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사망 사건으로 본 한강 CCTV 사각지대 실상

따닥따닥 있는 줄 알았더니…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서울 한복판에서 20대 초반 대학생이 사라졌다. 많은 사람들의 염원에도 불구하고 대학생은 실종 6일 만에 시신으로 발견됐다. 실종 당시 상황, 사망 원인 등을 두고 숱한 의혹이 제기된 중에 의외의 ‘사각지대’가 드러났다. 

지난달 25일 오전 서울 반포한강공원에서 22세 대학생 손정민군이 실종됐다. 손군은 친구 A씨와 함께 술을 먹다 연락이 두절됐다. A씨는 당일 귀가했다. 손군의 아버지는 아들의 실종 사실을 대대적으로 알리고 제보를 호소했다. 

흐릿한 영상

하지만 손군은 실종 엿새 만인 지난달 30일 실종 장소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한강 수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손군의 사망이 확인되고 1주일 넘게 지났지만 사건 관련 의혹은 연일 증폭되고 있다. 손군의 실종 당일 행적이 뚜렷하게 드러난 시점은 지난달 25일 오전 2시경까지다. 손군과 A씨가 한강공원 인근 편의점에서 술과 음식을 사는 모습이 CCTV를 통해 확인된 것.

그 이후 행적은 손군과 A씨 모두 확실치 않은 상황이다. 


그렇다 보니 손군과 A씨의 행적, 손군이 실종 혹은 사망에 이르게 된 경위, 사망 원인 등을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손군 사망 사건의 진상을 밝혀달라며 지난 3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청원글은 35만명 이상 동의했다(6일 오후 3시 기준).

해당 청원글은 올라온 지 하루 만에 답변 기준인 20만명을 넘겼다.

유족인 손군의 아버지는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사건 관련 정보를 누리꾼에게 전달하고, 제보를 받는 방식으로 소통하고 있다. 손씨는 경찰의 초동수사가 미흡했다며 검찰에 진정서를 낸 상황이다. 검찰은 해당 진정에 대해 수사에 착수했다. SBS 시사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도 관련 제보를 받고 있다. 

수백만명 이용하는데
공원 내부 딱 1대뿐?

손군 사건이 대중에게 충격을 안긴 지점은 한강공원이라는 사건 장소다. 서울시 한강사업본부에 따르면 한강공원은 서울시 면적의 1/15에 해당하는 크기로 총 길이는 약 85㎞다. 한강공원은 서울에서도 손꼽힐 만큼 유동인구가 많은 곳이다. 

서울시가 집계한 ‘서울시 한강공원 이용객 현황 통계’에 따르면 2019년 한강공원 전체 이용객은 6700만명에 이른다. 이 중 손군 사건이 일어난 반포 한강공원은 2019년 한 해 동안 728만명이 이용했다. 

문제는 이용객이 많은 것에 비해 한강공원에 CCTV가 많지 않다는 점이다. 손군 사건에서 대중들이 의외라고 여긴 부분도 바로 이 지점이다. 손군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CCTV를 확인하면 되지’라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CCTV가 없다고?’라며 놀라움을 표했다.


한강사업본부에서 관리하는 한강공원 내 CCTV는 현재 462개로 대부분 나들목이나 승강기 주변에 설치돼있다. 공원 내부를 찍는 CCTV는 163개에 불과했다. 평균 500m 당 1개 꼴이다.

총 면적 56만3015㎡(길이 7.2㎞)의 반포 한강공원은 내부에서 설치된 CCTV가 22개에 불과했다. 나들목 6대, 분수 5대, 승강기 10대 등이다. 공원 내부는 1대 뿐이다.  

경찰 수사가 답보 중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경찰은 휴대폰 포렌식, 부검 등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사건 당시 주변에 있던 차량 블랙박스 등을 확보해 사건을 재구성하는 데 수사력을 집중하는 중이다. CCTV 강국으로 분류되는 우리나라에서 한강공원이 의외의 사각지대였던 셈이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에서 내놓은 연구보고서 <범죄예방 목적의 공공CCTV 운영 실태 및 개선 방안 연구>에 따르면 정부와 공공기관은 2002년 강남구청에 방범용 CCTV를 5대 설치한 것을 시작으로 다중이용 장소나 도로변에 공공 CCTV를 설치해왔다.

e-나라지표에 따르면 2019년 기준 공공기관에 설치된 CCTV 개수는 100만개를 훌쩍 넘는다. 민간 부문까지 범위를 넓히면 수백만대의 CCTV가 설치돼있는 셈이다.

그동안 CCTV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은 ‘사생활 침해’에서 ‘범죄 예방’으로 변화했다. 안전에 대한 관심과 우려가 반영된 결과다.

2013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에서 ‘범죄 예방용 CCTV 추가 설치’에 대해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7%가 ‘더 늘려야 한다’고 답했다. ‘더 늘릴 필요 없다’고 답한 비율은 18%에 불과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조사한 결과도 비슷했다. 2018년 발행된 <범죄예방 목적의 공공 CCTV 운영 실태 및 개선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총 2002명을 대상으로 ‘공공 CCTV가 범죄를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조사한 사항에 88.9%가 긍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CCTV의 범죄 예방 효과에 대해서는 학계의 해석이 엇갈리지만 대다수의 응답자들이 공공 CCTV의 범죄예방 효과를 확신하고 있다는 것. 

오세훈 “이제라도 늘리겠다”
부산 등산로 살인사건도 난항

하지만 손군 사건처럼 당연히 CCTV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 장소가 의외의 사각지대로 드러나면서 시민들의 안전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손군 사건 이전에도 2016년 한 20대 여대생이 실종 8일 만에 마포구 망원한강공원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하지만 경찰은 “현장을 담은 CCTV 영상이 없어 사고 원인을 단정하기 어렵다”고 결론지었다.


지난달 3일 부산 서구 시약산 등산로에서 일어난 사건도 비슷하다. 70대 남성 A씨가 숨져 있는 것을 등산객이 발견해 신고했는데 CCTV도, 목격자도 없어 수사에 난항을 겪고 있다. 부산지역 등산로에 설치된 CCTV는 19대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 서구는 CCTV를 추가로 설치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손군 사건을 계기로 한강공원 CCTV 설치 의무를 바라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글도 올라오고 있다. 청원자는 “손군의 죽음이 주는 숙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실종인을 아무리 찾으려 노력해도 한강 주변에 CCTV가 없었다는 점과 있더라도 너무 흐릿해서 사람이라는 형태만 알아볼 수 있었던 CCTV의 대책이 필요해 보인다”고 전했다. 

이어 “(한강이) 많은 인구가 이용하고 위험한 요소가 있는 만큼 CCTV를 곳곳에 설치해주길 바란다”며 “한강뿐만 아니라 석촌호수, 물가 근처에 필요한 곳 등 사각지대를 면밀히 살펴 필요한 곳에 CCTV를 설치해 달라”고 거듭 요청했다. 

수많은 추측

오세훈 서울시장은 “손군 사건을 계기로 CCTV와 신호등을 하나로 묶은 ‘스마트폴’ 안전 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오 시장에 따르면 스마트폴은 CCTV와 신호등, 가로등, 보안등을 하나로 묶은 시설물이다. 


그는 “10곳이 넘는 한강공원 구역 내 CCTV는 163개에 불과했다. 시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자리에 있는 저로서는 뼈저린 부분”이라며 “그동안 서울시는 도로 시설물과 CCTV 등을 개별적으로 설치해왔다. 그러다 보니 시설·운영비 증가로 CCTV수를 늘리는 것에 애로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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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