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김설아 기자] ‘집에서 잠자던 초등학생을 이불째 안고 납치해 성폭행’ ‘어린 조카를 7년간 상습적으로 성폭행한 큰아버지’ ‘가출한 여중생에게 숙식을 제공하겠다고 접근해 성폭행한 40대’ ‘방학을 맞아 아르바이트를 하러 온 10대 조카에게 몹쓸 짓’. 최근 인터넷을 도배했던 성범죄 사건들이다. 어쩌다가 어린아이를 상대로 한 흉악범죄자들이 이토록 날뛰게 됐을까? 문제는 솜방망이 처벌에 있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잔혹한 성범죄가 터지고 있다. 동시에 아동 성범죄자를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기막힌 일이 있었다.
지난 7월 통영에서 초등학생을 납치해 성폭행하려다 살해한 김점덕. 그는 통영경찰서 유치장 보호실에서 면회 온 아내에게 “시간이 지나면 조용해지니까 힘을 내라. 혼자서라도 살 수 있게 돈을 벌어라”고 당부했다.
그는 알고 있었다. 아니 그 뿐만 아니라 모든 성범죄자들도 다 안다. 사건 당시에만 호들갑이다가 곧 시들해질 것이고, 적당히 감옥살이하다 집행유예로 풀려날 것까지.
짐승만도 못 한
인간들에게 고작…
지난 5일 친딸을 상습적으로 성폭행한 가장에게 내려진 벌은 징역 7년에 불과했다. 김모(38)씨는 지난 2010년 8월부터 올해 초까지 14살 친딸을 수차례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딸은 법정에서 “아빠가 내가 있는 데서 휴대전화로 음란 동영상을 보며 자위행위를 한 적도 있다”고 진술했다. 김씨는 이혼한 상태이며 김씨의 전 아내는 법정에서 “남편이 아동 포르노물 등을 보여 주며 변태 성행위를 요구한 게 주된 이혼 사유였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법정과 검찰 조사과정에서 “딸이 친오빠와 성관계를 갖다 들켜 야단치자 거짓말을 하고 있다”며 “이혼한 아내가 돈을 노리고 딸을 부추겨 나를 강간범으로 몰고 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재판부는 “친딸을 성욕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죄질이 아주 불량하고 반인륜적인 점, 범행을 부인하면서 가족을 거짓말쟁이로 매도하는 등 엄벌이 불가피 하다”면서도 결국 7년형을 내리는데 그쳤다.
지난 8월에는 9살 여아를 상습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70대가 증거 불충분 등을 이유로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서모(71)씨는 2004년 자신의 과수원에서 일하던 장애인 부부의 딸 A(당시 9세)양을 과수원 내 컨테이너박스로 유인해 성폭행하는 등 2010년까지 네 차례 성폭행 한 혐의로 기소됐다. 하지만 서씨는 재판에서 “20여년 전부터 당뇨를 앓아와 15년 전부터 발기가 전혀 되지 않았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성기 점까지 봤는데” 미성년 성폭행 혐의 70대 무죄
‘초범이라’ ‘술 먹어서’ ‘고령이라’ 등 황당한 감형이유
1심 재판부는 작년 6월 내린 판결에서 “피해자에 대한 진찰 결과, 처녀막이 이완됐고 주로 성교에 의해 전염되는 트리코모나스 질염이 있는 것으로 확인된 점, 피해자는 피고인의 성기에 점이 있다고 진술했는데 실제 피고인의 성기에 점이 있는 것으로 확인된 점 등을 고려하면 피고인이 피해자를 성폭행한 것이 아닌가 하는 강한 의심이 든다”고 판시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피해자는 성폭행 당시 5∼10분간 관계를 가졌다고 진술하고 있으나 법원이 병원에 의료감정촉탁을 한 결과, ‘피고인이 발기부전치료제를 복용하고도 발기가 전혀 되지 않는 점’ ‘고령인 점’ ‘당뇨병 합병증이 있는 점’ 등을 감안해 서씨에게 무죄를 선고하고,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명령 청구를 기각했다.
2심 재판부 역시 지난 2월 내린 판결에서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유일한 증거인 피해자 진술에 신빙성이 의심스럽고 범죄증명이 없어 무죄로 판단한 원심의 조처가 정당하다”며 1심을 유지했다.
피해자가 적극
거부 안 해서…
13세 미만의 아동 성폭행범에 대해선 10년 이상 최고 무기징역의 형벌이 내려지게 돼 있다. 하지만 실제 형량은 평균 징역 8년에 불과하다. 법원이 성범죄자의 전과나 피해자와 합의 여부, 범행 반성, 음주 상태 등을 반영해 형을 낮추기 때문.
일례로 지난 2008년 12월 만취 상태로 8살 나영이(가명)를 성폭행해 신체 기능 일부를 영원히 훼손시킨 조두순. 그는 1심 검찰 구형에서 무기징역을 받았다. 하지만 “술에 취해 온전한 상태가 아니었다”는 주장을 펴 최종 징역 12년형으로 줄었다. 당시 조두순의 형이 확정된 뒤 나영이 아버지는 “나영이가 성인이 될 때쯤 조두순이 형기를 마치고 출소하게 된다고 생각하면 끔찍하다”고 말했다.
드물긴 하지만 일정부분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린 경우도 있다. 작년 여름 서울중앙지법은 자신의 체육관에 다닌 여학생들을 성추행한 합기도체육관 관장 문모(33)씨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문씨는 1998년 성범죄로 소년부 송치 처분을 받은 일이 있는 사람이었다. 판결문에는 “체육관 지도과정에서 일정한 신체접촉은 발생할 수 있는 사정 등에 비춰 문씨가 계획적으로 추행했거나 성적 습벽에 의한 범행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피해자들이 적극적인 거부의사를 표시하지 않아 거부감을 갖지 않는다고 오인했을 수 있다”는 부분이 포함됐다. 문씨는 13세 여학생들을 무릎에 앉히고 신체 일부를 더듬는 등 추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아동 성범죄는 날이 갈수록 엽기적이고 흉악해지고 있지만, 아동 성범죄자에 대한 집행유예 선고 비율은 오히려 늘어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발생한 13세 미만 어린이에 대한 성폭력 범죄는 949건. 하루 평균 3명의 어린이가 성폭력에 시달리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중 절반 가까이가 감옥에 가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범죄자에 대한 전국 법원의 1심 선고 결과를 분석한 결과 13세 미만 어린이를 상대로 한 성범죄자 2명 가운데 1명은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마저도 1년 전에 비해 7% 포인트 가까이 증가한 수치다.
전문가들은 “이 때문(법원의 약한 처벌)에 풀려난 성범죄자의 절반이 성범죄를 또 저지르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지적한다.
영혼 살인 범죄
“자비란 없다”
반면 외국은 다르다. 아동이나 장애인을 상대로 저지른 성폭행범의 인권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형량도 무시무시하다.
스위스 아동성폭행범은 무조건 종신형이다. 미국 플로리다주의 ‘제시카 런스퍼드 법’의 경우는 12세 미만 아동을 상대로 한 성폭행범은 최소 25년의 형에다 출소 후에도 평생 전자발찌 신세다.
미국 내 캔자스 주에선 재범 가능성이 높은 성범죄 전과자는 형기만료 뒤에도 재범 가능성이 사라질 때까지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시키는 ‘성 맹수법(Sexual Predator Law)’이 시행 중이다. 언론도 아동 대상 성범죄자에겐 ‘성 맹수’라는 표현을 일반적으로 쓴다.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실제로 지난 2008년 텍사스주 그레이엄 퀴즌베리 판사는 10대 3명을 2년간에 걸쳐 성폭행한 범인 제임스 케빈 포프에 대한 배심원의 유죄평결 후 성폭행 한번마다 종신형 한 번씩 총 40차례 종신형과 소년 1명당 20년씩 모두 4060년의 징역형을 선고한 바 있다.
아동 상대 성범죄자 절반이 집행유예…‘솜방망이 처벌’
외국 “성폭행범에겐 인권 없다” 관용 없는 무거운 판결
여기서 끝이 아니다. 성폭행범은 가석방 자체가 어렵다. 일반 범죄자들과는 달리 절대로 85% 형량 아래로 줄어들지 않는다. 제임스 케빈 포프의 경우에도 3209년의 형을 살아야 가석방의 기회가 주어진다.
중국은 아예 14세 이하 어린이와 성관계를 맺다 적발되면 사형에 처한다. 체코는 지난 10여 년간 최소 94명의 성범죄자의 고환을 외과적으로 들어내는 ‘물리적 거세’를 실행했다.
이에 유럽연합은 “폭력적이며 환원 불가능하고 지나치게 잔혹한 처벌”이라고 비난했지만 체코 정부 당국은 “성범죄자를 생물학적으로 영구적인 안정 상태에 두기 위한 의학적 조치이며, 피해자의 인권을 최우선시 하여 이와 같은 법률을 시행하고 있다”며 물러서지 않았다. 아동 대상 성범죄를 살인에 버금가는 강력 범죄로 규정하고 엄격하게 처벌하는 게 세계적 추세다.
성폭력예방센터의 한 관계자는 “외국의 경우 100% 가해자가 의사를 가지고 가해자가 전혀 항거불능인 아동을 상대로 공격한 것이기 때문에 극형으로 다스려야 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된 것”이라며 “우리나라도 이러한 분위기에 편승하여 형량을 대폭 늘리고 ‘무관용 처벌’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밟지 마세요!
지켜주세요!
최근 일어난 나주 성폭행사건 후 여기저기서 신상공개 소급적용, 화학적 거세, 물리적 거세 등 각종 대안이 쏟아져 나온다. 불안한 엄마들은 “우리 아이들을 지켜달라”며 촛불을 들고 거리에 섰다.
통영사건 후 ‘성범죄자 알림e’ 사이트가 한때 마비됐다. 안양 초등생 살해사건 후 관계당국은 문구점, 약국, 슈퍼마켓 등에 아동안전지킴이집 스티커를 붙이느라 바빴다. 아동성범죄전담반을 설치하겠다고 했지만 성범죄 우범자 관리대상엔 허점을 보여 또 다른 희생자를 낳았다.
어쩌면 통영사건의 범인 김점덕의 말이 맞다. 지금은 시끌시끌하다. 하지만 그의 예상대로 시간이 지나면 곧 조용해질 게 분명하다. 유사한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되풀이되는 레퍼토리이기 때문이다.
보다 강력한 법 적용과 근본적인 관행이 바뀌지 않는 한 아동 성범죄는 더욱 잔혹한 모습으로 우리 곁에 다가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