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차철우 기자 =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주술 논란으로 비판을 받고 있다. 윤 전 총장은 반격에 나섰지만 오히려 역풍이 불었다. 캠프도 해명에 나섰지만 연일 비판이 쏟아진다.
우리나라 유력 정치인 중 상당수가 종교와 상관없이 무속인 또는 역술인에 기댄다는 점은 공공연하게 알려진 이야기다. 하지만 정치인의 무속신앙에 대한 맹신은 국민들에게 비판받을 수밖에 없다. 나라를 이끄는 데 관련성이 없는 요소기 때문이다.
밀접
과거에도 정치인들이 사주나 점괘에 의지한다는 이야기는 많이 전해지곤 했다. 심지어 2016년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이이재 전 의원이 종교위원장을 역임할 당시 주선으로 국회의사당에서 굿판이 벌어진 적도 있다.
당시 국회 의원회관에서 병신년 합동 국운 발표회를 가지며 4마당으로 병신년 운맞이 재수굿이 펼쳐졌다. 이 전 의원은 지인의 요청을 받고 장소만 제공했을 뿐이라고 해명했지만 굿판이 벌여진 장소가 국회라는 점에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그뿐만 아니다. 정치권에는 풍수를 활용한 이장 열풍이 분 적도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대선에서 3번 패배한 뒤, 4번째 대권 도전을 앞둔 시점에 부모님 묘소를 이장한 일화는 유명하다.
3년 뒤 김 전 대통령은 15대 대통령선거에 당선됐다. 전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도 총 3번의 이장을 한 경험이 있다. 그는 대선에서 패배했다. 최근에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가 지난해 부모 묘소를 이장해 관심을 받았다. 이 전 대표는 고향인 전남 영광군에 부모 묘소가 있다.
그러나 영광군은 해당 토지는 묘지로 사용할 수 없는 곳이라며 과태료를 부과했다. 당시 이 전 대표는 현행법을 지키기 위해 이장했다고 해명한 바 있다. 이렇듯 정치권과 무속은 비교적 가까운 존재로 여겨진다.
최근 정치권에도 무속 정치 논란이 도마 위에 올랐다. 논란의 시작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다. 지난달 국민의힘 3차 토론 당시 윤 전 총장이 손바닥 가운데 왕(王)을 한자로 쓰고 토론에 임했던 게 포착되면서다.
이후 4차 토론에서도 윤 전 총장이 손바닥에 왕 자를 쓰고 나온 사실이 밝혀지면서 ‘무속인 개입설’이 논란으로 떠올랐다. 국민이 지켜보는 TV토론에서 왕 자가 쓰인 윤 전 총장의 손바닥이 비춰지자 논란이 격화된 것으로 보인다.
윤 전 총장 캠프는 즉각 해명에 나섰다. 동네 주민이 격려 차원에서 적어줬고, 지워지지 않았다고 해명했지만 옹색한 변명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해명이 오히려 빌미를 제공하면서 국민의힘 대선후보들의 공격이 연일 이어졌다. 국민의힘 홍준표 의원과 유승민 전 의원은 윤 전 총장을 향해 ‘부적 선거’라며 날을 세웠다. 이미 앞선 상황에서 윤 전 총장은 과거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을 만나면서 역술인을 데리고 갔다는 보도로 인해 논란을 산 적이 있다.
궁지에 몰린 윤 전 총장은 홍 의원을 향해 반격을 시도했다. 특정 후보가 속옷까지 빨간색으로 입고 다닌다고 소문이 났다며 해당 사안으로 정치 수준을 떨어뜨린다고 반박한 것.
여야 막론하고 비판 쏟아져
초기 대응 실패로 논란 격화
구체적으로 이름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홍 의원을 겨냥한 대목이다. 이어 윤 전 총장 측은 홍 의원의 개명을 두고 비판하며 이른바 무속신앙 공방으로 치달았다.
실제로 홍 의원은 출생 당시 홍역을 앓은 뒤 무당이 굿을 하고 개명했다. 홍판표로 이름을 고친 뒤 당시 검찰청 선도위원이던 역술가가 판과 뜻이 같은 준자를 제안해 현재 이름으로 개명한 것으로 전해진다.
윤 전 총장의 일격에 홍 의원 측도 재차 반격에 나섰다. 윤 전 총장의 부인 김건희씨의 개명을 거론하기까지에 이른 것. 유 전 의원은 미신을 믿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안 된다고 윤 전 총장을 향해 언급했다.
여권도 함께 비판에 가세했다. 민주당 송영길 대표는 “국민을 위해 가장 봉사해야 될 1번 일꾼인 대통령을 왕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라며 윤 전 총장을 비판했다.
해당 사안에 대해 정치 전문가들은 윤 전 총장에게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는 반응이다. ‘주술적 의미’ ‘무속 정치’ 등은 논란이 번지기 전에 대처가 가능한 사안이었다는 점에서다. 일각에서는 윤 전 총장의 이미지 실추가 필수 불가결하다는 관측을 내놨다.
연속된 논란은 윤 전 총장에게 악재로 다가올 가능성이 크다. 이전까지의 실책이 누적되는 효과 때문이다. 정치권에서는 윤 전 총장이 실수를 보완해야 본선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만 캠프 자체에서는 해당 문제를 큰 문제로 인식하지 않는 모양새다. 윤 후보 지지율이 선두권을 유지하고 있어서다. 오히려 약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게 캠프의 자체 평가다.
입장 역시 단순 해프닝이라는 기조가 강하다. 캠프 측은 윤 전 총장을 지지하는 어르신들이 힘내라는 응원 차원에서 적어주신 것이라며 주술적 의미는 없다고 해명했다. 캠프는 “불편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지우고 갔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무속 논란은 윤 전 총장뿐 아니라 국민의힘 전체에도 악재가 됐다. 국민의힘 스스로 무속신앙 공방에 빠져들었다는 비판이 나와서다.
또 정책 등을 논해야 하는 토론회에서 때 아닌 무속 논쟁으로 후보 전체가 국민에게 실망감을 안겨줬다는 지적도 나왔다. 정권교체를 희망하고 있는 지지층의 이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에 대해 민주당 윤호중 원내대표는 “경선에서 정책 경쟁은 사라지고 주술 논쟁만 한창”이라고 일갈했다. 사실상 국민의힘 후보 전체에 대한 비판인 셈이다.
해프닝?
같은 당끼리의 공방이 끊이지 않자, 결국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직접 등판했다. 이 대표는 “이런 식의 이슈 메이킹은 안 된다”며 “윤 전 총장이 국민의힘 후보 중 지지율이 가장 잘나오는 후보로 분류되니 대중, 언론의 관심이 뜨겁다. 메시지 관리가 필요해 보인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