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권의 <대통령의 뒷모습>은 실화 기반의 시사 에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임 시절을 다뤘다. 서울 해방촌 무지개 하숙집에 사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당시의 기억이 생생히 떠오른다. 작가는 무명작가·사이비 교주·모창가수·탈북민 등 우리 사회 낯선 일원의 입을 통해 과거 정권을 비판하고, 그 안에 현 정권의 모습까지 투영한다.
그런 느긋한 시간이면 하숙집의 괴짜들이 하나둘 등장한다. 이 세상에 그 누군들 독특하지 않으랴만, 괴짜는 독특하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지 않는 존재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가 이 세상에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과 같다고 강변하기도 한다. 하기사 요즘엔 평범인과 괴짜의 경계선이 모호해져 순식간에 뒤바뀌기도 하니까. 마음속에 숨겨둔 채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시대이므로… 그런 만큼 누굴 특별히 골라 소개하지 않고 그저 흐름에 맡기려 한다.
가황의 꿈
2층으로부터 모창가수 지망생이 트로트 리듬에 맞춰 계단을 성큼성큼 걸어 내려오며 한 곡조 뽑기 시작했다.
‘못 찾겠다 꾀꼬리 꾀꼬리
나는야 오늘도 술래~
어두워져 가는 골목에 서면
어린 시절 술래잡기 생각이 날 거야
모두가 숨어 버려 서성거리다
무서운 생각에 나는 그만 울어 버렸지
못 찾겠다 꾀꼬리 꾀꼬리
나는야 언제나 술래~’
원본(original) 조용필과 달리 꽤 잘생기고 허우대도 훤칠한데 목소리만큼은 영 조잡스럽다.
아니,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목청 자체는 남 못잖건만 억지로 조용필을 모방하려다 보니 우스꽝스러워지는 것이었다.
하숙집의 청중들이 비웃든 눈살을 찌푸리든 말든 본인은 점점 더 희희낙락 기고만장해져 펄떡거렸다.
30대 초반보다 2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데 싱긋벙긋 웃을 때 드러나는 이가 모두 금니라 퍽 의아스러웠다.
남들의 시선을 은근히 무시하며 그는 보란 듯 미소를 지어댔다.
혹시 전등 빛을 받아 번쩍번쩍 빛나는 그 꼴을 무대 위에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자신의 분신(또는 상징)으로 생각하는지도 몰랐다.
연예인 지망생들은 대개 자기 현시욕이 강해 잘났든 못났든 일단 제 개성미를 추구하다가 마지못해 현실 앞에 항복하곤 자신(아집 아견)을 찢어 버리기도 한다.
평범한 사람이 되기보단 비극의 주인공이 되고픈 욕망…. 그런데 조필필씨는 이미 3년 전부터 가황 조용필의 이미테이션이 되기로 작심했단다.
조용필의 ‘명작 가요’에 매료돼 노래를 시작한 이상 일로매진하기로 작정했다는 얘기였다.
뭔지 가상스럽다고 해야 할까, 혹은 어리석다고 해야 할까?
잘 모르겠다. 헌데 그의 가창을 듣다 보면 어딘지 조용필과 비슷하기보다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모창 가수 조영필 같은 느낌이 더 났다.
이를테면 조용필 모방에 성공한 조영필을 모방하는 꼴이랄까.
‘일로매진’이란 말은 낡은 듯 습관적으로 많이 쓰지만, 특히 사이비 정치가와 연예인들이 쉽게 내뱉는 소리다.
뜻을 무시하고 진실을 왜곡하는 개 목청들의 소리… 그들의 입을 거치고 나면 현실은 허황찬란한 지상천국으로 변화된다.
자기네 이익은 다 챙기면서 황당무계한 개소릴 지껄이고도 나라 꼴이 어찌 되든 면책 특권을 받는 자들.
하지만 그들은 욕할 필욘 없다.
신이 인간과 짐승 벌레 등 만유를 창조했다지만, 개 같은 그 인간들을 만든 건 바로 우리, 평범한 일반 국민들이다.
법적으론 당당히 문책할 권리를 지녔으면서 스스로 포기해 버린 사람들이 아닌가?
즉, 모창가수와 엉터리 국회의원은 대중 속에 숨어 히득거리는 우리들 자신의 초상이 아닌지 궁금해진다.
아무튼 모창가수는 누가 비웃어도 전혀 수치스러워하지 않았다.
외려 더 크고 능글맞게스리 팝송 마이웨이를 불러댔다.
나의 길인지 조영필의 길인지…
그런데도 모방자 조영필을 결코 좋아하진 않았다.
자신은 평범한 모방꾼이 아니라 재창조하는 예술가라며…
이미테이션 가수 조필필씨의 일상
미국·일본 모방하는 한국의 현실
가황님을 직접 뵙고 그분 앞에서 누가 더 진짜인지 참된 모창 예술가인지 판정받고 싶단 얘길 주절거렸다.
술에 곤드레만드레 취해 들어오는 날이면 자기가 모방하는 모방 전문가에 대해 불평 불만과 시기 질투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제 능력 부족을 돌아보고 노력하기보다는 안고수비증에 걸린 망나니처럼 굴었다.
그런데 별 큰 문제거린 생겨나지 않았다. 설령 어떤 위험 상황일지언정 가황 조용필의 노래가 들려오면 그는 곧장 무릎 꿇고 엎드려 경배하거나 벌떡 일어나 두 손을 쳐든 채 열광 환호하느라 제정신이 사라지기 때문이었다.
마치 신흥 사이비 종교에 빠져 교주께 종순하는 꼴이었달까(정작 ‘가황 교주’ 조용필은 인간 보편의 실존과 자유를 노래하건만…).
여기서 우리는 한국 사회의 현실상에 대해 잠시나마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연예계는 바로 이 시대의 정치 경제 종교 철학 사상 언론 스포츠 교육 문화뿐 아니라 우리 사회 최고의 지식인이라 자처하는 분들의 전당과도 이어지기 때문이다.
모두가 다 모방이다.
아니, 모방의 모방이다.
일본과 미국에 대한 모방, 그들의 모든 것에 대한 모방이다.
보따리 장사치들.
장점 단점도 가리지 않은 채 정녕 일로매진이다.
물론 그렇잖은 사람도 있고, 묵묵히 기술 입국을 지향하는 분들, 사리사욕을 씻어 버리곤 공공을 위해 실천하는 현대적 지사(선비)도 많지만 중과부적이다.
입가에 핏방울을 흘리며 마구 달려드는 극우파 좀비들을 욕하진 말자.
그들 또한 이 나라와 자기가 좋아하는 사회를 지키기 위해 분투하는 중이니까.
다만 이기적인 욕망을 감춘 위선과 허위의식, 현재를 직시하지도 미래를 지향하지도 않은 채 한국 사회를 과거의 허상 속으로 끌고 들어가려는 무지몽매, 히틀러 같은 독재 모리배들에게 세뇌당해 미친 좀비 로봇처럼 광란광분하는 꼴은 역겹다.
수구 꼴통과 급진 종북 세력들은 서로 반면교사 삼아 진실한 보수와 진보로 재탄생해야지 않겠는가?
무슨 짓을 해도 좋다!
제발 사리사욕을 버리고 조금씩만 겸허해진다면 아마 당장 친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미국과 일본 혹은 러시아와 중국을 등에 엎은 채 개 같은 조상 놈들처럼 당파싸움 벌이지 말고 부디 한반도의 운명을 생각하라.
그거야말로 진정 ‘이기심’과 ‘사리사욕’을 배불리 채우고도 당신의 자녀와 손자들까지 영화롭게 살리는 길이리라.
다시 모창가수에게로 돌아가 보자.
가황 조용필의 노래가 꺼져 버리면 사내는 약 기운 떨어진 마약 중독자처럼 멍해 있다가 불현듯 신세타령을 늘어놓기도 했다.
“흥, 그래! 내가 가짜 짜가인 건 사실이야. 일류급은 창조하고 이류급은 보편화시키고 삼류급은 타락시켜 버린다는 얘기도 있지만… 흥, 이 세상에 모방 아닌 게 어디 있냔 말야. 일류라고 자칭하는 분님들도 사실을 캐 보면 미국 일본 프랑스 등의 특일류급을 좃빠지게 배껴 먹으면서… 누굴 욕하고 지랄이야! 흐음, 내가 가황님의 명곡을 모창하고 있지만… 사실상 모든 게 완전무결하진 않거든. 신께도 흠결은 있다잖아? 가황님의 노래를 모방만 하는 게 아니라 결점을 바로잡아 승화시키는 것도 예술이 아닐까 고뇌하고 있건만… 원숭이 흉내라고 비웃을 뿐 알아 주는 사람은 적어. 재미있다고 꺄르륵 캭캭 웃어대면서도… 실상 그들 또한 모방을 제대로 못해 안달하는 주제에… .”
가짜는 가짜
“노래방이나 가라오케에 가면, 자동기계가 뱉어내는 사이버 곡조에 자기 목소릴 맞추려 안달복달하는 꼴이라니… 하하핫! 그러면서도 아마추어의 순수성을 잃곤, 개중엔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자만심 가득 찬 음계로 짓밟아 올라 인기 가수와 어깨동무한 양 공상에 빠져 우쭐거리며, 나 같은 순수 순진한 모창 프로를 무시하고 침 뱉는 거야.”
<다음 호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