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진 본능’ 박지현 마이웨이

‘이재명 키즈’서 ‘저격수’로

[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더불어민주당 박지현 전 비상대책위원장의 거침없는 행보가 멈추지 않고 있다. ‘586 용퇴론 주장’ ‘당 대표 출마 선언’ 등 지난 몇 달간 파격 행보를 이어온 박 전 위원장은 당내에서 줄곧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아왔다. 용퇴론 주장 때는 선거를 앞두고 분란을 조장한다는 비판을 들어야 했고, 당 대표 출마 선언 때는 비대위로부터 ‘피선거권 없음’이라는 통보를 받아야 했다. 일반적인 청년 정치인이었으면 몇 번이고 좌절했을 상황에 박 전 위원장은 굴하지 않는 기세다. 민주당 지지자들이 그의 다음 행보를 주목하고 있는 이유다.

지난 13일 박지현 전 비대위원장이 우상호 현 비대위원장을 만났다. 그가 당 대표 출마의 키를 쥐고 있는 우 위원장을 만난다는 소식에 기자들이 현장으로 몰려갔다. 물론, 초미의 관심사는 박 전 위원장의 ‘당 대표 출마 허용’ 여부였다. 

전현직 만나
설득 작업?

민주당 취재 기자들에 따르면, 이 회동은 우 위원장의 제안으로 이뤄졌으며, 박 전 위원장은 해당 자리에서 본인에게 특별조항을 적용해달라고 간청했다고 한다.

당초 비대위 측은 민주당 당헌·당규 제2장 6조 1항을 들어 박 전 위원장의 피선거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해당 당규에는 ‘당직 선거 및 공직 선거 후보자 선출 선거의 선거권과 피선거권은 권리당원에게만 부여한다’고 쓰여있다. 여기서 박 전 위원장의 발목을 잡은 것은 권리당원이 되기 위한 조건이다.

민주당의 권리당원이 되려면 최소 6개월, 6번 이상 당비를 납부해야 한다. 그러나 박 전 위원장이 민주당에 들어온 시기는 지난 2월이다. 당시 대선주자로 뛰고 있었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이대녀(20대 여자)’의 표심 공략을 위해 박 전 위원장을 영입했던 바 있다.

박 전 위원장은 이때 선대위에 합류하며 처음 민주당원이 됐다.

다음 달 말에 있을 전당대회까지 6개월이란 시간은 충족되지만, 전대 후보 등록일 마감기한은 17일로, 등록일 기준으로는 6개월이 채 되지 않는다. 당 대표 후보로서 기본조건을 충족하지 못할뿐더러 권리당원조차 되지 못하는 것이다.

여기에 박 전 위원장은 특별조항을 들며 반박 논리를 펼쳤다. 비대위 측이 근거로 제시한 6조 1항 말미에는 ‘다만 당규로 예외를 인정할 수 있다’고 명시돼있다. 여기서 말하는 당규는 ‘당무위원회 의결로 달리 결정할 수 있다’고 쓰여 있는 항목이다.

실제 민주당은 해당 당규로 몇 번이고 당헌을 비틀어왔다. 김동연 경기도지사의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다. 김 도지사는 지난 대선 기간 동안 새로운물결의 대선후보로 이 의원과 경쟁한 바 있다.

김 도지사는 대선 한 달을 앞두고 이 의원과 극적인 단일화에 앞서 민주당으로부터 합당 제안을 받았다. 이때 시점은 박 전 비대위원장의 입당 시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물며 양당의 합당은 이때보다 한참 지난 대선 후에나 이뤄졌다. 입당순으로만 보면 박 전 위원장이 김 도지사보다 몇 달이나 빨랐던 것이다.

그러나 김 도지사는 ‘당무위원회’로부터 예외 조항을 인정받아 민주당 경기도지사 경선 후보가 될 수 있었다. 당시 민주당은 “합당을 전제로 당의 후보로 경기도지사에 출마하게 된 것”이라며 “그 사안과 이번(박 전 위원장)의 사안은 다른 것 같아 비교대상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새로운물결 당원으로서 지낸 시간을 ‘민주당원으로서의 시간’으로 인정해준 것인데, 민주당 지도부는 합당하면서 새로운물결이 민주당이 됐으니 김 도지사가 권리당원 요건에 충족하다고 해석했다.

민주당은 “박 전 위원장에 대한 다른 부분이 있는 게 아니라 당헌·당규에 나온 부분을 봤을 때 예외를 인정할만한 불가피한 사유가 없다”고 덧 붙였다.

당내 만류에도…대표 출마 강행
우상호와 회동 “입장 변화 없어”

이처럼 “예외 조항을 인정해달라”라는 박 전 위원장의 주장과 “인정할 사항이 아니다”라는 비대위 측의 주장은 지속해서 대립해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당사자인 박 전 위원장과 우 위원장의 만남은 파격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파격적인 회동에도 불구하고 양측의 입장 차이는 좁혀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박 전 위원장은 회동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출마 선언 기자회견을 진행하겠다”며 “내가 생각하는 책임정치는 부결했다면 부결 이유를 국민들에게 소상히 밝히는 것”이라며 민주당 지도부와 대립각을 다시 세웠다.

이어 “우 위원장에게 당무위 의결로 예외 조항을 적용시켜 달라고 여러 차례 말씀 드렸지만, 이 사안을 다시 한 번 논의하기는 어렵다는 대답을 들었다”고 말했다.

해당 발언을 풀어보면 우 위원장은 이날 박 전 위원장의 당 대표 출마를 ‘말리려고’ 회동을 제안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젊은 정치인의 출마를 민주당의 수장격인 인물이 직접 나서서 만류하려는 것은 어색한 그림이다.

그러나 여기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민주당 입장에서 박 전 위원장의 전대 출마 사안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계륵’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박 전 위원장은 지난 대선에서 이대녀의 결집을 이끌어냈다는 호평을 받은 바 있다.

몇몇 인사는 이대남의 결집을 이끈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와 그를 비교하기도 했다. 이 대표는 선거 초반부터 남성들의 표심을 자극해 대선 구도를 형성했다. ‘여가부 폐지’나 ‘무고죄 강화’ 등의 공약은 여심을 버리고 이른바 이대남의 결집을 이끈 대표적인 선거 전략이었다.

이재명 대선 캠프의 여성위원회 부위원장에 추대된 박 전 위원장은 곧바로 언론 인터뷰에 등장해 당시 윤석열 대통령 후보의 여가부 폐지 공약을 비판하며 이 대표의 전략에 맞불을 놨다.

그는 “여가부로부터 지원받는 많은 피해자에게 들어보면 ‘여가부 폐지’가 곧 지원을 끊어버리겠다는 말로 들린다”며 “여가부의 미혼모 시설에서 지원받고 있는 언니를 제발 살려달라는 분도 있다. 결국 생존의 문제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무고죄에 대해서도 “피해자가 신고조차 어렵게 하는 ‘성범죄 무고죄 처벌 강화’란 공약을 낸 사람이 대통령이 된다는 것이 두렵고 끔찍하다”며 여성들의 표심을 자극했다.

역할론 
급부상

여성들이 듣기에 ‘사이다’ 같은 발언들이었다. 그의 발언은 언론의 주목을 받았고, 곧 ‘박지현’이라는 인물에 사람들의 관심이 쏠렸다. 여기서는 그의 이력이 빛을 바랬다.

박 전 위원장은 본래 디지털 성착취 범죄 ‘N번방 사건’을 세상에 처음 알린 ‘추적단 불꽃’ 출신 활동가로 알려진 인물이다. 본명보다 불꽃이라는 활동명으로 더 유명한 그의 이력이 알려지며 이대녀들은 더욱 열광했다.

대선 당시 이대녀들은 “절대 지켜 박지현” “박지현 VS 이준석 누구 찍을래?” 등의 구호를 유행시키며 본격적인 이 대표와의 대결 구도를 유도했다.

최종 대선 투표 결과는 무승부였다. 윤 대통령은 20대 남성에게 58.7%의 지지를, 여성에게 33.8%의 지지를 받았고, 이 의원은 최종 투표율에서 20대 여성에게 58%의 지지를, 남성에게는 36%의 지지를 받았다.

근소한 차이지만 20대 지지율에서 민주당이 국민의힘에게 밀리지 않았던 것이다. 당시 여의도 선거 전문가들은 박 전 위원장의 존재 덕분에 당시 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이 의원이 윤석열 대통령을 20대 투표에서 이길 수 있었다고 해석했다.

이 지점에서 민주당 지도부의 고심은 깊어진다. 혁혁한 공을 세웠다고 평가받는 그의 당권 도전을 끝까지 만류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민주당은 민주당을 지지했던 20대 여성들의 표심을 배반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국민의힘 윤리위원회에서 최근 이 대표에 대한 중징계를 내리며 젊은 지지층에게 많은 비판을 듣는 중인 만큼, 상황은 더 안 좋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국민의힘은 이 대표의 중징계 결정 후, 지지율이 급격히 하락하고 있다. 여론조사 기관 리얼미터가 지난 11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민의힘(40.9%)은 처음으로 민주당(41.8%)에게 정당 지지도에서 역전을 허용했다.

리얼미터는 “이는 3월 5주차 조사 이후 14주 만에 처음 민주당이 국민의힘을 이긴 지표”라는 해석을 덧붙였다.

“선거에서 두 번이나 이겨줬더니 ‘토사구팽’이냐”라는 젊은 국민의힘 당원들의 목소리와 “역시 청년은 들러리였다”는 일반 국민들의 목소리가 합쳐진 결과였다. 해당 여론조사 결과에 대해 민주당 지도부는 긴장하는 모양새다.

친명?
반명?

지난 대선에서 이 대표와 박 전 위원장이 꾸준히 비교됐기 때문이다. 박 전 위원장을 내친다면 지금의 국민의힘이 듣는 비판을 똑같이 들을 요소가 다분하다. 그렇다고 민주당 지도부가 그의 출마를 전격적으로 인정할 수도 없다.

대부분의 민주당 인사들은 그의 출마를 인정하자는 주장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박 전 위원장이 지금은 주류가 된 ‘친명(친 이재명)’ 의원들과의 극심한 대립을 보이고, 기득권을 쥐고 있는 기성 정치인들을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다.

잘 알려진 대로, 박 전 위원장은 애초 이 의원이 직접 영입한 ‘친명’계 인사였다. 대통령선거 당시 박 전 위원장은 현장에서 “나는 이재명 한 사람만 보고 민주당에 들어왔다”며 “이재명은 차악이 아닌 최선의 후보”라고 그에 대한 충성심을 드러낸 바 있다.

좋았던 둘의 관계가 소원해지기 시작한 것은 박 전 위원장이 ‘586 용퇴론’과 ‘최강욱 의원에 대한 징계’를 주장하면서부터다.

현재 친명에 속해있는 의원은 그 세가 불어나 약 60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그 60명 중 대부분이 박 전 위원장이 용퇴를 주장하는 586세대라는 점이다. 하물며 이 의원 본인도 586세대에 속한다.

즉, 박 전 위원장의 주장은 ‘친명’계의 해산을 주장한 것과 다름없다. 그는 민주당의 끝없는 추락이 쇄신을 단행하지 못했기 때문이고, 친명계 의원 중 상당수가 쇄신을 방해한다고 보고 있다.

그는 또한 “XXX 치러 갔나”라는 성희롱성 발언을 한 친명계 핵심인 최 의원에 대해서도 강도 높은 징계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준석과 평행이론? “아직 이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계륵 신세

당시 민주당은 성비위 혐의를 받은 박완주 의원에 대한 징계 논란으로 어수선한 상황이었다. 중진 의원과 실세의 잇따른 성비위 사건에 누구 하나 강한 메시지를 내놓지 못하는 상황에서 박 전 위원장이 나섰다.

그는 본인의 SNS에 “민주당이 민심으로부터 완전히 버림받기 전에 최 의원은 재심 청구를 철회하고 진심으로 사과하라”며 “최 의원의 거짓 발언, 은폐 시도, 2차 가해 행위를 종합해봤을 때(6개월 당원권 정지 처분은) 무거운 처벌이라 보기 어렵다”고 압박했다. 

이때를 기점으로 박 전 위원장은 친명계 의원들, 나아가 이 의원 본인에 대한 비판의 수위를 높여갔다. 그는 그 이유에 대해 “이재명 의원이 변해서”라고 말한다.

박 전 위원장의 주장에 따르면, 이 의원은 다른 사건에서 보인 모습과는 달리 최 의원 사건에서 만큼은 ‘온정주의자’ 같은 모습을 보였다. 그는 ‘내로남불’이라는 비판을 들으며 정권을 내줬던 민주당의 어두운 모습을 이 의원 스스로가 보인 점에 대해 매우 실망했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비명(비 이재명)계가 박 전 위원장을 두둔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이재명 저격수’로서 새로운 포지션으로 자리 잡은 박 전 위원장에게 비명계 의원들이 서서히 힘을 실어주고 있다. 전당대회에서 이 의원을 끌어내릴 전략만 구상하고 있는 비명계 인사들은 박 전 위원장의 저격이 ‘이재명 힘 빼기’에 큰 힘이 될 것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박 전 위원장의 지지층은 이 의원과 상당 부분 겹친다. 주로 젊은 민주당원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그가 전당대회에서 이 의원의 표를 상당 부분 갉아먹는다면, ‘어대명(어차피 대표는 이재명)’이라는 분위기를 뚫고, 극적인 반전도 노려볼 수 있다는 계산이다.

실제로 지난 15일 국회 정문 앞에서 있었던 박 전 위원장의 당 대표 선언식에 뒤에서 지원하려 한 비명계 의들이 몇몇 있었다고 전해진다.

총 잡는 
직진녀

박 전 위원장의 당 대표 도전은 무위로 돌아갈 가능성이 큰 상태지만 ‘비명계의 지지’라는 개인의 소득은 있었다. 그의 앞날은 비명계의 최전방 공격수로 새롭게 열릴 전망이다. 전당대회까지 이제 한 달, 비명계와 박 전 위원장의 공투가 시작되려 한다.


<ingyu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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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기업 비자금’ 다단계에 털린 보험설계사들

[단독] ‘기업 비자금’ 다단계에 털린 보험설계사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넷플릭스 드라마 <레이디 두아>에서 사라킴은 이렇게 말했다. “사람의 눈을 가리는 건 거짓이 아니에요. 믿음이죠”라고. 피해자들은 2년여 동안 수십억원을 뜯기면서도 차용증은 물론 사업계획서 같은 문서 한 장 보지 못했다. 그나마 명함에도 이름과 전화번호뿐이었다. 그들의 눈을 가린 건 대체 뭐였을까? 그들은 무엇을 믿었을까? 서울의 한 보험사 소회의실. 처음에 3명이던 피해자가 2시간 뒤 1명 더해져 총 4명이 됐다. 몇 명은 과거 학습지 회사에서 동료로 일했고, 몇 명은 현재 보험사에서 함께 일하고 있다. 이들의 접점은 최모씨라는 한 여자였다. 이들 모두 최씨를 만났고 한 명도 빠짐없이 돈을 뜯겼다. 4명에게서만 20억원 가까운 돈이 흘러나갔다. 클래식한 사기 수법 최씨의 사기 행각은 광범위하면서도 폐쇄적이었다. 학습지 교사, 보험설계사, 헬스케어 제품 판매 직원 등 각각의 피해자 그룹이 있었지만 서로 알지 못했다. 이들은 ‘뭔가 이상하다’ 느낄 때쯤에서야 또 다른 피해자의 존재를 발견했다. 피해자 수가 70~80명, 피해액이 300억원에 이른다는 것도 대략적인 수치일 뿐, 그 이상일 가능성도 있다. 한 피해자는 “본인이 피해자인지도 모르는 피해자도 분명히 존재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최씨의 정체는 모호했다. 최씨가 일부 피해자에게 건넨 명함에는 ‘기업/개인 세금 처리 대행’이라는 문구와 함께 이름, 전화번호만 적혀 있다. 한 피해자는 “최씨는 기업의 비자금을 관리하면서 세무 업무를 대행한다고 했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 계속 전화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상대에게 ‘사장님’ ‘회장님’이라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최씨는 자신을 세무 관련 전문직으로, 배우자는 외교관이라고 소개했다. 서울 한남동의 고급 아파트, 명품 옷, 외제 차 등은 최씨를 ‘돈 많고 유능한 사람’으로 보이게 하는 일종의 장치로 작용했다. 실제 최씨를 만났던 몇몇 피해자들은 ‘(집에) 가정부가 있었다’ ‘가정부에게 LA 갈비 세트를 줬다’ ‘(최씨와 그 가족이) 블랙카드를 사용하고 있었다’ ‘고급 카페에서 비싼 디저트를 자연스럽게 주문했다’ 등의 말을 하기도 했다. 최씨의 배경에 흔들리던 피해자를 완전히 넘어가게 만드는 데는 건 주변 동료, 지인의 부추김이 결정적이었다. 몇 년 동안 한 직장에서 근무한 동료, 오랜 시간 알고 지낸 지인의 말에 피해자들은 최씨를 ‘믿을 만한 사람’으로 판단했다. 한 피해자는 “처음에는 내켜 하지 않던 사람이 있었는데 (중간에서) 질릴 정도로 권했다. 집까지 찾아가기도 했다”고 말했다. 눈여겨볼 대목은 피해자가 대부분 ‘여초 직장’에서 나왔다는 점이다. <일요시사>가 파악한 피해자 가운데 일부는 학습지 회사에서 함께 일하다가 보험사로 같이 넘어왔다. 이 과정에서 몇몇이 최씨와 얽히면서 지인을 데려오는 방식으로 판이 커졌다. 전형적인 ‘피라미드’ ‘불법 다단계’ 방식이다. 한 변호사는 “굉장히 클래식한 방식의 사기”라고 표현했다. 최씨의 배경과 언행, 동료와 지인의 꼬드김에 넘어간 피해자들은 그때부터 홀린 듯이 돈을 보내기 시작했다. 사기 수법은 간단했다. ‘(돈을) 일주일 쓰는 대신 이자를 1% 주겠다.’ 예를 들어 1억원을 일주일 동안 빌려주면 이자로 100만원을 주겠다는 것이다. 정상적이라면 피해자는 일주일 뒤 원금과 이자를 합해 1억100만원을 받게 된다. 한 피해자에 따르면 처음에는 아예 선이자를 떼고 빌려 갔다고 한다. 다시 말해 1억원이면 9900만원만 빌려주는 식으로, 원금을 돌려받으면 100만원을 번 셈이 된다. 한남동 아파트 ‘상류층’ 행세 동료, 지인 부추김에 거액 투자 처음 한두번은 이자가 들어왔다. 하지만 원금이 들어와야 할 시기가 늦어지기 시작하더니 이후 이자까지 끊겼다. 원금과 이자를 달라는 요구에 최씨는 이자 비율을 높이면서 추가로 돈을 넣으라고 권했다. ‘돈을 더 넣으면 이자로 10%를 주겠다’는 식이다. 피해자마다 이자 비율은 달랐지만 대략 5~10% 정도를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카드 대금을 대신 결제해 주면 월 수수료로 0.8%를 주겠다는 말도 했다. 최씨의 말대로라면 카드로 100만원을 긁었을 때 수수료로 8000원이 발생한다. 당연히 카드 결제액이 커질수록 수수료도 많아진다. 피해자들은 자신의 카드를 내준 것도 모자라 몇몇은 카드를 새로 발급까지 받아 최씨에게 건넸다고 한다. 결말은 같았다. 카드 대금은 쌓여가고 수수료는 들어오지 않았다. 한 피해자는 “카드 대금이 계속 연체되고 한도 때문에 사용이 막히니까 리볼빙을 하라고 했다”고 주장했다. 리볼빙은 카드 대금의 일부만 결제하고 나머지는 다음 달로 미루는 서비스다. 당장 변제 부담은 덜하지만 잔액에 연이자가 15~19%가량 붙는다. 눈 깜짝할 새에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는 상품이다. 이자나 수수료는커녕 원금도 못 받는 상황이 계속되자 피해자들은 결국 최씨와 ‘중간 다리’ 역할을 한 사람들을 사기 혐의로 고소하기에 이른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보험설계사 등 피해자 7명은 지난해 12월 최씨를 포함한 5명에 대해 특정경제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사기) 등 혐의로 고소장을 접수했다. 7명 외에도 피해자가 3명 더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피고소인 5명은 주범 최씨, 모집책 차모씨, 이모씨, 박모씨, 그 외 김모씨 등이다. 피해자 7명과 접점이 가장 적은 김씨를 제외하고 4명의 피고소인만 놓고 보면 역학 관계가 뚜렷하게 드러난다. 피해자들은 차씨와 이씨, 박씨 등이 최씨와 이전부터 아는 사이였다고 입을 모았다. 피해자 7명의 피해액은 26억8700만원에 달한다. 나머지 피해자 3명의 피해액까지 합치면 28억8000만원으로 불어난다. 이들은 계좌이체, 카드 결제 등의 방법으로 최씨 등에게 돈을 보냈다. 이 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비용까지 계산하면 피해액은 10억원 이상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피해자 가운데서도 A씨의 피해액은 확인된 것만 약 17억원에 이른다. 피해자 7명의 전체 피해액(27억원) 중에 63%가 A씨의 몫인 셈이다. 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추가 이자 비용은 별도다. 이 돈까지 합치면 A씨의 피해액은 약 23억원까지 늘어난다. A씨는 차씨를 통해 최씨를 만났는데, 두 사람은 보험사에서 5년간 동료로 지냈다. 홀린 듯이 돈 보냈다 지난 7일 서울의 한 사무실에서 만난 A씨는 늦게까지 야근하고 있었다. 그는 “죽도록 벌어야 빚을 갚을 수 있다”고 말하며 힘없이 웃었다. 2024년 초 ‘잠깐 바람이라도 쐬러 나오라’는 차씨의 부름에 나간 게 시작이었다. A씨는 인근의 카페에서 또 다른 피해자와 함께 최씨를 만났다. 또 다른 피해자는 차씨와 이전부터 알던 사이였다. A씨는 “처음 만난 최씨는 쉽게 믿기 어려웠지만 차씨는 5년 동안 같이 일하면서 ‘일 하나는 똑 부러지게 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그런 차씨가 나와 다른 피해자에게 ‘원금은 보장된다. 나도 2억을 벌었고 두 달 뒤에 추가로 1억을 번다’고 말하니 솔깃했다. 최씨의 신상에 대해서도 차씨가 신나서 이야기했다”고 설명했다. 심지어 차씨는 A씨에게 자신의 계좌를 보여주기도 했다. 카드 결제, 계좌 이체 등의 방식으로 최씨에게 돈이 흘러 들어가기 시작한 시점은 2024년 4월경부터다. A씨의 카드는 2024년 4월부터 8월, 지난해 2월에 집중적으로 사용됐다. 거래처는 정유사, 명품관 등이다. 특히 눈에 띄는 건 자동차 기름값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큰돈이 주유 대금으로 결제됐다는 점이다. 2024년 4월, A씨의 카드가 처음 사용된 날짜에 ‘○○석유’라는 곳에서 1200만원이 결제됐다. 이후에도 1000만원 단위의 돈이 ‘○○상사’ ‘○○○ 에너지’ 등에서 사용됐다. 카드로 긁어놓고 이후에 현금으로 되돌려받는 ‘카드깡’이 의심되는 대목이다. 동시에 최씨는 명품관에서도 총 7700만원을 긁었다. 이렇게 결제된 카드 대금은 3억6000만원에 달한다. 카드 대금과 수수료를 주겠다는 최씨의 말은 ‘공수표’였다. A씨는 “카드를 빌려준 쪽에서 돈을 넣어달라고 오히려 빌어야 했다. 몇 번을 요구해야 한번 돈을 넣어줄까, 말까였다. 한도가 막히면 다른 카드를 달라고 요구하는 식이었다”고 말했다. 1년여에 걸쳐 최씨로부터 입금된 돈은 2억원. 원금과 주기로 한 수수료를 계산하면 턱없는 돈이다. 결국 A씨는 카드 대금으로만 1억5000만원을 뜯겼다. ‘짧게 쓰고 줄게’라며 빌려 간 자금은 상상을 초월했다. 피해자들은 최씨가 이자 명목의 돈을 주지 못한 시기를 2024년경으로 기억했다. A씨 역시 2024년 4월에 처음 돈을 넣고 한 달 뒤부터 제대로 돈을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최씨가 회사 세무조사 등을 이유로 돈이 묶였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사람도 죽었나 ‘돈만 들어오면 A씨부터 챙겨줄게’라는 말은 당시 상황에서 A씨가 매달린 유일한 동아줄이었다. ‘손절’하기에는 이미 너무 큰돈을 넣은 상태였고 어떻게든 원금만이라도 돌려받아야겠다는 생각이 A씨를 지배했다. 그 대가는 가혹했다. ‘이번만 빌려주면’ ‘곧 돈이 들어온다’는 최씨의 말에 속아 A씨가 빌려준 돈은 15억5000만원에 이른다. 문제는 이 돈이 전부 A씨 돈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A씨는 “동생, 부모님, 지인, 심지어 고객에게까지 돈을 빌렸다”고 털어놨다. 이 중 3억원가량은 집을 담보로 제3금융권에서 빌린 돈으로 즉, 사채다. 급하게 돈을 빌리는 과정에서 제시한 높은 이자율은 A씨의 목을 옥죄고 있다. A씨는 지금도 그 이자를 갚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씨의 악랄한 수법은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최씨는 A씨가 보험설계사인 점을 이용해 그의 고객으로 또 다른 피해자를 연결했다. 또 다른 피해자에게 보험금을 대납해 주는 방식으로 돈을 갚겠다며 A씨를 이용한 것이다. A씨는 해당 고객이 최씨와 연결된 사람이라는 사실을 처음에는 몰랐다고 주장했다. 월 400만원이 넘는 보험을 2개 가입한 고객은 10개월 정도 보험료를 낸 뒤 사라졌다. 보험설계사는 고객을 유치하면 전체 납입 기간에 대한 선수수료로 익월에 월급을 받는다. 예를 들어 월 100만원, 20년 납기 보험을 든다고 하면 총 보험료 2억4000만원에 대한 수수료가 보험설계사의 몫이다. 능력에 따라 보험설계사의 연봉이 천차만별로 차이 나는 이유다. 하지만 여기에는 결정적인 단서 조항이 있다. 고객이 최소 25개월 이상 보험료를 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보험설계사가 받은 월급은 ‘환수’ 조처된다. 보험설계사의 능력은 신규 고객 유치가 아니라 유지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20년 가까이 단 한 건의 환수 조처도 없던 A씨의 경력은 최씨로 인해 무너졌다. A씨의 동료이면서 피해자인 이들 역시 최씨, 차씨 등이 연결해준 고객이 보험금을 납입하지 않으면서 발생한 환수 조처로 허덕이고 있다. 지난해 11월 최씨에게 넘어간 1억5000만원은 결정타였다. 그전까지 약 10개월간 돈을 보내지 않고 빚 독촉만 했던 A씨는 최씨에게 “450억원이 들어왔다”는 말을 듣게 된다. A씨에 따르면 최씨는 수표 다발이 찍힌 사진을 카카오톡 메신저로 보냈다. 그러면서 수표를 현금으로 바꾸는 과정에 1억5000만원의 수수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 자리에서 다시 1억5000만원을 주겠다는 약속과 함께였다. 돈 못 빌려주면 카드라도 내놔 주범 최씨 다른 사건으로 재판 5000만원만 마련해 갔던 A씨는 그 자리에서 고객에게 1억원을 빌려 최씨에게 건넸다. A씨는 “무슨 영화를 찍는 줄 알았다. 사채업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나타나 ‘당신(A씨) 때문에 450억원을 출금 못하게 생겼다. 어떻게 책임질 거냐’고 윽박질렀다. 최씨도 나서서 ‘빨리 어디에서라도 빌려봐’라고 계속 압박했다. 정말 내 책임이 될 것 같은 마음에…”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후 1억5000만원은 공중으로 사라졌다. ‘껍질까지 벗겨 먹었다’ ‘뼈까지 발라 먹었다’는 말이 나올 만큼 A씨는 최씨에게 말 그대로 ‘탈탈’ 털린 상태였다. A씨의 사정을 들은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까지 속을 수 있냐고 의문을 표했다. 결국 A씨도 피해자들도 쉽게 돈을 벌고자 했던 욕심에 눈이 먼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왔다. 실제 피고소인 가운데 1명인 김씨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나 역시 최씨에게 빌려준 돈이 상당하다. 그걸로 마음고생 많이 했는데 되짚어 보면 내 욕심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고소인들도 마찬가지 아닌가. 돈 욕심에 시작했다가 원하는 만큼 돈을 받지 못하니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피해자들을 대리하고 있는 황유준 법무법인 LKB평산 변호사는 “피해자들은 실제 존재하는 웅덩이에 발을 담근 게 아니다. 웅덩이 자체가 없었다고 말하는 게 맞다. 다시 말해 투자의 배경이 되는 회사나 사업체 같은 실체가 아예 없었다. 즉, 최씨는 처음부터 피해자들을 기망할 의도로 만났고 피해자들을 끌어들인 피고소인들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씨는 A씨 등에게 받은 돈을 투자 목적이 아닌 개인 용도로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자초지종을 듣기 위해 피고소인들에게 연락을 취했지만 최씨는 전화를 받지 않았고 몇몇은 ‘(자신의)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았느냐’고 따져 물을 뿐이었다. 유일하게 통화가 연결된 김씨는 “최씨는 고소인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부자도 아니고 특출난 사람도 아니다. 걔도 사업 과정에서 돈 문제가 꼬여 지금 상황까지 오게 된 것이다. 어찌 보면 걔도 사기 피해자”라며 “가족하고도 사이가 틀어졌고 정말 죽지 못해 사는 것으로 안다. 나는 (최씨가)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해서 기다리고 있다”고 울먹였다. 최씨 사건은 크게 확산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미 기소돼 재판이 진행 중인 사건이 있고 A씨 등의 고소 사건도 비슷한 유형이라 검찰 송치 가능성이 크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또 다른 보험사 지점, 헬스케어 제품 회사, 화장품 회사 등에도 피해자가 있다. 이들이 법적 대응에 나서면 최씨를 비롯한 중간 모집책들이 빠져나갈 구멍은 상당히 좁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 피해 금액이 크기에 이들은 형량이 높은 ‘특경법’에 걸리는 상황이다. 여기에 이 사건으로 2명이 자살했다는 흉흉한 소문도 나도는 상태다. 최씨와 피해자 사이에서 모집책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되는 한 여성과 큰돈을 투자했던 한 남성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내용이다. 피고소인들은 이 여성이 원래 우울증을 앓았고, 남성은 지병이 있었다고 반박했다. 추가 피해자 더 나올 듯 과거 사기 사건을 맡았던 한 변호사는 “피라미드, 다단계 사기 사건의 진짜 공포는 피해자가 가해자가 된다는 점이다. 처음에 돈을 뜯겼던 피해자가 원금을 회복하기 위해 다른 피해자를 양산하는 구조다. 사기 사건이 정말 사람을 죽이는 살인 사건에 비견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떻게 보면 피해자들은 이미 죽은 상태나 다름없다. 영혼이 다 빠져나갔을 것”이라며 “일전에 사기 사건 피해자들을 변호하면서 ‘소리 없는 전쟁으로 폐허가 된 자리에 시체가 널브러져 있다’고 생각한 적 있다. 반드시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