 촬영해 공개하는 규정을 추가한 특정강력 범죄 처벌 특례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안 의원은 “실효성 없는 신상 공개로 인해 오히려 무분별한 신상 털기 같은 불필요한 논란과 사회적 갈등이 발생하고 있다.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고 피의자의 재범 방지, 범죄 예방을 도모하려는 신상 정보 공개의 취지를 달성하려면 피의자의 최근 얼굴 공개를 통해 피의자를 식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관적 판단
기준 필요해

일각에서는 이번 국회에서 발의된 신상 공개 개정안에 대해 헌법상 무죄 추정의 원칙에 반하는 것이므로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법안 상정 이후 충분한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전문가들은 신상 공개 제도가 실효성을 갖추려면 사회적 합의를 거쳐 보다 명확한 기준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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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우리에게 추석은 차례를 지내거나 귀향을 하는 것이 익숙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차례를 지내는 비중은 줄어들고 MZ세대를 중심으로 긴 연휴를 활용한 여행, 단기 아르바이트, 자기계발 등을 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석에 차례를 지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 초반에 그쳤다. 절반 이상은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차례와 제사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게 된 셈이다. 알바 우선 통계청 조사에서도 명절 의례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를 지내는 대신 긴 연휴를 여행으로 보내려는 수요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행 중개 플랫폼 스카이스캐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7%가 이번 추석 연휴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응답했다. 특히 해외여행 비중이 크게 늘었다. 10년 전 대비 명절 여행에 긍정적인 인식이 37%에서 70%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인기 여행지는 일본(43.1%)이 1위였고, 이어 베트남(13.2%), 중국(9.6%), 태국(7.5%), 대만(6.2%) 순이었다. 도시별로는 일본 후쿠오카(20.2%)가 가장 높은 검색 비율을 기록했으며, 오사카(18.3%), 도쿄(15.4%), 방콕(8.9%), 타이베이(8.0%)가 뒤를 이었다. 여행을 가지 않고 명절 연휴를 일터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긴 연휴를 활용해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수요도 급증했다. 당근마켓과 같은 알바 커뮤니티와 플랫폼에는 “추석 알바 구합니다”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20대 청년은 “쉬는 날이 길어 잠깐이라도 일을 하려 한다”고 밝혔고, 한 대학생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물세트 포장 알바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특히 명절 기간에는 업무강도가 높아 평균 시급의 1.5배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명절 시즌 알바를 노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맞춰 구인·구직 플랫폼들은 ‘추석 알바 채용관’을 운영하며 수요를 모으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 도·소매점과 전통시장에서 단기 인력을 모집하고, 선물용 고기·과일 세트 포장, 택배 상·하차, 진열·판매 등의 일자리가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절반 이상 “안 지내요” 77%가 여행 계획 세워 지난해 추석 구인 구직 사이트 알바천국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53.9%)이 단기 용돈 벌이를 위해, 22.2%는 고물가로 인한 지출 부담 때문에, 18.2%는 여행 경비나 등록금 등 목돈 마련을 위해 명절 알바를 계획했다고 답했다. 이는 명절을 단순히 휴식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생계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계발하며 추석 나기’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일명 ‘혼추족’ 중에는 독서나 온라인 강의, 어학 공부, 자격증 준비 등에 연휴를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터디 카페와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이 증가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일부 출판사나 문화 기획사에서는 명절 연휴에 맞춰 북콘서트 같은 행사를 열기도 했다. 명절이 휴식 기간만이 아닌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양상은 가족 모임에도 영향을 받았다. MZ세대는 가족·친척 모임을 스트레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청년은 “친척들과 모이면 취업·결혼 얘기 등으로 잔소리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친척 모임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필요한 경우에만 가족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활동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연휴를 도심에서 보내는 ‘혼추족’을 겨냥해 유통·외식업계도 다양한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수도권 맛집 가이드, 추석맞이 전시·공연, 집콕형 OTT·게임 프로모션 등이 대표적이다. 편의점과 HMR(가정 간편식) 업체는 명절 한정 도시락·한상 차림 제품을 늘리고, 명절 기간 반값·카드 제휴 할인 등 단기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추석 선물 시장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굴비·한우·고급 과일 세트 등 전통 품목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실속형·소포장 선물세트가 늘었다. 대표적으로 대형마트에서는 고급 커피·차 세트, 수제 디저트처럼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소포장 구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과 자기계발이 더 유익해” 명절 스트레스 가족 모임 불참 온라인몰에서는 올리브 오일, 참기름, 견과류, 꿀 등 건강 지향 소품목 세트가 매출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속형·소포장 선물을 찾는 배경에는 고물가 부담과 1~2인 가구 증가가 있다.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고가 선물을 준비하기보다, 실용적이고 보관이 편리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명절을 함께 보내는 가족 규모가 줄면서 필요한 양만큼만 담긴 선물세트가 ‘부담 없는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가격 대비 효용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층도 이 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다. 모바일 선물하기 판매는 전년 추석 대비 두 배 이상 늘었고, 온라인몰도 같은 기간 선물세트 매출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편의점 앱을 통한 선물세트 매출은 연중 대비 100% 이상 신장세가 관측됐고, 패션·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선물하기 거래액도 두 자릿수 증가를 이어가고 있다. 마켓컬리는 추석 기간 한시 선물하기 서비스를 운영하며 홍삼·화장품 등 선물 품목을 확장했다. 명절 식문화 자체도 간편화 된 흐름이 뚜렷하다. 1인 가구 1012만명, 2인 가구 600만명으로 소규모 가구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대형마트의 간편 차례상 매출은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편의점의 냉장·냉동 HMR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했고, 명절 한정 도시락은 1인 가구 밀집 상권에서 판매 비중이 높았다. 이번 추석에도 이런 흐름에 맞춰 대형 마트는 간편 차례상·냉동 밀키트 대형 할인전을, 편의점 4사는 명절 도시락 출시와 제휴 할인행사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밀키트와 같은 간편식의 수요가 증가한 데에는 물가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설문에선 추석 전체 지출 예산이 평균 71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26%가량 늘었다는 응답이 나왔다. 지출 중에는 부모 용돈·선물 비중이 절반을 웃돌았고, 차례상 비용·내식 비용도 적지 않았다. 품목별로 과일·수산물·햅쌀·송편 등의 차례상 음식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수입 축산물 고려 비율도 늘었다. 이 때문에 “차례상 형식을 간소화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선택의 시대 추석을 준비하는 한 30대 가정주부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차례를 안 지내거나 설에 한 번만 지내는 집이 많다. 고물가 시대에 음식을 다 준비하는 것은 부담되는 것 같다. 그런 형식적인 것은 간소화하더라도 차례를 지내는 행위에 의미가 있으니 상관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