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기획> 개구리소년 30주기 ②풀리지 않는 의혹

왜 산에서 눈 감았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아이들 5명이 한꺼번에 사라졌다. 각각 한 살 터울의 동네 친구들은 도롱뇽 알을 주우러 가겠다며 집을 나선 뒤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다. ‘돌아오라 엄마 품에’를 외치던 유가족과 전 국민의 바람에도 아이들은 결국 유골로 발견됐다. 용의자도, 목격자도 특정하기 어려운 전대미문의 사건은 30년째 의문형이다.
 

개구리소년 5명의 유골이 발견된 장소인 와룡산 세방골 ⓒ고성준 기자
개구리소년 5명의 유골이 발견된 장소인 와룡산 세방골 ⓒ고성준 기자

인적이 드문 대구 와룡산 뒤편, 낙엽으로 뒤덮인 산길을 5분 정도 오르면 약 1m 깊이의 움푹 파인 골짜기가 나온다. 2002년 9월26일 이곳에서 개구리소년 5명의 유골이 발견됐다. 1991년 3월26일 아이들이 실종된 지 꼭 11년 6개월 만이었다. 아이들이 사라진 날은 30년 만에 부활한 기초의원 선거일로, 전국은 투표 열기에 들썩였다.

누가 죽였나

우철원(당시 13세)·조호연(12세)·김영규(11세)·박찬인(10세)·김종식(9세) 등 5명의 아이들은 실종 당일 오전 와룡산에 올랐다. 아이들이 마지막으로 목격된 장소는 와룡산 불미골 입구. 주변에는 선원지라는 연못과 사격장이 있었다. 도롱뇽 알을 잡고 탄피를 주울 수 있는, 아이들에겐 놀이터나 다름없는 장소였다. 

경찰은 아이들의 실종 이후 연인원 35만명을 동원해 와룡산 일대를 샅샅이 수색했다. 유가족은 아이들을 찾기 위해 트럭을 타고 전국을 헤맸다. 당시 유가족과 동행한 나주봉 ‘전국미아실종가족찾기 시민의모임(전미찾모)’ 회장은 “군 단위 이상의 지역은 모두 가봤다”고 말할 정도.

경찰의 대대적인 수색과 유가족의 노력에도 찾을 수 없었던 아이들은 뜻밖의 장소에서 나타났다. 도토리를 주우러 갔던 등산객 2명은 와룡산 세방골에서 아이들의 유골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세방골은 높이 299m 와룡산의 4부 능선 지점으로, 아이들이 마지막으로 목격된 불미골에서 동쪽으로 채 1㎞도 떨어져 있지 않다.


우철원군의 아버지 우종우씨는 “평소 아이들이 야생마처럼 뛰어놀았다”고 회상했다. 실제 아이들 5명 중 4명이 태권도장에 다니고 있었다. 당시 항공사진 판독 결과 유골 발굴 지점에서 고속도로와 민가의 불빛을 충분히 볼 수 있었다는 추정도 나왔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끝내 산에서 내려오지 못했다. 

무성한 추측만 있을 뿐 사건의 진실은 3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수수께끼다.

1991년 실종됐던 5명
2002년 유골로 발견돼

당시 경찰은 아이들이 산에서 길을 잃고 저체온증으로 사망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부검을 맡았던 경북대 법의학팀은 일부 아이들의 두개골에 남은 인위적 손상 흔적 등을 근거로 ‘명백한 타살’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아이들 가운데 가장 마지막에 발굴된 김영규군의 옷에 남은 매듭도 타살의 근거로 제시됐다. 김군의 상의는 뒤로 묶여 있었고, 하의 역시 묶인 상태로 발굴됐다. 경찰은 추위를 느낀 아이가 옷을 머리에 뒤집어쓰고 스스로 매듭을 지었다는 주장을 내놨지만 유가족은 강제로 묶인 것이라고 반박했다.

타살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범인의 정체, 유골에 남은 흔적을 만든 흉기, 살인 이유 등에 관심이 집중됐다. 
 

개구리소년 전단지
개구리소년 전단지

개구리소년 사건은 현재까지도 용의자가 전혀 특정되지 않았다. 개구리소년 사건과 함께 우리나라 3대 미제사건으로 불렸던 ‘화성연쇄 살인사건’ ‘이형호군 유괴 살인사건’과 가장 결이 다른 지점이다. 화성연쇄 살인사건은 수감 중인 이춘재가 진범으로 확인됐고, 이형호군 유괴 살인사건은 유력 용의자가 존재했다. 


개구리소년 사건은 가설만 무성한 상태다. 유골 발굴 과정에서 탄피가 함께 발견되자 인근에 위치한 육군 50사단의 총기 오발사고로 인한 사망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아이들 가운데 1명이 도사견에 물려 사망하자, 이를 감추기 위해 개 주인이 나머지 4명을 전부 살해했다는 가설도 있었다. 

우군의 아버지 우종우씨는 “아이들이 산에서 봐서는 안 될 무언가를 봤기 때문에 이런 일을 당한 것 같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군의 소행은 아닌 것 같다. 군이 이런 사건을 저질렀다면 지금보다 완벽하게 처리했을 것”이라며 “군에는 그런 장비들이 갖춰져 있지 않나”라고 덧붙였다. 

나주봉 회장은 당시 정치적 상황과 맞물려 아이들이 희생된 것이라는 주장을 내놨다. 그는 “당시 정부 지지율이 낮아 레임덕 상태였다. 아동 실종사건으로 사회적 불안감을 조성해 레임덕 극복을 노린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며 “많은 전문가들이 사건 해결에 매달렸지만 끝내 미제로 남은 점도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더욱 특이할만한 부분은 아이들의 유골이 한자리서 발견됐다는 점이다. 사망 후 시신이 옮겨졌다는 의견과 유골 발견 지점이 사망 장소라는 의견이 충돌하고 있지만, 5명이 함께 있다가 사망했다는 점에서는 이견이 거의 없는 상태다. 아이들이 살해됐다면 1명 혹은 그 이상의 범인이 5명을 한 자리에서 통제했다는 뜻이다. 

용의자·흉기도 특정 안 돼
30년간 추측·소문만 무성

당시 아이들 모두 초등학생이었지만, 이 가운데 3명은 4~6학년의 고학년이었다. 아이들을 한꺼번에 제압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온다.

한 누리꾼은 아이들 모두에게 강제성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선생님’을 용의자로 지목하기도 했다. ‘폭력성이 매우 높은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위해를 끼쳤다는 주장이다. 

흉기에 대한 논란도 여전하다.

경북대 법의학팀은 “두개골 손상 흔적을 분석한 결과, 아이들은 ‘ㄷ자’ 모양의 예리한 흉기와 발사체에 의해 타살됐다”고 발표했다. 실제 일부 아이들의 두개골에서 뾰족하게 찍힌 흔적과 넓게 깨진 흔적이 함께 발견됐다. 그런 흔적을 만들 수 있는 흉기에 대한 조사가 이뤄졌지만 ‘공업용 망치’로 추정됐을 뿐 정확하게 특정되진 않았다. 
 

와룡산 세방골에 널브러져 있는 개구리소년 추모 현수막 ⓒ고성준 기자
와룡산 세방골에 널브러져 있는 개구리소년 추모 현수막 ⓒ고성준 기자

한 시사 프로그램에서는 개구리소년 사건을 ‘1990년대에 일어난 21세기형 범죄’라고 분석했다. 당시 국내에선 단어조차 생소했던 ‘사이코패스’ 성향을 가진 범인이 아이들을 잔인하고 무자비하게 살해했다는 주장이다. 정신이상자의 소행으로 보기엔 상당히 침착하고 어느 정도 규칙성을 띤 공격 패턴을 근거로 들었다.

지난 2019년 당시 민갑룡 경찰청장은 개구리소년 28주기 추모제에 참석해 “사건을 원점에서 재수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경찰의 DNA 분석으로 화성연쇄 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가 특정된 때였다. 그는 “화성연쇄 살인사건 사례처럼 개구리소년 사건에 남겨진 유류품, 현장 증거물 등을 첨단과학기술을 활용해 면밀하게 재조사하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왜 죽였나


개구리소년 사건의 공소시효는 지난 2006년 3월25일로 이미 만료됐다. 범인을 잡아도 처벌할 수 있는 시한을 넘긴 지 오래라는 뜻이다. 그래도 우종우씨는 아이들의 유골이 발견된 장소를 찾을 때마다 그곳에 놓인 꽃다발을 유심히 살핀다. “혹시라도 범인이 쪽지를 써놓고 갈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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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간 산불 주원인 ‘실화·쓰레기 소각’ 예방법 없나?

10년간 산불 주원인 ‘실화·쓰레기 소각’ 예방법 없나?

[일요시사 취재2팀] 박정원 기자 = 지난 22일 경북 의성서 시작된 산불이 안동, 청송 등 인접 지역으로 걷잡을 수 없이 번지면서 가히 ‘재난 영화’를 방불케 할 정도의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이번 산불이 성묘객의 실화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되면서, 관련자 처벌 수위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27일 산림청 산불 원인 통계자료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입산자에 의한 실화가 171건(31%)으로 가장 많았고, 쓰레기 소각이 68건(13%), 논·밭두렁 소각이 60건(11%)이었다. 대형 산불은 특히 건조한 날씨가 지속되는 봄철에 주로 발생한다. 계절별 산불 발생 현황을 살펴보면, 2015~2024년 연평균 산불 546건 중 봄철에 발생하는 산불은 303건(56%)에 달했다. 실제 지난 2022년 3월4~13일 경북 울진과 강원 삼척, 강릉, 동해서 발생한 일명 ‘동해안 산불’은 산림 2만523㏊를 태웠다. 2020년 4월 경북 안동서 발생한 산불은 1944ha의 면적을 태웠으며, 2019년 4월 강원 고성·강릉·인제서 난 산불은 3일간 2872ha를 휩쓸었다. 이처럼 산불이 주로 봄에 발생하는 이유는 건조한 날씨와 더불어 야외활동이 잦아지는 시기인 점도 한 몫한다. 이번 의성 산불 역시 묘지를 정리하던 50대 성묘객이 라이터로 불을 피운 게 화근이 됐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해당 성묘객은 산에서 쓰레기를 태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날 울산 울주군 온양읍 야산서 발생한 산불도 농막서 나온 용접 불꽃이 원인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보다 앞선 21일 경남 산청서 발생한 산불 역시 풀베기 작업 중 예초기서 튄 불꽃이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이에 일각에선 산불 관련 처벌이 약해 경각심이 부족하다는 지적과 함께,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급기야 국회전자청원 시스템에는 실화죄 처벌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청원까지 등장했다. 현행 산림보호법 53조는 과실로 산불을 냈을 경우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한다. 고의로 방화를 한 경우에는 5년 이상 15년 이하의 징역형까지 가능하다. 하지만 산불의 특성상 발화 원인을 정확히 규명하기 어렵고, 실화자를 특정하거나 과실 입증 과정이 쉽지 않은 만큼, 실제 처벌로 이어진 사례는 많지 않다. 산림청에 따르면 지난 2021년부터 올해 3월까지 최근 5년간 산불 유발자 검거율도 46.1%에 불과하다. 처벌 수위도 낮다. 최근 4년간 산불 발생 건수는 2108건이었으나, 집행유예를 포함한 실형을 받은 건수는 43건(2.03%)에 그친다. 지난해에는 279건의 산불 중 110명이 범인으로 붙잡혔지만, 징역형을 선고받은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벌금형도 8명에 그쳐 처벌 비율이 7.2%밖에 되지 않았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대형 산불 재난 상황 속에서도 여전히 농촌 지역을 중심으로 불법 소각 행위가 근절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26일 경북 의성군 단촌면의 한 밭두렁에서는 산불이 계속 확산되는 상황 속에서도 한 주민이 불에 탄 신발, 가재도구와 폐기물 등을 태우는 모습이 목격됐다. 같은 날 안동 하회마을 인근서도 쓰레기를 소각하던 한 70대 노인이 관계기관에 적발되기도 했다. 당시 하회마을 인근에선 의성 산불이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소방·산림 당국이 대규모 인력을 투입해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었던 긴박한 상황이었다. 이처럼 대규모 재난 대응이 이뤄지는 와중에도 또 다른 대형 화재의 불씨가 될 수 있는 불법 소각 행위가 버젓이 자행되고 있다는 점은 ‘안전불감증’의 심각성이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현행 경북도 화재예방조례에 따르면 산림 인접지나 논·밭 주변서 사전 신고 없이 불을 피워 소방 인력이 출동할 경우 2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되지만, 이 같은 수준의 처벌이 수십 년간 이어져 온 농촌 지역의 불법 소각 관행을 근절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지자체 관계자는 “단속에 투입되는 인원에도 한계가 있다. 무엇보다 농촌 지역에 거주 중인 주민들의 안전불감증이 가장 큰 문제”라며 “과태료도 인상과 함께 보다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도 과태료 인상 등 처벌 강화와 더불어 폐기물 수거 시스템 확충, 주민 참여형 안전 교육 등 보다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영농 폐기물 및 생활 쓰레기 처리 시스템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고 소각 행위를 대체할 수 있는 친환경 처리법의 보급 등 반복되는 산불 재난을 막기 위한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제언했다. 한편,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이날 오전 6시 기준 산불로 인한 사망자는 경북 22명, 경남 4명 등 26명으로 잠정 집계됐다. 산림 피해 면적은 3만5810㏊로, 역대 최대 피해를 냈던 2000년 동해안 산불의 피해 면적(2만3794㏊)을 넘어섰다. <jungwon933@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