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H 스캔들’ 검찰 제물 시나리오

땅 빼려다 방 빼겠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LH 사태’가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다. 20번이 넘는 부동산 정책 실패로 들끓는 민심에 공직자들의 땅 투기 의혹이 더해지면서 역린을 건드린 모양새다. 문재인정부는 4·17재보선을 앞두고 터진 초대형 악재를 봉합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검찰은 완전히 배제되는 분위기다.
 

▲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박성원 깆다

지난달 24일 정부는 경기도 광명·시흥을 6번째 3기 신도시로 선정한다고 발표했다. 광명시 광명동·옥길동, 시흥시 과림동 일대에 7만호의 주택을 공급, 서남권 거점도시로 개발하겠다는 계획이다. 국토교통부(이하 국토부)는 신규공공택지 후보지를 주민공람 공고 즉시 개발예정지역으로 지정하고 주변 지역은 토지허가구역으로 묶는다고 덧붙였다.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선 최장 5년간 토지 소유권이나 지상권 등 투기성 토지거래가 차단된다. 

부동산 역린
초대형 악재

국토부 발표 일주일 뒤인 지난 2일 한국토지주택공사(이하 LH) 직원들의 광명·시흥 신도시 투기 의혹이 불거졌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이하 민변)과 참여연대는 이날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사무실에서 진행한 기자회견에서 LH 직원과 배우자, 지인 등 10여명이 광명·시흥 신도시 지구 내 약 7000평의 토지를 사전에 매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토지 실거래가 총액은 99억4512만원이며, 약 100억원에 달하는 자금 중 58억원가량은 대출로 조달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LH 직원들의 투기 의혹을 제보받은 민변과 참여연대는 해당 필지의 등기부등본, 토지대장, 직원 명단을 대조했다. 

조사 결과 이들은 해당 토지 소유권을 개별적으로 취득하기보다 소유권 지분을 공동 취득하는 방식으로 매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민변과 참여연대는 “감사원 감사뿐만 아니라 LH와 국토부가 철저한 자체 감사를 실시해 직원들의 비위 행위를 발본색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부동산 문제는 문재인정부의 ‘아킬레스건’이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이 LH 직원들의 신도시 땅 투기 의혹이 불거진 지난 2일부터 4일까지 3일에 걸쳐 전국 만 18세 이상 1002명을 대상으로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해 조사한 결과 74%가 ‘잘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잘하고 있다’는 응답은 11%에 그쳤다. 그나마 ‘주택 공급 확대·신도시 개발’(16%)을 긍정 평가의 이유로 꼽았는데, 이 부분에서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같은 조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직무수행 긍정률은 40%로 나타났다. 직무수행 부정률은 51%로 긍정률을 상회했는데, 부정평가 이유로 첫손에 꼽은 것도 ‘부동산 정책’(19%)이다. 

말로는 발본색원·패가망신
1·2기 신도시 수사 검 패싱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LH 사태가 재보선에 미칠 영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 등의 성추행 의혹으로 공석이 생긴 터라 이미 악재를 안고 시작한 민주당에 부동산 악재까지 더해진 셈이다.

정부에서 ‘발본색원’(문재인 대통령), ‘패가망신’(정세윤 국무총리) 등의 강한 발언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특히 문 대통령은 LH 직원들의 신도시 투기 의혹이 제기된 다음날인 지난 3일부터 ‘철저한 조사’와 ‘재발방지’를 골자로 한 메시지를 쏟아내고 있다. “국토부-LH-관계 공공기관 등 신규 택지개발 관련 부서 근무자 및 가족 등에 대한 토지거래 전수조사”(3일) “(LH) 일부 직원들의 개인적 일탈이었는지, 뿌리 깊은 부패구조에 기인한 것인지 규명해 발본색원”(4일) “청와대 전 직원 토지거래 전수조사”(5일) 등이다. 
 

▲ LH 임직원들이 사전 내부정보를 이용해 투기했던 토지 ⓒ박성원 기자

주말 이후에도 “국가가 가진 모든 행정력, 모든 수사력 동원”(8일), “투기는 투기대로 조사하되 정부의 주택공급 대책의 신뢰가 흔들려선 안 돼”(9일), “우리 사회의 공정과 신뢰를 바닥에서 무너뜨리는 용납할 수 없는 비리행위”(10일) 등의 메시지를 냈다. 재보선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하고, 레임덕을 차단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하지만 연일 이어진 문 대통령의 주문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LH 사태 대응에 의구심을 표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LH 사태를 조사‧수사하는 과정에서 검찰을 완전히 배제하고 국가수사본부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셀프 수사’ ‘부실 수사’ 등의 우려가 제기된 것.

검찰과 경찰의 협력을 당부하면서도 결국 핵심인 수사는 경찰에 ‘몰빵’해줬다는 비판이 나온다.

문 대통령은 지난 8일 “(LH 의혹은)검찰과 경찰의 유기적 협력이 필요한 첫 사건”이라며 “수사권 조정 과정에서는 검찰과 경찰의 입장이 다를 수 있었겠지만 이제는 유기적 협력으로 국가 수사기관의 대응 역량을 극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검찰은 수사 노하우 및 기법 공유, 수사 방향을 잡기 위한 논의 등에서 경찰과 보다 긴밀히 협의해 달라”고 당부했다. 

770명 규모
검찰은 0명

그럼에도 경찰이 주축이 된 770여명 규모의 합동 특별수사본부(이하 합수본)에 검찰은 포함되지 않았다. 수사를 전담하는 국수본 인력 74명 외에 18개 시도 경찰청에서 695명의 경찰이 합수본에 파견된다.

금융위원회와 국세청 등 관계기관 37명도 참여한다. 검찰은 총리실에 와 있는 검사 1명 외에 부동산 전문 검사 1명이 합수본이 아닌 정부합동조사단(이하 합조단)에 추가 파견돼 법률 지원을 맡는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지난 10일 박범계 법무부 장관,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 김창룡 경찰청장, 검찰총장 권한대행인 조남관 대검 차장과의 회의에서 “수사를 맡은 경찰, 영장 청구와 공소 제기 및 유지를 담당하는 검찰 간의 유기적 소통과 연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수사는 경찰이 맡고, 검찰은 기소를 담당하라는 역할 분담을 주문한 것이다. 

검찰은 1~2기 신도시 투기 의혹 당시 부동산 투기 세력과 유착해 정보를 제공하거나 개발 예정 용지를 미리 매입해 시세차익을 노린 공무원들을 대거 적발하는 등 상당한 성과를 올린 바 있다. 
 

▲ 3기 신도시 1차 발표하는 정세균 국무총리

1989년 노태우정부는 성남시 분당·고양시 일산·부천시 중동·안양시 평촌·군포시 산본 등 5개 지역에 신도시를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정부 발표 이후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자 1990년 2월 검찰은 합수본을 설치해 대대적인 수사에 돌입했다.

검찰 수사로 부동산 투기 사범 1만3000여명이 적발됐고 이 중 987명이 구속됐다. 금품 수수와 문서 위조 등에 연루돼 구속된 공직자는 131명에 달했다. 

2003년 노무현정부가 발표한 2기 신도시 조성 때에도 비슷했다. 2기 신도시는 경기 김포·인천 검단·화성 동탄1~2·평택 고덕·수원 광교·성남 판교·서울 송파(위례)·양주 옥정·파주 운정 등 수도권 10개 지역과 충청권 2개 지역(아산·도안) 등 총 12곳이다. 


1·2 신도시
공무원 적발

이들 지역에서 또 다시 부동산 투기가 극성을 부리자 검찰은 2005년 7월 두 번째 합수본을 설치했다. 당시 검찰이 단속한 부동산 투기 사범 중 공무원 27명이 적발됐다. 공무원 일부는 직무상 알게 된 개발 예정지 정보를 이용해 땅을 집단으로 매입한 뒤 형질을 불법 변경하는 방식으로 시세 차익을 꾀했다.

검찰은 앞선 신도시 투기 의혹 수사를 통해 이미 역량을 보여준 셈이다. 그렇다 보니 검찰이 LH 사태 수사에 참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데일리안>이 여론조사 전문기관 알앤써치에 의뢰해 진행한 지난 3월 둘째 주 정례조사에서 ‘정부 합수본에 검찰이 배제된 것은 잘못된 결정’이라는 주장에 49.5%가 찬성을 표했다. ‘잘한 결정’이라는 응답은 30.4%로 나타났다.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번 LH 투기 사태는 집권세력의 투기 DNA가 공직사회 전방위적으로 확산된 것을 잘 보여준 사례”라며 “성난 민심은 LH 투기 사태와 관련해 도대체 무엇이 두려워 검찰 수사, 감사원 감사를 원천 차단하는지 이 정권에 묻고 있다”고 비판했다. 
 

▲ 남구준

특히 지난 11일 합조단이 발표한 1차 전수조사 결과를 두고 ‘꼬리 자르기’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정 총리는 이날 1차 조사 결과 발표에서 “국토부와 LH 임직원 등 총 1만4000여명의 거래 내역과 소유 정보를 각각 조사하고 상호 대조하는 작업을 진행했다”며 “그 결과 민변과 참여연대에서 제기한 투기 의심사례를 포함해 총 20명의 투기 의심자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1차 전수조사 결과는 본인만을 대상으로 진행한 결과여서 차명이나 가족명의 거래까지 대상을 확대하면 투기 의심자가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정 총리는 “정부는 부동산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다”며 “허위 매물, 기획부동산, 떳다방 등 부동산 시장에서 자행되고 있는 불법과 불공정 행위를 엄단할 특단의 방안을 마련해 강력하게 집행하겠다”고 말했다. 

겉으로는 수사권 조정 언급
고위공직자 겨냥 두려워서?

합조단의 1차 전수조사 결과를 두고 부실수사 논란이 불거지면서 검찰의 직접수사 요구는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검찰 배제의 표면적 이유로 언급되는 ‘검·경 수사권 조정’ 외에 다른 이유가 있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도 제기된다. 문재인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검찰 권력을 분산하는 방향으로 검찰개혁을 진행해왔다. 

검찰과 경찰의 관계를 수직에서 수평으로 바꾸는 검경 수사권 조정은 경찰의 숙원이었다. 특히 올해부터 수사권이 조정됨에 따라 검찰 수사 범위는 ▲부패 ▲경제 ▲공직자 ▲선거 ▲방위사업 ▲대형참사 등 6대 범죄로 줄었다.

이 중 공직자 범죄는 대상자가 4급 이상일 때만, 경제 범죄는 피해액 5억원 이상의 횡령·배임·사기만 직접 수사가 가능하다. 부동산 투기 의혹은 6대 범죄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경찰이 수사를 주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 대검찰청 ⓒ고성준 기자

일각에선 정부에서 LH 사태가 검찰의 직접 수사 범위로 번지지 않도록 일종의 제한선을 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검찰 수사로 4급 이상 고위공직자가 LH 사태에 연루됐다는 의혹 등이 나올 경우 정부로선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빠져들 수 있다는 분석이다. 당장 한 달도 남지 않은 재보선은 물론 대선까지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있다.

남구준 국수본부장은 “과거 1~2기 신도시 수사 성과의 상당수가 경찰에서 나왔다”며 검찰이 LH 사태를 수사해야 한다는 지적에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찰이 자신감을 보이는 것보다 진상규명이 더딜 경우 검찰의 직접수사 가능성이 열리는 것은 물론 검·경 수사권 조정에도 불똥이 튈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출범 초부터 검찰개혁에 사활을 걸어온 문재인정부로선 치명상을 입게 되는 것이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검찰이 LH 사태를 수사해야 한다는 법조계 안팎의 주장에 대해 “(검찰은)수사권 있을 때 뭐했느냐”고 반문했다.

“그때 잘하지”
“우리가 무당?”

박 장관은 지난 11일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수사권 개혁은 올해 1월1일 시행됐고, 부동산 투기는 2~3년 전부터 사회적 문제가 됐다”며 “수사권이 있을 때 적극 대응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박 장관의 발언에 검찰 내부에서는 “그럼 문재인 정부는 (그 당시에) 뭘 했냐” “우리가 무당이냐”는 등의 비판 발언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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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