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절 대란’ 의약품 유통구조 실태

텅텅 비는 약국들 이유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아픈 몸을 이끌고 약국을 찾은 환자들은 문 앞에서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약국 입구에 붙은 ‘항생제·해열제 품절’이라는 안내문 때문이다. 그 흔하던 감기약조차 재고가 끊기면서, 환자들을 돌려보내야 하는 약사들의 심정은 착잡하다.

전국 약국에서 감기약·항생제·혈압약 등 필수 의약품이 품절되는 사태가 몇 달째 이어지고 있다. 감기약과 항생제 같은 기본적인 치료제부터 ADHD 치료제·정신과 약까지 재고가 끊기면서, 약국과 환자 모두가 겪는 불편이 커지고 있다.

수급 불안정
회복은 아직

올해 들어 품절은 더욱 심화됐다. 수도권은 물론 지방 약국에서도 약을 구하지 못해 환자들이 발걸음을 돌리는 경우가 허다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발생했던 의약품 수급 불안정 현상이 현재까지도 완전히 회복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약사들은 “몇 군데 업체에 전화를 돌렸지만 전부 ‘없다’고 답했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품절 및 공급 중단 사태가 매년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 자료에 따르면, 의약품의 공급 중단 및 부족 보고 건수는 매년 급증하고 있다. 2021년 288건이었던 보고 건수는 2022년 315건을 넘어섰으며, 2023년에는 432건을 기록하며 전년 대비 약 37.1% 폭증했다.


최근 보건의료계에서는 이번 사태의 원인이 생산 부족이나 일시적 수요 급증 때문이 아니라 ‘의약품 유통구조 전반의 결함’에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계절성 겨울철 감기·호흡기 질환 유행으로 수요가 급증한 영향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업계에서는 근본 원인이 수요 증가가 아니라 유통구조에 쌓여온 문제라는 것이다.

국내 의약품은 제조사가 만들었다고 해서 바로 약국으로 공급되지 않는다. 즉 대부분의 제약사가 약을 주문하면 도매업체를 통해 약국으로 공급되는 다단계 유통을 거친다. 약국은 수십에서 수백개 업체가 취급하는 의약품을 한곳에서 받을 수 없어, 필요할 때마다 여러 도매업체와 각각 거래해야 해야 한다.

먼저 제약사는 생산한 의약품을 도매업체에 공급한다. 일부 품목은 제약사가 직접 병·의원이나 일부 약국에 공급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도매업체를 통한다. 1차 도매업체는 제약사로부터 대량으로 물량을 확보한 뒤, 이를 다시 지역별 중소 도매업체나 약국으로 공급한다.

일부 품목은 2차·3차 도매를 거치기도 한다. 도매업체는 이 과정에서 물량을 배정하고, 특정 약의 재고를 먼저 확보한 뒤 약국에 나눠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도매업체 간 규모·자본·전산 수준에 따라 재고 확보 능력에 큰 차이가 있어, 같은 약이라도 어느 도매업체와 거래하느냐에 따라 공급 상황이 전혀 다르게 나타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감기약·항생제 수개월째 모자라
의약품 공급 중단 사태 매년 급증

약국은 필요한 의약품을 확보하기 위해 여러 도매업체와 동시에 거래를 유지한다. 감기약, 항생제, 전문의약품 등 품목군마다 취급 도매처가 다르고, 도매처마다 확보하고 있는 재고도 제각각이라 한곳에서 모든 약을 조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약국이 아침마다 여러 업체의 재고를 확인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문제는 의약품 재고를 한눈에 확인하기 어렵다는 데에서 발생한다. 현재 국내에는 통합된 의약품 재고 전산망이 존재하지 않는다. 의약품 생산부터 배송, 약국 도착까지 모든 단계가 분리된 채 운영되고 있어, 어느 도매업체가 어떤 약을 얼마나 확보하고 있는지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 국내에는 도매업체 간 재고 정보가 서로 공유되지 않는 구조기 때문에 특정 도매업체에 약이 없을 경우,  다른 도매업체에 재고가 남아 있어도 현실적으로 약국은 이를 확인할 방법이 없다.

이에 반해 해외 주요 국가들은 이 문제를 최소화하기 위해 이미 재고·유통 실태를 투명하게 관리하는 제도를 갖추고 있다. 미국은 2013년 ‘의약품 공급망 보안법(DSCSA)’을 제정해 처방 의약품의 생산부터 약국에 도착하기까지 모든 유통 과정을 전자적으로 기록하고 추적하도록 의무화했다.

제약사는 제품 포장마다 고유 식별번호를 부여하고, 도매업체와 약국 등 공급망 참여자는 거래 이력과 거래 정보를 전산 시스템을 통해 주고받는다. 이를 통해 특정 의약품이 어느 제조사에서 출고돼 어떤 도매처를 거쳐 어느 약국으로 이동했는지 확인이 가능하도록 했다.

위조약 방지 목적이 크지만, 자연스럽게 공급망 전체의 재고 흐름도 함께 관리되는 구조다.

유럽연합 역시 ‘위조 의약품 방지 지침(FMD)’을 시행해, 대부분의 처방약 포장에 2차원 바코드와 고유 식별번호를 의무적으로 부착하고 있다. 약국과 도매업체는 의약품을 취급할 때마다 이를 스캔해 중앙 데이터베이스에서 진위 여부와 유통 경로를 확인한다.

파악 불가
품절 심화

일련번호가 데이터베이스와 일치하지 않거나 중복 등록될 경우 즉시 경고가 뜨는 시스템으로, 유럽 내에서는 의약품의 이동 경로가 거의 실시간으로 관리되는 셈이다.

위조약 유통을 막기 위해 도입됐지만, 결과적으로 의약품 재고 파악과 공급 안정성 확보에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공급에 차질이 생길 경우 어느 구간에서 문제가 발생했는지 빠르게 파악할 수 있고, 특정 지역의 공급이 부족하면 다른 지역 재고를 재배치하는 조치도 가능하다.

반면 한국에서는 의약품 추적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약국은 필요할 때마다 여러 도매업체 사이트를 각각 확인하거나 직접 전화를 걸어 재고를 묻는 방식으로 재고를 파악할 수밖에 없다. 업계에서는 한국의 유통구조 특성상 재고 파악 문제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는 분석이 많다.

실시간 재고 파악이 어려운 이유는 유통 단계가 여러 겹으로 나뉜 구조 때문이다. 일부 품목은 1차 도매업체에서 2차·3차 도매업체로 넘어가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단계별로 재고 흐름이 따로 기록되지 않는다. 이로 인해 실제 어느 단계에서 병목이 발생했는지 확인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이런 구조적 문제 때문에 특정 지역에서는 품절이지만, 다른 지역이나 다른 도매처에는 재고가 남아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이를 확인할 통합 시스템이 없어 약국은 매번 개별적으로 재고를 찾는 방식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유통 단계의 복잡성뿐만 아니라 도매업체가 제공하는 재고 시스템이 모두 다르다는 문제도 있다. 국내 의약품 유통시장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도매업체 수가 지나치게 많다는 점이다.

국가통계포털(KOSIS) 기준 의약품 도매업체는 약 4000곳 수준으로, 같은 시기 의약품 제조소가 300여곳 정도인 것에 비교하면 10배 이상 많은 규모다.

이 때문에 각 업체가 사용하는 전산 방식·재고관리 방식도 제각각이다. 일부 대형 도매업체는 자체 재고 관리 시스템을 갖추고 있기도 하지만, 중소 도매업체는 수기 관리·부분 전산화 등 수준이 크게 달라 재고 데이터를 표준화하기 어렵다.

시스템도
제각각

이처럼 도매업체가 급증한 이유는 여러가지 요인이 있다. 그중 의약품 도매업 진입장벽이 낮다는 점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의약품 도매업은 일정한 시설 기준·전문 인력 요건 등 법적 조건을 충족하면 비교적 쉽게 영업이 가능하다.

제조업과 달리 설비투자 규모가 크지 않기 때문에 중소 규모의 업체도 시장에 진입할 수 있어, 도매업체 수가 꾸준히 늘어났다.


지역 단위의 공급 구조가 강하게 형성된 점도 도매 난립을 부추겼다. 약국은 대부분 인근 지역 도매업체와 거래를 유지해 왔고, 각 지역별로 공급망을 확보하기 위해 도매업체가 세분화돼 설립됐다. 그 결과 전국에 소규모 도매업체가 촘촘하게 분포하는 형태가 만들어졌다.

병·의원·약국의 의약품 구매 구조가 도매 중심으로 고착된 점도 영향을 미쳤다. 제약사로부터 직접 공급받기보다 도매업체를 통해 주문·결제·배송을 처리하는 방식이 오랫동안 유지되면서, 도매업체가 자연스럽게 시장의 핵심 공급망 역할을 맡게 됐다. 이 과정에서 신규 도매업체가 계속 시장에 진입했다.

유통 마진 구조가 도매업체 생존을 가능하게 한 점도 난립을 만든 배경으로 꼽힌다. 약국이 여러 도매업체와 동시 거래하는 관행 속에서, 도매업체들은 경쟁적으로 할인·물량 제공 등을 내세워 거래처를 확보해 왔고, 이 과정에서 규모가 작더라도 일정 수준의 거래만 유지하면 영업 지속이 가능했다.

이 같은 요인들이 누적되면서 국내 의약품 도매업은 제조업 대비 매우 많은 사업자가 존재하는 구조로 고착됐다.

이처럼 제약사에서 생산된 의약품이 약국에 도착하기까지 여러 단계를 거치고, 각 단계마다 운영 방식이 달라 통합적인 관리가 어렵다는 점이 현재 의약품 유통 구조의 가장 큰 특징이다. 바로 이 구조적 특성이, 품절 사태가 반복되는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도매업체 4000곳 재고 파악 어려워
유통구조 불투명해 편법행위 반복

의약품 품절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인기 품목을 둘러싸고 도매업체와 약국 간 ‘선점 경쟁’이 반복되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특정 감기약·해열제·항생제처럼 수요가 몰리는 품목은 도매 단계에서 물량이 확보되자마자 바로 소진되는 경우가 많아 약국에서는 정상 공급이 이뤄지지 않는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

도매업체가 먼저 확보한 물량부터 우선 배정하면서, 일부 대형 거래처로 공급이 집중되고 중소 약국은 주문 자체가 어려워지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것이 이른바 ‘쟁여두기’, 즉 재고를 비축해두는 관행이다. 특정 약이 품절될 가능성이 높다는 소문이 돌면, 도매업체뿐 아니라 일부 약국까지 앞다퉈 평소보다 많은 물량을 주문해 보유하려는 경우가 생긴다. 수요보다 심리적 불안이 앞서면서 재고 편중이 더 심해지는 구조다.

의약품 품목별 공급 불안정이 길어지면서 이른바 ‘끼워팔기’ 문제도 다시 불거지고 있다. 끼워팔기는 특정 인기 약을 주문할 때 다른 약까지 함께 구매하도록 요구하는 방식으로, 업계에서는 오래전부터 문제로 지적되돼온 관행이다.

공급이 불규칙해지자 일부 도매업체가 흔한 품목이나 판매가 빠르지 않은 품목을 같이 구매해야만 인기 약을 공급하겠다는 조건을 제시하는 경우가 많아진 탓이다.

지난 5월에는 GLP-1 계열 비만치료제 삭센다 공급이 부족해지자, 한 유통업체가 상대적으로 재고가 충분한 위고비와 묶어 판매했다는 논란이 있었고, 약사회도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업계에서는 이런 행위가 공급망 왜곡을 심화시키고, 정상적으로 약을 확보할 권리가 있는 약국에까지 불이익이 돌아가게 한다는 비판 목소리가 나온다.

심지어 최근에는 소문을 만들어 품절을 시키는 이른바 ‘가짜 품절’ 문제도 생기고 있다.

실제로 한 도매업체 영업사원이 “추석 이후 특정 진해거담제 시럽이 품절될 수 있다”는 문자메시지를 약국 여러 곳에 발송했다. 해당 문자가 발송된 뒤 약국 주문이 폭증했고, 이후 해당 제품은 실제로 품절됐다. 유통업체는 개인 일탈이라고 해명했지만, 약사회는 “소문이 품절을 만든 전형적인 가짜 품절 사례”라고 규정했다.

판치는
편법행위

이 같은 편법행위들이 발생하는 근본은 재고·유통 정보가 투명하게 공유되지 않는 데에 기인한다. 어느 도매처에 재고가 남아 있는지, 실제 공급이 중단된 것인지 약국이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소문이나 문자 한 통이 시장 전체의 불안으로 이어지고 결국 품절 상황을 현실화시키는 것이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실제 품절인지, 일시적 부족인지조차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 환경이 불필요한 혼란을 키우고 있다”며 “유통구조 문제만 해결된다면 이런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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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힘 축출’ 가시화 한동훈 광야에 서나

‘국힘 축출’ 가시화 한동훈 광야에 서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 가족의 당원 게시판 연루 의혹 가능성을 사실로 확정 짓고 있다. 같은 당 장동혁 대표도 한 전 대표 축출 의지를 공개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상황에서 한 전 대표는 점점 광야로 내몰리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지난 2일,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사실상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 축출 의지를 드러냈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를 직접 겨냥한 것은 아니었으나 ‘걸림돌’이라고 호칭했다. “제거돼야 통합 가능” 장 대표는 이날 “당내 통합에 걸림돌이 있다면 제거돼야 대표가 통합을 이루는 공간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표는 개인적 감정에 따라 움직이거나 결정하는 자리가 아니”라며 “당원과의 관계를 해결해야 할 당사자인 어떤 걸림돌은 그걸 해결하지 않고는 연대·통합을 함부로 얘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최근 국민의힘의 주요 화제 중 하나는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됐다”는 당원 게시판 의혹이다. “한 전 대표 가족들의 명의를 이용한 아이디로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 비난 글을 다수 작성했다”는 것이 핵심이다.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30일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당무감사위는 이날 “비난 글을 작성한 문제 계정들은 한 전 대표 가족 5인의 명의와 같고, 전체 87.6%는 2개의 IP로 작성된 여론조작 정황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언론 보도 후 연루자들의 탈당·대규모 게시글 삭제가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 이호선 당무감사위원장도 별도의 자료를 발표했다. 그는 “해당 IP를 사용한 계정 10개 중 4개는 같은 휴대전화 뒷번호·같은 선거구(서울 강남병)을 공유한다”며 “동명이인이 이 모든 조건을 우연히 공유할 확률은 사실상 0%고, 탈당 시점도 4일 이내로 집중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문제는 당 대표 본인·가족 명의 계정을 이용해 다수 당원이 지지하는 것처럼 위장한 것”이라며, “당심을 왜곡한 후 언론을 통해 확대 재생산해서 일반 여론까지 움직이려 했다면 드루킹 사건보다 더 심각한 범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당원 게시판 의혹을 드루킹 사건과 비교했던 사람은 장예찬 여의도연구원 부원장이다. 장 부원장은 지난달 15일 임명된 후 장 대표의 측근으로 분류되고 있다. 그는 지난 2024년 11월 이 사건을 일컬어 ‘온가족 드루킹’ 혹은 ‘한가족 드루킹’ 등 표현을 사용하면서 한 전 대표를 비난했다. 장에 한은 당내 통합 걸림돌 취급 “게시글, 드루킹 사건보다 더 심각” 한 전 대표와 가족을 강하게 비판한 장 부원장이 사용하는 표현을 위원장 발표 자료에 담은 것을 봐선, 이날 당무감사위의 발표는 “국민의힘에서 한 전 대표를 확실하게 내보내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당무감사위에 따르면, 한 전 대표에게 소명을 요구하는 질의서를 보냈지만,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한 전 대표는 방송 출연으로써 하루 격차를 두고 상반된 의견을 냈다. 그는 지난달 30일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에 출연해 “당시엔 저와 제 가족에 대한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 게시물이 당원 게시판을 뒤덮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제 가족이 익명 보장된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윤 전 대통령 부부에 대한 비판적 사설·칼럼을 올렸단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고 말했다. 한 전 대표는 이날 “가족이 게시물을 올렸다”고 처음 인정하면서도 “저는 글을 쓴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가족 명의로 게시물을 올리는 게 비난받을 일이라면 가족이 아닌 저를 비난하라고 말하고 싶다”면서도 “제가 제 이름으로 글을 쓴 게 있는 것처럼 발표한 것은 명백한 허위 사실”이라고 반박했다. 한 전 대표는 다음 날 조작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위원장이 ‘동명이인 한동훈’ 게시물을 제 가족 게시물인 것처럼 조작해서 발표했다”면서 이 위원장에 대한 법적 조치를 예고했다. 이어 “게시물 작성 시기는 제가 정치를 시작하기 전·최근 등 무관한 것을 대표 사례라고 조작해 발표했는데, 저는 당원 게시판에 아예 가입하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이런 가운데 장 대표는 지난 7일 국민의힘 당사에서 진행된 ‘이기는 변화’ 기자회견에서 윤 전 대통령이 자행한 12·3 비상계엄 사태에 대한 대국민 사과를 했다. 장 대표는 이날 “12·3 비상계엄은 상황에 맞지 않는 잘못된 수단으로써, 국민께 큰 혼란·불편을 끼쳤고, 당원께 큰 상처가 됐다”며 “국정 운영의 한 축이었던 여당이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한 책임이 크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어 “그 책임을 무겁게 통감하고,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 국민의힘이 부족했으니, 잘못·책임은 국민의힘 안에서 찾겠다”면서 “국민의힘은 오직 국민 눈높이에서 새롭게 시작하겠으니, 과거의 일은 사법부의 공정한 판단·역사의 평가에 맡겨놓고, 계엄과 탄핵의 강을 건너 미래로 나아가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당명 개정 추진 의사도 밝혔다. 장 대표의 이날 기자회견을 놓고, 일각에선 “윤 전 대통령과의 절연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어 윤 전 대통령을 강하게 지지하는 강경 보수 유튜버 고성국씨가 자신의 유튜브 채널 ‘고성국 TV’에 출연한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에게 입당 원서를 직접 전달하는 형식으로 국민의힘에 입당했다. 이에 대해선 “장 대표가 국민의힘 안에 강경 보수 세력을 끌어들여 세력화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있다. 이어 “고씨를 입당시킨 것과 장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대국민 사과는 모순 아니냐”고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고씨는 평소 한 전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는 의견을 공개적으로 밝혀왔다. 이날 김 최고위원도 고씨의 입당 원서 작성을 지켜보면서 “혹시 당원 게시판에 글 올리시면 들통난다”는 등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거를 타선 없는 국힘? 정의당 박원석 전 의원은 지난 6일 MBC 라디오 <권순표의 뉴스 하이킥>에 출연해 “국민의힘이 한 전 대표 세력을 축출하고, 완전히 윤 어게인 세력의 당으로 만들어 훨씬 더 극우화된 정당으로 가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미 고씨와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입당했고, 윤 전 대통령 변호인 김계리 변호사도 곧 입당 심사를 통과할 것으로 보인다”며 “국민의힘은 거를 타선이 없는 정당이 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국민의힘이 한 전 대표를 내보낼 것”이라는 예측은 “한 전 대표에겐 뚜렷한 정치적 기반이 없는 것 아니냐”는 평가로부터 비롯된다. 한 전 대표의 핵심 기반은 팬클럽 ‘위드후니’다. 위드후니는 40대 이상 여성 중심으로 구성돼있고, 활동하는 노년 여성도 다수다. 하지만 선거는 결국 지역 기반으로부터 비롯된다. 한 전 대표의 가장 큰 정치적 약점으로는 지역 기반이 없다는 것이 주로 거론된다. 한 전 대표의 정치 기반에 대해선 ‘중도층·수도권 화이트칼라 계층에서 일정한 지지를 얻고 있다’는 분석이 많았다. 여론조사기관 미디어토마토가 지난 4일 <뉴스토마토> 의뢰로 지난 1일부터 이틀 동안 만 18세 이상 중도 성향을 지닌 전국 18세 이상 남녀 51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중 15%는 보수 진영을 이끌면 가장 두려운 상대로 한 전 대표를 지목했다. 하지만 “한 전 대표가 중도층을 국민의힘으로 유도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그 객관적 지표는 지난 2024년 총선이다. 당시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겸 총괄 선거대책위원장으로서 총선을 지휘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108석만 겨우 건지는 참패를 당했다. 한 전 대표는 당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과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를 묶어 ‘이조심판론’을 주장하면서 “야당이 2/3 의석을 차지하지 못하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일각에선 “선거에서 이기려면 중·수·청(중도·수도권·청년)을 잡아야 하는데, 왜 안 하느냐”며 비판했다. 당시 국민의힘은 서울 전체 48석 중 11석을 차지했고, 인천·경기 60석 중 6석만을 차지했다. 국민의힘 지도부가 “한 전 대표가 수도권·중도층에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나올 수 없는 총선 결과”라고 판단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중도층 영향력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일각에서 주장했던 ‘장·한·석(장동혁·한동훈·이준석)’ 연대 성립 가능성을 부정했다. 그 이유도 한 전 대표였다. 장 대표는 “개혁신당과의 연대에 대한 표현에 특별히 문제 삼지 않겠다”면서도 “당내 인사와 어떻게 정치를 풀어가느냐는 문제에 왜 연대란 이름을 붙이는 건지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당내 인사’도 한 전 대표를 뜻한다. 따라서 장 대표의 지난 2일 발언한 “당내 통합 걸림돌을 제거해야 대표가 통합을 이루는 공간이 생길 것”에서 ‘걸림돌’이 한 대표라면, ‘통합’ 범위엔 개혁신당과의 연대가 포함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국민의힘과 개혁신당은 지난달부터 통일교 특검법을 함께 추진하고 있다. 장 대표도 “자강을 논하는 단계에서 연대를 논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면서도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 자체를 부정하진 않는다. 개혁신당은 이준석 대표가 국민의힘 소속이었을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친윤(친 윤석열)계와의 갈등 때문에 당원권 정지 6개월 징계를 받은 후 탈당해 창당됐다. 개혁신당 지지자들은 당시 과정에서 쌓인 앙금을 잊지 않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 이후 자멸했기 때문에 더욱 조심스럽다. 일각에선 장 대표가 한 전 대표를 축출한 후 강경 보수 세력을 당내 세력화해 ‘자강’을 이룬 후 개혁신당과의 연대에 나설 가능성을 제기한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6월 대선에서 ▲서울 41.55% ▲경기 37.95% ▲인천 38.44% 등을 득표했다. 약 12% 이상의 부족분을 중도층으로부터 얻어와야 한단 사실을 모를 가능성은 낮다. 당시 이 대표는 ▲서울 9.67% ▲경기 8.84% ▲인천 8.74% 등 득표했다. 개혁신당 지지자들은 개혁보수·중도 제3지대에 두텁게 포진해 있다. 국민의힘으로선 개혁신당이 확보한 8~9%의 지지가 필요하다. 중도층의 지지를 얻는 게 확실한지 아직 선거에서 검증되지 않은 한 전 대표와 달리 이 대표는 대통령선거에서 거둔 실적이 뚜렷하다. 장 대표는 “국민의힘 최대 아킬레스건인 중도·수도권 공략을 개혁신당과 이 대표의 힘을 빌려 해결하겠다”고 생각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 수도권 영향력 의문…이준석으로 대체? 지방선거 앞두고 신당 창당 가능할지 의문 국민의힘이 한 전 대표를 중징계하거나 한 전 대표가 탈당하면, 한 전 대표의 운신 폭은 매우 좁아질 수도 있다. 정치의 중심은 국회라서 총선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둬야 정치적 영향력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오는 6월 지방선거는 말 그대로 ‘지방선거’다. 함께 진행되는 재보궐선거는 현시점에선 ▲인천 계양을 ▲충남 아산을 ▲경기 평택을 ▲전북 군산·김제·부안갑 등 4곳이 확정됐다. 지방선거 출마를 선언한 의원들의 지역구도 가능성이 있지만, 후보로 확정된 의원만 사퇴해 재보선을 치른다. 그 외 의원의 공직선거법 위반 재판이 진행 중이라서 재보선을 치를 가능성이 있는 지역구로는 3곳이 거론된다. 이 정도 규모의 선거에서의 선전을 바라보고 창당하는 것은 모험에 가까우며, 동력이 얼마나 될지 확인하기도 어렵다. 국민의힘 친한(친 한동훈)계 의원들이 모두 한 전 대표의 정치 행보에 무조건 동참할 것으로 기대하기도 쉽지 않다. 지역 구도가 특히 큰 힘을 발휘하는 한국 선거에서 각각 호남·영남을 지역 기반으로 둔 민주당·국민의힘과 달리 한 전 대표는 독자적인 지역 기반을 갖추고 있지도 않다. 그와 비슷한 이 대표도 젊은 유권자들이 다수 거주하는 데다 민주당·국민의힘에서도 모두 후보를 공천한 경기 화성을에서 3자 구도를 만들어 승리했다. 특히 지방선거·재보선은 대선·총선에 비해 투표율이 낮은 만큼 보수성이 강하며 그만큼 바람을 일으키기도 어렵다. 한 전 대표는 광야에 설 가능성이 크지만, 신당 창당은 동사·벼랑 끝에 서는 것과 비슷할 수 있다. 한 전 대표의 절정은 12·3 비상계엄 사태였다. 당시 한 전 대표는 계파 소속 의원들과 함께 국회에 진입해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다. 이어 윤 전 대통령이 숙청을 시도하던 반대파 중 1명이 됐다. 하지만 한 전 대표의 절정은 여기서 끝이었다. “한 전 대표가 가족 관리에 실패했다”는 취지의 당원 게시판 의혹은 12·3 비상계엄 사태 이전 한 전 대표를 서서히 옥죄고 있었다. 하지만 12·3 비상계엄 사태 발생 이후 한 전 대표는 비상할 수 있었다. 그는 한덕수 당시 국무총리와 ‘총리·여당 당정 협력 담화’ 형식의 일명 ‘한덕수·한동훈 체제’ 성립을 시도했다. 한덕수·한동훈 체제는 각계각층의 강한 비난 때문에 실제로 성립되진 못했다. 이후 한 전 대표는 친한계 일원이란 평가를 받는 진종오 의원을 포함한 최고위원 4명이 전원 사퇴해 지도부가 붕괴하는 상황을 겪었다. 한때 핵심 측근이었던 장 대표는 국민의힘 대표로서 한 전 대표 퇴출을 주도하고 있다. 따라서 현 상황으로 이어진 한 전 대표 최대의 패착은 2024년 12월11일 장 의원이 입을 굳게 다물고 당 대표실을 나갈 때, 문을 잡고 미소 지었던 순간이다. 폭발까지 도화선은? 폭발이 일어날 때 트리거는 하나다. 하지만 폭탄까지 가는 도화선은 여러개일 수도 있다. 트리거가 터져 폭발이 일어나면, 폭발까지 가는 도화선도 모두 다 터진다. 장 대표는 총선이 아닌 지방선거·재보선을 앞두고 그 트리거를 만지고 있다. 트리거가 당겨지면 한 전 대표는 광야에 선다. 한 전 대표는 과연 광야에 서게 될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