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10년 전쟁’ 정지훈 빌딩 보증금 분쟁 풀스토리

있는 사람이 더 한다고…

[일요시사 취재팀] 양동주·김희구·강운지 기자 = 정지훈(활동명 비)이 소송에 휘말렸다. 지긋지긋한 악연에서 비롯된 사안이 10년 넘게 발목을 잡는 모양새다. 깊어진 갈등의 골을 감안하면 타협점을 찾기란 좀처럼 쉽지 않아 보인다.

홍콩 교포인 크리스틴 박(한국명 박영숙)은 정·재계 인사가 참석하는 연회를 기획하고, 고급 주택 인테리어 자문 역할을 맡으며 홍콩 상류층 사이에서 유명세를 떨쳤던 인물이다. 한때 홍콩 상류층 여성들이 가장 닮고 싶은 사람으로 꼽힐 정도로 그의 감각은 뛰어났다.

싼 게
비지떡?

홍콩에서의 성공에 고무된 박씨는 2000년대 중반 국내에 화랑을 열기로 마음먹고 장소를 물색했다. 마침 서울시 강남구 청담동에 위치한 빌딩이 눈에 들어왔고, 박씨는 2019년 8월 해당 빌딩 1층에 대한 임대차계약을 체결했다.

일단 조건 자체는 매우 파격적이었다. 기존 임차인이 매월 770만원을 임대인에게 지급한 반면 박씨는 월 400만원대 차임을 지불하기로 했다. 계약기간은 2009년 8월19일부터 2011년 3월31일까지 약 20개월이었고, 계약 종료 1개월 전까지 사전 통보가 없을 시 1개월씩 계약이 자동 연장되는 조건이었다.

이는 빌딩의 소유주였던 가수 겸 배우인 정지훈씨가 2011년 3월31일 이후 해당 빌딩을 재건축하고자 했던 계획을 고려한 조항이었다. 정씨는 2008년 약 168억원에 빌딩을 사들인 바 있다.


화랑의 출발은 순조로웠다. 2개월에 걸친 단장을 마치고 모습을 드러낸 화랑은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던 고가의 그림을 비롯한 각종 예술작품이 화랑 내부를 수놓았고, 박씨에게는 ‘홍콩에 이어 국내에서도 성공한 라이프 스타일리스트’라는 수식어가 뒤따랐다.

그러나 순풍은 오래가지 않았다. 개관 후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부터 화장실 변기에서 오물이 역류하는 현상이 연거푸 발생한 데다, 2010년 7월 빌딩 2층에서 촉발된 누수로 화랑 소장품 상당수가 훼손되는 일이 벌어졌다. 박씨의 화랑은 운영상 차질이 불가피했다.

이렇게 되자 박씨는 정씨에게 피해 보상을 요구하며 2010년 9월부터 차임 지급을 거부했다. 정씨 역시 그대로 두고 보지 않았다. 3개월 이상 차임을 연체했다는 이유를 내세워 2011년 1월 박씨를 상대로 명도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11개월에 걸친 법정 공방 끝에 웃은 건 정씨였다. 2011년 12월 서울중앙지법 민사35부(한영환 부장판사)는 “박씨는 정씨에게 보증금을 반환하고 건물을 인도하라”고 판결했다. 누수로 인해 보관 중이던 고가의 미술품이 훼손되는 등 피해를 입었다며 박씨가 차임 지불과 퇴거를 거부한 채 제기한 반소는 기각했다.

해당 판결은 2심과 3심에서도 그대로 유지됐고, 2012년 9월20일자로 확정되기에 이르렀다.

유지·보수 의무를 임차인이 부담하기로 한 계약 내용은 재판부가 정씨의 손을 들어 준 결정적 사유로 작용했다. 임대차계약서에는 “영업활동상 필요한 ▲유지·보수비 ▲전기료 ▲상·하수도비 등 제공과금과 영업행위로 발생되는 민·형사상 일체의 책임은 임차인이 부담한다”는 조항이 명시돼있었다.

명도소송에서 촉발된 양측의 갈등은 민사를 넘어 형사 건으로 이어졌다. 2015년 10월 정씨는 ▲명도소송 당시 사문서 위조 주장(무고) ▲허위사실 직시(명예훼손) ▲빌딩에 설치된 차단막 무단 절단(재물손괴) 등을 이유로 박씨를 형사고소했다.


그 결과 박씨는 1심에서 집행유예 2년, 2심에서는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아 법정 구속됐고, 그렇게 모든 사건이 일단락되는 듯 보였다.

끝난 듯
안 끝난다

그러나 박씨는 멈추지 않았다. 정씨의 승리로 끝맺음한 명도소송이 이번에도 또 다른 잡음의 진원지 역할을 했다. 10년 전 결론 난 사건이 생각지 못한 또 다른 소송으로 연결된 형국이다.

취재 결과 박씨는 지난해 6월 정씨를 상대로 ‘임대차보증금반환소송(원고소가 1억원)’을 제기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4월 첫 변론이 열렸으며, 최근 박씨의 변호사 선임을 계기로 본격적인 법정 공방이 예고된 모양새다.

박씨는 명도소송에 대한 재판부의 선고를 정씨가 따르지 않았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2011년 12월 재판부가 정씨의 손을 들어주면서 “박씨에게 받은 임대차보증금 1억원 중 밀린 임대료를 제한 나머지 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는데, 10년이 지나도록 정씨가 보증금을 반환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명도소송에 관해 재판부는 박씨에게 “2009년 12월1일부터 2010년 8월31일까지는 월 40만원(부가세), 그 다음날부터 건물의 인도 완료일까지는 월 440만원(월세+부가세)의 각 비율로 계산한 돈에서 1억원을 공제한 나머지 돈을 지급하라”고 결론 내린 바 있다. 

화근이 된 갤러리 오픈
끝없이 이어지는 줄다리기

재판부가 인도 완료일을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관건이다.

계약서에 명시된 계약기간에 근거해 금액을 산정하면 정씨가 박씨에게 반환해야 할 보증금은 6120만원이다. 보금증 1억원 가운데 박씨가 차임에 대한 견해 차이로 9개월간 미지급했던 부가세 360만원과 2010년 9월1일부터 계약서상에 명시된 계약만료일(2011년 3월31일)까지 매달 440만원씩 7개월간 지급해야 했던 3520만원을 제외한 금액이다.

만약 3개월 이상 박씨가 차임 연체를 이유로 정씨가 계약해지 의사를 표시한 시기(2011년 1월31일)를 인도 완료일이라고 규정하면, 정씨가 반환해야 할 보증금은 7000만원으로 불어난다. 여기에 정씨가 10년이 넘도록 반환 결정을 불이행한 사실이 반영될 시 금액은 더 커질 수 있다.

박씨는 “당시 재판부가 분명히 보증금을 돌려주라고 판결했음에도, 지금껏 정씨 측은 재판부의 결정을 무시하는 태도로 일관해왔다”며 “이는 상대적 약자인 본인을 곤경에 빠뜨리기 위한 처사임이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반면 정씨 측은 반환할 보증금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가 계약만료일을 한참 넘긴 2012년 6월13일이 돼서야 해당 빌딩에서 물품을 뺐다는 게 기본 골자다. 즉, 이 시기를 인도 완료일이라고 해석했을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실제로 정씨의 아버지이자 대리인인 A씨는 정씨가 무고·명예훼손·재물손괴 혐의로 박씨를 형사고소한 사건에 2016년 4월20일 증인으로 참석해 “보증금은 임대료 미납 부분과 부가세 미납 부분으로 이미 소진된 상태”라고 밝히기도 했다.

꺼지지 않는
갈등의 불씨

흥미로운 점은 보증금 반환 불이행에서 시작된 불씨가 정씨 측의 박씨에 대한 폭행 논란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이다. 향후 박씨가 문제제기에 나설 경우 진위 여부에 따라 해당 사안이 생각지 못한 갈등의 씨앗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앞서 명도소송에서 패소한 박씨는 항소가 기각되자, 항소 기각 판결에 대해 상고하면서 강제집행정지 신청을 했다. 서울고등법원은 2012년 6월7일 피고인이 5280만원을 공탁하는 조건으로 강제집행정지를 결정했지만, 이후 박씨가 공탁금을 내지 못하자 정씨의 위임에 따라 집행관이 2012년 6월13일 박씨의 점유를 해제하는 수순을 밟았다.

그러나 박씨는 강제집행 절차는 보증금 반환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벌어진 불법적인 강제퇴거라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급기야 2014년 7월31일 지인들과 함께 빌딩 내부에 들어섰고, 곧바로 양측은 충돌했다. 박씨는 이 과정에서 정씨 측에게 일방적으로 폭행당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박씨 측에서 폭행을 주도했다고 지목한 사람이 바로 A씨다. A씨는 박씨가 임대차계약을 맺을 당시 정씨를 대신해 계약을 진행하는 등 사실상 해당 빌딩과 관련한 사무를 책임지다시피 해왔다. 빌딩 관리를 소유주 본인이 아닌, 아버지가 직접 해왔다던 정씨의 수차례에 걸친 법정 진술과도 일맥상통한다.


박씨와 동행했던 강모씨와 김모씨 역시 현장에서 박씨가 A씨로부터 직접적인 폭행을 당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특히 김씨의 경우 정씨가 박씨를 형사고소한 사건에 2016년 6월20일 증인으로 출석해 “박씨가 폭행을 당해 굉장히 아픈 상태였고, 응급차를 불러 증인이 함께 병원에 바래다 준 사실이 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A씨는 박씨에 대한 형사소송 건에 증인으로 참석해 폭행 사실을 부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2016년 4월20일 형사소송 건에 대한 증인으로 출석해 “(박씨)손을 비튼 적이 없다”고 진술했다. 

요원한
타협점

한편 정씨는 해당 빌딩을 지난해 중순경 495억원에 매각한 상태다. 매입가격과 매각가격만 단순 비교하면 327억원의 차익이 예상된다. 정씨는 건물을 매입한 후 오랜 기간 보유해오다가 2017년 9월 신축 작업에 돌입해 2019년 하반기에 공사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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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억 오세훈 한강버스, 아라호 흑역사 오버랩

1000억 오세훈 한강버스, 아라호 흑역사 오버랩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시가 돛을 올린 한강버스가 고장 끝에 결국 멈췄다. 과거 ‘아라호 사업’도 재조명되고 있다. 아라호 사업은 2010년대 초반 경인 아라뱃길을 중심으로 관광 활성화와 교통난 해소를 위해 인천시와 공동으로 수백억원을 들여 기획한 수상 교통 프로젝트였다. 아라호는 시민들의 외면과 운영 적자로 인해 자취를 감췄다. ‘반면교사’로 삼았던 걸까? 서울시는 한강을 따라 운행되는 수상 교통수단으로, 서울 전역을 연결하는 새로운 교통망을 구축하겠다는 계획으로 지난 18일 한강버스 운항을 시작했다. 여의도, 잠실, 뚝섬 등 주요 한강변 거점과 지하철역을 연계해 시민과 관광객 모두가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는 게 핵심이다. 관광이냐 출퇴근이냐 서울시는 한강버스를 통해 관광 교통수단을 넘어 서울을 ‘한강 중심의 스마트 모빌리티 도시’를 만들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그러나 정식 운항을 시작한 지 열흘 만에 운항이 중단됐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9일 오전 시청에서 열린 주택 공급 대책 관련 브리핑 도중 “한강버스 관련 입장을 밝히지 않을 수 없다”며 “시민 여러분께 송구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열흘 정도 운행 통해 기계적·전기적 결함이 몇 번 발생하다 보니 시민들 사이에서 약간 불안감 생긴 것도 사실”이라며 “이번 기회에 (운항을) 중단하고 충분히 안정화시킬 수 있다면 그게 바람직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시는 이날부터 10월 말까지 한강버스 시민 탑승을 중단하고 성능 고도화와 안정화를 위한 무승객 시범 운항을 한다. 시는 국내 최초로 한강에 친환경 선박 한강버스를 도입해 지난 18일 정식 운항을 시작했다. 하지만 지난 22일에는 잠실행 한강버스가 운항 중 방향타 고장이 발생했고, 같은 날 마곡행도 운항 준비 중 전기 계통에 문제가 생겨 결항했다. 26일에도 운항 중 방향타 고장이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운항 중단과 재개가 반복되자 운항 중단을 결정했다. 과거 아라호의 값비싼 교훈을 남겼지만, 실패 요인을 분석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해석되는 결과다. 한강버스 역시 또 하나의 혈세 낭비 사례가 될 수 있다. 서울시 한 관계자는 “아라호 사례를 철저히 분석해 이번에는 실질적인 시민 편익을 제공하고 지속 가능한 운영 모델을 구축하겠다”고 강조했다. 한강버스가 서울의 새로운 교통 패러다임으로 자릴 잡을지, 아라호의 전철을 밟을지는 향후 몇 년간의 운영 성과에 달려 있다. 서울시 아라호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첫 임기 때인 2010년 서울시가 예산 112억원을 들여 만든 2층 유람선으로 지난 2009년 5월부터 1년5개월을 들여 건조됐다. 오 시장의 지시로 건조된 아라호는 시민들에게 저렴한 요금으로 공연과 한강특화공원 관람이 동시에 가능한 선상문화체험 기회를 제공한다는 영리 목적보다 공공문화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차원에서 민자 유치 대신 재정이 투입된 사업이었다. 당초 아라호를 한강에서 인천 앞바다까지 운항하는 관광 크루즈선으로 활용하려 했으나 여덟 차례 시범 운항과 21회 시험 운항만 했을 뿐 사실상 사업은 중단됐다. 제작 당시부터 경제적 타당성이 부족하다는 논란을 빚었던 아라호는 정식 취항도 해보지 못한 채 팔렸다. 실제 운행이 어려운 상황에서 보험료와 유지비 등 관리 비용에만 연간 1억원이 들어간다는 점도 매각을 선택하는 데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112억원 들여 29억원에 판 아라호 출항 나흘 만에 고장…오, 좌불안석 아라호가 정식 운항에 나서지 못했던 배경에는 서해뱃길 사업을 둘러싼 서울시와 시의회의 갈등도 있었다. 오 시장의 아라호 활용 계획에 당시 더불어민주당이 다수인 시의회가 이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지난 2011년 10월 고 박원순 전 시장이 취임 후 사업 타당성 문제로 매각을 결정하면서 오 시장의 한강 르네상스 사업이 백지화됐다. 결국 서울시는 아라호 매각을 결정한 후 지난 2013년 5월, 106억원의 예정 가격으로 매각 입찰에 나섰으나 응찰자가 없어 유찰됐다. 이후 2차 입찰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알만한 이들은 알겠지만, 선박 사업은 수요를 찾기 어려운 사업 중 하나다. 결국 서울시는 3차 매각 입찰에서 최초 예정 가격에서 10% 인하된 95억원으로 깎았지만 이마저도 입찰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후 같은 해 11월, 4차 매각에서 15% 인하된 90억원에 입찰을 시도했지만 응찰자가 없어 가격 인하의 효과는 전혀 없었다. 그러다 서울시는 지난 2016년 아라호를 매각하지 못하자 결국 임대 쪽으로 사업 방향을 틀었다. 아라호가 정식 운항도 못한 채 6년 넘게 여의도 한강공원 선착장에 방치되면서다. 서울시가 제시한 사업 기간은 연말까지 8개월이고 한 차례 1년간 계약을 연장할 수 있었다. 당시 최저 임대료는 2억6300만원이었다. 아라호는 임대 사업을 시작해 건조 6년 만에 빛을 봤지만, 운항이 종료되는 시점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한강의 애물단지로 전락했던 아라호는 지난 2016년 민간업체인 레츠고코리아가 임대사업권을 낙찰받아 3년간 운영하다가 2018년 이랜드그룹 계열사 이랜드크루즈로 사업권을 넘겨줬다. 이랜드크루즈가 사업권을 따낸 시점은 지난 2018년 3월이지만 실제 운영은 2019년 6월부터 시작됐다. 이전 사업자인 레츠고코리아가 서울시의 계약 위반을 주장하며 유람선과 시설물 반환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랜드크루즈는 1년간의 법정 공방 끝에 지난 2019년 6월부터 운영을 시작했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수익성 악화로 아라호의 임대 운영 사업을 1년 만에 접어야 했다. 애물단지 전락하나 이랜드크루즈는 임대계약 갱신청구권(1년)마저 포기했다. 코로나19 팬데믹 무렵부터는 주식회사 수가 임대사업권을 이어받았다. 이후 마지막으로 인더라인25가 지난해 6월부터 올해 5월까지 사업하는 조건으로 서울시와 지난 2022년 12월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1년 단기 임대계약이 종료된 이후에도 인더라인25가 철거하지 않아 서울시는 골머리를 앓았다. 아라호 운항은 멈췄지만, 선착장을 한 달째 무단 점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더라인25는 계약 연장을 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서울시는 인더라인25를 상대로 명도소송, 점유 이전 금지 가처분, 행정 가처분 등 소송을 진행하기도 했다. 아라호가 실패한 가장 큰 이유는 수요 예측 실패와 운영비 부담이었다. 당시 서울시는 아라호가 연간 수십만명의 승객을 유치할 수 있다고 예상했으나, 실제 이용객은 예측치의 30%에도 미치지 못했다. 또 노선 설계가 시민들의 일상적인 통근이나 이동과 잘 맞지 않았고, 요금 역시 육상 교통수단에 비해 비쌌다. 결과적으로 관광객 유치에도 한계가 있었고,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아라호는 철수될 수밖에 없었다. 아라호는 건조한 지 15년 만에 민간에 팔렸다. 지난 1월 서울시 한강 유람선 아라호는 5차례 입찰 끝에 약 28억5780만원에 팔려 민간업체에 인도됐다. 2013년부터 총 9번의 입찰을 시도한 결과 3분의 1 가격에 달하는 헐값에 팔린 셈이다. 당시 서울시에 따르면 아라호는 2024년 11월 말 공개입찰을 진행한 뒤 지난달 주식회사 마이랜드와 매각 계약을 체결했다. 길이 58m에 688톤 규모의 아라호는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과 서강대교 남단을 오갔다. 승객은 총 310명까지 태울 수 있다. 음악회, 공연, 결혼식, 영화 상영을 위한 시설도 보유했다. 선착장에는 편의점, 치킨집 등 부대시설도 있었다. 아라호는 건조 후 15년 만에 매각되기까지 여러 우여곡절을 겪었다. 후임 고 박원순 시장이 2012년 사업을 백지화하면서 5년간 방치됐다. 2013년 5월 처음으로 공개입찰에 넘겨졌다. 시는 같은 해에만 총 4번의 입찰을 추진했으나, 입찰자가 없어 매번 무산됐다. 실패했지만 이번엔 달라? 서울시는 수의계약 방식으로도 매각을 시도했으나, 매각사의 자금 동원 문제로 불발됐다. 이에 시는 2016년 아라호를 매각하는 대신 민간 위탁하는 방향을 택했고, 2017년부터 민간 위탁을 통해 운영했다. 하지만 임대계약이 만료되면서 지난해 5월 말부터 운항이 중단됐다. 그러자 시는 다시 매각을 시도했다. 지난해 10월부터 총 5차례의 입찰을 진행했고, 같은 해 11월 말 입찰자가 나와 12월 매각 계약을 맺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그간 아라호의 위탁 운영은 선박 운항이 아닌 선착장 내 치킨집 등 부대시설 위주로 돌아갔다”며 “자연스레 선박도 노후화되고, 전반적으로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다시 매각을 추진하게 됐다”고 말했다. 법적 분쟁으로 얼룩진 아라호를 통해 한강에 배 띄우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경험했지만, 이번엔 다르다고 한다. 서울시는 이번 한강버스 사업에서 아라호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3가지 전략적 과제를 내세우고 있다. 먼저, 실제 수요 기반의 노선 설계를 강조했다. 또 관광 중심이 아닌, 출퇴근·생활 교통을 고려한 정류장 배치, 그리고 지하철·버스 환승과의 연계를 강화했다는 것이다. 합리적인 요금 체계를 내세우기도 했다. 기존 대중교통과의 환승 할인을 적용하고, 관광·레저용 프리미엄 서비스와 생활 교통 요금제의 이원화를 강조했다. 또 탄소 배출을 최소화한 전기·수소 하이브리드 선박을 도입했고, 실시간 교통 정보 제공 및 안전 관리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한다. 서울시가 한강버스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지난해 들인 초기 사업비는 약 542억원으로 향후 발생할 총 사업비는 약 1500억~1750억원으로 예상된다. 아라호 사업비보다 10배가량 많은 혈세가 투입될 예정이다. 한강버스는 출·퇴근용 선박인 만큼 이용객을 충족하기 위해 여러 척의 선박이 필요하다. 지난해 3월 한강버스 운영사는 6척의 선박을 납품받는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현재는 첫 출항 이후 3척이 운항 중이며, 향후 6척의 선박이 모두 납품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밖에도 선착장 시설, 운영 시스템, 접근성 개선 등 다양하고 복합적인 요소가 포함돼 총사업비가 1000억원대 중반까지 증가한다. 묻지 마 10배로 베팅 6시에 나와야 9시 출근 아라호는 ‘유람선 제작’이 중심이고, 공연시설 등이 포함된 문화를 제공하기 위한 목적의 선박이었다. 시설 설계가 크고 복잡한 부분이 있지만, 수량이 하나라 규모 면에서 제한적이기에 한강버스와 다르다는 결론이다. 반면, 한강버스는 여러 척의 선박을 건조해야 하고, 선착장 설치 또는 보수도 그만큼 갖춰져야 한다. 또 전기 또는 하이브리드 선박을 도입한 만큼, 유지비용도 클 뿐만 아니라 홍보, 안전, 시험 운항 등 여타 부대 비용에 민간투자금 및 보조금 등이 혼합돼있어 사업비 증액은 여러 원인으로 발생한다. 한강버스 사업비가 초기 대비 크게 증가한 이유로 업체 선정 과정에서 계약 조건, 예상보다 오래 걸린 공정률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를테면 선박 제작 능력이 있는 업체와 없는 업체 간의 차이를 분석했는데, 일부 업체는 인프라가 부족하거나 준비가 미흡했다는 평가를 받아 계약이 무산된 경우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강버스는 대중교통 기능이 강조되면서 ‘출퇴근 수단’ ‘교통망 보완’ 등의 역할이 기대되는 상황이다. 따라서 초기 투자비가 크더라도 지속 운영을 통한 수요 확보가 전제된다. 하지만 계획 대비 수요가 예상만큼 확보될지, 운영비와 적자 보전 부담이 얼마나 될지는 논란 중이다. 한편, 한강버스는 정식 운항 나흘 만에 선박의 방향타 고장 등으로 잇따라 멈춰 승객들이 불편을 겪었다. 지난 23일 기준 누적 탑승객이 1만명을 돌파하는 등 시민들의 큰 관심을 받은 한강버스가 정시성 확보가 중요한 대중교통수단으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을 지 의문이 커지고 있다. 매체에 따르면 지난 22일 오후 7시쯤 옥수선착장을 출발한 잠실행 한강버스가 강 한가운데서 20여분간 멈춰섰다. 결국 승객들은 종착지까지 가지도 못하고 도중에 내려야 했다. 한강버스 운영사는 고장 선박을 뚝섬 선착장에 접안한 뒤 승객들을 모두 하선시켰고, 뚝섬에서 잠실까지 구간의 운항을 취소했다. 지난 18일 정식 운항을 시작한 지 나흘 만에 발생한 일이다. 이 과정에서 제대로 된 안내 방송이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 탑승객은 “20분이 넘게 서 있었고, 안내 방송이 안 나오고 승무원도 안 계시고…. (뚝섬 선착장) 도착하기 2~3분 전에 승무원이 ‘이 배 잠실까지 안 간다’고 뚝섬에 다 내리셔야 된다고…”라고 말했다. 이 사고와 별개로 같은 날 오후 7시30분에 잠실 선착장을 출발할 예정이었던 마곡행 한강버스는 선박 고장으로 아예 결항됐다. 그 바람에 강서 방향으로 이동하려던 시민들은 황급히 다른 교통수단을 찾는 등 불편을 겪어야 했다. 승부수? 무리수? 서울시는 두 선박 모두 전날 밤 안정화 조치를 거쳐 다음 날인 23일 운항에는 차질이 없다고 밝혔다. 또 선내 안내 방송이 없었다는 주장에 대해선 한강버스 운영사가 이상을 감지한 뒤 원인을 파악하는 데 다소 시간이 걸려 안내에 일부 지연이 있었다는 설명이다. 현재 한강버스는 마곡-망원-여의도-압구정-옥수-뚝섬-잠실 28.9km 구간을 상하행 7회씩 총 14회(첫차 11시) 운항하고 있다. 소요 시간은 마곡에서 잠실까지 127분이다. 여의도에서 잠실까지는 80분이다. 추석 연휴 이후인 다음 달 10일부터는 출퇴근 시간 급행 노선(15분 간격)을 포함, 평일 기준 왕복 30회로 증편한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