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어깨 무거운 김부겸 국무총리 후보자

시작도 같이, 마지막도 같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의 임기말을 함께 할 마지막 국무총리 자리는 이른바 ‘독이 든 성배’다. 국정 2인자인 국무총리는 지지율 하락을 신호로 시작되는 레임덕을 대통령과 같이 맞는다. 김부겸 전 행정안전부 장관이 그 자리 앞에 섰다.

문재인 대통령은 두 번의 국무총리 인선 과정에서 ‘통합’을 강조했다. 문정부 초대 총리인 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 국회의장 출신의 정세균 전 총리를 지명할 당시 그 배경으로 가장 방점을 찍은 부분이 통합과 화합이었다. 

3명 모두
통합 강조

앞서 문 대통령은 2017년 5월 취임 이후 첫 인선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를 초대 총리로 지명했다. 그러면서 이 전 대표가 새 정부의 통합과 화합을 이끌 적임자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2019년 12월 정세균 전 총리를 문정부 두 번째 총리로 지명하는 자리에서도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통합‧화합으로 국민 힘을 하나로 모으고 국민께서 변화를 체감하시도록 민생‧경제에서 성과를 이뤄내는 것”이라며 “이런 시대적 요구에 가장 잘 맞는 적임자가 정 후보자”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이 같은 기조는 잔여 임기 1년여를 함께할 마지막 국무총리를 인선하는 과정에서도 이어졌다. 지난 16일 문 대통령은 신임 국무총리 후보자로 김부겸 전 행정안전부 장관을 지명했다. 


김 후보자는 “더 겸손하고 낮은 자세로 국정을 쇄신하겠다. 현장의 목소리를 가감 없이 대통령께 전달하겠다”고 지명 소감을 말했다. 이어 “국민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소통하면서 상식과 눈높이에 맞게 정책을 펴고 국정운영을 다잡아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유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은 “정치와 사회 현장에서 공정과 상생의 리더십을 실천해 온 4선 국회의원 출신의 통합형 정치인으로서 지역구도의 극복, 사회개혁, 국민화합을 위해 헌신했다”며 “행안부 장관으로서 각종 재난과 사고로부터 국민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함으로써 국민 여러분으로부터 폭넓은 지지와 신뢰를 받았다”고 김 후보자에 대해 설명했다. 

김 후보자의 발탁은 임기말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4·7 재보선 참패 이후 흩어진 민심을 비교적 친문(친 문재인) 계파색이 옅은 김 후보자 카드로 돌파하려 한다는 것이다. 또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하락하면서 시작된 레임덕 상황에서 내각을 관리할 인물로 김 후보자가 적임자였다는 판단이다. 

한나라당 탈당 후 열린우리당에
군포서 3선하고 ‘험지’ 대구로

실제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꾸준히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에 따르면 문 대통령의 직무 긍정률은 30%로 취임 후 최저치를 경신했다. 부정률은 62%까지 치솟아 역시 최고치를 기록했다.

한국갤럽이 4월 셋째 주(13~15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5명에게 물은 결과다. 정당지지율도 국민의힘(30%)이 더불어민주당(31%)의 턱밑까지 쫓아왔다. 

지난해 12월부터 3월까지 37~40%를 횡보하던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3월 둘째 주를 시작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LH 직원들의 신도시 투기 의혹이 불거질 무렵이다. LH 사태는 4·7 재보선 참패는 물론 문 대통령의 지지율을 문정부 역대 최저치까지 끌어내렸다.(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문제는 코로나19 백신 수급, 부동산 문제 등 해결되지 못한 문제가 산재해 있어 반등도 여의치 않다는 점이다. 김 후보자의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다. 집권여당인 민주당은 김 후보자가 현재까지 보여준 정치 행보에 기대를 거는 모양새다. 김 후보자는 여권 내에서 ‘지역주의 타파’를 위해 평생을 바친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김 후보자는 1958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대구 경북고,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연세대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제적과 복학을 반복하며 여러 차례 구속되는 등 파란만장한 젊은 시절을 보냈다.

1977년 유신 반대 시위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제적을 당했고, 이듬해에는 ‘긴급조치 9호’를 위반해 실형을 살았다. 1980년에도 신군부에 맞서 ‘서울의 봄’ 시위를 이끌다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에 연루돼 구속됐다.

우여곡절 끝에 대학을 졸업한 후 민주통일재야운동연합(민통련),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국본) 등 재야 운동권에서 활동하며 1987년 6월 항쟁을 주도했다. 

꽃길 걷다
가시밭길로

정치 인생은 더욱 스펙터클하다. 1988년 한겨레민주당 창당에 참여하며 정계에 입문한 김 후보자는 1995년 고 노무현 전 대통령, 김원기 전 국회의장이 주축이 된 국민통합추진회의(통추)에 합류했다. 하지만 1997년 대선을 앞두고 통추가 갈라지면서 한나라당에 합류, 노 전 대통령과는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 

2000년 16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소속으로 경기 군포에 출마해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다. 하지만 2002년 노 전 대통령이 대선에 승리하면서 민주당 소장파를 중심으로 창당된 열린우리당으로 당적을 옮겼다. 당시 김 후보자와 함께 한나라당을 동반 탈당한 김영춘‧안영근‧이부영‧이우재 전 의원을 가리켜 정치권에서는 ‘독수리 5형제’로 불렀다. 

이후 김 후보자는 17~18대까지 경기 군포에서 내리 3선에 성공했다.

꽃길을 걷던 김 후보자의 정치 인생은 19대 총선을 기점으로 변곡점을 맞는다. 그는 19대 총선을 4개월여 앞둔 2011년 12월15일 “내년 총선에 고향인 대구에서 출마하겠다”고 출사표를 던졌다. 당시 대구는 박정희정권 이후 30년간 민주당 계열의 국회의원이 한 번도 당선된 적이 없는 지역이었다. 

김 후보자는 당시 출마의 변에서 ‘지역주의의 벽’ ‘기득권’ ‘과거의 벽’ 등 세 개의 벽을 넘겠다고 선언했다. 기자회견에서는 “고인이 된 노무현 전 대통령, 제정구 전 의원 등과  지역주의 극복을 위해 통추를 만들었는데, 그때 제정구 의원이 ‘의미 없는 재선·삼선이 되느니 초선으로 명분 지키다 장렬히 전사하겠다’고 한 말이 떠올랐다”며 “저도 벌써 3선이나 됐으니, 내려놓을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김 후보자의 첫 도전은 실패로 끝났다. 대구 수성갑 지역에 출마한 그는 40.4%라는 높은 득표율을 기록했지만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이한구 후보에 밀려 낙선했다. 총선에서 고배를 마신 김 후보자는 6·4 지방선거를 석 달 앞둔 2014년 3월 대구시장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하며 또 다시 험지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당시 김 후보자는 “대한민국은 통일이 대박이지만 대구는 야당 시장의 당선이 대박”이라며 “대구 출신 대통령에 야당 대구시장이라는 하늘이 내리는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대구에 박정희 컨벤션센터를 만들어 광주의 김대중 컨벤션센터와 교류토록 해 두 지역의 발전과 통일시대를 여는 선구자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대구시장 선거에서도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권영진 후보에 밀려 끝내 당선되진 못했다. 40%의 득표율을 기록했다는 점에서 가능성을 확인했을 뿐이었다. 김 후보자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20대 총선에서 다시 한 번 대구 수성갑에 출사표를 던졌다. 상대는 김문수 전 경기도 지사. 거물급 인사들의 맞대결에 대구 수성갑 지역은 총선 기간 내내 높은 관심을 받았다.

대선 불출마
선대위원장

김 후보자는 3수 끝에 대구 수성갑에서 당선되는 파란을 일으켰다. 보수 텃밭인 대구에서 김 전 지사를 큰 표차로 꺾으면서 김 후보자는 전국구 정치인으로 우뚝 섰다. 차기 대선의 가장 유력한 후보군으로도 점쳐졌다. TK(대구·경북) 지역에서 지지를 받는 야권 대권주자가 없는 상황에서 김 후보자의 존재감이 가장 빛나던 순간이었다.

김 후보자는 19대 대선에서 잠룡으로 분류됐지만 취약한 당내 기반 등을 이유로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정권교체를 위한 밀알이 되겠다. 성공한 정권을 만들기 위해 저의 노력을 보태겠다”고 밝혔다. 이어 “이제 민주당 당원의 한 사람으로 돌아간다”며 “저의 도전은 끝내 국민의 기대를 모으지 못했다. 시대적 요구와 과제를 감당하기에 부족함을 절감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2012년에 이어 2017년에도 문재인캠프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았다. 대선 당시 대구 선거 유세 과정에서 “평당 5000만원짜리 살면서 1년에 재산세 200만원도 내지 않는 부자들을 위한 그런 나라 언제까지 할 건가”라며 “정신 차리소!”라고 소리친 장면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는 대구 칠성시장에서 자신을 향해 야유를 던지는 시민들을 향해 “여당이라고 하면 말도 못하면서 야당이 뭐만 하면 삿대질하고 이러니 우리 대구가 20년째 경제가 전국 꼴찌여도 아무도 봐주는 사람이 없잖아요. 정신 차리소”라며 “여러분이 밀어줬던 그 정당, 나라 와장창 뭉개 버렸잖아요. 나라 원칙을 바로잡아야 합니다”라고 목청을 높였다. 

문 대통령은 대구·경북 지역에서 20%대의 저조한 득표율로 당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홍준표 후보에 크게 밀렸다. 하지만 2012년 18대 대선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맞대결했을 당시와 비교해 득표율이 상승해 김 후보자로선 선방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후 그는 문정부 초대 행안부(당시 행정자치부) 장관으로 내각에 입성했다.

문 대통령은 “김 후보자는 새 정부의 핵심 국정목표인 지방분권, 균형발전, 국민통합의 목표를 실현할 적임자로 판단했다”며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때로 기득권을 포기하면서까지 지역주의 타파와 국민통합에 헌신했다. 특히 분권 가치에 대해서는 한국 최고의 전문가”라고 지명 배경을 밝혔다. 

김 후보자는 2019년 4월까지 1년9개월 동안 행안부 장관으로 공직생활을 하다가 국회의원 신분으로 돌아왔다. 21대 총선에서도 대구 수성갑에 도전했지만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에 밀려 낙선했다. 득표율 차이가 20%p(주호영 59.81% vs. 김부겸 39.29%)까지 벌어진 완패였다. 

21대 총선에서 민주당을 포함한 범야권이 180석의 압승을 거둔 중에 기록한 패배여서 더욱 쓰라렸다. 당시 그는 “농부는 가는 밭을 탓하지 않는다고 한다. 농부는 땅에 맞게 땀을 흘리고 거름을 뿌려야 하는데 농사꾼인 제가 제대로 상황을 정확하게 몰랐다. 모든 잘못은 후보 본인의 잘못이니 화를 내지 마시라”고 말했다.

총선에서 낙선한 김 후보자는 같은 해 8월 당 대표 경선에 출마했다.

지난해 7월 그는 “책임지는 당 대표가 되겠다”며 “땀으로 쓰고, 피로 일군 우리 민주당의 역사를 당원 동지들과 함께 이어가겠다”고 당권 도전을 공식화했다. 이어 “이번 전대는 ‘대선 전초전’이 아니라 당 대표를 뽑는 전대”라면서 “당 대표가 되면 대선에 출마하지 않고, 대신 어떤 대선 후보라도 반드시 이기게 하겠다”고 선언했다.

당권 경쟁자였던 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가 대선에 출마할 경우 ‘7개월짜리 당 대표’에 그칠 것이라는 점을 비판한 것으로 풀이됐다. 김 후보자는 이 전 대표, 민주당 박주민 의원 등과 함께 3파전을 벌였지만 21.37%의 득표율로 고배를 마셨다. ‘이변은 없었다’는 평이 나올 만큼 싱거운 전대였다.

보수 텃밭 당선 일약 대선 잠룡
총선·전대 패배로 존재감 하락

전대 이후 별다른 행보를 보이지 않던 김 후보자는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되면서 다시 문정부 전면에 나서게 됐다. 문 대통령은 지난 21일 김 후보자를 비롯한 5개 부처 장과 후보자 인사청문요청안을 재가했다.

인사청문회법에 따라 국회는 인사청문요청안이 제출된 날로부터 20일 이내에 심사 또는 인사청문을 마쳐야 하는 만큼 다음달 10일 이전에 인사청문회가 열릴 것으로 보인다.  

김 후보자는 인사청문회에서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피해자를 ‘피해 호소인’으로 언급한 부분, 서울·부산시장 선거 후보 공천을 위한 민주당 당헌 개정 등에 있어서 야당의 공격을 받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김 후보자는 지난해 7월 당 대표 경선에 출마했을 당시 박 전 시장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전직 비서를 ‘피해를 호소하는 고소인’이라고 지칭한 바 있다. 그는 “(전직 비서 호칭과 관련해)논란이 있는 것은 알고 있다”며 “하지만 아직 확정된 용어가 없어 이렇게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당헌 규정에 대해서도 “민주당 당헌에 우리 당 후보가 불미스러운 일로 물러난 후 치러진 재보선에서 공천하지 않는다는 조항이 있다”면서 “만약 당원들의 뜻이 공천이라면 제가 국민에게 깨끗이 엎드려 사과드리고 양해를 구하겠다. 필요하면 당헌을 개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 4·7 보궐선거는 박 전 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성추행 혐의로 각각 극단적 선택과 중도사퇴로 자리를 비우면서 치러졌다.

처남과 관련된 논란도 있었다. 김 후보자의 처남은 <반일 종족주의>를 집필한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다. 지난해 당 대표 경선에서 처남 논란이 불거지자 그는 “아내와 헤어지란 말이냐”고 응수해 화제가 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그럼 아내를 버리란 말입니까?”라는 과거 발언과 오버랩된다는 말이 나왔다.

민주당에서는 김 후보자가 무난하게 청문회를 통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미 행안부 장관 청문회로 한 차례 검증이 이뤄진 바 있고, 대구 출신으로 야당인 국민의힘과도 원만한 관계를 맺어온 터라 무리 없이 총리 인준이 이뤄질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김 후보자 입장에서는 청문회보다 그 이후 상황이 더 큰 문제라는 분석도 나온다. 

청문회 무난
그 다음은?

김 후보자는 인사청문회 준비 과정에서 백신, 부동산 문제 등에 대한 입장을 언급했다. 그는 지난 21일 코로나19 백신 수급 우려와 관련해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해 백신 확보를 둘러싸고 일어났던 잘못된 부분에 대해 청문회에서 정부의 입장을 분명히 밝히겠다”고 말했다. 부동산 문제를 두고 “원칙에 관한 부분은 허물어져선 안 된다”는 입장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등 전직 대통령 사면론에 대해서는 “대통령 판단에 맡기는 게 옳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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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