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파고든’ 사이코패스 막전막후

우리 주변에 ‘괴물’이 산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사이코패스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했을 때 대중들은 생소함을 느꼈다. 일반 사람과는 다른 일종의 ‘괴물’로 여기는 인식도 강했다. 하지만 범죄 용의자가 사이코패스로 판명 나는 일이 늘어나면서 대중과의 거리감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 사이코패스가 일상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 정인양 양모 ⓒEBS

16개월 영아 정인양을 학대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는 양모 장모씨가 심리분석 검사에서 ‘사이코패스’ 성향을 보였다는 증언이 나왔다. 지난 3일 서울남부지법에서 열린 장씨의 3차 공판에서다. 

공격성↑
공감력↓

대검찰청 심리분석관 A씨는 이날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장씨에 대한 임상심리평가 결과를 설명했다. 그는 “관련 검사에서 장씨는 사이코패스로 진단되는 25점에 근접한 22점을 받았다”고 진술했다. 임상심리평가는 대상자의 인지능력·심리상태·성격특성·정신질환 여부·재범 위험성 수준 등을 검사하는 기법이다. 

앞서 검찰은 1차 공판기일에서 살인죄가 적시된 공소장 변경을 신청하면서 장씨에 대한 심리생리검사·행동분석·임상심리평가 등이 담긴 ‘통합심리분석 결과보고서’를 법원에 근거로 제출한 바 있다. 

A씨는 “평가 결과 장씨의 지능과 판단 능력은 양호했지만,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이 결여된 모습을 보였다”며 “내면의 공격성과 사이코패스적 성향이 강한 점 등에 미뤄보면 아이를 밟거나 학대를 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됐다”고 말했다. 


또 심리생리검사와 행동분석 결과를 근거로 ‘살인의 고의성’을 부인했던 장씨 진술의 신빙성이 떨어진다고도 덧붙였다. 심리생리검사는 사람이 거짓말할 때 보이는 생리적 반응의 차이를 간파해 진술의 진위를 추론해 내는 기법이다. 행동분석은 진술자의 언어·비언어적 행동 변화를 관찰해 거짓말 여부를 파악하는 분석 방법이다. 

장씨는 지난해 6월부터 10월까지 4개월에 걸쳐 정인양을 상습 폭행, 학대하고 10월13일 정인양의 등에 강한 충격을 가해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장씨의 남편 안씨도 아내의 학대 사실을 알고 별다른 조처를 하지 않은 혐의로 함께 기소됐다.

전혀 다른 종류의 범죄자로 인식
과거 비해 심리적 거리감 좁아져

장씨는 재판 과정에서 아이를 고의로 바닥에 던지거나 발로 밟은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아이의 복부에 외력이 가해진 부분에 대해서는 ‘실수로 떨어뜨리고 심폐소생술을 했을 뿐 다른 외력은 없었다’고도 했다. 하지만 행동분석에서 장씨의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두 해도 못 살고 세상을 떠난 정인양에 대한 양부모의 학대 소식이 알려지자 대중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세상을 떠나기 전 힘없이 앉아있던 정인양의 모습이 어린이집 CCTV를 통해 공개되면서 안타깝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이런 상황에서 양모 장씨에게 사이코패스 성향이 있다는 심리평가 결과가 공개되자 대중의 분노는 더 커지는 모양새다.
 

▲ 유영철과 강호순

사이코패스는 반사회적 인격장애증을 앓고 있는 사람을 말한다. 1920년대 독일의 쿠르트 슈나이더가 처음 소개한 개념으로 다른 사람의 고통에 무감각하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문제는 이 같은 특징이 평소에는 내부에 잠재돼있다가 대부분 범행을 통해서만 밖으로 드러난다는 점이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사이코패스라는 용어가 이슈화된 건 유영철 사건 이후다. 유영철은 2003년 8월부터 2004년 7월까지 21명의 여성을 살해했다. 주로 부유층 노인과 여성을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 자신이 직접 만든 망치나 칼 등을 이용해 범행을 저질렀고, 증거인멸을 위해 불을 지르거나 시체를 토막 내 야산에 묻기도 했다. 


프로파일러들이 ‘최악의 연쇄살인범’으로 꼽는 정남규는 2006년에 검거됐다. 2004년 1월부터 2006년 4월까지 13명을 살해하고 20명에게 중상을 입혔다. 당시 유영철의 소행으로 알려졌던 서울 이문동 살인사건의 진범이기도 하다. 그는 체포 이후에도 “더 이상 살인을 못 할까 봐 조바심이 난다”고 말했을 정도로 살인에 집착했다. 

유영철 사건
널리 알려져

길을 가던 어린 아이나 집에 있던 부녀자를 성폭행하고 둔기로 내려치는 잔인한 수법을 사용했다. 범행 순간 쾌감을 느끼는 사이코패스의 전형으로 알려졌다.

국내 1호 프로파일러 권일용 동국대 경찰사법대학원 겸임교수는 정남규에 대해 “제가 만난 1000명의 범죄자 중 가장 잔혹했다”고 말했다. 그는 2009년 11월21일 서울구치소에서 목을 매 자살을 기도,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이튿날 새벽 사망했다. 

2009년에는 강호순이 검거됐다. 2006년 9월부터 2008년 12월까지 경기도 서남부 일대에서 여성 10명을 납치하고 살해했다. 성폭행이나 성관계를 위해 피해 여성들에게 접근해서는 범행 이후 곧바로 살해했다. 특히 희생자 대부분을 스타킹으로 목 졸라 살해한 뒤 시신을 알몸 상태로 매장하는 등의 수법을 되풀이했다. 

여성에게 살인 충동을 느끼고 사냥하듯 접근해 잔혹하게 살해한 범행 수법에서 전형적인 사이코패스의 특징이 나타난다는 분석이 나왔다. 강호순은 검거 이후에도 수사관들에게 ‘증거가 있으면 제시해보라’는 식으로 말하며 양심의 가책을 전혀 느끼지 않는 듯 굴었다고 한다. 
 

▲ 연쇄살인범 정남규

특히 당시 강호순의 이웃들은 ‘아이들에게 잘하는 친절한 아버지의 이미지’로 그를 기억했다. 반면 함께 살았던 전 부인 등에게는 폭력적인 성향을 보였다고 한다. 이런 다중인격 역시 사이코패스의 전형적인 특성이라는 분석이다. 

사이코패스의 개념이 대중에 널리 알려진 건 유영철 때부터지만 그보다 앞서 연쇄살인을 저질렀던 정두영도 사이코패스의 전형적인 특성을 보였다. 그는 1999년 6월부터 2000년 4월까지 부산과 경남 지역에서 9명을 살해하고 10명을 다치게 했다. 18세 때 살인을 저질러 11년형을 선고받은 정두영은 출소한 이후에도 살인을 멈추지 않았고, 결국 2000년 사형수가 됐다.

대중매체
흔한 소재

정두영은 금품을 훔치다 들키면 목격자를 흉기나 둔기 등으로 잔혹하게 살해했다. 검거된 후 살해 동기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내 속에 악마가 있었던 모양”이라고 말했다. 유영철이 검찰 조사에서 “2000년 강간죄를 저질러 교도소에 수감돼있을 당시 정두영 연쇄살인사건에 대해 상세하게 보도한 월간지를 보고 범행에 착안하게 됐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2016년 8월 대전교도소에 수감돼있던 정두영은 탈옥 시도를 했다 발각돼 사회를 또 한 번 발칵 뒤집었다.

최악의 장기미제사건으로 손꼽힌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진범 이춘재도 뒤늦게 사이코패스라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춘재는 처제를 포함해 총 15명의 여성을 살해하고 9명의 여성을 상대로 성폭행과 강도질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살해된 피해자들 역시 대부분 성폭행을 당한 후 죽임을 당했다. 
 

▲ 화성연쇄살인사건 진범으로 밝혀진 이춘재

이춘재는 범행 동기에 대해 별다른 진술을 하지 않았지만 경찰은 수십 차례에 걸친 프로파일러 면담 결과 등을 토대로 그의 범행 동기를 ‘변태적 성욕 해소’로 판단했다. 또 사이코패스 검사에서 그는 “피해자의 아픔과 고통에 대해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등 사이코패스 성향이 뚜렷하다”는 결과를 받았다. 

경찰 관계자는 “이춘재는 내성적 성격으로 자기 삶에서 주도적 역할을 못하다가 군대에서 처음으로 성취감과 주체적 역할을 경험한 뒤 전역 후에는 무료하고 단조로운 생활로 인해 스트레스가 가중된 욕구불만의 상태에 놓였다”며 “결국 욕구 해소와 내재한 욕구불만을 표출하고자 가학적 형태의 범행을 한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이춘재·정두영·유영철·정남규·강호순 등의 연쇄살인범들은 대부분 사이코패스로 판명됐다. 이들은 대중들에게 일종의 ‘괴물’처럼 인식됐다. 범죄자들 사이에서도 ‘돌연변이’에 가까운 독특한 존재들로 여겨진 것. 

정인이 양모도 같은 성향 보여 
일각에선 “언론의 과잉 보도”

하지만 최근 사이코패스에 대한 대중들의 심리적 거리감이 조금씩 좁혀지는 모양새다. 연쇄살인, 연쇄 성폭행 등의 초강력 범죄를 저지른 용의자들에게만 나타나는 듯했던 사이코패스 성향을 가진 범죄자가 이전보다 비교적 흔하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대중매체에서 사이코패스를 소재로 하는 창작물을 많이 쏟아내고 있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아동성폭행 혐의로 12년형을 선고받고 지난해 출소한 조두순의 경우 사이코패스 테스트에서 29점을 받았다. 26~27점을 받은 강호순보다도 높은 점수다. 이유라 경기경찰청 과학수사계 범죄분석관이 수사전문 월간지 <수사연구>에 기고한 ‘아동성범죄의 특성과 조두순’에 나온 내용이다.


조두순은 특히 죄책감과 공감 능력이 없고 자신의 행동을 통제하는 능력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충동성과 무책임성, 장기적인 목표 부재, 기생적인 생활방식 등의 항목에서도 정신병적 성향이 두드려졌다.

기고에 따르면 2008년 12월 검거 직후 면담 과정에서 보인 행동의 특징을 토대로 조두순은 분노 감정에 민감하고 매우 공격적인 성향이 있다고 밝혔다. 

앞서 2017년 여중생을 살해해 시신을 유기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어금니 아빠’ 이영학의 경우도 사이코패스 성향이 짙은 것으로 파악됐다. 그는 사이코패스 테스트에서 40점 만점에 25점을 받았다. 

당시 서울청 과학수사계 소속 이주현 프로파일러는 “어린 시절부터 장애로 놀림을 당하거나 따돌림을 당한 이씨가 친구들을 때리는 등 보복적 행동을 보였다”며 이 과정에서 사이코패스 성향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판단했다. 이씨의 이중생활 역시 사이코패스 성향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실제로는
얼마 없다?

일각에선 언론이 사이코패스의 존재에 대해 과잉 불안감을 조성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일반인들이 사이코패스의 존재를 지나치게 과장해서 인식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2015년에 나오기도 했다. 당시 대한범죄학회 최신호에 실린 <사이코패스 관한 대중의 인식과 두려움> 논문에 따르면 응답자들은 평균 범죄자들의 23.4%가 사이코패스일 것이라고 답했다. 앞서 2000년에 발표된 연구논문이 추정한 범죄자들의 사이코패스 비율 11%의 두 배가 넘는 수치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사이코패스 테스트 ‘25점 넘으면 위험’

사이코패스를 진단하는 도구로는 캐나다의 심리학자 로버트 헤어가 만든 PCL-R이 주로 사용된다.

조은경 한림대 심리학과 교수와 이수정 교수가 한국판으로 표준화했다.

PCL-R은 20개 문항으로 구성돼 있다. 피검사자는 전문 검사자가 불러주는 문항을 듣고 ‘아니다(0점)/아마도(1점)/그렇다(2점)’로 나눠서 답한다. 

만점은 40점이고, 우리나라에선 25점 이상이면 사이코패스로 분류한다.

미국은 30점 넘어야

미국은 30점 이상부터 사이코패스 성향이 있다고 분석한다.

우리나라가 미국에 비해 범죄 기록이 다양하지 않고 아동·청소년기 기록이 부족하기 때문에 생긴 차이로 전문가들이 기준점을 보정했다. 

‘과도한 자존감’ ‘죄책감 결여’ ‘타인을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간주’ ‘청소년 비행’ 범죄 경력‘ 등에 대해 묻는다.

유영철은 38점, 중곡동 주부 살해범 서진환은 31점, 조두순은 29점, 강호순은 27점, 이영학은 25점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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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생기업 잡은’ 신정훈 의원실 수상한 보도자료

[단독] ‘생기업 잡은’ 신정훈 의원실 수상한 보도자료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한 업체가 국회의원실발 보도자료에 직격탄을 맞았다. 해당 업체는 보도자료의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보도자료를 쓴 의원실 보좌관은 “잘못된 부분이 없다”고 반박했다. 양측의 입장이 첨예하게 엇갈리는 상황에서 <일요시사>가 사건의 전말을 파헤쳐 봤다. 국회의원은 최고 헌법기관인 국회의 구성원인 동시에 개개인이 헌법기관이라는 이중적 지위를 갖는다. 법률을 만들고 개정하는 입법 기능 외에도 인사청문회, 국정감사 등을 통해 행정부를 견제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투표로 선출된 ‘국민의 종’으로서 국회의원은 기자회견, 보도자료 등을 통해 국민에게 활동 상황을 보고한다. 국회의원 민원 창구? 국회의원 이름으로 하루에도 수건씩 보도자료가 쏟아진다. 법안을 발의하거나 지역구 예산을 수주했다는 내용, 자료와 데이터를 바탕으로 정부 기관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내용 등이다. 언론은 국회의원실발 보도자료를 받아 기사로 작성한다. 언론 보도는 사정기관의 감사나 수사 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최근 한 국회의원실에서 나온 보도자료가 논란이 되고 있다. 보도자료에 언급된 정부 기관, 그 기관과 일하는 업체 등이 후폭풍에 휘말렸다. 보도자료를 받아 쓴 일부 매체는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됐다. 언론사 기자들의 이메일로 배포된 보도자료는 국회의원실 보좌관이 직접 작성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5월14일 더불어민주당 신정훈 의원실 오모 보좌관은 ‘경찰청, 순찰차 납품 지연 및 특정 업체 유착 의혹에도 자료 제출 거부!’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작성해 언론사 기자들에게 보냈다. 신정훈 의원은 전남 나주·화순을 지역구로 하는 3선 의원으로, 현재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경찰청은 행정안전위원회의 피감기관이다. 순찰차는 일반 차량에 특장 작업을 거쳐 경찰청에 납품된다. 멀리서도 순찰차임을 확인할 수 있는 리프트 경광등을 달고 겉면에 스티커를 부착하는 ‘데칼’ 작업을 거쳐 수배·체납·도난 차량을 확인할 수 있는 멀티캠을 내부에 다는 등의 작업을 거친다. 순찰차 한 대를 특장하는 데 약 1700만원의 비용이 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매년 1000여대의 노후 순찰차가 교체된다. 신정훈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노후 순찰차 959대를 교체하기 위해 총 491억원의 예산이 집행됐다. 하지만 이 중 약 225억원 상당인 343대가 납기를 맞추지 못했고 완성 검사를 통과하지 못했다. 또 납품업체의 문제로 순찰차 납품이 늦어졌는데도 불구하고 발주 기관인 경찰청은 지체상금 부과, 계약 해지 등의 조치를 하지 않는 등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정훈 의원실의 자료 요구에 경찰청이 제출을 거부하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신정훈 의원실은 ‘공공계약에 정통한 한 법조계 관계자’의 “경찰청이 계약성 권리조차 행사하지 않고 이를 묵인한 데다 국회의 자료 제출 요구도 거부한 것은 행정 편의주의를 넘어 법적 의무의 명백한 방기”라며 “이 정도 사안이면 감사원 감사는 물론 직권남용과 배임 혐의까지 적용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라는 코멘트를 인용했다. 순찰차 납품 과정 지적 해당업체 “사실과 달라” 납품업체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신정훈 의원실은 “동일한 지배 구조를 가진 Y사(보도자료에는 A사)와 N사(B사)가 10여년간 경찰청의 대형 계약을 반복적으로 수주해 왔다”며 “수의계약이나 경쟁입찰의 형식을 빌린 사실상의 내정 또는 담합 행위로 해석될 수 있다. 공정거래법상 ‘부당 공동행위’ 및 ‘입찰 방해’에 해당될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N사는 Y사의 임직원이 만든 회사로 두 업체는 모회사-자회사 관계다. 신 의원은 “국민의 세금으로 집행되는 치안 장비 도입 사업이 법적 절차와 원칙을 무시한 채 일부 업체에 특혜로 왜곡되고 있다”며 “기존 계약분에 대한 의혹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신규 발주가 진행돼서는 안 된다. 철저한 진상 조사와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 대책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보도자료를 바탕으로 몇몇 언론이 기사를 냈다. 보도 이후 납품업체인 Y사가 보도자료 내용에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다고 주장했다. Y사는 경찰, 법무부 등에 차량을 개조해 납품하는 특장업체다. Y사 관계자는 “보도자료가 배포되기 전, 기사가 나가기 전에 신정훈 의원실이나 언론으로부터 단 한 차례의 연락도 받지 못했다. 보도가 나간 이후 오 보좌관을 만나 사실과 다른 부분을 상세히 설명했지만 아무것도 반영되지 않았다. 오히려 지난달에 관련 보도가 한 차례 더 나갔다”고 주장했다. Y사는 경찰청과 직접 계약을 맺거나 현대자동차로부터 하도급을 받는 형태로 이번 납품에 참여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청은 현대자동차로부터 616대(소나타), Y사로부터 73대(스타리아 37대, 넥쏘 36대), N사로부터 270대(아이오닉 181대, 그랜저 89대) 등 총 959대를 납품받았다. Y사 관계자는 신정훈 의원실에서 지적한 납품 지연과 검사 불합격에 대해 “제작은 이미 완료됐고 출고를 기다리던 중에 검사 하나가 마무리되면 또 다른 검사를 요청하는 식으로 5개월 동안 시간을 끌었다”며 “2015년부터 경찰청에 순찰차를 납품해 왔지만 이번을 제외하고 단 한 번도 납기에 늦은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우리와 N사의 계약 차량은 납품까지 5개월 넘게 걸렸고 H사의 계약 차량은 검사 하루 만에 출고 처리됐다”며 “그동안 경찰청 검사가 미진했다고 주장하려면 우리든 H사든 같은 잣대로 진행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사실 확인 안 했다? H사는 순찰차에 설치하는 리프트 경광등을 제작하는 업체로 현대자동차와 하도급 계약을 맺고 납품한 것으로 알려졌다. Y사와 N사가 담합해 경찰청 계약을 10년 동안 수주해 왔다는 내용에 대해서는 “경찰청은 조달사업법에 따른 나라장터 종합쇼핑몰 우선 구매 제도를 통해 (업체들과) 계약했다. 나라장터에 물건을 올리면 경찰청에서 선택하는 방식”이라면서 “우리와 N사는 같은 차종으로 경쟁한 적이 단 한 차례도 없다”고 반박했다. 반면 오 보좌관은 순찰차 사업과 관련해 드러난 문제를 고치라고 여러 차례 얘기했는데 시정되지 않자 보도자료를 통해 지적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 1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비서실에서 <일요시사>와 만나 “공무원이 어떤 업무를 하다가 다소간 실수가 발생할 수 있고 관행적으로 잘못된 부분이 있을 수 있다. 그걸 인정하고 시정하면 끝까지는 안 간다”고 말했다. 이어 “순찰차 관련 문제를 (경찰청에) 수도 없이 얘기했는데 고쳐지지 않았다. 1차 차량 검사에서 불합격이 나왔는데 2차 검사를 할 때 보니 1차에서 나온 문제가 하나도 시정되지 않았다. 3차 검사는 나도 모르게 진행됐다. 시험성적서를 달라는 말에도 개인 정보를 이유로 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번에 납품한 순찰차에 설치된 경광등이 사양서에 맞지 않는다고도 지적했다. 오 보좌관은 “리프트 경광등의 핵심 기능은 주야간 150m 구간에서 잘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납품된 것은 그게 안 된다. 30m만 떨어져도 잘 보이지 않는다. 순찰차에 치명적인 장애”라고 비판했다. Y사 관계자는 “사양서가 존재하는데 30m 밖에서 안 보인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경찰청에서 3회가량 시연회를 진행했고 현장에서도 더 밝다는 의견이 있었다. 경광등이 사양서와 일부 맞지 않는 건 애초에 사양서 자체가 H사의 제품에 맞춰진 것이기 때문”이라면서 “오히려 H사의 경광등이 경찰청 순찰차 사양서에 적용돼 2015년부터 2024년, 우리와 문제가 생기기 전까지 10여년간 독점적으로 사용됐다”고 반박했다. “현장 직원들 사이에서 고장이 잦아 수리 비용이 많이 나온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는 이 관계자는 “이번 일이 일어난 것도 H사가 자사의 경광등을 납품하기 위해 오 보좌관에게 문제 제기를 한 게 시발점이 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정 안 해” “문제 없다” 순찰차를 납품하는 업체들이 자사의 경광등이 아닌 다른 업체의 것을 사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H사가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이번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Y사 관계자는 “2022~2023년 H사 경광등에 문제가 발생해 현대자동차가 납기를 놓치는 일이 일어났다. 이 일을 계기로 지난해 5~6월 경광등 납품업체를 바꾸려는 시도가 있었던 걸로 안다”고 주장했다. Y사 역시 H사와 경광등 발주 문제로 갈등을 겪었다. Y사 관계자는 “지난해 6월부터 11월까지 H사에 경광등 발주 견적서를 달라고 요청했지만 답을 받지 못했다. 납기가 (지난해) 12월12일까지라 우리한테도 시간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지난해) 11월15일 경찰청과 경광등 업체를 바꾸는 문제로 협의를 진행했고, 11월26일에 바뀐 업체의 경광등으로 우리 공장에서 시연회를 열었다”고 말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H사는 순찰차 납품업체들과의 갈등을 ‘민원’을 통해 해결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H사 대표가 신정훈 의원실 오 보좌관을 만나 억울함을 토로했고 그 내용이 지난 5월 나온 보도자료의 배경이 됐다는 의혹이다. 실제로 오 보좌관은 처음에는 민원을 받아 보도자료를 작성한 게 아니라고 했다가 나중에는 H사 대표를 만났다고 인정했다. 지난해 8월경 지역의 향우회장과 함께 H사의 대표가 찾아왔다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오 보좌관이 경찰청의 순찰차 사업을 들여다보기 시작한 시기와 일치한다. 오 보좌관은 지난 5월14일에 나온 보도자료에 대해 묻자 “지난해 8월부터 이 문제를 파고 있었다”며 “내부에서 나온 정보도 있고 경찰청에서도 (순찰차 사업에 대해) 문제 의식을 갖고 있었다. 이 문제로 경찰청 관계자를 30~40번 만났다”고 밝혔다. 눈여겨볼 대목은 H사 대표가 같은 시기 신 의원에게 정치후원금을 냈다는 점이다. <일요시사>가 나주시·화순군 선거관리위원회를 통해 입수한 신 의원의 ‘연간 300만원 초과 기부자 명단’을 확인한 결과 H사 대표는 지난해 8월22일 500만원을 기부했다. 신 의원은 2014년 7월30일 보궐선거에서 당선돼 국회의원이 됐고 20대(2020년), 21대(2024년) 총선에서 배지를 달았다. 2014~2016년, 2020~2024년 등 신 의원이 국회의원 활동을 하는 동안 H사 대표가 후원금을 낸 건 지난해 8월이 유일하다. 경광등 업체 변경 문제 때문? “사기업 갈등에 보좌관이 왜?” 오 보좌관은 H사 대표가 신 의원에게 후원금을 낸 사실을 알았냐는 질문에 “몰랐다”면서 “회계를 관리하는 직원은 나주에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H사 대표에 대해 “이전까지 전혀 몰랐던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전체 정치후원금 모금 한도) 3억원 중에 500만원을 후원했다고 해서 지난해 8월부터 지금까지 이 문제에 매달리겠느냐”며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한 업체의 문제 제기가 합당하다고 생각했고, 자료를 받아보니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좌관은 “경찰차 특장 시장 자체가 그렇게 크지 않아 뛰어드는 업체도 많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맨날 같이 했던 업체를 빼버리면 가만히 있겠나. 나는 Y사가 욕심을 부리면서 이 상황까지 왔다고 생각한다. 기존에 해왔던 곳과 똑같이 하면 되지, 더 이익을 취하려 하느냐”고 되물었다. 업체 간 중재의 의도도 있었다는 것이다. H사 대표는 신 의원에게 후원금을 낸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민원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신 의원을 지지하는 차원에서 후원금을 냈다는 것이다. H사 대표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일을 잘하신다는 말을 들어서 후원금을 냈다. 지금 이 문제와는 무관하다”며 “사업을 접을까 생각할 정도로 머리 아픈 문제”라고 말했다. 지난해 8월 오 보좌관을 만나 민원을 넣었는지는 “오래돼서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했다. Y사는 신정훈 의원실발 보도자료로 큰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Y사 관계자는 “정부 기관에 납품하는 제품을 만드는 건 맞지만, 엄연히 사기업 간 일어난 일에 국회 보좌진이 개입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며 “기사가 나간 이후 우리 회사는 경제, 이미지 부분에서 큰 타격을 받았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경찰청과 지체상금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업체 문제로 인한 지연이 결정되면 지체상금을 물어야 하는 상황이다. 차량 출고가 늦어지면서 보관을 위한 토지 대여료가 1억2000만원 정도 나갔다. 무엇보다 자회사인 N사의 신용등급 하락, 기사로 인한 이미지 훼손 등 무형적인 피해도 만만찮다”고 하소연했다. 받아쓴 언론 “취하해 달라” 한편 Y사는 신정훈 의원실에서 나간 보도자료로 기사를 작성한 매체 3곳을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했다. Y사는 “언론의 잘못된 보도로 인해 명예가 심각하게 훼손됐으며 국민에게 경찰 장비 도입 과정에 대한 불신을 초래했다”며 “신청인(Y사)의 업무 수행 능력과 투명성에 대한 의구심을 야기해 치안 활동에 대한 신뢰도 저하로 이어질 수 있는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입어 정정보도를 구한다”고 조정을 신청했다. Y사 관계자는 “2곳의 매체에서 ‘기사를 내릴 테니 소를 취하해 달라’는 내용의 답변을 언론중재위원회에 보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