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뉴 삼성 시대 뉴 리더 이재용 

더 과감하고 더 도전적으로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10년간 ‘부회장’직을 유지했던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부’ 자를 떼고 ‘회장’ 타이틀을 달았다. 그동안 실질적인 삼성그룹 총수 역할을 해오긴 했지만 공식적으로 회장직에 오르며 본격적인 ‘이재용표 뉴 삼성 시대’가 개막될 전망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0년 만에 회장직에 올랐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27일, 이사회를 열고 글로벌 대외 여건이 악화되고 있는 가운데 ▲책임경영 강화 ▲경영 안정성 제고 ▲신속하고 과감한 의사결정이 절실하다고 판단해 이 부회장의 회장 승진을 의결했다고 밝혔다.

부회장만 10년
드디어 회장님

이날 이 회장은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 합병 의혹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 의혹 공판 직후 기자들과 만나 “제 어깨가 많이 무거워졌다”며 “국민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신뢰받고 사랑받는 기업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이어 “많은 국민들의 응원을 부탁드린다. 감사하다”며 머리 숙여 인사한 뒤 법원을 떠났다.

1968년생으로 올해 만 54세인 이 회장은 아버지 고 이건희 회장과 어머니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 사이에서 1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동생으로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이 있다.


이 회장은 경기초등학교, 청운중학교, 경복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게이오기주쿠대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이 회장의 탄탄한 글로벌 네트워크는 이런 학력이 일조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 회장이 대학교 전공으로 동양사학을 선택한 이유로는 조부 이병철 선대회장의 조언 때문이라는 전언이다. 이 선대회장은 경영학은 나중에도 배울 수 있기 때문에 그 전에 인간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인문학을 권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1991년 삼성전자 총무그룹에 입사해 경영기획팀 상무보, 상무, 전무, 최고운영책임자 부사장, 사장 등을 거쳐 2012년 부회장에 올랐다.

2014년 고 이건희 회장이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뒤 그룹을 상징하는 삼성문화재단 이사장과 삼성생명공익재단 이사장 등을 겸직하며 실질적으로 삼성그룹을 이끌었다.

그동안 삼성·SK·현대자동차·LG 등 주요 4대 그룹 총수 중에서 부회장 직함을 달고 있는 총수는 이 부회장이 유일했다. 삼성이 초격차 경쟁력을 유지하고 과감한 의사결정을 진행하기 위해 ‘회장’ 직함을 통한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제기됐지만 이 회장은 그동안 자신의 승진과 관련해 조심스러운 태도로 일관해왔다.

단적으로 이 회장은 지난달 해외 출장을 마치고 귀국하면서 ‘회장 승진 계획’을 묻자 “회사가 잘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답하기도 했다. 지난 17일 개최된 ‘2022년 국제기능올림픽 특별대회 고양’ 폐회식에서도 같은 질문에 답변을 하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10년 부회장 떼고 ‘회장’ 타이틀
91년 입사 실질적으로 그룹 이끌어


이 회장은 특히 부친인 고 이건희 회장이 삼성그룹의 마지막 회장이기 때문에 자신은 부회장 직을 유지한다는 뜻을 내비치는 발언도 했다. 2017년 국정 농단 항소심 결심공판 피고인 심문에서 이 회장은 “앞으로 삼성그룹 회장이라는 타이틀은 없을 것”이라며 “와병 중인 이건희 회장이 마지막으로 삼성그룹 회장 타이틀을 가진 분”이라고 언급했다.

이 회장은 이처럼 자신의 승진 여부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보였지만 재계에선 8·15 광복절 특별사면·복권 이후 이 회장의 현장 경영 행보를 주시하며 승진 시점이 임박한 것을 예견했다.

회장 취임은 등기이사 복귀와 달리 회장 이사회에 공식 안건으로 채택되지 않아도 내부 결정을 거쳐 공표하면 되지만 이 회장이 대내외적으로 사회적 분위기를 살피며 적절한 시기를 조율해왔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이 회장은 복권 이후 대대적인 메시지를 발표하지는 않았으나 총수로서의 리더십을 발휘하는 모습을 지속적으로 보여왔다.

이 회장은 지난 8월 삼성전자 기흥캠퍼스 반도체 연구개발(R&D) 단지 기공식을 기점으로 삼성엔지니어링 글로벌엔지니어링센터(GEC), 삼성전자 수원사업장, 삼성SDS 잠실캠퍼스, 삼성바이오로직스 송도 공장 등을 연이어 찾았다.

지난 6월 유럽에 이어 9월에는 멕시코·파나마·영국 등을 방문하면서 해외 사업 현황을 점검하며 직원들을 만나기도 했다.

지난달 12일에는 1년9개월 만에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준법위)를 찾았다. 회장 취임을 앞두고 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그룹 컨트롤타워 복원에 대해서도 위원들과 폭넓은 의견을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25일에는 고 이건희 회장의 2주기 추모식의 규모를 대폭 확대하며 현직 사장단과 계열사 부사장, 전직 사장단까지 총 300여명을 소집하기도 했다. 이 회장은 추모식 직후 용인에 있는 삼성인력개발원으로 이동해 현직 사장단 60여명과 함께 오찬을 가졌다.

재계 일제 환영
“행보 기대된다”

해당 자리에서 현직 사장단과의 회장 승진 분위기를 살피는 등 교감이 있었을 것이란 분석이다. 이 회장은 미·중 분쟁 심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세계적인 경기침체 등 대내외적인 변수가 삼성을 위협하면서 이를 타개할 ‘회장’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승진을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의 승진 소식에 재계도 일제히 환영의 입장을 보내고 있다.

국내 재계 그룹 관계자는 “지금과 같이 변화와 경쟁이 치열한 시기에 변동성이 큰 시장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경영 공백을 메우는 것이 필요하다”며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그룹 관계자는 “기업으로서 해야 할 두 가지 중 하나가 글로벌 사업을 확장해서 국익에 증대하는 역할이며 국내에서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역할”이라며 “이에 걸맞은 역할을 해나가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경제단체도 환영의 뜻을 밝혔다. 유환익 전국경제인연합회 산업본부장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취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며 환영했다.

유 본부장은 “최근 미·중 간 반도체 패권 경쟁 심화, 보호무역주의 확산에 따른 수출환경 악화 등으로 한국 경제가 위기에 직면해있고 삼성전자 역시 TSMC, 인텔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과 무한경쟁 중”이라며 “이 회장의 취임을 계기로 삼성전자가 신기술에 대한 과감한 투자 등을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유지하고 위기를 새로운 기회로 바꿀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재계 한 관계자는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매우 어려운 시기에 삼성이라는 글로벌 기업의 회장이라는 중책을 맡게 됐다”며 “반도체 강국으로서의 지위를 수성하고 미래산업 먹거리를 발굴해 경제발전과 고용창출에 더욱 노력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재계 또 다른 관계자도 “글로벌 경제위기를 직면하고 있는 지금, 그 어느때보다 강력한 리더십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에 매우 반가운 소식”이라며 “대한민국 대표기업인 삼성전자의 새로운 도약을 이끌기 원한다”고 말했다.

일부에선 이재용 회장 승진을 계기로 기업인들이 경영에만 매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다시 나오고 있다.


한 그룹사 관계자도 “이번 이 회장의 취임이 삼성의 이해관계자들을 넘어 한국 경제 전반에 활력을 불어넣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기업인들이 경영에만 매진할 수 있는 사회 환경조성이 더 절실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인재제일’ 
경영철학

이 회장은 취임식이나 취임사 등 별도의 행사 없이 조용하게 취임해 그 배경에도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앞서 고 이건희 회장은 1987년 12월1일 서울 호암아트홀에서 취임식을 갖고 ‘제2의 창업’을 선언했다. 최근 글로벌 IT 기업들의 사례를 보면 대부분 별도의 행사 없이 임직원에게 이메일을 통해 취임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일반적이긴 하지만 이 회장은 별도의 취임 메시지조차 내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업의 리더가 부회장에서 ‘회장’으로 직함이 바뀌었는데도 관련 행사나 메시지가 없는 것은 이례적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하지만 재계에서는 이 회장이 2014년 이건희 회장이 쓰러지신 이후 실질적으로 삼성을 이끌어왔으며 사전적 의미에서는 이미 취임 후 삼성을 대표하는 경영활동을 하고 있는데 별도의 취임 관련 메시지나 행사를 하는 것이 오히려 더 어색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 회장은 취임사 대신 지난 25일 이건희 회장 2주기 당시 사장단과 만나 밝힌 소회와 각오를 사내게시판에 올렸다.

그는 “최근 글로벌 시장과 국내외 사업장들을 두루 살펴봤다. 절박하다.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은 엄중하고 시장은 냉혹하다”며 “돌이켜보면 위기가 아닌 적이 없다. 우리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어렵고 힘들 때일수록 앞서 준비하고 실력을 키워나가야 한다. 지금은 더 과감하고 도전적으로 나서야할 때”라며 “창업 이래 가장 중시한 가치가 인재와 기술”이라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꿈과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기업, 끊임없이 새로운 세계를 열어가는 기업, 세상에 없는 기술로 인류사회를 풍요롭게 하는 기업, 이것이 여러분과 저의 하나된 비전, 미래의 삼성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창업 이래 가장 중시한 인재·기술”
“함께 성장해야”사회와의 동행 강조

이병철 선대회장과 고 이건희 회장의 ‘인재제일’ 경영철학을 이어받은 이재용 회장은 평소 ‘임직원과 회사가 함께 성장하는 조직’을 만드는 데 큰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은 평소 “기존의 잘못된 제도와 관행은 물론 시대에 뒤떨어진 인식을 바꾸자”며 “잘못된 것, 미흡한 것, 부족한 것을 과감히 고치자”고 강조해왔다.

이 회장의 ‘조직문화 혁신’ 의지에 따라 삼성전자는 올해부터 조직의 활력과 유연성을 높이기 위해 ▲직급 통폐합 등을 통한 수평적 조직문화 확산 ▲직급별 체류 연한 폐지를 통한 조기 승진 기회 및 과감한 발탁 승진 확대 ▲평가제도 개선 등을 골자로 하는 새 인사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의 새로운 인사제도 개편은 이재용 회장이 이끄는 ‘뉴 삼성’ 비전을 구체화하는 초석이 될 것”이라며 “회사와 직원들이 함께 성장하는 ‘미래지향적 조직문화’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핵심인재 영입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이 회장은 2020년 5월 대국민 기자회견에서 “전문성과 통찰력을 갖춘 최고 수준의 경영만이 생존을 담보할 수 있다. 삼성은 앞으로도 성별과 학벌 나아가 국적을 불문하고 훌륭한 인재를 모셔와야 한다”며 외부의 유능한 인재를 적극적으로 영입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회장의 또다른 키워드는 ‘기술’이다. 이 회장은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고 지속 성장하며 글로벌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초격차 기술력’을 늘상 강조해왔다.

이 회장은 지난 8월 기흥 반도체 R&D단지 기공식에 참석해 “차세대뿐만 아니라 차차세대 제품에 대한 과감한 R&D 투자가 없었다면 오늘의 삼성 반도체는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기술 중시, 선행 투자의 전통을 이어나가자. 세상에 없는 기술로 미래를 만들자”고 당부했다.

지난 6월 유럽 출장을 다녀온 뒤 귀국길에서도 “첫 번째도 기술, 두 번째도 기술, 세 번째도 기술”이라며 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 회장은 지난 17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2022년 국제기능올림픽 특별대회 고양’ 폐회식에 참석해 기술 중시 경영 행보를 이어갔다. 그는 국제기능올림픽 최상위 타이틀 후원사인 삼성전자를 대표해 이번 대회에서 그동안 갈고 닦은 기술을 선보이며 ‘기술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인 선수단을 격려하고 수상자에게 메달도 직접 수여했다.

이 회장은 “기술 인력 후원은 회사가 잘 되는 것뿐만 아니라 국민이 모두 잘 살도록 질 좋은 일자리를 만들고 젊은 세대를 체계적으로 육성해 사회에 나올 기회를 주는 것”이라며 ‘기술인재 양성’의 사회, 경제적 효과를 주변에 적극 알리기도 했다.

최근 이 회장의 메시지는 물론 구체적인 삼성의 사회공헌(CSR) 사업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동행’이다.

이 회장은 취임 후 첫 공식 현장 행보로 광주에 위치한 협력회사를 선택했다. 이 회장은 지난달 28일, 삼성전자와 28년간 함께한 협력회사 ‘디케이’ 생산현장을 직접 둘러보고 “협력회사가 잘 돼야 우리 회사도 잘 된다”며 상생을 강조했다.

이 회장은 2019년 삼성전자 창립 50주년을 맞아 임직원들에게 보낸 메시지에서도 “같이 나누고 함께 성장하는 것이 세계 최고를 향한 길”이라며 ‘사회와의 동행’을 언급한 바 있다.

작지만 우리 사회에 기여하는 중소기업은 물론 협력업체, 그리고 산업의 기반을 이루는 기초과학 분야에 이르기까지 모두 함께 미래로 나아가는 ‘동행’이야말로 삼성이 새로운 미래시장을 개척하고 초격차를 확대하는 근원적인 힘이라는 게 이 회장의 판단이다.

‘기술’ 강조
‘동행’ 핵심 

이 회장의 ‘동행’ 철학은 삼성의 경영에 잘 녹아있다. 삼성전자는 ▲청년들에게 소프트웨어 교육을 제공해 취업 기회 확대(SSAFY) ▲사내 벤처 프로그램인 C랩을 외부로 확대해 청년 창업 지원 ▲중소기업의 스마트공장 전환 지원 등의 CSR 사업을 추진 중이다.


<ktikt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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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진법사 ‘5000만원 관봉권’ 미스터리

건진법사 ‘5000만원 관봉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건진법사 전성배씨의 ‘5000만원 관봉권’ 출처를 두고 소문이 무성하다. 검찰은 대통령실 특활비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전씨는 그저 ‘기도비’라고 진술 중이다. 검찰이 김건희씨까지 수사 대상에 올린 점을 보면 전씨의 진술은 허위일 가능성이 크다. 전씨가 전방위 로비를 벌인 사실까지 드러나면서 김씨의 소환조사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윤석열 일가를 향한 수사는 그간 서울중앙지검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건진법사 전성배씨의 로비 사건은 중앙지검이 아닌 ‘여의도 저승사자’로 불리는 서울남부지검 가상자산범죄합동수사부(부장검사 박건욱)가 포문을 열었다. 전씨는 통일교와 캄보디아 사업 및 정·재계를 가리지 않고 돈을 받았다. 윤석열 일가와의 친분을 과시하면서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다. 수상한 증거들 남부지검은 전씨를 수사하기 이전에 한 가상자산 사기 사건을 수사 중이었다. 최근 정식 부서로 신설된 가상자산범죄합동수사부는 지난해 7월 ‘퀸비코인(QBZ)’ 관계자 이모씨 외 3명을 사기 등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이들은 사업 진행 능력이 없음에도 허위 자료를 제출해 스캠 코인을 상장했다. 1만명이 넘는 투자자로부터 가로챈 금액은 300억원에 육박한다. 남부지검은 수사 과정서 퀸비코인 관계자 이씨가 2018년 1월 자유한국당 경북 영천시장 후보 경선에 나선 정모씨를 전씨와 연결한 정황 및, 이들 간 수상한 자금 흐름을 포착했다. 취재를 종합하면 당시 정씨는 전씨 법당을 찾아 1억원을 건넸다. 이 사실을 파악한 남부지검은 지난해 12월 전씨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체포하고 그의 법당과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두 달여 전에는 경기 성남의 카카오 판교 서버를 압수수색해 전씨의 카카오톡 기록까지 확보했다. 전씨는 2022년 제20대 대통령선거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 대선캠프 네트워크본부서 상임고문으로 활동했다. 그의 처남으로 알려진 ‘찰리’ 김모씨도 전씨와 같이 활동했다. 전씨는 김건희씨가 운영하던 전시기획회사 코바나컨텐츠의 고문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전씨의 딸도 잠깐이지만 코바나컨텐츠서 근무한 이력이 있다. 남부지검은 전씨가 윤 전 대통령과 김씨와의 친분을 이용해 로비 행위를 벌였다고 보고 수사를 시작했다. 실제 전씨가 로비 창구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남부지검은 지난달 30일 윤 전 대통령 사저인 아크로비스타를 압수수색했다. 압수수색 영장에는 “피의자들이 2022년 4월부터 8월 사이 공직자의 직무와 관련해 공직자의 배우자에게 선물을 제공했다”고 적시됐다. 청탁 사유로 ▲캄보디아 메콩강 부지 개발 ODA(공적개발원조) 사업 ▲YTN 인수 ▲유엔 제5사무국 한국 유치 ▲교육부 장관 통일교 행사 참석 ▲대통령 취임식 초청 등이 담겼다. 이 압수수색은 전씨를 통해 통일교 세계본부장 출신이자 2인자였던 윤모씨가 수천만원 상당의 그라프(Graff) 다이아몬드 목걸이, 샤넬 가방, 천수삼 농축차 등을 김씨에게 전달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절차였다. 남부지검은 윤씨가 지난 2022년 7월 전씨에게 ‘김 여사가 물건(천수삼) 잘 받았다더라, 건강이 좋아지셨다고 한다’고 보낸 문자메시지 내용을 확보하기도 했다. ‘한국은행’ 찍혔는데…통상 정부 예산 활용 금융권 “개인이 갖고 있을 수 없다” 일축 검찰이 지난 3일 전씨를 청탁금지법 위반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한 만큼 김씨에 대한 소환조사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 남부지검 수사팀 내부에서는 김씨를 대선 직전에 소환조사해 실마리를 풀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전씨는 “목걸이와 명품백을 잃어버렸다. (김 여사가 잘 받았다는 문자는) 거짓 문자”라고 부인하는 상황이다. 김씨 측도 “전씨로부터 금품을 받은 사실 자체가 없다”는 입장이다. 우선 검찰은 윤씨가 전씨에게 윤석열정부의 캄보디아 ODA 사업 추진을 청탁했는지 여부를 들여다보는 중이다. 검찰은 윤씨가 “윤 전 대통령과 독대했고 국가 단위 ODA 연대 프로젝트에 동의했다”는 취지의 말을 한 것을 확인했다. 검찰은 지난 2022년 3월 윤씨가 당선인 신분이었던 윤 전 대통령과 김씨를 인수위서 만난 뒤 캄보디아 사업을 추진하려 했다고 보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통일교는 같은 해 메콩강 핵심 부지에 ‘아시아태평양유니언 본부’를 건립하는 사업을 추진했다. 윤씨는 훈센(Hun Sen) 당시 캄보디아 총리와도 이 사업을 논의했지만 자금난으로 추진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윤씨는 2022년 5월 한 통일교 행사에서 “3월 22일 대통령을 만나 1시간 독대를 하면서 이 나라가 가야 할 방향을 이야기하고 암묵적 동의를 구한 게 있다”고 말했다. 이어 “ODA는 비영리기구(NGO)가 펀딩 가능하고 국가가 지원한다”고 말한 바 있다. 검찰은 이 직후인 2022년 6월 기획재정부가 제4차 한-캄보디아 ODA 통합 정책협의서 대(對)캄보디아 대외경제협력기금(EDCF) 차관 지원 한도액을 기존 7억달러에서 15억달러로 늘리는 기본 약정을 체결한 점을 주목했다. 한도액이 늘면 중기후보사업 승인 절차가 간소화돼 ODA 사업 수주가 쉬워지기 때문이다. 비슷한 시기에 김씨가 나토 순방 당시 착용했던 6000만원대 반클리프 앤 아펠 목걸이와 관련해 재산 신고 누락 논란이 불거지자, 윤씨는 전씨에게 “김 여사에게 빌리지 말고 하고 다니라”며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건넸다. 검찰은 지금까지 김씨 명의 휴대전화 3대를 확보했다. 이 중 1대는 김씨가 지난달 11일 서울 한남동 관저서 나오면서 보안 비화폰(안보폰)을 반납한 뒤 개통한 휴대전화다. 나머지 2대는 옛 코바나컨텐츠 사무실서 사용하던 휴대전화로, 사실상 공기계로 알려졌다. 자택 압색 그 이후… 검찰은 100여개에 달하는 압수 대상에 윤씨 선물 명목으로 전씨에게 제공했다는 그라프 다이아몬드 목걸이와 샤넬 가방, 인삼주 등도 적시했지만 확보하지 못했다. 법조계에서는 윤씨의 청탁이 성사됐거나 윤씨와의 직무 관련성 등이 입증된다면 김씨가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받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부장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 와의 전화 통화에서 “카톡 기록과 전달됐거나 전달되려 했던 물품들은 이미 수사팀이 확보했으니 김씨가 대면 조사를 피하긴 힘들다”며 “남부지검서도 성역 없이 수사 의지가 강하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현행법상 공직자의 배우자를 청탁금지법으로 처벌할 수 없으니 직무 관련성 입증이 관건”이라며 “입증만 된다면 알선수재 혐의 적용이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가장 중요한 건 전씨의 자택을 압수수색할 당시 발견된 5000만원 관봉권이다. 앞서 검찰은 지난해 12월 서울 서초구 전씨의 집을 압수수색하면서 5만원권 3300매(1억6500만원)를 확보했는데, 이 중 5000만원은 비닐 포장이 벗겨지지 않은 상태였다. 검찰은 전씨에게 이 관봉권의 출처에 대해 집중적으로 추궁했다. 관봉권은 ‘제조권’과 ‘사용권’ 두 종류로 나뉜다. 제조권은 한국조폐공사에서 한은이 받아온 신권으로 돈다발에 십자 형태의 띠를 두르고 비닐로 싸 압축한 형태다. 사용권은 한은이 시중은행서 회수한 돈을 검수해 낡은 돈은 폐기하고 사용하기 적합한 돈만 골라낸 것이다. 발견된 돈다발 김씨와 전씨 사건서 등장하는 관봉권은 모두 사용권이다. 전씨 자택서 발견된 5000만원 관봉권 돈다발은 한은이 적힌 비닐로 포장돼있었고, 비닐엔 기기 번호와 담당·책임자 일련번호도 적혀 있었다. 그러나 김씨 측이 옷값을 치를 때 썼던 관봉권은 비닐 없이 띠지만 둘러져 있는 돈다발 형태였다. 관봉권은 국가 예산으로 편성되는 대통령실(청와대)과 검찰, 국가정보원 등 사정기관의 수사나 조사에 필요한 특수활동비로 쓰이기도 한다. 과거 정부에서는 이 특활비가 로비 자금으로 악용됐다. 한은은 전국에 16개 지역 본부를 두고 금융기관에 관봉권을 보낸다. 서울엔 남대문 본점 및 강남본부 등 두 곳이 있다. 이 중 강남본부가 대통령실과 사정기관 등에 예산 조달을 담당해 왔다. 다만 민간인의 집에서 관봉권이 발견될 수 없다는 게 금융권의 시각이다. 대개 일반 정부 예산은 관봉권 형태가 아닌 계좌이체 등을 통해 전달된다. 금융권 관계자는 “수천만원 상당의 관봉권이 묶인 채로 남아 있는 건 영수증 내역도 남지 않는 특활비”라며 “통상 정보와 사정기관이 ‘돈의 주인’”이라고 말했다. 실제 검찰도 전씨의 자택서 발견된 5000만원 관봉권이 강남본부서 나왔다고 보고 있다. 이 관봉권에는 ‘2022년 5월13일’이라는 날짜가 기재돼있다. 윤 전 대통령 취임일 사흘 뒤다. 전씨는 검찰 조사에서 주로 돈은 ‘기도비’ 명목으로 받아왔지만 관봉권은 정확하게 누구에게 받은 돈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한은 방문 이후 전씨의 집에서 발견된 관봉권에 적힌 ▲기기번호 ▲담당자 ▲책임자 ▲발권국 항목 등의 의미를 확인했다. 기기번호의 뜻은 정사기(검수기) 기기번호와 기기호수를 뜻하고, 발권국 정보에는 정사 업무를 담당하는 발권국 화폐관리1팀을 의미하는 숫자인 것으로 전해졌다. MB 때 국정원 ‘입막음·로비’ 용도로 사용 검·정보 “이번엔 아니다”…남은 건 용산 포장지에 적힌 ‘2022년 5월13일 오후 2시5분59초’는 한은이 검수를 마친 시각이라고 한다. 다만, 한은은 개별 사용권이 어느 시점에 어느 금융기관으로 지급됐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고 한다. 금융기관서 화폐를 요청하는 경우 ▲지급한 금융기관명 ▲지급일자 ▲권종 ▲금액 등만 기록할 뿐, 어떤 사용권 묶음을 제공했는지는 별도 기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 관봉권이 지난 대선 기간 전씨가 운영했던 윤 전 대통령 선거캠프 운영비일 수 있다고 보고 금융 흐름을 추적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올해 초 당시 네트워크 본부장으로 있던 오을섭씨를 소환조사하면서 양재동 캠프의 운영비 출처를 물어본 것으로 전해졌다. 법조계에서는 해당 관봉권 출처가 불분명한 만큼 특활비일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금융범죄 수사 경험이 풍부한 한 변호사는 “출처를 확인하기 어려운 한은 뭉칫돈은 대부분 특활비”라며 “특활비라면 한은 검수 이후 수천만원 상당의 돈이 필요한 곳은 보통 사정기관이다. 일반적으로 정부 예산은 뭉칫돈으로 전달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결국 사정기관 담당자들을 불러 확인해봐야 하는데 정보기관에서는 특활비 활용 자체가 보안으로 분류돼 확인도 어려울 것이다. 출처 규명에 꽤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분석했다. 와 접촉한 복수의 사정기관 관계자들은 ‘국정원 특활비’는 아니라고 단언했다. 앞서 이명박정부 청와대는 국정원 특활비를 상납받은 바 있다. 지난 2011년 장진수 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은 국정원의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을 폭로했는데, 당시 국정원은 관봉 형태의 특활비 5000만원을 장 전 주무관에 ‘입막음비’로 전달했다. 이 같은 내용은 검찰 수사와 공판 등을 통해 청와대서 국정원 특활비를 받아 장 전 주무관에 전달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불분명한 출처 어디? 한 정보기관 관계자는 “과거 국정원 특활비와 흡사해 보이지만 2022년 이후의 특활비 활용이나 대통령실을 통해 쓰인 ‘국정원 특활비’ 등에 대해서 들여다봤을 때 불법적이거나 위법하게 쓰인 사실이 없다. 한 개인에게 갈 일은 더더욱 없다”고 못 박았다. 검찰 관계자도 “남부지검서 수사 중인 사안에 대해 자세히 말할 순 없지만 검찰 특활비는 아니다. 남부지검 수사팀도 검찰과는 상관없는 관봉권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