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셀러 쓰는 대필 작가의 세계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1.11.09 10:25:22
  • 호수 134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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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써주면 1000만원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다. 출판 시장에서 중요한 업무를 하는데도 이름을 남기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대필 작가다. 베스트셀러 절반 이상은 대필 작가의 손을 거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창작물에는 제작에 참여한 모든 사람의 이름이 기록된다. 영화 엔딩 크레딧에 스태프 이름이 적힌 자막이 올라오는 것처럼 말이다. 스태프는 창작물에 적힌 자신의 이름을 보고 사명감을 가진다. 하지만 영화와는 달리 책에는 대필 작가의 이름이 판권에 보이지 않는다. 

에세이 인기

최근 아이돌, 배우, 가수 등 다양한 직군의 연예계 스타가 책을 출간하고 있다. 종류도 다양하다. 소설, 시나리오, 자기계발서, 요리책 등 여러 분야의 책들이 쏟아지고 있다. TV, 유튜브 등 화면을 통해서만 볼 수 있었던 인기스타가 책을 통해 팬들과 소통하면서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일반인이 경험하지 못한 연예인의 삶을 녹여내 자전적 이야기를 담는 에세이가 인기가 많다. 

물론 글을 쓰는 전문 작가가 아닌 이상 책 한 권을 써내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책 한 권의 분량은 200자 원고지 600매. 글자 수는 약 12만자 정도 되며, A4 용지 70~80페이지가 된다. 시간이 금쪽 같은 연예인에게 최소 몇 달에서 1년 가까이 글 쓰는 것에만 집중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


대필 작가는 ▲출판사와의 만남 ▲계약 ▲집필 총 세 단계를 거쳐 작업이 진행된다. 출판사가 책을 출간하고 싶다면 원저자와 협의를 한 뒤 콘셉트에 맞는 대필 작가를 물색한다. 출판사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인맥을 총동원해 유능한 대필 작가를 알아본다.

그렇다고 해서 유능한 대필 작가가 모든 장르를 잘하는 건 아니다. 대필 작가 세계에서도 분업화·전문화돼있다. 예를 들면 에세이 전문 대필 작가에게 경제 입문서를 맡기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는 뜻이다. 

출판사와 대필 작가가 연결되면 이메일과 전화 등을 통해 계약서 내용을 조율한다. 송달 역시 이메일과 등기우편을 통해 이뤄진다. 계약 형태는 ‘출판(인세) 계약서’ ‘출판권 설정 계약서’가 아닌 ‘원문 계약서’ ‘집필 계약서’ ‘외주 계약서’ 등 변형된 형태다. 

집필 절반 이상 남의 손으로
초고부터…실질적 저자 역할 

비밀유지 같은 구체적인 항목을 직접 기재하는 경우는 드물다. 문서화하지 않아도 ‘보안’은 이 바닥에서 불문율이다. 의뢰인(원저자)과 편집자, 대필자가 대면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 대필은 주로 자서전, 평전, 재테크, 자기계발서, 실용서, 에세이 등으로 이뤄진다.

추세에 맞춰 속성으로 펴내야 하는 특성 때문이다.

대필 기간은 원고 성격에 따라 다르지만, 평균적으로 3개월에서 6개월이다. 작업 과정도 ▲자료수집과 취재 인터뷰 ▲집필 ▲교정·수정작업 세 단계로 이뤄진다. 대필 작가는 실질적인 원저자의 몫을 하고 있다. 한 대필 작가는 3년여에 걸쳐 책에 대한 기초조사부터 현장답사, 아이디어 제공, 초고 수정까지 전담했다고 한다. 


그렇다고 대필 작가가 혼자 골방에 들어가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원저자나 출판사가 글을 의뢰하면 그들이 이야기해주는 것과 보내준 다양한 자료를 가지고 내용을 정리한다. 그 자료를 바탕으로 원저자와 5~6번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공동작업을 하는 것이다.

원저자의 깊은 생각을 일반인들이 보기 쉽게 풀어쓰는 작업이다.

대필 작가 수입은 장르와 경력에 따라 편차가 매우 크다. 초보자 경우 연봉 1000만원이 채 안 된다. 하지만 경력이 오래될수록 연봉은 올라간다. 경력이 쌓이면 월 1000만원 이상 벌기도 한다. A4 용지 50매를 기준으로 희곡·영화 시나리오는 1500만~3000만원선, 단행본은 수백만원 선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A급 대필 작가’는 권당 1500만원에서 2000만원 사이로 훌쩍 뛴다. 대필 작가가 집필하는 데 있어 아무 자료가 없는 상태에서 무작정 원고를 써야 할 경우 액수는 좀 더 올라가기도 한다.

시나리오 3000만원 
단행본은 수백만원

하지만 대필 작가는 업계 관행으로 인해 계약된 책정된 원고료를 지급받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대필 작가의 저작권은 ‘법전’과 ‘서류’ 상에서만 해당한다. 실제 업계에서는 대필했을 경우 저작권은 원저자에게 완전 귀속시키는 것으로 계약조항에 넣는다.

혹여나 저작권법을 내세워 대필 작가가 소유 저작권을 주장한다면 저작권 시장에서 미운털이 박힌다.

한 정치인은 보좌관, 비서관으로 채용해줄 것처럼 대필을 시켜놓고, 선거 뒤 모르쇠로 일관하며 원고료 비용조차 지급하지 않았다고 한다. 

또 불법 대필에 수요도 아직 많이 남아있는 상태다. 불법 대필이란 논문, 법률, 공모전 대필 등을 말한다. ▲법률문서대필은 변호사법 위반 ▲논문은 업무방해죄 등에 해당한다. 한국 대필작가협회(이하 협회) 내에서는 논문, 사업계획서, 법률문서 대필은 하지 못하도록 규정돼있다.

임재균 작가는 대필 작가가 감수해온 불공정하고 불합리한 계약과 관행 때문에 2015년 협회를 만들었다. 대필 작가라는 직업을 양성화하고 대필 작업이 갖는 부정적인 편견을 없애기 위해서다. 

현재 소속 작가는 약 500여명으로 문단 작가는 물론 번역, 시나리오, 웹소설, 방송 분야에 작가들도 전업 혹은 부업 대필 작가로 일하고 있다. 이들 중에는 베스트셀러를 출간했던 작가도 있다.

대필 작가들의 이름이 공개되지 않는 이유는 한국 특유의 체면문화에 기인한다. 외국의 경우 대필 작가는 전문직으로 원저자와 함께 이름이 실린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대필’이라는 단어 자체에서 오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원저자에게 고스란히 전달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임 작가는 밝혔다. 


대다수 양식 있는 출판인들은 대필을 대중 소비사회의 필요악으로 인정하면서도 대필 여부를 밝히지 않는 것은 독자들을 속이는 사기행위라고 말한다.

양성화

최근 협회는 언론, 유튜브 활동 등 미디어에 노출하며 양성화를 꿈꾸고 있다. 협회 주도하에 표준 계약서도 생기면서 대필 작가가 민간 자격증도 등록하기 시작했다. 임 작가는 “앞으로 해외 대필 작가와의 네트워크를 강화해 국내보다 선진적인 북미, 유럽권의 대필 문화를 도입하고 싶다. 이후 협회 소속 작가들을 위한 1인 작업 공간을 마련하겠다는 목표도 있다”고 말했다. 
 

<9do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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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우리에게 추석은 차례를 지내거나 귀향을 하는 것이 익숙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차례를 지내는 비중은 줄어들고 MZ세대를 중심으로 긴 연휴를 활용한 여행, 단기 아르바이트, 자기계발 등을 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석에 차례를 지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 초반에 그쳤다. 절반 이상은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차례와 제사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게 된 셈이다. 알바 우선 통계청 조사에서도 명절 의례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를 지내는 대신 긴 연휴를 여행으로 보내려는 수요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행 중개 플랫폼 스카이스캐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7%가 이번 추석 연휴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응답했다. 특히 해외여행 비중이 크게 늘었다. 10년 전 대비 명절 여행에 긍정적인 인식이 37%에서 70%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인기 여행지는 일본(43.1%)이 1위였고, 이어 베트남(13.2%), 중국(9.6%), 태국(7.5%), 대만(6.2%) 순이었다. 도시별로는 일본 후쿠오카(20.2%)가 가장 높은 검색 비율을 기록했으며, 오사카(18.3%), 도쿄(15.4%), 방콕(8.9%), 타이베이(8.0%)가 뒤를 이었다. 여행을 가지 않고 명절 연휴를 일터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긴 연휴를 활용해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수요도 급증했다. 당근마켓과 같은 알바 커뮤니티와 플랫폼에는 “추석 알바 구합니다”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20대 청년은 “쉬는 날이 길어 잠깐이라도 일을 하려 한다”고 밝혔고, 한 대학생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물세트 포장 알바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특히 명절 기간에는 업무강도가 높아 평균 시급의 1.5배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명절 시즌 알바를 노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맞춰 구인·구직 플랫폼들은 ‘추석 알바 채용관’을 운영하며 수요를 모으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 도·소매점과 전통시장에서 단기 인력을 모집하고, 선물용 고기·과일 세트 포장, 택배 상·하차, 진열·판매 등의 일자리가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절반 이상 “안 지내요” 77%가 여행 계획 세워 지난해 추석 구인 구직 사이트 알바천국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53.9%)이 단기 용돈 벌이를 위해, 22.2%는 고물가로 인한 지출 부담 때문에, 18.2%는 여행 경비나 등록금 등 목돈 마련을 위해 명절 알바를 계획했다고 답했다. 이는 명절을 단순히 휴식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생계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계발하며 추석 나기’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일명 ‘혼추족’ 중에는 독서나 온라인 강의, 어학 공부, 자격증 준비 등에 연휴를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터디 카페와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이 증가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일부 출판사나 문화 기획사에서는 명절 연휴에 맞춰 북콘서트 같은 행사를 열기도 했다. 명절이 휴식 기간만이 아닌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양상은 가족 모임에도 영향을 받았다. MZ세대는 가족·친척 모임을 스트레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청년은 “친척들과 모이면 취업·결혼 얘기 등으로 잔소리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친척 모임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필요한 경우에만 가족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활동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연휴를 도심에서 보내는 ‘혼추족’을 겨냥해 유통·외식업계도 다양한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수도권 맛집 가이드, 추석맞이 전시·공연, 집콕형 OTT·게임 프로모션 등이 대표적이다. 편의점과 HMR(가정 간편식) 업체는 명절 한정 도시락·한상 차림 제품을 늘리고, 명절 기간 반값·카드 제휴 할인 등 단기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추석 선물 시장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굴비·한우·고급 과일 세트 등 전통 품목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실속형·소포장 선물세트가 늘었다. 대표적으로 대형마트에서는 고급 커피·차 세트, 수제 디저트처럼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소포장 구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과 자기계발이 더 유익해” 명절 스트레스 가족 모임 불참 온라인몰에서는 올리브 오일, 참기름, 견과류, 꿀 등 건강 지향 소품목 세트가 매출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속형·소포장 선물을 찾는 배경에는 고물가 부담과 1~2인 가구 증가가 있다.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고가 선물을 준비하기보다, 실용적이고 보관이 편리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명절을 함께 보내는 가족 규모가 줄면서 필요한 양만큼만 담긴 선물세트가 ‘부담 없는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가격 대비 효용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층도 이 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다. 모바일 선물하기 판매는 전년 추석 대비 두 배 이상 늘었고, 온라인몰도 같은 기간 선물세트 매출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편의점 앱을 통한 선물세트 매출은 연중 대비 100% 이상 신장세가 관측됐고, 패션·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선물하기 거래액도 두 자릿수 증가를 이어가고 있다. 마켓컬리는 추석 기간 한시 선물하기 서비스를 운영하며 홍삼·화장품 등 선물 품목을 확장했다. 명절 식문화 자체도 간편화 된 흐름이 뚜렷하다. 1인 가구 1012만명, 2인 가구 600만명으로 소규모 가구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대형마트의 간편 차례상 매출은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편의점의 냉장·냉동 HMR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했고, 명절 한정 도시락은 1인 가구 밀집 상권에서 판매 비중이 높았다. 이번 추석에도 이런 흐름에 맞춰 대형 마트는 간편 차례상·냉동 밀키트 대형 할인전을, 편의점 4사는 명절 도시락 출시와 제휴 할인행사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밀키트와 같은 간편식의 수요가 증가한 데에는 물가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설문에선 추석 전체 지출 예산이 평균 71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26%가량 늘었다는 응답이 나왔다. 지출 중에는 부모 용돈·선물 비중이 절반을 웃돌았고, 차례상 비용·내식 비용도 적지 않았다. 품목별로 과일·수산물·햅쌀·송편 등의 차례상 음식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수입 축산물 고려 비율도 늘었다. 이 때문에 “차례상 형식을 간소화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선택의 시대 추석을 준비하는 한 30대 가정주부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차례를 안 지내거나 설에 한 번만 지내는 집이 많다. 고물가 시대에 음식을 다 준비하는 것은 부담되는 것 같다. 그런 형식적인 것은 간소화하더라도 차례를 지내는 행위에 의미가 있으니 상관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