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구영신 특집> 2020년에도 악마를 보았다

코로나보다 더 어두운 세상 이야기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2020년이 저물고 있다. 올해는 코로나19 이슈가 전 세계를 잠식했다. 이 와중에도 암울한 사회 분위기를 더욱 잿빛으로 물들이는 여러 사건이 있었다. <일요시사>가 2020년 한 해 국민을 경악케 한 범죄 사건들을 재조명했다.
 

▲ 논란이 됐던 텔레그램 N번방 운영자 조주빈

코로나19 이슈가 1년째 계속되고 있다. 팬데믹으로 번진 감염병은 아직 그 불길이 잡힐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2021년에도 마스크를 쓰고 모임을 자제하는 분위기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감염병 창궐
팍팍한 세상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정부에서 시행한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으로 자영업자들의 삶이 파탄에 이르고 있다. 취업준비생은 더욱 얼어붙은 취업시장에 좌절하고, 직장인들은 회사 사정이 악화되면서 일자리를 잃지 않을까 걱정 중이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는 점이다. 국민들은 1년 동안 이어진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에 지쳐가고 있다. 백신 수급이 언제 이뤄질지 모른다는 점도 국민들을 우울하게 만드는 원인이다. 

여기에 국민들을 분노하게 한 사건들이 더해졌다. 온라인 메신저를 이용한 대규모 성범죄가 일어났다. 사회적 약자를 상대로 한 갑질로 피해자가 사망에 이르는 사건도 발생했다. 아동학대·묻지마 살인사건에 국민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N번방 사건’ 조주빈 = ‘텔레그램 N번방·박사방 사건’이 밝혀졌다. 모바일 메신저 텔레그램을 통해 미성년자를 포함한 일반 여성들을 상대로 한 성착취 영상을 대대적으로 공유·판매한 사건이다. 

지난 3월16일 ‘박사방’을 운영하던 25세 조주빈이 체포됐다. 그는 지난해 5월부터 올해 2월까지 아동·청소년을 포함한 여성 피해자 수십 명을 협박해 성착취 영상을 촬영하고 텔레그램 박사방을 통해 판매·유포한 혐의를 받았다. 

또 성착취물을 제작하고 유포하기 위해 범죄단체를 조직한 혐의도 있다. 조주빈과 박사방 가담자들은 조직적으로 역할을 분담하고 내부 규율을 만드는 등 음란물 공유 모임을 넘어선 범죄 단체를 조직한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4~9월 4회에 걸쳐 손석희 JTBC 사장에게 ‘흥신소를 하면서 얻은 정보를 주겠다’고 속여 1800만원을 받아내고, 사기 피해금을 보전해 주겠다며 윤장현 전 광주시장으로부터 3000만원을 받은 혐의(사기)도 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0부는 지난 11월 1심에서 조주빈에 징역 40년, 신상정보 공개·고지 10년, 취업제한 10년,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 부착 30년, 1억여원 추징 등을 명령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다양한 방법으로 다수의 피해자를 유인·협박해 성착취물을 제작하고 오랜 기간 여러 사람에게 유포했다”며 “특히 많은 피해자의 신상을 공개해 복구 불가능한 피해를 줬다”고 비판했다. 

이어 “피고인은 피해자를 속였을 뿐 아니라 협박하거나 가용하지는 않았다고 주장해 피해자가 법정에 나와 증언하게 했다”며 “범행의 중대성과 치밀함, 피해자의 수와 정도, 사회적 해악, 피고인의 태도를 고려하면 장기간 사회에서 격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전 국민에게 충격을 안겼던 16개월 아동학대 사건 ⓒMBC

▲‘여성 연쇄살인사건’ 최신종 = 실종된 여성들이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최신종은 지난 4월15일 아내의 지인인 전주 여성을 성폭행한 뒤 48만원을 빼앗고 살해해 시신을 하천 인근에 유기한 혐의를 받았다. 같은 달 19일에도 모바일 채팅 앱으로 만난 부산 여성을 살해해 유기한 혐의로 기소됐다.

최신종은 재판 과정에서도 약물 복용을 주장하며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전주지법 재판부는 지난 11월 최신종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과 장애인 복지시설 취업제한 10년, 신상정보 10년간 공개, 30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 부착도 명령했다.

흉악범죄
충격·경악

재판부는 “사람의 생명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절대적 가치여서 살인 범죄는 어떤 이유로도 용서받을 수 없다”며 “그런데도 피고인은 자신의 범행을 뉘우치지 않고 (피해자와 유족들로부터)용서받기 위한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았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유족의 충격과 슬픔은 감히 헤아리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피고인의 생명 자체를 박탈할 사정은 충분히 있어 보이지만 국민의 생명을 박탈하는 형을 내릴 때는 신중해야 한다”며 “생명보다는 자유를 빼앗는 종신형을 내려 참회하고 반성하도록 하는 게 타당하다”고 덧붙였다.

조주빈·최신종 여성 대상 범죄
국민 공분 부르는 갑질 사건도

앞서 검찰은 최신종에 사형을 구형했다. 최신종은 무기징역에 불복해 항소한 상태다.

▲원주 일가족 살인사건 = 지난 6월 원주의 한 아파트에서 ‘펑’ 소리와 함께 불길이 치솟았다. 폭발 직후 부부는 1층 화단에 떨어져 숨졌고, 아파트에서 발견된 아들은 흉기에 찔려 이미 사망한 뒤였다. 수사 결과 아버지가 아들과 아내를 죽이고, 아내의 시신을 안고 투신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 당시 경찰이 수사 기밀 내용을 유포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나 당직 때 있었던 사건이네…’로 시작하는 글에는 ‘아들의 시신은 망치로 두개골이 함몰된 상태였으며, 아버지가 1999년 군 복무 중 탈영해 여자친구를 죽이고 17년을 복역했다’ 등 사건을 직접 수사하거나 가까이서 지켜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숨진 아내는 약 15년 전 한국으로 시집 온 베트남 여성으로 알려졌다. 아내가 남편으로부터 가정폭력을 당한 사실이 드러나 안타까움을 더했다. 재혼했다 두 사람은 3개월 만에 다시 이혼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이에 앙심을 품은 남편이 아내를 살해한 것으로 추정했다.

▲아파트 경비원 갑질 사망사건 = 국민들은 사회적 약자의 죽음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서울 우이동 아파트에서 일어난 경비원 갑질 사건에 국민들이 크게 분노한 이유도 소시민의 삶이 망가지는 모습에 자신을 투영했기 때문인 듯하다. 

지난 5월 해당 아파트의 경비원 최모씨는 입주자의 갑질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최씨가 극단적 선택을 하기 전 남긴 음성파일에는 “(입주자에게) 줄곧 맞았다. 사직서를 내라며 협박했다”며 “강력한 처벌을 원한다. 진실을 밝혀달라”는 내용이 담겼다. 입주자는 지난 4월21일 아파트 단지 주차장에서 이중주차 문제로 경비원 최씨를 폭행한 혐의를 받아 구속됐다. 
 


입주자는 혐의를 꾸준히 부인했다. 1심 재판부는 입주자에 징역 5년을 선고하면서 “수사기관에서 보인 태도나 법정 진술을 봐도 자신의 잘못을 진지하게 반성했다고 보긴 어렵다”며 “피해자 유족으로부터 용서받지도 못해 유족이 엄벌을 탄원했다. 엄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또 “경위, 방법, 내용 등 사안이 무겁고 죄질이 매우 좋지 않다”며 “피해자는 특히 집요한 괴롭힘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피고인의 행동에도 사직할 수 없는 상황에서 폭언, 폭력이 반복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받고 일상생활도 제대로 영위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보호 못 받는
사회적 약자

▲구급차 이송 방해사건 = 택시기사가 의도적으로 사설 구급차의 진로를 방해해 환자 이송이 지연된 사건이 일어났다. 구급차에 타고 있던 환자가 사망하면서 국민들은 자신들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사건에 분노했다. 

택시기사 최모씨는 구급차와 사고를 낸 뒤 “보험금 처리를 하고 가라”며 가로막은 혐의를 받았다. 또 2017년 7월에도 사설 구급차와 고의 접촉사고를 낸 뒤 “구급차 안에 응급환자도 없는데 사이렌을 켜고 운행했으니 50만원을 달라. 주지 않으면 민원을 넣겠다”고 협박한 혐의도 받았다.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전세버스나 트럭 등을 운전하면서 6차례 접촉사고를 내고 2000여만원의 합의금과 치료비 등을 챙긴 혐의도 있다.  


서울동부지법 형사3단독 이유영 판사는 “장기간에 걸쳐 사고를 일으키거나 단순 접촉사고에도 입원이나 통원치료가 필요한 것으로 속여 합의금 등을 갈취하는 등 범행 기간과 수법에 비춰 죄질이 매우 불량하다”며 “특히 사설구급차에 응급환자가 타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도 환자 이송을 방해한 것은 그 위험성에 비춰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밝혔다.

최씨는 1심에서 징역 2년을 받았다.

▲을왕리 음주운전 사망사고 = 지난 9월 오토바이를 타고 치킨을 배달 중이던 50대 가장이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사망했다. 사고 당시 운전자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194%로 면허취소 수치를 훨씬 상회했다.

배달이 오지 않는다며 항의 글을 남긴 고객에게 피해자의 딸이 “너무 죄송하다는 말씀드립니다. 저는 사장님 딸이고요. 손님 치킨 배달을 가다가 저희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참변을 당하셨습니다. 치킨이 안 와서 속상하셨을 텐데 이해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라고 댓글을 남겨 안타까움을 더했다.

음주운전 차량에 타고 있던 남녀는 사고 당일 처음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운전자와 동승자는 법정에서도 서로에게 책임을 미루면서 공방을 이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피해자 유족 측은 동승자가 합의를 요구하기 위해 자택을 찾아왔다며 신변보호를 요청했다 철회하기도 했다.
 

▲ 고유정

동승자는 피해자 유족의 자택을 찾아가 현관문을 두드리거나 유족 지인에게 거액을 제시하는 등 회유하려 했다는 주장이다. 

▲아동학대 사건 = 여행용 가방에 갇히는 등 양부모의 학대에 견디다 못해 아이들이 사망했다. 지난 6월 여행용 가방을 바꿔가면서까지 7시간 동안 동거남의 아들을 가둬 심정지에 이르게 한 40대 여성 성모씨가 구속됐다. 피해아동은 심정지 상태에 이르고 나서야 가방에서 나올 수 있었다. 구속된 성씨는 “훈육 차원에서 그런 것”이라고 주장해 국민적 공분을 자아냈다. 

대전지법 천안지원 형사1부는 성씨에게 살인, 아동학대, 특수상해 등 혐의를 인정해 징역 2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해아동은 밀폐된 공간에서 7시간 넘게 감금되고 피고인이 가방 위에 올라가 뛴 것으로 인해 가슴 등이 눌려 숨을 쉬지 못해 저산소성 뇌 손상으로 숨진 것으로 보인다”며 성씨가 미필적 고의로 살인을 저질렀다고 인정했다.

아동학대·묻지마 사건도 여전
고유정 형 확정…조두순 출소

채대원 판사는 “피해자는 당시 9세의 어린아이였다. 학교 선생님과 유족, 이웃 주민이 겪은 피해아동은 밝고 명랑한 아이였다. 경찰관이 꿈이었던 아이는 가족과 함께 외식하고 그 즐거움을 이야기했다”며 “그러나 피고인의 학대로 아이의 얼굴엔 점점 그늘이 졌고, 가정 안에서 왕따와 구타는 계속됐다”고 밝혔다. 

서울 양천구에서 16개월 입양아가 양부모 장씨 부부의 학대 끝에 사망한 사건이 일어났다. 장씨는 입양한 딸을 지난 6월부터 10월까지 상습적으로 폭행·학대하고, 지난 10월13일 등 부위에 강한 충격을 가해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를 받는다.

피해 아동은 소장과 대장, 췌장 등 장기들이 손상돼 있었으며 이로 인한 복부 손상으로 사망했다. 

지난 3월부터 10월까지 15차례에 걸쳐 피해 아동을 집이나 자동차 안에 홀로 방치하고,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해 건강이 나빠진 걸 알면서도 병원에 데려가지 않은 혐의도 받고 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 결과 ‘외력에 의한 복부 손상’이 피해 아동의 사인이라는 소견이 나왔다.

경찰은 아동학대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 위반(아동학대치사) 혐의로 장씨를 구속기소했다. 
 

▲ 조두순

입양 전 피해 아동을 임시로 맡아 보살폈던 위탁가정의 어머니는 기자회견에서 “처벌이 너무 약하고 대응도 약해서 가슴 아프다”며 “양부, 양모 둘 다 똑같이 강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피해 아동은 EBS 다큐멘터리 출연 당시 침울한 표정에 다소 야위었던 모습과 달리 위탁 가정에서 찍은 사진에서는 건강한 모습으로 해맑게 웃음 짓고 있어 안타까움을 더했다. 

▲등산객 묻지마 살인사건 = 20대 남성이 일면식도 없는 등산객을 잔혹하게 살해한 사건이 일어났다. 이모씨는 법정에서도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지난 7월 이씨는 50대 여성 등산객을 흉기로 50차례 가까이 찔러 살해했다. 이씨와 여성 등산객 사이에는 어떤 접점도 없었다. 

재판 과정에서 공개된 이씨의 일기장에는 ‘인간은 절대 교화될 수 없다. 그 누구도 살아 있어서는 안 된다. 난 너희가 싫고 언제나 사람을 죽이고 싶었다. 100명 내지 200명은 죽여야 한다’ 등 살해 의지와 계획에 관한 글로 가득했다. 또 살인 방법과 시기 등을 구체적으로 구상했고 인터넷에서 실제 살해 영상을 찾아보며 살해 욕구를 해소함과 동시에 범행 계획을 구체적으로 그린 것으로 드러났다. 

재판부는 이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하면서 “피고인은 수사기관에서부터 법정에 이르기까지 피해자에 대한 미안함이나 최소한의 죄책감, 반성의 태도도 보이지 않고 있다”며 “오히려 반성문을 통해 다소 자기연민적인 태도를 보인다”고 지적했다. 20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 부착도 명령했다. 

범죄자에
국민적 관심

▲‘돌아온’ 조두순 = 아동 성폭행 혐의로 12년을 선고받은 조두순이 지난 12일 사회로 돌아왔다. 조두순의 출소는 국민적 관심을 받았다. 많은 유튜버들이 조두순의 출소 현장을 생중계했고, 집 앞에서 대기하는 경찰들과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조두순의 출소로 당시 사건이 다시 재조명 받았다. 

이외에도 2018년 강서구 PC방 살인사건의 가해자 김성수에게 징역 30년형이 확정됐다. 김성수는 자신과 말다툼을 벌인 아르바이트생을 흉기로 80여 차례나 찔러 숨지게 했다. 2019년 전 남편을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고유정도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다만 의붓아들을 살해한 혐의는 증거불충분으로 무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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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생기업 잡은’ 신정훈 의원실 수상한 보도자료

[단독] ‘생기업 잡은’ 신정훈 의원실 수상한 보도자료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한 업체가 국회의원실발 보도자료에 직격탄을 맞았다. 해당 업체는 보도자료의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보도자료를 쓴 의원실 보좌관은 “잘못된 부분이 없다”고 반박했다. 양측의 입장이 첨예하게 엇갈리는 상황에서 <일요시사>가 사건의 전말을 파헤쳐 봤다. 국회의원은 최고 헌법기관인 국회의 구성원인 동시에 개개인이 헌법기관이라는 이중적 지위를 갖는다. 법률을 만들고 개정하는 입법 기능 외에도 인사청문회, 국정감사 등을 통해 행정부를 견제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투표로 선출된 ‘국민의 종’으로서 국회의원은 기자회견, 보도자료 등을 통해 국민에게 활동 상황을 보고한다. 국회의원 민원 창구? 국회의원 이름으로 하루에도 수건씩 보도자료가 쏟아진다. 법안을 발의하거나 지역구 예산을 수주했다는 내용, 자료와 데이터를 바탕으로 정부 기관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내용 등이다. 언론은 국회의원실발 보도자료를 받아 기사로 작성한다. 언론 보도는 사정기관의 감사나 수사 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최근 한 국회의원실에서 나온 보도자료가 논란이 되고 있다. 보도자료에 언급된 정부 기관, 그 기관과 일하는 업체 등이 후폭풍에 휘말렸다. 보도자료를 받아 쓴 일부 매체는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됐다. 언론사 기자들의 이메일로 배포된 보도자료는 국회의원실 보좌관이 직접 작성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5월14일 더불어민주당 신정훈 의원실 오모 보좌관은 ‘경찰청, 순찰차 납품 지연 및 특정 업체 유착 의혹에도 자료 제출 거부!’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작성해 언론사 기자들에게 보냈다. 신정훈 의원은 전남 나주·화순을 지역구로 하는 3선 의원으로, 현재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경찰청은 행정안전위원회의 피감기관이다. 순찰차는 일반 차량에 특장 작업을 거쳐 경찰청에 납품된다. 멀리서도 순찰차임을 확인할 수 있는 리프트 경광등을 달고 겉면에 스티커를 부착하는 ‘데칼’ 작업을 거쳐 수배·체납·도난 차량을 확인할 수 있는 멀티캠을 내부에 다는 등의 작업을 거친다. 순찰차 한 대를 특장하는 데 약 1700만원의 비용이 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매년 1000여대의 노후 순찰차가 교체된다. 신정훈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노후 순찰차 959대를 교체하기 위해 총 491억원의 예산이 집행됐다. 하지만 이 중 약 225억원 상당인 343대가 납기를 맞추지 못했고 완성 검사를 통과하지 못했다. 또 납품업체의 문제로 순찰차 납품이 늦어졌는데도 불구하고 발주 기관인 경찰청은 지체상금 부과, 계약 해지 등의 조치를 하지 않는 등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정훈 의원실의 자료 요구에 경찰청이 제출을 거부하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신정훈 의원실은 ‘공공계약에 정통한 한 법조계 관계자’의 “경찰청이 계약성 권리조차 행사하지 않고 이를 묵인한 데다 국회의 자료 제출 요구도 거부한 것은 행정 편의주의를 넘어 법적 의무의 명백한 방기”라며 “이 정도 사안이면 감사원 감사는 물론 직권남용과 배임 혐의까지 적용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라는 코멘트를 인용했다. 순찰차 납품 과정 지적 해당업체 “사실과 달라” 납품업체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신정훈 의원실은 “동일한 지배 구조를 가진 Y사(보도자료에는 A사)와 N사(B사)가 10여년간 경찰청의 대형 계약을 반복적으로 수주해 왔다”며 “수의계약이나 경쟁입찰의 형식을 빌린 사실상의 내정 또는 담합 행위로 해석될 수 있다. 공정거래법상 ‘부당 공동행위’ 및 ‘입찰 방해’에 해당될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N사는 Y사의 임직원이 만든 회사로 두 업체는 모회사-자회사 관계다. 신 의원은 “국민의 세금으로 집행되는 치안 장비 도입 사업이 법적 절차와 원칙을 무시한 채 일부 업체에 특혜로 왜곡되고 있다”며 “기존 계약분에 대한 의혹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신규 발주가 진행돼서는 안 된다. 철저한 진상 조사와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 대책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보도자료를 바탕으로 몇몇 언론이 기사를 냈다. 보도 이후 납품업체인 Y사가 보도자료 내용에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다고 주장했다. Y사는 경찰, 법무부 등에 차량을 개조해 납품하는 특장업체다. Y사 관계자는 “보도자료가 배포되기 전, 기사가 나가기 전에 신정훈 의원실이나 언론으로부터 단 한 차례의 연락도 받지 못했다. 보도가 나간 이후 오 보좌관을 만나 사실과 다른 부분을 상세히 설명했지만 아무것도 반영되지 않았다. 오히려 지난달에 관련 보도가 한 차례 더 나갔다”고 주장했다. Y사는 경찰청과 직접 계약을 맺거나 현대자동차로부터 하도급을 받는 형태로 이번 납품에 참여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청은 현대자동차로부터 616대(소나타), Y사로부터 73대(스타리아 37대, 넥쏘 36대), N사로부터 270대(아이오닉 181대, 그랜저 89대) 등 총 959대를 납품받았다. Y사 관계자는 신정훈 의원실에서 지적한 납품 지연과 검사 불합격에 대해 “제작은 이미 완료됐고 출고를 기다리던 중에 검사 하나가 마무리되면 또 다른 검사를 요청하는 식으로 5개월 동안 시간을 끌었다”며 “2015년부터 경찰청에 순찰차를 납품해 왔지만 이번을 제외하고 단 한 번도 납기에 늦은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우리와 N사의 계약 차량은 납품까지 5개월 넘게 걸렸고 H사의 계약 차량은 검사 하루 만에 출고 처리됐다”며 “그동안 경찰청 검사가 미진했다고 주장하려면 우리든 H사든 같은 잣대로 진행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사실 확인 안 했다? H사는 순찰차에 설치하는 리프트 경광등을 제작하는 업체로 현대자동차와 하도급 계약을 맺고 납품한 것으로 알려졌다. Y사와 N사가 담합해 경찰청 계약을 10년 동안 수주해 왔다는 내용에 대해서는 “경찰청은 조달사업법에 따른 나라장터 종합쇼핑몰 우선 구매 제도를 통해 (업체들과) 계약했다. 나라장터에 물건을 올리면 경찰청에서 선택하는 방식”이라면서 “우리와 N사는 같은 차종으로 경쟁한 적이 단 한 차례도 없다”고 반박했다. 반면 오 보좌관은 순찰차 사업과 관련해 드러난 문제를 고치라고 여러 차례 얘기했는데 시정되지 않자 보도자료를 통해 지적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 1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비서실에서 <일요시사>와 만나 “공무원이 어떤 업무를 하다가 다소간 실수가 발생할 수 있고 관행적으로 잘못된 부분이 있을 수 있다. 그걸 인정하고 시정하면 끝까지는 안 간다”고 말했다. 이어 “순찰차 관련 문제를 (경찰청에) 수도 없이 얘기했는데 고쳐지지 않았다. 1차 차량 검사에서 불합격이 나왔는데 2차 검사를 할 때 보니 1차에서 나온 문제가 하나도 시정되지 않았다. 3차 검사는 나도 모르게 진행됐다. 시험성적서를 달라는 말에도 개인 정보를 이유로 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번에 납품한 순찰차에 설치된 경광등이 사양서에 맞지 않는다고도 지적했다. 오 보좌관은 “리프트 경광등의 핵심 기능은 주야간 150m 구간에서 잘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납품된 것은 그게 안 된다. 30m만 떨어져도 잘 보이지 않는다. 순찰차에 치명적인 장애”라고 비판했다. Y사 관계자는 “사양서가 존재하는데 30m 밖에서 안 보인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경찰청에서 3회가량 시연회를 진행했고 현장에서도 더 밝다는 의견이 있었다. 경광등이 사양서와 일부 맞지 않는 건 애초에 사양서 자체가 H사의 제품에 맞춰진 것이기 때문”이라면서 “오히려 H사의 경광등이 경찰청 순찰차 사양서에 적용돼 2015년부터 2024년, 우리와 문제가 생기기 전까지 10여년간 독점적으로 사용됐다”고 반박했다. “현장 직원들 사이에서 고장이 잦아 수리 비용이 많이 나온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는 이 관계자는 “이번 일이 일어난 것도 H사가 자사의 경광등을 납품하기 위해 오 보좌관에게 문제 제기를 한 게 시발점이 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정 안 해” “문제 없다” 순찰차를 납품하는 업체들이 자사의 경광등이 아닌 다른 업체의 것을 사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H사가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이번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Y사 관계자는 “2022~2023년 H사 경광등에 문제가 발생해 현대자동차가 납기를 놓치는 일이 일어났다. 이 일을 계기로 지난해 5~6월 경광등 납품업체를 바꾸려는 시도가 있었던 걸로 안다”고 주장했다. Y사 역시 H사와 경광등 발주 문제로 갈등을 겪었다. Y사 관계자는 “지난해 6월부터 11월까지 H사에 경광등 발주 견적서를 달라고 요청했지만 답을 받지 못했다. 납기가 (지난해) 12월12일까지라 우리한테도 시간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지난해) 11월15일 경찰청과 경광등 업체를 바꾸는 문제로 협의를 진행했고, 11월26일에 바뀐 업체의 경광등으로 우리 공장에서 시연회를 열었다”고 말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H사는 순찰차 납품업체들과의 갈등을 ‘민원’을 통해 해결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H사 대표가 신정훈 의원실 오 보좌관을 만나 억울함을 토로했고 그 내용이 지난 5월 나온 보도자료의 배경이 됐다는 의혹이다. 실제로 오 보좌관은 처음에는 민원을 받아 보도자료를 작성한 게 아니라고 했다가 나중에는 H사 대표를 만났다고 인정했다. 지난해 8월경 지역의 향우회장과 함께 H사의 대표가 찾아왔다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오 보좌관이 경찰청의 순찰차 사업을 들여다보기 시작한 시기와 일치한다. 오 보좌관은 지난 5월14일에 나온 보도자료에 대해 묻자 “지난해 8월부터 이 문제를 파고 있었다”며 “내부에서 나온 정보도 있고 경찰청에서도 (순찰차 사업에 대해) 문제 의식을 갖고 있었다. 이 문제로 경찰청 관계자를 30~40번 만났다”고 밝혔다. 눈여겨볼 대목은 H사 대표가 같은 시기 신 의원에게 정치후원금을 냈다는 점이다. <일요시사>가 나주시·화순군 선거관리위원회를 통해 입수한 신 의원의 ‘연간 300만원 초과 기부자 명단’을 확인한 결과 H사 대표는 지난해 8월22일 500만원을 기부했다. 신 의원은 2014년 7월30일 보궐선거에서 당선돼 국회의원이 됐고 20대(2020년), 21대(2024년) 총선에서 배지를 달았다. 2014~2016년, 2020~2024년 등 신 의원이 국회의원 활동을 하는 동안 H사 대표가 후원금을 낸 건 지난해 8월이 유일하다. 경광등 업체 변경 문제 때문? “사기업 갈등에 보좌관이 왜?” 오 보좌관은 H사 대표가 신 의원에게 후원금을 낸 사실을 알았냐는 질문에 “몰랐다”면서 “회계를 관리하는 직원은 나주에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H사 대표에 대해 “이전까지 전혀 몰랐던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전체 정치후원금 모금 한도) 3억원 중에 500만원을 후원했다고 해서 지난해 8월부터 지금까지 이 문제에 매달리겠느냐”며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한 업체의 문제 제기가 합당하다고 생각했고, 자료를 받아보니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좌관은 “경찰차 특장 시장 자체가 그렇게 크지 않아 뛰어드는 업체도 많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맨날 같이 했던 업체를 빼버리면 가만히 있겠나. 나는 Y사가 욕심을 부리면서 이 상황까지 왔다고 생각한다. 기존에 해왔던 곳과 똑같이 하면 되지, 더 이익을 취하려 하느냐”고 되물었다. 업체 간 중재의 의도도 있었다는 것이다. H사 대표는 신 의원에게 후원금을 낸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민원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신 의원을 지지하는 차원에서 후원금을 냈다는 것이다. H사 대표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일을 잘하신다는 말을 들어서 후원금을 냈다. 지금 이 문제와는 무관하다”며 “사업을 접을까 생각할 정도로 머리 아픈 문제”라고 말했다. 지난해 8월 오 보좌관을 만나 민원을 넣었는지는 “오래돼서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했다. Y사는 신정훈 의원실발 보도자료로 큰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Y사 관계자는 “정부 기관에 납품하는 제품을 만드는 건 맞지만, 엄연히 사기업 간 일어난 일에 국회 보좌진이 개입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며 “기사가 나간 이후 우리 회사는 경제, 이미지 부분에서 큰 타격을 받았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경찰청과 지체상금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업체 문제로 인한 지연이 결정되면 지체상금을 물어야 하는 상황이다. 차량 출고가 늦어지면서 보관을 위한 토지 대여료가 1억2000만원 정도 나갔다. 무엇보다 자회사인 N사의 신용등급 하락, 기사로 인한 이미지 훼손 등 무형적인 피해도 만만찮다”고 하소연했다. 받아쓴 언론 “취하해 달라” 한편 Y사는 신정훈 의원실에서 나간 보도자료로 기사를 작성한 매체 3곳을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했다. Y사는 “언론의 잘못된 보도로 인해 명예가 심각하게 훼손됐으며 국민에게 경찰 장비 도입 과정에 대한 불신을 초래했다”며 “신청인(Y사)의 업무 수행 능력과 투명성에 대한 의구심을 야기해 치안 활동에 대한 신뢰도 저하로 이어질 수 있는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입어 정정보도를 구한다”고 조정을 신청했다. Y사 관계자는 “2곳의 매체에서 ‘기사를 내릴 테니 소를 취하해 달라’는 내용의 답변을 언론중재위원회에 보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