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소리 나는' 마스크 시장 현주소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2.05.11 08:41:58
  • 호수 1374호
  • 댓글 2개

잔칫집 꼬인 파리들 “다 죽겠네”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2019년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19는 전 세계를 마비시켰다. 그러나 이 와중에도 호황을 누린 곳이 있다. 바로 마스크 회사다. 2020년 3월 정부는 코로나 방역 대책으로 마스크 착용 의무화를 발표했고, 그로부터 27개월이 지났다. 지난 2일부터 실외 마스크 의무화가 해제됐다. 마스크 회사의 호황은 이미 ‘과거의 영광’이 된 실정이다.

코로나19는 호흡기 감염질환으로, 감염자의 비말(침방울)이 호흡기나 눈·코·입의 점막으로 침투될 때 전염된다. 이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가 마스크로, 코로나 초기 그야말로 ‘마스크 대란’이 일었다. 가장 큰 문제는 의료현장이었다. 코로나 최전방에서 싸우는 의료진 역시 마스크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이런 상황에 일반 시민들이 쓸 마스크가 부족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반짝 호황

2020년 3월 임시국무회의는 마스크의 ▲공급 ▲생산 ▲원자재 ▲수출 ▲판매업자 등에 관한 내용이 주를 이뤘다. 그만큼 정부의 관심사는 ‘마스크’에 집중됐다. 마스크는 약국에서 판매했고 생년월일의 끝날을 맞춰 방문하면 구매할 수 있었다.

웃돈을 얹어야 마스크를 살 수 있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이런 조치에도 마스크를 사기 위해 길게는 1시간까지 약국 밖에서 줄을 서야 했고, 노약자나 직장인들을 위한 판매 날짜를 따로 지정하는 상황도 발생했다.

마스크 판매 수량도 1인당 3~5매로 제한돼, 온 가족이 다 나와서 마스크를 구매했다. 마스크 구매 가능 여부는 주민등록증으로 확인했다. 약국 입구에는 너무 쉽게 ‘마스크 매진’ ‘마스크 입고’ 등의 알림 문구를 확인할 수 있었다.  


대중교통 등을 포함한 실내·외를 비롯해 가족이 확진되면 집에서도 마스크를 써야 했다. 정부는 지속해서 ‘올바른 마스크 착용법’을 교육했고 무엇보다도 신속하게 마스크를 공급하는 데 주력했다.

마스크를 쓸 수 없는 영·유아들을 위해서 보육업계에 마스크를 현물로 지급하기도 했다. 2020년에는 코로나로 부도가 난 공장에 마스크 회사가 들어올 정도로 마스크 회사 창업에 열풍이 불었다. 

코로나 사태 초반 없어서 못 팔아
이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포화

2020년 9월15일에는 ‘마스크 긴급수급 조정조치’ 법률이 시행됐다. 현재는 삭제됐지만, 당시에는 마스크 판매에 대해 제한하는 항목이 있었다.

마스크 긴급수급 조정조치 제4조에는 ‘출고한 생산량 및 수출량 외의 것으로 판매업자가 같은 판매처에 대해 식약처장이 정하는 수량 이상을 같은 날에 판매하는 경우에는 식약처장에게 신고해야 한다’고 기재됐다. 제5조에는 ‘당일 생산량의 10%를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수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마스크의 원활한 공급을 위해서 제7조에는 ‘마스크 공적 판매처는 마스크 수급을 위한 정부 시책에 협조해야 하며,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은 공적 판매처에 마스크 수급을 위해 필요한 명령을 할 수 있음’을 기재해 마스크가 부족한 상황을 대비했다. 

이런 상황에 발맞춰 산업용 섬유 전문기업으로 마스크 제조업은 주가가 급등했다. 대표적으로 웰크론은 코로나가 발병하기 전 4000원에 못 미쳤던 주가가 코로나 국내 첫 환자가 발생한 2020년 1월20일 급등했다. 2020년 2월 6000원을 넘겼고 그해 8월20일 9030원까지 치솟았다. 


치솟은 주가는 그때뿐이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마스크 관련주 주가는 모두 2020년 고점을 찍고 현재는 -50% 이상의 등락률을 보였다. 웰크론이 2020년 고점에 9030원을 보였고 지난달 29일 기준 3970원을 등락률이 -56%다. 

거의 모든 마스크 관련 주가가 내려가고 있는 상황으로, 레몬은 2020년 고점에 주가가 2만3200원이었다. 지난달 29일 기준 4465원으로 떨어져 등락률 -80.8%을 기록해 가장 큰 폭으로 하락했다.

코로나로 본 반짝 특수효과는 너무 빨리 사라졌다. 물론 마스크 회사들이 코로나 초기에 부족한 마스크 공급에 도움을 줬지만, 블루오션으로 인식된 마스크 회사가 우후죽순 생겨난 것 자체가 문제였다.

지난달 29일 식품의약안전처에 따르면 현재 국내 마스크 생산업체 수는 2020년 1월 말 137개소에서 지난 3월 말 1595개소로 10배 이상 증가했다.

해외는 이미 중국이 장악
국내 줄폐업 우려 속 비명

공식 인증을 받지 않은 업체까지 합치면 5000여개에 육박할 것으로 추산된다. 코로나 초창기에 마스크 대란이 벌어지자 정부가 마스크 제조업체 설립 허가를 간소화한 영향도 있다.

경북 구미의 경우 2020년 ‘반짝 특수’로 생긴 마스크 제조업체가 100여곳에 달한다. 하지만 제조업체 난립으로 경쟁이 심해지고 수익성 악화로 하나둘씩 문을 닫았다. 현재 남은 곳은 20여곳 정도다.

지금 남아있는 곳이라고 상황이 좋진 않다.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억지로 버티고 있다는 설명이 정확할 것이다. 악성 재고의 덤핑처리 물량 등으로 마스크 공급가격이 크게 하락했다. 

구미산단 내 한 마스크 제조업체 관계자는 “마스크 공장이 너무 많이 생겼고 물량이 대량으로 풀려 가격 하락이 심각하다. 줄줄이 폐업한 공장들의 ‘땡처리 마스크’까지 쏟아져 심각한 경영난이 이어지고 있다. 이젠 탈마스크 시대마저 도래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지었다. 

업종 변경도 쉽지 않다. 마스크 생산설비에 대당 1억5000만원에서 2억원 정도의 돈이 들었기 때문이다. 경기 화성의 한 마스크 회사는 2020년 3월 하루 생산량이 15만개였으나 최근에는 3만개로 줄었다. 시중에 마스크 재고가 넘쳐나고, 신규 주문은 거의 들어오지 않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 일부 업체가 해외시장에 도전하려고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미 중국에서는 값싼 마스크를 전 세계에 대량으로 공급했고, 해외시장은 이미 중국이 선점했다.

중국 마스크 시장 규모는 한화로 약 1조6962억원을 넘어섰고, 중국 기업은 2만1000곳이 넘는다. 중국에서 의료용 마스크 생산 자격을 갖춘 기업은 350여곳에 불과하고 품질도 떨어진다. 그러나 가격은 국내산 마스크와 비해 3분의 1수준이다. 


대책 절실

현재 국내 마스크 회사는 앞길이 막막한 상황이다. 석호길 한국마스크산업협회 회장은 “코로나 초기에는 국내 마스크 수급 문제로 수출이 금지돼 국내 생산업체들이 세계시장 진입 시기를 놓쳤다”며 “지금이라도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수출 장려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마스크 업계는 무너질 것”이라고 말했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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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