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한동훈 장관과 현실적 악의

  • 김삼기 시인·칼럼니스트
  • 등록 2022.12.19 15:20:52
  • 호수 1406호
  • 댓글 2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지난 6일 청담동 술자리 가짜뉴스 유포와 관련해 더불어민주당 김의겸 의원과 <더탐사> 측을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법원에 10억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도 제기했다. 

앞서 김 의원은 지난 10월 법무부 국정감사장에서 <더탐사>가 제공한 첼리스트 A씨와 전 남자친구 B씨의 통화 녹음 파일을 공개하면서 ‘지난 7월19~20일 윤석열 대통령과 한 장관이 김앤장 변호사 30여명과 함께 심야 음주가무를 즐겼다’는 취지의 의혹을 제기했다. 

한 장관은 이 같은 가짜뉴스가 국회방송 등을 통해 송출돼 명예를 훼손당했다고 주장했고, 결국 첼리스트 A씨가 경찰 조사에 출석해 “전 남자친구를 속이려고 거짓말했다”고 진술하면서 해당 의혹이 거짓으로 드러나자, 한 장관이 법적 대응을 한 것이다.

한 장관은 30여장 분량의 고소장에 주로 김 의원이 사전에 <더탐사> 측과 공모했다는 취지의 주장을 담았다고 한다. 경찰 조사 과정에서 1964년 미국의 연방대법원에서 처음으로 적용된 ‘현실적 악의(actual malice)’의 법리에 의해 한 장관 스스로 공모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1964년 미국 연방대법원은 앨라바마주 경찰위원과 <뉴욕타임즈>의 명예훼손 손해배상 소송에서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 언론 보도라도 연방수정헌법 제1조의 보호대상이 되기 때문에 공직자가 언론의 현실적 악의를 입증해야만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허위라는 사실을 알고도 언론이 진실인 것처럼 보도했거나 허위인지 아닌지 여부에 대해 고려하지 않고 보도한 것을 두고 ‘현실적 악의’라고 지칭하면서 미국 연방대법원은 그런 현실적 악의를 원고인 공직자가 입증해야만 언론 소송에서 이길 수 있다고 한 것이다. 


미국은 지난 반세기 동안 언론 소송에서 대부분 현실적 악의의 법리 중심으로 전개돼왔다. 언론의 잘못된 보도가 악의적이거나 심각하리만큼 형평성을 잃지 않았다면 국가나 고위공직자는 언론에 명예훼손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대체로 국가나 고위공직자에 대해 현실적 악의의 법리를 적용하지 못해왔다.

사실 고의·중과실에 의한 허위·조작 보도에 대해 5배까지 징벌적 손해배상이 가능하도록 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아직 본회의를 통과하진 못했지만, 지난해에 민주당 주도로 국회 문체위 법안심사 소위와 전체회의를 통과했고 올해 여야가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그만큼 현실적 악의의 법리가 우리나라에서 자리 잡기 쉽지 않다는 증거다. 

그런데 이명박정부 초기 때 처음으로 언론이 아닌 시민단체 소송에서 ‘현실적 악의’를 적용한 사례가 나왔다는 점을 한 장관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2009년 당시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는 ‘국가정보원이 시민단체와 관계를 맺는 기업까지 전부 조사해 시민단체가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취지로 사찰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국가는 “확인 절차 없이 허위사실을 말해 국가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박 이사에게 2억원을 배상하라고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법원은 1심, 항소심, 상고심 모두 국정원에 대해 패소 판결을 내렸다. 국가는 언론 매체나 제보자의 명예훼손 행위가 감시, 비판, 견제라는 정당한 활동의 범위를 벗어날 경우에 한해 예외적으로 명예훼손의 피해자가 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인 악의에 대한 입증 책임은 피해자인 국가에게 있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이런 판례를 잘 알고 있는 한 장관이기에 30여장의 고소장에 김 의원과 <더탐사> 측의 공모 사실을 강력하게 주장했을 것이다.

김 의원과 <더탐사> 측이 설령 공모했더라도 경찰 조사에서 말할 리는 만무하고, 경찰도 객관적인 사실을 근거로 김 의원과 <더탐사> 측의 공모를 캐내기가 쉽지 않다는 점을 한 장관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검찰과 경찰이 한 장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고 하지만, 면책특권 뒤에 숨어 있는 김 의원과 뉴스를 만들어내는 언론의 공모 여부를 쉽사리 조사하지 못해 결국 이번 사건도 흐지부지 끝날 것으로 우리 국민이 믿고 있다는 것이다.

분명한 건 한 장관이 현실적 악의의 법리에 따라 김 의원과 <더탐사> 측의 공모를 입증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찰이 못해도 한 장관이 해야 한다. 입증도 못할 사건을 이슈화시켜 국민적 혼란만 야기하는 건 장관으로서 도리가 아니다. 

만약 이번에 한 장관이 김 의원과 <더탐사> 측의 공모 사실을 입증하지 못한다면, 우리 국민은 한 장관에 대해서도 평소 자신의 주장처럼 진위 여부를 확인도 안 하고 의혹만 던져놓고 나 몰라라 하는 야당 의원과 다름없는 정치 성향의 장관으로 평가할 것이다.

10억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한 것에 대해서도 우리 국민의 시선은 곱지 않다. 고액의 배상을 치르게 함으로써 더는 똑같은 행위를 반복하지 못하도록 막기 위해 실제 손해액보다 훨씬 많은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한 건 이해가 된다.

그러나 그대로 법원이 판결할 것이라고 믿는 국민이 없다는 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김 의원은 작년 언론중재법 개정안 처리 시 법안소위 소속 국민의힘 의원 3명이 반대할 때 민주당 의원 3명과 함께 찬성표를 던졌다.

전체회의 심사 때도 문체위원 16명 중 민주당 의원 8명과 함께 의결정족수인 반을 넘기는 데 협조함으로써 언론중재법 개정에 공을 들였는데, 지금은 오히려 한 장관의 입증을 기다리면서 현실적 악의의 법리 적용에 조용히 한 표를 던지고 있는 것 같다.

※본 칼럼은 <일요시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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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사면’ 군불 때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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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풀어주느냐, 마느냐, 이재명 대통령이 깊은 고심에 빠졌다. 8·15 특별사면·복권 명단에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의 이름이 올라오면서다. 한때 아군이었던 조 전 대표의 정치 생명이 용산의 선택에 달렸다. 조국혁신당은 물론 문재인 전 대통령과 친문계까지 사면론에 힘을 싣고 있다. 지난 7일 이재명정부의 첫 특별사면을 준비하기 위한 법무부 사면심사위원회가 열렸다. 이날 특별사면 명단에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조국 전 대표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치권의 관심이 급상승했다. 사면심사위원회가 사면·복권 건의 대상자를 검토하면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이를 이재명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오는 12일 국무회의에서 심의·의결을 거쳐 최종 확정된다. 설에 부채질 조 전 대표는 자녀 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혐의로 지난해 12월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2년 실형을 확정받았다. 조 전 대표의 만기 출소 예정일은 내년 12월15일이다. 이번 광복절 특별사면이 이뤄질 경우 출소 시기는 앞당겨질 수 있다. 혁신당은 조 전 대표의 기소 자체가 검찰의 무리한 시도였다고 보는 만큼 이번 정권에서 검찰개혁을 이뤄내고 정의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보고 있다. 혁신당 신장식 의원은 지난 대선 정국서 “조 전 대표가 보고 싶지 않느냐”며 “(이재명 후보가) 그냥 이기는 게 아니라 크게 이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시 이재명 후보의 당선이 곧 조 전 대표의 사면이라는 메시지를 은연중에 전달한 것이다. 조 전 대표의 부인인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 또한 비슷한 시기에 ‘더1찍 다시 만날 조국’이라는 홍보물을 제작하는 등 이 후보의 당선과 조 전 대표의 사면을 동일시했다. 이렇듯 혁신당은 지난 총선과 대선 등에서 일궈낸 업적을 청구서 삼아 은근한 눈치를 보냈고, 최근에는 문재인 전 대통령을 비롯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내 친문(친문재인)까지 목소리를 키우면서 이 대통령을 전방위로 둘러쌌다. 지난달 30일 친문계인 민주당 고민정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조 전 대표와의 접견 사실을 알리며 “특유의 미소가 여전하고 세상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이 많을 법도 한데 오히려 긍정 에너지가 가득하다. 그래서인지 자꾸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고 마음의 빚을 지게 만드는 사람”이라고 적었다. 이어 “조국의 사면을 많은 이들이 바라는 이유는 검찰개혁을 요구했던 우리가 틀리지 않았음을 그의 사면을 통해 확인받고 싶은 마음 아닐까”라며 “야수의 시간과 같았던 지난 겨울 우리가 함께 외쳤던 검찰개혁이 틀리지 않았음을, 서로 생각은 달라도 통합과 연대라는 깃발 아래 모두가 함께 있었음을 확인받고 싶은 마음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국민통합 일환? 이 결정만 남아 친문계에 문까지 팔 걷어붙여 친명(친이재명)으로 분류되는 민주당 김영진 의원 역시 한 라디오를 통해 “국민통합을 위한 측면에서 넓게 사면 복권에 관한 판단을 할 때가 되지 않았나란 생각이 든다”면서도 “이 문제는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 대통령께서 판단할 문제라 보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문 전 대통령이 용산 측에 조 전 대표의 사면 의견을 직접 전달한 것으로도 전해진다. 문 전 대통령은 지난 5일 경남 양산 평산마을을 찾은 우상호 정무수석을 만난 자리에서 이 같은 의견을 전달했고, 우 수석은 “뜻을 전달하겠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김원기·임채정·정세균·문희상·박병석·김진표 등 민주당 출신인 전 국회의장도 가세했다. 이들은 입장문을 통해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책임을 수용한 이들에 대한 절제된 관용”이라며 “대통령께서 국민 통합의 뜻을 담아 조 전 대표에 대한 특별사면을 단행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한 개인의 구제가 아니라 극한 대립과 갈등의 시기를 겪어내며 상처 입은 우리 사회 공동체에 건네는 ‘공정한 매듭과 위로’의 손길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방에서 사면 요청이 쇄도하자 대통령실은 막판 고심에 빠졌다. 앞서 지난 5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사면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며 “사회적 약자와 민생 관련 사면에 대해 일차적으로 검증 및 검토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정치인 사면에 관해 다양한 의견들을 수렴 중”이라며“아직 최종적인 검토 내지는 결정에는 이르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혁신당 내부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서 “조 전 대표가 수감 된 지 8개월이 지났는데 혁신당은 아직도 권한대행 체제다. 전당대회를 통해 새 대표를 뽑을 만도 한데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가 뭐겠느냐”며 “이정부가 들어서자마자 조 전 대표가 사면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조 전 대표가 돌아와서 혁신당이 이전 같은 명성을 되찾길 기다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혁신당 당헌·당규에 따르면 ‘당대표가 궐위된 때에는 최고위원 가운데 가장 많은 득표로 선출된 최고위원이 남은 임기 동안 당대표의 권한을 대행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김선민 권한대행이 내년 7월까지 조 전 대표의 임기를 대신해 자리를 지킬 의무가 있다는 설명이다. 이에 정치권에서는 당초 조 전 대표가 자신의 수감 생활을 예측하고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이러한 당헌·당규를 개정한 게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8개월째 대행 체제 혁신당 “확신” 믿을 구석 있었나 내년 지방 선거를 위해서라도 혁신당은 조 전 대표의 사면이 필요하다. 구심점이 없고 ‘조국’혁신당이라는 이름만 존재하는 지금으로서는 지난 보궐선거만큼의 역량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에서다. 민주당은 딜레마에 빠졌다. 국정 초기부터 자녀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등으로 법의 심판을 받고 복역 중인 인사를 사면했다가는 ‘범죄자 프레임’에 함께 걸려들 수 있다. ‘조국 사태’에 거부감을 느낀 지지자들의 이탈도 고려해야 하는 지점이다. 반면 사면 요청을 거절할 경우 오히려 조 전 장관의 정치력을 키우는 등 일종의 서사를 부여할 수 있다. 조 전 대표는 본인의 사면에 대해 큰 뜻을 밝히지 않아 오히려 지지층 결집에 도움이 될 것이란 해석이다. 민주당에 있어 조 전 대표는 내년 지방선거의 ‘변수’다. 지난 총선서 호남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킨 혁신당이기에 조 전 대표가 정치권에 돌아온다면 진보진영 텃밭을 둘러싼 두 정당 간의 경쟁과 그로 인한 잡음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조 전 대표의 사면을 단정하기는 이르지만 정치권에서는 벌써부터 그의 행보를 예측하고 나섰다. ‘자유의 몸’이 될 경우 이른 시일 안에 전당대회를 치러 다시 한번 당대표직을 거머쥐고 내년 지방 선거를 진두지휘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일각에서는 조 전 대표가 부산 시장 등으로 직접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도 보고 있다. 어디로 튈까 민주당은 최종 사면 명단이 공개되기 전까지 별다르 입장을 내지 않겠다는 분위기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 7일 문 전 대통령을 예방했지만, 이날 조 전 대표의 사면 논의는 나오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이제 공은 이 대통령에게 넘어왔다. 단 한 사람의 정치 인생이 걸린 문제지만 그의 복권은 정치 진영을 흔들기에 충분하다. 여러 가지 변수와 상수가 존재하는 가운데 이 대통령의 최종 선택에 이목이 쏠린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