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24일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전쟁이 장기화되고, 전쟁이 어떻게 끝날지는 오리무중이다. 당장 다음 날 전세를 가늠하기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이 책은 우크라이나전쟁이 “21세기 세계 질서와 평화 패러다임을 전복할 역사적 사건”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즉 우크라이나전쟁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국가 간 전쟁이나 지역 분쟁을 넘어 앞으로 전개될 새로운 세계 질서를 만들 중대한 사건이라는 의미이다.
이는 우크라이나의 위치와 깊은 관련이 있다. 오래전부터 동양과 서양은 발트연안국·폴란드·벨라루스·우크라이나 등이 자리한 접경지대에서 충돌했다. 산이나 바다 등 자연적 장애물이 없고 북쪽 발트해와 남쪽 흑해를 잇는 통로이기에 이 지역은 많은 침략자의 목표였다. 오늘날 이 지역은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의 동진 확장과 러시아 유라시아주의가 부딪치는 경계이다. 저자는 지정학, 국제정치학, 사회학, 역사학 등의 다양한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우크라이나전쟁은 이 지정학적 요충지를 차지하기 위한 싸움이며, 전쟁으로 인해 동과 서의 분열이 명확히 가시화됐다고 말한다. 실제로 전쟁 발발 이후 평화주의에 취해 있던 유럽은 전쟁 확산을 경계하고 있으며, 러시아와 중국은 서방과의 새로운 패권경쟁을 예고했다. 우크라이나전쟁으로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한 자유민주 세력과 중국과 러시아의 권위주의 세력이 극명하게 갈리는 “지정학적 대분기”가 시작된 것이다.
수많은 징후와 거듭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전쟁이 실제로 일어나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왜 우리는 우크라이나전쟁을 예측하지 못했을까? 저자는 냉전 이후 자리 잡은 평화 패러다임에서 그 답을 찾는다. 1989년 베를린장벽 붕괴와 1990년 독일 통일 이후 사람들은 전 세계를 잠식했던 냉전체제가 종식되고 새로운 평화의 시기가 도래했다고 믿었다. 실제로 냉전 이후 지금까지 강대국 간의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으며, 대량 학살이나 테러리즘 또한 감소했다. 하지만 우리는 평화의 시기를 만든 것은 전쟁이라는 사실을, 평화를 유지한 것은 전쟁이 가져온 공포라는 사실을 잊었다. 우크라이나전쟁은 이를 망각한 채 모든 갈등을 무력 없이도 해결할 수 있다는 평화의 패러다임이 지배한 시기에 발발했다.
고대 그리스의 역사학자 투키디데스는 <펠레폰네소스 전쟁사>에서 “전쟁은 냉혹한 스승이다”라는 말로 우리를 일깨운다. 냉혹한 스승 전쟁에게 배우지 못한다면 제2, 제3의 우크라이나전쟁이 벌어지더라도 우리는 아무런 예측도, 대비도 하지 못할 것이다. 특히 우크라이나전쟁이 장기화되고 제3차 세계대전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있는 상황에서, 우리니라가 자유주의 세력과 권위주의 세력의 또 다른 경계인 유라시아 동쪽에 위치한 상황에서 우크라이나전쟁으로부터 교훈을 얻는 일은 매우 긴요하다. 우크라이나전쟁으로 제3차 세계대전이 발발할까? 자유주의와 권위주의의 패권경쟁 속에서 한국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이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할 시기는 바로 전쟁을 겪지 않는 지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