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뒤흔든 '희대의 탈옥' 이야기

  • 김설아 sasa7088@ilyosisa.co.kr
  • 등록 2012.09.24 20: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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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보다 더한 현실판 프리즌 브레이크

[일요시사=김설아 기자] 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돼있던 전과 25범의 피의자가 탈옥했다. 탈옥얘기를 다룬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의 치밀한 계획도 <프리즌 브레이크>에서처럼 온몸에 교도소 설계도를 문신할 필요도 없었다. 그는 경찰관이 조는 틈을 타 한 뼘 높이의 배식 구멍으로 탈출에 성공했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실화. 역대 간 큰 탈옥수들을 살펴봤다.

미꾸라지처럼 구멍을 빠져나간 황당 탈옥사건이 발생했다. 전과 25범인 최갑복(50)은 지난 17일 온 몸에 피부연고를 발라 최대한 매끄럽게 만든 뒤 가로 45cm, 세로 16cm의 직사각형 배식구를 통해 도망쳤다. 유치장을 빠져나가는데 채 1분도 걸리지 않았다. 성폭행과 강도 등 각종 전과를 갖고 있는 최갑복은 탈주 6일만에 밀양서 검거됐다. 

탈옥 후 브라질서
부인과 살 계획

최갑복의 ‘배식구 탈출’이 최근화제라면 80년대는 조세형(당시39세)의 ‘대낮 대탈주’가 있었다. 전과 11범이던 그는 83년 4월 14일 TV 드라마 속의 죄수처럼 탈출에 성공했다.

그는 이날 서울 서소문에 있는 서울형사지방법원에 재판을 받으러 갔다가 구치소로 넘겨지기 직전 대기 중인 구치감에서 일을 벌였다. 순식간에 수갑과 포승을 푼 뒤 복도 벽의 환풍기를 뜯어내고 그 구멍으로 도주했다. 그 뒤 건물 옥상과 옥상 사이를 훨훨 날아다니다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조세형은 상습절도범이었다. 1983년 검거 이전에도 절도죄만으로 6번이나 실형을 선고받았다. 부모도 누군지 모른 채 길거리에서 자라 소년원을 제집처럼 들락거렸던 그였다.

사회보호법에 따라 보호감호까지 청구돼 있는 상태였다. 그럼에도 여론의 동정과 은근한 지지를 받고 있었다. 조세형은 고관대작의 집만 골라 털어 ‘현대판 홍길동’으로 불린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법원행정처가 펴낸 <법원사>엔 이렇게 기록돼 있다.


“그는 주로 고위공직자, 기업체 사장 등 부유한 집만을 골라 귀금속과 금품을 훔쳐왔다. 이에 대해 일부에서는 ‘대도’라는 별명을 붙여주고, 마치 의적처럼 보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우리 사회의 빈부갈등에 따른 위태로운 위화감이 표출되기도 하였다.”

조세형의 절도에는 나름의 원칙이 있었다. 부유층 대저택만 노렸고, 사람을 해치는 강도짓은 하지 않았다. 피 한 방울 흘리게 한 적 없다는 것은 그의 자부심이었다. 또 도둑질로 생긴 돈의 40%를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겠다는 결심까지 했다.

‘대도’ 조세형 대낮 대탈주, 구치감 환풍기 뚫고
전주교도소 탈옥3명, 쇠창살 자르고 담벼락 넘어

탈주 후에도 조씨의 절도는 멈추지 않았다. 그는 5박6일간 경찰의 추적을 따돌리고 서울 도심을 활보하며 5차례에 걸쳐 주택에 침입해 음식과 현금 등을 훔쳤다.

그러나 이도 잠시. 끈질긴 추적을 벌인 경찰이 쏜 총에 가슴을 맞고 붙잡혔다. 다행히 살았다. 이후 진행된 심문에서 그는 “자신이 무기징역이 구형된 데다 보호감호 10년까지 청구돼 15~20년간을 복역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나이가 60이 가까워지므로 부인 나영씨와의 결혼생활이 지켜질 수 없다고 생각했다”며 탈주 결심 동기를 밝혔다. 그는 탈출 후 미국을 거쳐 브라질에 정착한 뒤 홍콩에 있는 부인을 불러들일 계획이었다.

그러나 조세형은 특수절도에 도주 혐의까지 추가돼 징역 15년과 보호감호 10년을 선고받았다. 재심청구 등을 통해 16년만인 1998년 출소했다.

출감하자마자 그는 “신앙인으로서 거듭나겠다”며 목회자의 길로 들어섰다. 이후 자신을 검거했던 ‘수사반장’ 최중락씨의 도움으로 에스원 범죄예방 자문위원으로 위촉, ‘범죄예방 전도사’로 새 길을 찾는 것처럼 보였다.


음식 구걸 후
최후의 순간

90년대 발생한 또 다른 탈주사건이다. 노태우 정권이 서슬퍼런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지 두 달 밖에 되지 않던 때였다. 조세형처럼 구치감의 환풍기 구멍을 뜯지 않았다. 이들은 아예 감옥 쇠창살을 자르고 교도소 담벼락을 넘었다.

1990년 2월 27일 새벽 전주교도소를 탈출한 박봉선(당시30세), 신광재(당시21세), 김모군(당시17세) 등 3명은 감방 창문에 설치된 철책 2개를 쇠톱으로 자르고 사물함으로 쓰이는 선반으로 2.7m짜리 사다리를 만들어 4.5m 높이의 교도소 담을 넘었다. 그 뒤 경찰의 검문을 받다가 실탄 6발이 장전된 권총까지 빼앗았다.

박봉선과 신광재는 살인범이었다. 박봉선은 무기징역을, 신광재는 징역15년을 선고받았다. 이에 비해 함께 탈주했던 김군은 폭력 초범이었다. 1년만 형을 살면 나오게 돼 있었다.

이들의 도주행각은 이틀 만에 대전에서 경찰 감시망에 걸린다. 이후 경찰포위망이 좁혀오자 이들은 충북 청원군 문의면 대청호 안으로 숨어든다. 경찰은 뒤 쫓아가며 이들에게 자수를 권유했다.

박봉선은 권총을 겨누며 “먹을 것을 보내주면 자수하겠다”고 말했고, 경찰이 “한 명을 보내주면 갈전으로 함께 나가 음식을 가져오겠다”고 하자 김군을 대신 보냈다. 경찰은 김군을 곧바로 고무보트에 태워 연행했다.

경찰헬기에서는 “무기를 버리고 땅에 엎드리지 않으면 사살하겠다”는 방송이 잇달아 나왔다. 경찰이 접근해오자 박봉선이 머리에 권총1발을 발사해 자살했으며 신광재 역시 권총을 주워 왼쪽가슴에 쏘았다. 박봉선은 현장에서 숨지고 신광재는 병원으로 옮겨지던 중 숨졌다.

두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전주교도소 탈옥극’의 전모는 영구 미스터리로 남았다. 경찰에 잡힌 김군은 단순공범이라 아는 게 없었다. 직경 2cm나 되는 쇠창살을 어떻게 잘랐는가 하는 의문도 풀리지 않았다.

수시로 감방 복도를 오가는 교도관의 눈을 피해 이 작업을 완성하려면 20여일 이상 걸린다는데 이를 눈치 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탈옥 욕망’으로
초인적 다이어트

1997년 1월 20일엔 희대의 탈옥수가 탄생한다. 그 이름은 신창원(당시30세). 그는 부산교도소 감방 화장실 통풍구 철망을 뜯고 사동 밖으로 나온 뒤 교도소 내 공사장을 통해 밖으로 달아났다.

신창원은 강도치사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중범죄자였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어머니를 잃고, 82년 절도죄로 김제경찰서에 붙잡혀 소년원에 처음 들어갔다.


이후 절도 등으로 3번 더 교도소를 들락거렸던 그는 89년 3월 공범 3명과 함께 서울 성북구 돈암동 정모씨 집에 침입, 정씨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해 6개월여 동안 경찰의 수배를 받았다. 89년 9월 검거된 그는 강도치사죄로 무기형이 확정됐다. 당시 그는 이 형에 몹시도 분노했다고 한다. 자신의 범죄에 비해 너무나 무거운 형을 받았다는 것.

희대의 탈옥수 신창원, 역대 최장 탈옥기간 달성    
영원한 해방을 꿈꾸던 탈옥수들의 비참한 말로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신창원은 허구헌날 싸움질에 사고를 연발하다가 이감을 거듭하던 중 부산교도소에 온 이후 거짓말처럼 사람이 변했다. 모범수가 됐고, 운동도 열심히 하여 몸을 가꾸는 건실한 수감자로 생활했다.

원래 80kg이 넘던 그가 60kg의 날렵한 체구로 변해갔다. 그러나 그의 초인적인 다이어트 동기는 따로 있었다. 교도소 내 교회 공사를 위해 교도소 외벽 일부가 철거되고 철제 울타리로 대체된 뒤였고, 화장실 환풍구의 쇠창살이 허술하게 보였던 것이 이유였다. 그는 몰래 손에 넣은 쇠톱으로 쇠창살을 조금씩 잘랐고 몰라보게 날씬해진 몸으로 그 사이를 통과했다.

탈옥 후 신창원은 도주하는 동안 모두 5차례에 걸쳐 경찰과 맞닥뜨리고도 유유히 검거망을 벗어나며 2년6개월여 동안 도피행각을 벌여왔다. 1999년 7월 검거되기 전까지 그는 절도 104건, 강도 5건, 강도강간 1건 등 총 142건에 달하는 범죄를 저질렀고 검거 후 22년 6월의 형이 추가됐다.

이처럼 범죄영화에나 등장할 법한 일들이 철통보안을 자랑하는 대한민국 교도소에서도 간간히 발생했다. 절도를 저지르고 사람을 죽이는 등의 죗값을 치르는 길 대신 감옥을 뛰쳐나와 야수처럼 날뛴 탈옥수들.


시작은 요란
그 끝은 ‘처참’

출소이후 ‘절도인생’의 종지부를 찍을 것 같았던 대도 조세형은 제버릇 남 못주는 절도행각으로 ‘좀도둑’신세로 전락했고, 독 안에 갇혀 먹을 것 좀 달라고 하다가 스스로 생을 마감한 박봉선과 신광재의 죽음을 기억하는 이는 별로 없다. 그들이 어떻게 성장했는지, 어쩌다가 사람을 죽였는지, 교도소에서 어떤 처지였는지, 어떻게 탈옥했는지는 더더욱 모른다.

역대 탈옥수 중에서 최장 탈옥기간 기록을 달성한 신창원은 체포된 이후 특급의 감시를 받는 죄수로 10년이 넘도록 독방 생활을 했다. 답답함을 못 이기던 그는 지난해 자살 기도까지 했다.

인과응보일까. 사회적 책임일까. 어쨌든 영원한 해방을 꿈꿨던 그들의 말로는 비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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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표 계승?’ 이재명정부 태양광 로드맵

‘문재인표 계승?’ 이재명정부 태양광 로드맵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전 세계적으로 기후 위기가 가시화되면서 에너지 정책은 범국가 차원에서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최근 환경부 장관 후보자의 발언으로 이재명정부의 에너지 정책 방향이 윤곽을 드러내는 모양새다. 일각에서는 문재인정부의 태양광 사업이 어른거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3일 대통령실은 “국회 기후위기특위에서 활동하는 등 미래 환경문제를 지속적으로 고민해온 3선 국회의원”이라고 소개하면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성환 의원을 환경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김 후보자는 22대 국회 기후위기특별위원회(위원장 한정애, 민주당) 위원으로 활동하며 탈원전·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노력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 대선공약 대통령실은 그가 “‘기후 위기는 모두의 생존 위기’라는 대통령의 문제의식을 잘 이해하고 그동안의 입법 경험을 바탕으로 환경문제에 적극 대응할 것”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실제 김 후보자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안’ ‘환경친화적 자동차의 개발 및 보급 촉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 등을 발의한 바 있다. 이번 김 후보자의 지명으로 이재명정부의 환경 정책이 구체화되고 있는 모양새다. 김 후보자는 지난 24일 오전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기자들을 만나 “재생에너지 기반으로 모든 에너지 체계를 바꾸고 화석연료에 의존하지 않는 재생에너지 중심의 체계를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원전은 보조 에너지원으로 활용하겠다는 뜻도 비쳤다. 그는 ‘재생에너지를 늘리면 전기료가 오른다’는 우려에 대해 “전 세계적으로 균등화발전비용(같은 양의 전력을 생산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가장 싼 전원은 이미 풍력과 태양광”이라며 “다만 아직 한국에선 여러 기회 비용, 시간 비용, 금융 비용이 쌓여 상대적으로 비쌀 뿐이다. 실제 요금이 오를 일은 없다. 오히려 그런 식의 접근이 대한민국의 에너지 전환을 가로막고 있다”고 주장했다. 탈원전에 대해서는 “각 나라 특성에 따라 원전을 쓰는 나라가 있는데 한국도 탈원전을 바로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주 에너지원으로 재생에너지를 쓰고 원전을 보조 에너지원으로 쓰는 것이 (이재명정부의) 탈탄소 정책 기조”라고 말했다. 김 후보자는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으로 신설 예정인 기후에너지부 장관으로도 거론되고 있다. 기후에너지부는 분리돼있는 기후와 에너지 관련 부처 업무를 통합한 조직이다. 그는 “기후에너지 문제를 어떻게 하는 게 가장 효과적인지 빠른 시일 내로 큰 방향을 잡겠다”며 “국정기획위원회에서 조직개편안을 검토하고 있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신재생에너지로 전환 필요” “원전은 보조 에너지원으로” 환경부 장관 후보자가 에너지 ‘전환’을 예고하면서 일각에서는 문재인정부의 태양광 사업이 떠오른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대선공약으로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내세운 바 있다. 이를 세부적으로 진행하는 과정에서 태양광 사업이 크게 대두돼 국가 예산이 투입됐다. 문정부는 출범하면서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비율을 20%까지 높이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재생에너지 3020 이행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정부는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늘리기 위해 설비를 확충하기로 했다. 태양광, 풍력발전소 등이다. 당시 내용대로면 총 110조원에 이르는 돈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정부는 국가 예산과 공기업, 민간 등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문정부 임기 내내 전국 단위로 태양광 사업을 위한 지원금이 뿌려졌다. 당시 문정부는 신재생에너지 확대와 함께 탈원전 로드맵을 동시에 진행했다. 일부 원전이 영구적으로 정지됐고 짓고 있던 원전 공사가 중단됐다. 단계적 원전 감축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신재생에너지로 대체하겠다는 취지였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나온 잡음이다. 특히 태양광 사업을 둘러싼 각종 비리 의혹은 정권이 교체된 이후에도 문정부를 오랫동안 괴롭혔다. 국가 주력 사업이었던 만큼 정권이 바뀐 이후 새 정부의 표적이 된 상황에서 실제 문제가 드러난 것이다. 천문학적 예산 투입 윤석열정부는 신재생에너지 지원 사업에 대한 대대적인 점검을 진행했다. 윤정부 국무조정실은 일부 표본만 조사했는데도 불구하고 2000억원이 넘는 돈이 불법으로 사용된 정황이 드러났다고 발표했다. 당시 국무조정실 정부합동 부패예방추진단은 전국 12개 지자체와 한국전력, 한국에너지공단을 대상으로 ‘전력산업 기반기금 사업’ 운영 실태에 대한 합동 점검을 벌인 결과 총 2267건(2616억원)의 위법·부당 사례를 적발했다고 밝혔다. 해당 기금은 산업자원통상부(이하 산업부)가 전기 요금의 3.7%를 징수해 조성한 돈으로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지원과 보급에 주로 사용됐다. 5년간 투입된 금액은 12조원에 이른다. 1차 조사에 따르면 신재생에너지 지원 사업에서 부적절한 대출과 보조금 부당 집행, 회계 부실 등이 적발됐다. 태양광 사업의 경우 점검 대상의 17%인 1129건에서 1847억원의 위법 대출 등이 확인됐다. 2차 점검에서는 적발 금액이 2배로 늘었다. 국무조정실은 2019~2021년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에 쓰인 금융지원사업(1조1325억원) 내역과 2017~2021년 보조금 지원 규모가 컸던 25개 지자체의 발전소 주변 지역 지원사업 등을 조사했다. 그 결과 금융지원 사업에서 4898억원, 발전소 주변 지역 지원 보조금 사업에서 574억원, 전력 분야 연구개발 지원사업에서 266억원, 기타 전력기금 사업에서 86억원의 부정 집행 사례가 나타났다. 당시 국무조정실 관계자는 “신재생에너지 지원금 대부분은 태양광 사업에 쓰였다”며 “가장 규모가 컸던 부정 금융지원 사업 사례 중 99%는 태양광 사업”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태양광 업자들은 허위 세금계산서를 발행해 불법 대출을 받았고 가짜 세금계산서로 공사비를 부풀려 지원금을 타냈다. 감사원 조사로 검찰 수사까지 대출을 받은 뒤 세금계산서를 취소, 축소하는 등 탈루가 의심되는 정황도 드러났다. 가짜로 버섯 재배 시설이나 곤충 사육 시설, 축사 등 농림축산업 시설을 만들어 놓고 신재생 시설을 짓겠다고 대출을 받은 경우도 있었다. 농지에 신재생 시설을 지을 때는 용도변경 등 인허가 절차가 필요하지 않고 생산한 전력을 팔 때 받을 수 있는 보조금 한도도 커진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한 마을회는 마을 창고를 짓겠다며 전력기금에서 돈을 받아 부지를 사들였지만 실제 창고는 짓지 않았고 부지는 마을회장이 6촌에게 되팔았다. 지방자치단체의 문제도 드러났다. 한 군은 타낸 보조금을 다 쓰지 못하고 약 24억원이 남자 이를 다른 계좌로 빼돌렸다가 적발됐다. 한 시는 보조금을 빼돌려 관용차를 사기도 했다. 감사원 조사도 이뤄졌다. 감사원은 2023년 11월 ‘신재생에너지 사업 추진 실태’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신재생에너지 사업의 목표와 이행, 인프라 구축, 관리 등 3개 분야로 나눠 추진 과정과 집행 전반을 들여다봤다. 감사원에 따르면 산업부는 2017년 신재생 발전 목표를 상향하면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검토했지만 막상 후속 조치 이행에는 소홀했다. 감사원은 “톱다운(하향식) 방식으로 내려온 목표에 따라 무리한 계획이라도 수립해야 했다는 이유로 실현 가능성이 떨어지는데도 면밀한 검토 없이 강행되고 짧은 기간 내 일관성 없이 변경됨으로써 정책 혼선과 신뢰성 저하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윤석열정부서 전반적 점검 8000억 넘는 예산 줄줄 샜다 대통령의 대표 공약이었던 만큼 정부 부처가 이를 맞추기 위해 과도하게 정책을 추진했다는 것이다. 문정부가 신재생에너지 확대로 야기될 수 있는 전기요금 인상 가능성을 감췄다는 지적도 나왔다. 감사원 감사 결과에 따르면 산업부는 문정부의 국정 과제대로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늘릴 경우 2030년까지 전기요금을 40% 가까이 올려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당시 청와대의 압박에 12년 동안 10.9%만 오를 것이라고 국민 부담을 축소했다. 태양광 사업의 여파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새만금 태양광 발전사업 비리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은 지난 1월 군산시청에 대한 추가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감사원 감사 결과 군산시 태양광 발전사업 수주 과정에서 뒷돈이 오간 정황이 포착됐고 이를 검찰에 수사 의뢰를 하면서 시작된 일이다. 당시 군산시장은 군산시가 1000억원 규모의 태양광 사업을 추진할 때 자신의 고교 동문이 대표로 있는 업체에 특혜를 준 혐의를 받고 있다. 해당 업체가 사업자금을 조달하는 금융사가 제시한 연대보증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는데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해 계약 체결을 지시했다는 게 감사원의 판단이다. 앞서 검찰은 새만금 태양광 사업을 주도한 회사 대표를 알선수재 혐의로 기소했다. 그는 태양광 발전사업 과정에서 정·관계 인사에게 로비를 해주겠다며 뒷돈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그의 진술로 비리 의혹은 정치권으로까지 번졌다. 핵심 수사 대상에 올랐던 건설사 대표가 실종됐다가 시신으로 발견되는 일도 일어났다. 관련 시장은 반응 오는 중 이 대통령이 기후, 에너지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김 후보자가 재생에너지를 언급하면서 관련 시장이 다시 들썩이는 모양새다. 실제 태양광 관련 주가가 오르는 등 주식시장에는 벌써부터 반응이 나타나고 있다. 윤정부는 문정부의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통째로 부정하다시피 했다. 반대로 문정부의 정책을 다시 끄집어낸 이정부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