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어깨 무거운 김부겸 국무총리 후보자

시작도 같이, 마지막도 같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의 임기말을 함께 할 마지막 국무총리 자리는 이른바 ‘독이 든 성배’다. 국정 2인자인 국무총리는 지지율 하락을 신호로 시작되는 레임덕을 대통령과 같이 맞는다. 김부겸 전 행정안전부 장관이 그 자리 앞에 섰다.

문재인 대통령은 두 번의 국무총리 인선 과정에서 ‘통합’을 강조했다. 문정부 초대 총리인 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 국회의장 출신의 정세균 전 총리를 지명할 당시 그 배경으로 가장 방점을 찍은 부분이 통합과 화합이었다. 

3명 모두
통합 강조

앞서 문 대통령은 2017년 5월 취임 이후 첫 인선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를 초대 총리로 지명했다. 그러면서 이 전 대표가 새 정부의 통합과 화합을 이끌 적임자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2019년 12월 정세균 전 총리를 문정부 두 번째 총리로 지명하는 자리에서도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통합‧화합으로 국민 힘을 하나로 모으고 국민께서 변화를 체감하시도록 민생‧경제에서 성과를 이뤄내는 것”이라며 “이런 시대적 요구에 가장 잘 맞는 적임자가 정 후보자”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이 같은 기조는 잔여 임기 1년여를 함께할 마지막 국무총리를 인선하는 과정에서도 이어졌다. 지난 16일 문 대통령은 신임 국무총리 후보자로 김부겸 전 행정안전부 장관을 지명했다. 


김 후보자는 “더 겸손하고 낮은 자세로 국정을 쇄신하겠다. 현장의 목소리를 가감 없이 대통령께 전달하겠다”고 지명 소감을 말했다. 이어 “국민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소통하면서 상식과 눈높이에 맞게 정책을 펴고 국정운영을 다잡아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유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은 “정치와 사회 현장에서 공정과 상생의 리더십을 실천해 온 4선 국회의원 출신의 통합형 정치인으로서 지역구도의 극복, 사회개혁, 국민화합을 위해 헌신했다”며 “행안부 장관으로서 각종 재난과 사고로부터 국민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함으로써 국민 여러분으로부터 폭넓은 지지와 신뢰를 받았다”고 김 후보자에 대해 설명했다. 

김 후보자의 발탁은 임기말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4·7 재보선 참패 이후 흩어진 민심을 비교적 친문(친 문재인) 계파색이 옅은 김 후보자 카드로 돌파하려 한다는 것이다. 또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하락하면서 시작된 레임덕 상황에서 내각을 관리할 인물로 김 후보자가 적임자였다는 판단이다. 

한나라당 탈당 후 열린우리당에
군포서 3선하고 ‘험지’ 대구로

실제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꾸준히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에 따르면 문 대통령의 직무 긍정률은 30%로 취임 후 최저치를 경신했다. 부정률은 62%까지 치솟아 역시 최고치를 기록했다.

한국갤럽이 4월 셋째 주(13~15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5명에게 물은 결과다. 정당지지율도 국민의힘(30%)이 더불어민주당(31%)의 턱밑까지 쫓아왔다. 

지난해 12월부터 3월까지 37~40%를 횡보하던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3월 둘째 주를 시작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LH 직원들의 신도시 투기 의혹이 불거질 무렵이다. LH 사태는 4·7 재보선 참패는 물론 문 대통령의 지지율을 문정부 역대 최저치까지 끌어내렸다.(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문제는 코로나19 백신 수급, 부동산 문제 등 해결되지 못한 문제가 산재해 있어 반등도 여의치 않다는 점이다. 김 후보자의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다. 집권여당인 민주당은 김 후보자가 현재까지 보여준 정치 행보에 기대를 거는 모양새다. 김 후보자는 여권 내에서 ‘지역주의 타파’를 위해 평생을 바친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김 후보자는 1958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대구 경북고,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연세대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제적과 복학을 반복하며 여러 차례 구속되는 등 파란만장한 젊은 시절을 보냈다.

1977년 유신 반대 시위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제적을 당했고, 이듬해에는 ‘긴급조치 9호’를 위반해 실형을 살았다. 1980년에도 신군부에 맞서 ‘서울의 봄’ 시위를 이끌다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에 연루돼 구속됐다.

우여곡절 끝에 대학을 졸업한 후 민주통일재야운동연합(민통련),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국본) 등 재야 운동권에서 활동하며 1987년 6월 항쟁을 주도했다. 

꽃길 걷다
가시밭길로

정치 인생은 더욱 스펙터클하다. 1988년 한겨레민주당 창당에 참여하며 정계에 입문한 김 후보자는 1995년 고 노무현 전 대통령, 김원기 전 국회의장이 주축이 된 국민통합추진회의(통추)에 합류했다. 하지만 1997년 대선을 앞두고 통추가 갈라지면서 한나라당에 합류, 노 전 대통령과는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 

2000년 16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소속으로 경기 군포에 출마해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다. 하지만 2002년 노 전 대통령이 대선에 승리하면서 민주당 소장파를 중심으로 창당된 열린우리당으로 당적을 옮겼다. 당시 김 후보자와 함께 한나라당을 동반 탈당한 김영춘‧안영근‧이부영‧이우재 전 의원을 가리켜 정치권에서는 ‘독수리 5형제’로 불렀다. 

이후 김 후보자는 17~18대까지 경기 군포에서 내리 3선에 성공했다.

꽃길을 걷던 김 후보자의 정치 인생은 19대 총선을 기점으로 변곡점을 맞는다. 그는 19대 총선을 4개월여 앞둔 2011년 12월15일 “내년 총선에 고향인 대구에서 출마하겠다”고 출사표를 던졌다. 당시 대구는 박정희정권 이후 30년간 민주당 계열의 국회의원이 한 번도 당선된 적이 없는 지역이었다. 

김 후보자는 당시 출마의 변에서 ‘지역주의의 벽’ ‘기득권’ ‘과거의 벽’ 등 세 개의 벽을 넘겠다고 선언했다. 기자회견에서는 “고인이 된 노무현 전 대통령, 제정구 전 의원 등과  지역주의 극복을 위해 통추를 만들었는데, 그때 제정구 의원이 ‘의미 없는 재선·삼선이 되느니 초선으로 명분 지키다 장렬히 전사하겠다’고 한 말이 떠올랐다”며 “저도 벌써 3선이나 됐으니, 내려놓을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김 후보자의 첫 도전은 실패로 끝났다. 대구 수성갑 지역에 출마한 그는 40.4%라는 높은 득표율을 기록했지만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이한구 후보에 밀려 낙선했다. 총선에서 고배를 마신 김 후보자는 6·4 지방선거를 석 달 앞둔 2014년 3월 대구시장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하며 또 다시 험지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당시 김 후보자는 “대한민국은 통일이 대박이지만 대구는 야당 시장의 당선이 대박”이라며 “대구 출신 대통령에 야당 대구시장이라는 하늘이 내리는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대구에 박정희 컨벤션센터를 만들어 광주의 김대중 컨벤션센터와 교류토록 해 두 지역의 발전과 통일시대를 여는 선구자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대구시장 선거에서도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권영진 후보에 밀려 끝내 당선되진 못했다. 40%의 득표율을 기록했다는 점에서 가능성을 확인했을 뿐이었다. 김 후보자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20대 총선에서 다시 한 번 대구 수성갑에 출사표를 던졌다. 상대는 김문수 전 경기도 지사. 거물급 인사들의 맞대결에 대구 수성갑 지역은 총선 기간 내내 높은 관심을 받았다.

대선 불출마
선대위원장

김 후보자는 3수 끝에 대구 수성갑에서 당선되는 파란을 일으켰다. 보수 텃밭인 대구에서 김 전 지사를 큰 표차로 꺾으면서 김 후보자는 전국구 정치인으로 우뚝 섰다. 차기 대선의 가장 유력한 후보군으로도 점쳐졌다. TK(대구·경북) 지역에서 지지를 받는 야권 대권주자가 없는 상황에서 김 후보자의 존재감이 가장 빛나던 순간이었다.

김 후보자는 19대 대선에서 잠룡으로 분류됐지만 취약한 당내 기반 등을 이유로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정권교체를 위한 밀알이 되겠다. 성공한 정권을 만들기 위해 저의 노력을 보태겠다”고 밝혔다. 이어 “이제 민주당 당원의 한 사람으로 돌아간다”며 “저의 도전은 끝내 국민의 기대를 모으지 못했다. 시대적 요구와 과제를 감당하기에 부족함을 절감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2012년에 이어 2017년에도 문재인캠프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았다. 대선 당시 대구 선거 유세 과정에서 “평당 5000만원짜리 살면서 1년에 재산세 200만원도 내지 않는 부자들을 위한 그런 나라 언제까지 할 건가”라며 “정신 차리소!”라고 소리친 장면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는 대구 칠성시장에서 자신을 향해 야유를 던지는 시민들을 향해 “여당이라고 하면 말도 못하면서 야당이 뭐만 하면 삿대질하고 이러니 우리 대구가 20년째 경제가 전국 꼴찌여도 아무도 봐주는 사람이 없잖아요. 정신 차리소”라며 “여러분이 밀어줬던 그 정당, 나라 와장창 뭉개 버렸잖아요. 나라 원칙을 바로잡아야 합니다”라고 목청을 높였다. 

문 대통령은 대구·경북 지역에서 20%대의 저조한 득표율로 당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홍준표 후보에 크게 밀렸다. 하지만 2012년 18대 대선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맞대결했을 당시와 비교해 득표율이 상승해 김 후보자로선 선방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후 그는 문정부 초대 행안부(당시 행정자치부) 장관으로 내각에 입성했다.

문 대통령은 “김 후보자는 새 정부의 핵심 국정목표인 지방분권, 균형발전, 국민통합의 목표를 실현할 적임자로 판단했다”며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때로 기득권을 포기하면서까지 지역주의 타파와 국민통합에 헌신했다. 특히 분권 가치에 대해서는 한국 최고의 전문가”라고 지명 배경을 밝혔다. 

김 후보자는 2019년 4월까지 1년9개월 동안 행안부 장관으로 공직생활을 하다가 국회의원 신분으로 돌아왔다. 21대 총선에서도 대구 수성갑에 도전했지만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에 밀려 낙선했다. 득표율 차이가 20%p(주호영 59.81% vs. 김부겸 39.29%)까지 벌어진 완패였다. 

21대 총선에서 민주당을 포함한 범야권이 180석의 압승을 거둔 중에 기록한 패배여서 더욱 쓰라렸다. 당시 그는 “농부는 가는 밭을 탓하지 않는다고 한다. 농부는 땅에 맞게 땀을 흘리고 거름을 뿌려야 하는데 농사꾼인 제가 제대로 상황을 정확하게 몰랐다. 모든 잘못은 후보 본인의 잘못이니 화를 내지 마시라”고 말했다.

총선에서 낙선한 김 후보자는 같은 해 8월 당 대표 경선에 출마했다.

지난해 7월 그는 “책임지는 당 대표가 되겠다”며 “땀으로 쓰고, 피로 일군 우리 민주당의 역사를 당원 동지들과 함께 이어가겠다”고 당권 도전을 공식화했다. 이어 “이번 전대는 ‘대선 전초전’이 아니라 당 대표를 뽑는 전대”라면서 “당 대표가 되면 대선에 출마하지 않고, 대신 어떤 대선 후보라도 반드시 이기게 하겠다”고 선언했다.

당권 경쟁자였던 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가 대선에 출마할 경우 ‘7개월짜리 당 대표’에 그칠 것이라는 점을 비판한 것으로 풀이됐다. 김 후보자는 이 전 대표, 민주당 박주민 의원 등과 함께 3파전을 벌였지만 21.37%의 득표율로 고배를 마셨다. ‘이변은 없었다’는 평이 나올 만큼 싱거운 전대였다.

보수 텃밭 당선 일약 대선 잠룡
총선·전대 패배로 존재감 하락

전대 이후 별다른 행보를 보이지 않던 김 후보자는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되면서 다시 문정부 전면에 나서게 됐다. 문 대통령은 지난 21일 김 후보자를 비롯한 5개 부처 장과 후보자 인사청문요청안을 재가했다.

인사청문회법에 따라 국회는 인사청문요청안이 제출된 날로부터 20일 이내에 심사 또는 인사청문을 마쳐야 하는 만큼 다음달 10일 이전에 인사청문회가 열릴 것으로 보인다.  

김 후보자는 인사청문회에서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피해자를 ‘피해 호소인’으로 언급한 부분, 서울·부산시장 선거 후보 공천을 위한 민주당 당헌 개정 등에 있어서 야당의 공격을 받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김 후보자는 지난해 7월 당 대표 경선에 출마했을 당시 박 전 시장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전직 비서를 ‘피해를 호소하는 고소인’이라고 지칭한 바 있다. 그는 “(전직 비서 호칭과 관련해)논란이 있는 것은 알고 있다”며 “하지만 아직 확정된 용어가 없어 이렇게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당헌 규정에 대해서도 “민주당 당헌에 우리 당 후보가 불미스러운 일로 물러난 후 치러진 재보선에서 공천하지 않는다는 조항이 있다”면서 “만약 당원들의 뜻이 공천이라면 제가 국민에게 깨끗이 엎드려 사과드리고 양해를 구하겠다. 필요하면 당헌을 개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 4·7 보궐선거는 박 전 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성추행 혐의로 각각 극단적 선택과 중도사퇴로 자리를 비우면서 치러졌다.

처남과 관련된 논란도 있었다. 김 후보자의 처남은 <반일 종족주의>를 집필한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다. 지난해 당 대표 경선에서 처남 논란이 불거지자 그는 “아내와 헤어지란 말이냐”고 응수해 화제가 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그럼 아내를 버리란 말입니까?”라는 과거 발언과 오버랩된다는 말이 나왔다.

민주당에서는 김 후보자가 무난하게 청문회를 통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미 행안부 장관 청문회로 한 차례 검증이 이뤄진 바 있고, 대구 출신으로 야당인 국민의힘과도 원만한 관계를 맺어온 터라 무리 없이 총리 인준이 이뤄질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김 후보자 입장에서는 청문회보다 그 이후 상황이 더 큰 문제라는 분석도 나온다. 

청문회 무난
그 다음은?

김 후보자는 인사청문회 준비 과정에서 백신, 부동산 문제 등에 대한 입장을 언급했다. 그는 지난 21일 코로나19 백신 수급 우려와 관련해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해 백신 확보를 둘러싸고 일어났던 잘못된 부분에 대해 청문회에서 정부의 입장을 분명히 밝히겠다”고 말했다. 부동산 문제를 두고 “원칙에 관한 부분은 허물어져선 안 된다”는 입장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등 전직 대통령 사면론에 대해서는 “대통령 판단에 맡기는 게 옳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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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