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이후 달라진 명절 풍경

2년째 이산가족…이번에도 비대면 한가위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민족 최대 명절인 추석이 다가왔다. 하지만 ‘가족애, 귀성길 정체, 명절 특수’ 등 수식어가 실종됐다.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변화다. 이에 ‘비대면 추석’이라는 새로운 풍속도가 생겨나고 있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됨에 따라 명절 풍경이 달라졌다. 이에 따라 곧 다가올 추석 풍경도 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운 
가족들

이미 우리는 한차례 코로나19 속에 추석을 지낸 바 있다. 지난해 추석, 코로나19로 추모공원이나 성묘 등 방문이 제한돼 온라인으로 차례상을 차리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코로나19 재확산 여파로 인해 추석 연휴 기간에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추모공원을 폐쇄했고 이용을 제한하기 위해 사전 예약제로 운영했다. 

온 가족이 모이는 풍경이 보기 어려워진 만큼 직접 벌초를 하는 이도 줄었다. 따라서 벌초 대행 서비스를 이용하는 이가 늘었다. 실제로 지난해 전국 산림조합에 접수된 벌초 대행 신청은 5만건에 육박했다.


귀성길 풍경도 바뀌었다. 한국도로공사는 모든 고속도로 휴게소의 매장 내 취식을 금지했고, 포장만 허용했다. 이에 휴게소 내 모든 음식점은 포장 판매로 운영됐다. 

이 밖에 도로공사는 휴게소의 입구와 출구를 구분해 운영하고 화장실 등 고객이 많이 이용하는 곳에서는 전담 안내요원을 배치해 발열 체크를 했다. 

고속도로 통행료는 유료로 운영됐다. 그동안 명절 때마다 통행료가 면제돼왔던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정부는 이 기간 벌어들인 통행료 수입을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온라인 차례와 릴레이 성묘 유행
바뀐 귀성길…한산한 도로·휴게소

올해 설날도 마찬가지였다. 화상회의 앱을 통해 차례를 지내는 가정이 늘었고, 모임을 자제하는 분위기 속에서 ‘홈설’ ‘모바일 세뱃돈’ ‘릴레이 성묘’ 등이 새 풍속도로 자리 잡았다.

온라인으로 친척을 만나거나 차례를 지내는 집이 등장했고, 우편으로 세뱃돈을 보내는가 하면 앱으로 배달 쿠폰을 선물하기도 했다.  

설 기간에 광주광역시 영락공원, 망원묘지공원의 묘지·봉인시설 등이 임시 폐쇄됨에 따라 ‘e하늘장사정보시스템’ 서비스가 제공되기도 했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려 명절 음식이라도 나눠 먹자며 택배로 음식을 보내는 사람이 증가했다. 


사람들도 이에 화답했다. 전국 지방 곳곳에서는 구수한 사투리로 ‘아들, 딸, 며느리야! 이번 추석에는 고향에 안 와도 된당께~’라는 현수막이 붙고, 자녀의 고향 방문 자제를 당부하는 자발적인 캠페인이 벌어지기도 했다.

올 추석도 전년과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추석에는 국내 여행이나 친척 모임보다는 직계 가족과 집에서 시간을 보내려는 수요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안 가는 
못 가는

티몬이 고객 600여명을 대상으로 ‘추석 관련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 4명 중 3명이 추석 연휴 기간 ‘가족과 함께 집에서 쉬겠다’고 답하는 등 명절 트렌드가 급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에서 응답자 4명 중 3명은 ‘추석 연휴에 가족과 함께 집에서 쉬겠다’고 연휴 계획을 밝혔다. 연휴를 이용해 여행을 떠난다는 답변은 4%에 불과했다. 코로나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이동을 자제하는 분위기였다.

주요 이유로 응답자의 78%가 ‘코로나19 델타 변이의 확산’을 꼽았다.

비대면과 직계가족 단위별 경향도 두드러졌다.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53%) ‘직계가족과 조촐하게 추석을 보낼 것’ 이라 답한데 이어, 이전과 같이 가족·친척과 함께 명절을 보내겠다는 응답은 7%로 낮았다.

코로나19로 명절 문화 자체가 바뀔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많았다. 응답자의 48%가 ‘직계가족만 모이는 자리로 변화할 것’이라고 답했다. 

또, 25%는 ‘개인과 가족을 위한 휴식 기간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 생각했다. ‘변화 없을 것’이라 답한 사람은 13%에 불과했다. 

올해도 
집에서

서울 중구에서 직장을 다니는 A씨는 “몰래 고향에 다녀올 수도 있지만, 혹시 확진되는 불상사가 발생해 가족은 물론 직장에도 피해를 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선다”며 “올해 설이 마지막 언택트 명절이 되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경기도 부천에 사는 B씨는 “설 연휴 기간에 본가도 처가도 안 간다”며 “북적이는 명절을 피해 본가는 먼저 가서 인사드리고 왔고, 처가는 연휴 전날에 가서 인사하고 올 계획”이라고 말했다.


서울 강서구에 사는 직장인 C씨는 “자차로 가자니 장거리 운전에다가 길이 막힐 것 같아 주저하게 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자니 혹시나 하는 불안감이 크다”고 밝혔다.

벌금을 물겠다는 각오로 고향 방문을 결심한 이들도 있었다. 비대면 명절이 작년 추석을 마지막으로 끝날 줄 알았지만,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코로나19 ‘N차 유행’이 여전해서다.

서울에서 세종으로 출퇴근하는 D씨는 “작년 추석에는 오지 말라던 엄마가 올해는 보고 싶으셨는지 언제 오느냐고 해서 가기로 했다”며 “최대한 바깥 이동 없이 가족들과 집에서만 연휴를 보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쳤다” 벌금 불사 고향 찾기도
정부 별도지침 예정 “검토 중”

정부는 추석 연휴 기간 적용할 별도의 방역조치를 내달 3일 발표할 예정이다. 지난 26일 박향 보건복지부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 방역총괄반장은 “최근 2개월 동안 이어진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가 폭발적 확진 증가는 막았지만 확진자 숫자가 줄지는 않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추석 연휴(9월20일~22일) 방역조치를 검토하고 있다. 박 반장은 “최근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2000명 이상이 세 번 나왔고 빠른 속도로 접종률이 늘어나고 있다”며 “추석이라는 인구 이동 요인이 있어서 그 이전에 방역 상황, 접종률, 확진자 추이 감안해서 추석에 맞는 조치를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정부의 추석 별도 방역 조치는 수도권 4단계, 비수도권 3단계 거리두기 상황에서 가족 간 만남에 대한 방역 규정 등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박 반장은 추석연휴 방역조치 발표 시점에 대해 추석 승차권 예매가 시작되는 오는 31일 전 발표될 것이라면서, 뒤늦은 방역조치 발표에 따른 승차권 예매 취소 등 혼란은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손영래 중수본 사회전략반장은 “다음 주말까지는 현재 거리두기 체계를 유지하기 때문에 그 이후 거리두기 체계, 추석 연휴에 어떻게 할 것인지 상황을 보면서 검토하고 있다”며 “다음 주까지 현재 거리두기 체계는 유지될 것”이라고 말했다.

4단계
그대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코로나19가 하루 속히 종식돼 얼굴을 직접 보며 함께하길 바라고 있다. 회사원 E씨는 “코로나가 끝나면 본가에 내려가 옥상에서 고기를 구워 먹으며 한동안 못했던 이야기를 원없이 할 것”이라며 “가족들이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해 함께 모여서 마이크를 잡고 싶다”고 말했다.

 

<ktikt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추석 앞두고… 서울시 ‘과대포장’과의 전쟁

서울시는 추석명절을 앞두고 과대포장으로 인한 환경오염 및 자원의 낭비를 막기 위해 백화점과 대형 할인점 등 유통매장을 중심으로 재포장 및 과대 포장을 집중 점검할 계획이라고 30일 밝혔다.

지난달 2일부터 시작된 이번 추석 명절 재포장 및 과대 포장 단속은 내달 30일까지 2개월간 진행될 예정이다. 서울시 25개 자치구와 한국환경공단,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이 합동 점검팀을 구성해 점검 및 단속을 시행한다.

단속 대상은 제과류, 주류, 화장품류, 잡화류(완구, 벨트, 지갑 등), 1차 식품(종합제품)이다. 포장공간비율(품목별 10%~35%이내) 및 포장횟수 제한(품목별 1~2차 이내)을 초과해 과대포장으로 적발되면 최대 3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할 예정이다.

만약 과태료 부과에도 시정되지 않아 추가 적발될 경우 2차 위반 시 200만원, 3차 위반 시 300만원의 과태료를 내야 한다.

백화점 등 유통매장 집중 점검
최대 300만원 과태료 부과 예정

점검은 ‘제품의 포장재질·포장방법에 관한 기준 등에 관한 규칙’에 따라 포장횟수가 과도하거나 제품에 비해 포장이 지나친 제품에 포장검사명령을 내려, 위반 여부를 판단한다. 예를 들어 제과류 포장의 공기(질소) 주입으로 부풀려진 부분에 대해 포장공간비율 적용하고 35% 이하(캔 포장 제품에 공기를 주입한 경우 20% 이하)로 한다.

시는 또 올 1월부터 시행된 ‘포장제품의 재포장 예외기준 고시’에 따라 제품판매 과정에서 또 다른 포장재를 사용해 제품을 재포장하는 경우 최대 3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할 계획이다.

재포장은 ▲생산·수입이 완료된 제품을 판매과정에서 추가로 묶어 포장하는 경우 ▲일시적 또는 특정 유통채널을 위한 N+1, 증정·사은품 형태의 기획포장 ▲낱개로 판매되는 포장 제품 3개 이하를 함께 다시 포장하는 경우를 말한다.

정미선 서울시 자원순환과장은 “과대포장은 불필요한 비용을 증가시켜 소비자 부담이 높아지는 것은 물론 자원낭비와 쓰레기 발생 등 환경오염 문제를 야기한다”며 “유통업체가 자발적인 포장재 사용 감축을 할 수 있도록 단속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태>


<기사 속 기사> 추석 물가 안정화 대책

정부가 추석 연휴를 앞두고 서민 생활과 직결된 물가 안정을 위해 가격이 급등한 계란, 돼지고기 등 주요 성수품 공급을 전년보다 25% 이상 확대한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위축된 내수경기를 되살리기 위해 9월 중 2차 비대면 외식할인 행사를 재개하고, 농축수산물 할인쿠폰 등을 활용한 대대적인 할인행사도 진행한다.

정부는 지난 2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제44차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를 열어 이 같은 내용의 추석 민생안정대책을 논의해 발표했다.

정부에 따르면 추석을 앞두고 농축수산물 등 주요 성수품 가격 상승과 코로나19 4차 유행 등의 영향으로 민생경제 어려움이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 추석 민생안정대책 논의
수요 늘면서 가격 상승 예상

소비자물가는 지난 4월(2.3%)부터 지난달(2.6%)까지 2%대 증가율을 보였고, 특히 농축수산물 가격은 올해 들어 10%대 안팎의 급등세를 보이고 있다. 주요 농축수산물 작황 개선으로 공급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지만 명절을 앞두고 수요가 늘면서 가격 상승 가능성이 제기된다. 따라서 정부는 서민 생활물가 안정을 위해 가용한 정책수단을 총동원한다고 강조했다.

추석을 앞두고 농축수산물 16대 성수품 일평균 공급량을 평시 대비 1.4배 늘린다. 총 공급량도 작년 추석 기간 대비 3만9000t 늘어난 19만2000t으로 확대한다. 주요 성수품 공급 시기도 추석 3주전인 30일로 작년보다 1주일 앞당겼다. 

농산물은 배추와 무 비축물량을 3배 이상 늘리고, 사과·배 계약 출하물량도 2배까지 확대한다. 가격이 급등하면 출하 잔량의 50%를 의무 출하하는 채소가격안정제 등 추가 정책수단을 동원한다.

축산물은 출하시기 조정 등으로 추석기간 중 소고기는 평년 대비 1.6배, 돼지고기는 1.25배 공급을 확대한다. 수산물도 추석 전(8월30일~9월18일) 시중 가격 대비 최대 30% 할인된 가격으로 정부 비축물량 9227t을 집중 방출한다는 방침이다. <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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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