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호 교수의 대중범죄학> 이길 수 없는 마약과의 전쟁

  • 이윤호 교수
  • 등록 2022.06.07 10:19:45
  • 호수 137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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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1960년대 미국사회는 반전 데모와 마약으로 점철됐다. 이 무렵 일본의 한 문화인류학자는 미국이 인종차별, HIV, 마약 등으로 망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리처드 닉슨은 마약을 미국의 공공의 적으로 규정하고 ‘마약과의 전쟁(War on Drugs)’을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범죄와 마약의 연계성은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할 수밖에 없었던 결정적 이유였다. 마약은 제조·판매·경작·소지·복용 등 관련된 거의 모든 행위가 범죄다. 몇몇 국가는 마약의 합법화(Legalization), 비범죄화(Decriminalization)를 추진 중이지만, 아직까지 마약은 대다수 국가에서 사회적 폐단으로 인식된다.

마약과의 전쟁은 공급을 어떻게 차단하느냐가 핵심이다. 지금껏 마약은 수요에 비해 공급량이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에 마약의 제조·유통에 관여하면 엄청난 돈을 쓸어 담을 수 있었다. 이런 이유로 마약을 둘러싼 조직범죄가 기승을 부렸고, 범죄조직 간 이권다툼으로 유혈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마약과의 전쟁은 실패로 귀결됐다. 마약 복용자는 전혀 줄지 않았고, 마약에 중독된 사람이 마약 자금마련을 위해 범행을 저지르는 악순환이 되풀이됐다. 

오히려 폭력과 무관한 마약 관련자를 마구잡이식으로 교정시설에 수용하면서 교정시설 과밀화를 불러왔고, 그 결과 일반 수형자의 처우 부실과 가석방의 남발에 따른 혼란만 커졌다. 언젠가는 끝나기 마련인 국가 간 전쟁과 달리, 마약과의 전쟁은 끝을 알 수 없는 전쟁이 된 셈이다.


어느 통계에 따르면 미국 교정시설에 수용된 수형자의 50~60%는 범행 전후에 알코올이나 약물을 복용한 상태였다고 한다. 이를 해소하고자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임기 말에 비폭력 마약 관련 수형자를 과감히 석방하도록 명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마약과의 전쟁은 왜 이길 수 없게 됐을까?

일단 전쟁을 치르는 방향부터 잘못됐다. 마약을 제조·판매하는 공급자 대부분은 가난한 사람들이거나 범죄조직에 속해 있다. 이들은 마약이 가져올 금전적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수없이 많은 마약 공급자를 잡아들이더라도 이들을 대체할 인력이 넘쳐난다.

게다가 공급의 통제는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로 가격을 상승시키고, 전쟁에서 승리를 거머쥐는 데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더 이상 공급의 차단만으로는 마약과의 전쟁에서 이길 수 없는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다.

결국 마약문제는 형사 정책이 아니라 빈곤, 정신건강을 해결하는 교육·복지·보건 등 사회문제로 다뤄져야 한다. 닉슨 전 대통령이 범죄문제 해결을 위해 ‘범죄와의 전쟁(War on Crime)’이 아니라, 범죄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되어 온 ‘빈곤과의 전쟁(War on Poverty)’을 선포한 데서 느끼는 게 있어야 한다. 

다행히 몇몇 국가는 마약 범죄 정책을 바꾸는 추세다. 네덜란드는 일찌감치 마약을 합법화해 의사의 처방전을 필요로 하는 전문의약품으로 다루고 있다. 이를 통해 중독자 관리, 위생, 공급과 수요의 불일치로 인한 가격 상승과 범죄조직의 개입 문제를 해소하려 한다.

미국 일부 주에서는 마리화나의 전면적 허용을 검토 중이다. 일부 마약은 알코올이나 흡연보다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나쁘다고 보지 않는 것이다.


계도 및 교육 등 그동안의 노력으로 알코올 중독이나 흡연인구는 그리 감소하지 않고 있다. 마약도 예외일 수 없다. 금연교육처럼 어린 시절부터 마약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교육을 우선해야 할 시점이다.

 

[이윤호는?]

▲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명예교수
▲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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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