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킹 범죄를 비롯한 다양한 형태의 ‘관계 폭력’이 난무하면서 잠재적 피해자에 대한 신변보호의 강화 필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경찰은 다양한 노력을 경주하고 있지만, 시민들의 체감안전에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경찰이 제공하는 신변보호는 방식은 ▲피해자를 범죄 피해자 안전조치 대상자로 등록하고 스마트워치 지급 ▲피해자 주거지로부터 일정 거리 이내로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접근금지 등 스토킹처벌법에 따른 긴급응급조치 ▲영장 청구 등에 국한된다.
하지만 이 방법들이 명확한 해답을 주는 건 아니다.
스마트워치를 지급하더라도 착용자가 긴급상황 시 긴장하고 겁먹은 나머지 작동 자체를 하지 못하는 사례가 나올 수 있다. 이 경우 스마트워치는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착용자가 기기를 작동시키더라도 착용자 가까이 접근한 용의자보다 경찰이 현장에 먼저 도착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고, 사실상 ‘골든타임’을 놓치게 돼 피해를 막지 못하는 경우도 비일비재다.
피해자가 스마트워치로 신고하고 3분 만에 경찰이 도착했지만, 그사이 가해자가 피해자를 해친 사례도 있다.
접근금지도 마찬가지다. 접근하지 말라고 아무리 명령이나 조처를 해도 그 명령이나 조처를 지키는지 감시와 감독이 어려워 피해자 보호에 별 도움이 되지도 못하면서 오히려 신고한 피해자에 대한 가해자의 분노와 증오만 키운다고 우려한다.
피해자 신변이 제 시간에 보호되지 못하면, 극단적으로는 피해자 본인은 물론이고 그 가족까지 살해되기도 한다. 피해자 신변보호는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제도와 장치들이 피해자의 사전주의에만 의존하는 관계로 효과가 없거나 한계가 있다.
먼저 스마트워치는 접근해오는 가해자를 능동적으로 막거나 사전에 차단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신변보호는 피해자의 주의와 조심이 아니라 가해자의 접근을 원천 차단하는 데서 시작돼야 한다.
당연히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에게 채워져야 하고, 가해자가 피해자나 그 가족, 그리고 직장과 주거지 등 필요한 장소에로 일정한 거리 이내로 접근해오면 즉시 경찰과 피해자 및 그 가족에게 경보가 울리도록 해서 경찰이 미리 가해자의 위치에 출동해 접근을 차단하고, 피해자와 가족에게는 피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줘야 한다.
이는 접근금지명령에도 적용된다. 가해자에게 스마트워치가 채워지면 기존에 불가능했던 접근 여부에 대한 실질적인 감시와 감독도 이뤄져야 한다. 정해진 구역에 접근하면 자동으로 경보가 울리도록 하는 것이다.
최근에는 피해자의 범위를 신고자 본인에만 국한돼 주변인, 즉 가족이나 친인척까지도 보호 대상이 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더불어 신고자와 주변 친인척의 현재 위치는 물론이고 그들의 직장, 주거지, 그리고 주요 활동 구역까지도 접근금지 등 조처 범위에 포함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대부분의 폭력 범죄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동일한 시간과 공간에 있어야 발생한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사이버 폭력도 허다하지만, 전통적 관점의 폭력 범죄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시간적, 공간적 공존을 범죄 발생의 필요충분조건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범죄가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바로 가해자와 피해자가 같은 시간과 공간에 있지 못하도록 하는 게 필요하다.
이 같은 기본적 이론을 더 충실히 반영하기 위해서라도 가해자와 피해자의 강제적인 즉시 분리의 필요성이 강조된다. 스토킹 범죄를 비롯한 관계 폭력은 초동조치에 따라 생사가 갈리기 때문에 초기 분리 조치가 더욱 절실하다고 하겠다.
비단 스토킹 범죄 피해자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범죄 피해자들이 필요한 최소한의 보호조치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임을 감안하면, 훨씬 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피해자 중심의, 피해자 지향의 신변보호 대책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피해자 보호를 위해 개명, 이주, 전직, 심지어 성형에 이르기까지 가능한 모든 것을 다해 피해자를 보호하려는 외국의 노력들이 더 이상 남의 이야기로만 들리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이윤호는?]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명예교수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