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구영신 특집> ‘키워드로 본’ 2020 연예계 핫이슈

환희의 순간부터 최악의 장면까지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2020년이 저물어간다. 전염병이 몰아친 올해에도 연예계에는 예년과 다름없이 크고 작은 사건이 벌어졌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과 BTS의 ‘다이너마이트’가 전 세계를 휩쓴 영광의 순간도 있었던 한편, 마약·도박·갑질로 얼룩진 연예계의 어두운 그림자도 짙었던 한 해였다. 
 

 

올해 초 갑작스럽게 시작된 코로나19로 인해 전 세계가 신음하고 있다.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불편해지는 심리, 인적이 드문 거리, 사라진 콘서트와 공연, 가뭄에 콩 나듯 나오는 영화, 확진자로 인한 방송국 폐쇄, 점점 더 활발해지는 유튜브와 OTT 등 갑작스럽게 변해버린 일상에서 국민들은 사투를 벌여나가고 있다.

완전히 달라진 세상 속에서도 연예계의 시계는 돌아가고 있다. 많은 사람이 모이고 관심을 두는 연예계에는 환희와 영광, 경쟁과 갈등, 감동과 슬픔이 버무려진 희로애락도 이어지고 있다. 키워드를 통해 2020년 연예계 이슈를 짚어봤다.
 
<기생충>

지난 2월 한국 영화계에 새 역사가 쓰였다. 지난해 칸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영화 <기생충>이 프랑스를 넘어 영화산업의 본고장이라 할 수 있는 미국에서 최고의 성적을 거뒀다. <기생충>은 오스카로 불리는 제92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까지 총 4관왕을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다. 

봉준호 감독이 연출한 <기생충>의 쾌거는 한국 영화 100년 역사 중 가장 기념비적인 순간이자, 세계 영화사에서도 다시 쓰이기 힘든 대기록이기도 하다.

아카데미 역사상 외국어 영화가 작품상을 받은 것도, 작품상과 국제영화상을 동시에 받은 것도 처음이다. 한 사람이 한 작품으로 4개의 트로피를 받은 것도 최초다. 황금종려상 수상작이 아카데미 작품상을 동시에 받은 것은 1955년 개봉한 <마티> 이후 65년 만의 기록이다. 
 

▲ 기생충 봉준호 감독

봉 감독은 감독상 수상 소감에서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라는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발언을 인용해 그에게 헌사를 전하며 전 세계 영화인에게 감동을 전했다.
 
트로트

지난해 TV조선 트로트 오디션 <미스트롯>이 좋은 결과를 내면서 서서히 기지개를 편 트로트 예능프로그램은 한국 방송가를 장악했다. 지난해 연말부터 MBC <놀면 뭐하니?>의 유재석이 부캐 유산슬로 트로트 바람이 시작됐고, TV조선 <미스터트롯>은 35%가 넘는 시청률로 신드롬을 일으켰다.

임영웅, 영탁, 이찬원, 김호중, 장민호 등 상위권에 랭크된 가수들은 국내 가요·예능계를 휩쓰는 주역이 됐다. 한동안은 <미스터트롯> 출연진이 나오는 곳이면 시청률이 두 배 이상 뛰는 기현상도 벌어졌다. 

트로트가 바람을 일으키자 모든 채널은 트로트 오디션을 론칭했다. MBC는 <트로트의 민족>, SBS는 <트롯신이 떴다>, KBS는 <전국 트롯체전>을 선보였다. 감정이 과하게 섞인 창법이나 다소간 과장된 퍼포먼스는 젊은 연령층에겐 외면받지만, 40대 이상 연령대에서 트로트는 여전히 최고의 프로그램으로 주목받고 있다.

언택트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인해 올해 연예계에 들이닥친 가장 큰 변화는 언택트(Untact)다. 비대면과 비접촉을 지향하는 언택트는 여러 사람이 모여 진행되는 제작발표회와 쇼케이스 등 다양한 이벤트를 온라인 생중계 형식으로 바꿨다.

작품 종영 이후 진행되던 인터뷰도 화상 형태로 바뀌는 등 소통의 방식도 변화를 맞았다. 각자 편안한 공간에서 아티스트의 이야기를 들어본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만큼 활기가 떨어졌다는 의견도 나온다.


관찰 및 여행 예능이 빗발쳤던 방송가는 스튜디오 형태의 예능만 양산하게 됐다. 다양한 나라를 활보하거나, 각 나라 고유의 음식을 먹어보는 형태의 예능은 사라졌다. 

봉준호·BTS 세계 휩쓴 K-컬쳐
트로트 뜨고 코미디 무너지고

가요계는 ‘방구석 콘서트’로 지칭되는 새로운 형태의 콘서트 문화를 만들어 인터넷을 통해 콘서트를 관람하는 방법을 창안했다. 

영화계는 유례없는 보릿고개를 겪었다. 국내 최대 멀티플렉스 기업들은 예년과 비교해 90% 이상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영화를 그 누구보다 사랑하는 한국 관객들은 코로나19 불안으로 인해 폐쇄된 공간에서 2시간 넘게 타인과 보내야 하는 영화관을 외면했다.

이런 상황에 놀란 배급사는 신작 개봉을 줄줄이 미루며 악순환을 지속하고 있다. 
 

▲ 최고의 한 해를 보냈던 가수 방탄소년단

이외에도 연극과 뮤지컬 등 공연계 역시 관객의 발길이 끊기며 최악의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집콕’ 생활이 이어지면서 넷플릭스를 비롯한 OTT 플랫폼은 유례없는 수혜를 입었다. 특히 넷플릭스는 전 세계 가입자만 1억9500만명으로, 아시아 지역 가입자 수도 꾸준히 늘고 있다. 최근 로이터를 통해 국내 유료 가입자만 330만명이 넘기며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코미디

무려 21년간 일요일 밤의 대미를 장식했던 KBS2 <개그콘서트>가 잠정 휴식에 접어들었다. 재방 기약이 없는 형태로, 사실상 폐지에 가깝다. 지난해 5월 1000회를 맞이하면서 위기설이 대두됐지만 빠르게 변화하는 미디어 시장에서 공개코미디는 뒤처진 시대의 산물로 전락했다. 

새로운 스타를 발굴하지 못했고, 화제를 모으는 코너도 전무했다. 기존의 스타 개그맨들은 각 채널의 예능이나 팟캐스트, 유튜브 등 뉴미디어로 뻗어나갔고, 그 사이 무대에 설만한 인재는 고갈됐다.

현재 tvN <코미디 빅리그>가 공개 코미디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시청률 2%에 화제성도 다른 예능에 비해 많이 처진 성적이다. 국내 최고의 코미디 장르였던 공개 코미디가 점점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그 가운데 신인 개그맨 대다수는 유튜브로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몰래카메라나 브이로그 형식을 활용해 각자 의견이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 좀 더 자유로운 형태의 방송을 제작 중이다. 일부 개그맨들은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에 출연할 때보다 훨씬 더 많은 이익을 얻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BTS

영화계에 <기생충>이 있었다면 가요계에는 그룹 방탄소년단(이하 BTS)이 있었다. BTS는 ‘다이너마이트(Dynamite)’와 피처링곡 ‘세비지 러브(Savage Love)’ ‘라이프 고스 온(Life Goes On)’으로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핫100’ 정상에 세 번이나 이름을 올렸다. 빌보드 핫100 차트는 미국 내 라디오 방송 청취자 수, 온 디멘드 음원 다운로드 수, 유튜브 조회수 등을 합산해 순위에 반영한다.

약 3개월 사이에 세 번의 1위를 차지했으며 ‘핫100’에 1위로 진입한 두 곡을 가진 첫 듀오/그룹이라는 타이틀도 얻었다. 오스트레일리아 그룹 ‘비지스’ 이래 최단기간(2개월 3주) 1위 탈환이라는 기록도 세웠다. 

BTS는 시상식 무대에도 올랐다. 미국 대중음악 시상식 ‘2020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에서 3관왕을 차지했고, 북미 3대 음악 시상식 ‘빌보드 뮤직 어워드’와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에서도 상을 거머쥐었다. 내년 1월 열리는 ‘그래미 어워드’에는 한국 가수 최초로 수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논란

올해에도 눈살을 찌푸릴 만한 크고 작은 사건 사고가 연이어 터졌다. 마약과 도박처럼 불법을 저지른 연예인들이 적지 않았으며, 문란한 사생활로 인한 폭로, 성추문, 갑질 사태도 이어졌다. 


올해 가요계에서는 특히 마약 스캔들이 눈에 띈다. 가수 휘성이 프로포폴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서울 한 건물에서 수면마취제류를 투입한 후 실신한 채로 발견돼 충격을 안겼다. 이후 경찰을 통해 소변 검사 등을 진행했지만 결과는 음성으로 나왔다. 
 

▲ 개그콘서트 ⓒKBS

M.I.B 출신 래퍼 영크림을 비롯해 메킷레인 레코즈 소속사의 나플라, 루피, 블루, 오왼 등이 마약 투약 혐의로 무더기 적발됐다. 

최근에는 비투비의 멤버 정일훈이 약 5년간 가상 화폐를 통해 대마초를 구입하고 흡입한 사실이 알려졌다. 

연예계와 끊이지 않는 고리와도 같은 도박 스캔들 역시 올해도 연달아 터졌다. 지난 9월 초신성의 멤버 윤학과 성제가 필리핀에서 불법 도박 혐의로 입건됐으며, 개그맨 김형인과 최재욱도 서울에서 불법 도박장을 운영하다 적발됐다. 

코로나로 완전히 뒤바뀐 세상
마약, 도박, 성추문, 갑질도

YG엔터테인먼트의 수장이었던 양현석 대표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불법 도박을 한 혐의로 벌금 1500만원을 선고받았다. 

매년 연예인들의 잘못된 행동이 구설에 오르는 일은 올해도 어김없었다. 특히 가수 김건모, 레드벨벳 아이린, 엑소의 찬열 등 이미지가 좋았던 스타들의 명예가 폭로로 인해 구겨졌다. 

SBS <미운 우리 새끼>에서 맹활약하며 선한 이미지를 쌓은 김건모는 결혼까지 이어지는 ‘꽃길’의 행보를 걷다 성폭행 피소를 당하며 방송 활동을 접었다. 그는 피해자의 주장에 ‘사실무근’이라며 무고죄로 고소했지만, 경찰은 피해자에 대한 무고죄는 불기소로 마무리했다.
 

▲ 가수 아이린 ⓒ아이더

아이린은 화보 촬영 중 갑질을 했다는 폭로를 당해 이미지가 실추됐다. 스타일리스트 겸 에디터라고 밝힌 A씨는 아이린으로부터 충격적인 갑질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이후 아이린과 관련한 폭로 글이 다수 올라왔고, 결국 아이린은 갑질 행태에 사과했다. 

엑소의 찬열은 과거 연인이라고 주장하는 B씨로부터 문란한 사생활을 폭로당했다. B씨는 찬열이 자신과 사귀는 중에도 다른 여성들은 물론 지인과도 잠자리를 가졌다고 폭로했고, 찬열은 묵묵부답으로 일관 중이다. 

가짜사나이

올 여름을 강타한 콘텐츠는 방송사가 아닌 유튜브 피지컬 갤러리 채널에서 만든 ‘가짜사나이’다. 인기 유튜버들이 특수부대 UDT 훈련을 체험하는 장면을 날 것 그대로 방영한 ‘가짜사나이’는 엄청난 화력을 일으키며 회당 1000만 이상의 인기를 끌었다. 

특히 훈련대장이었던 이근 대위의 “인성 문제 있어?” “4번은 개인주의야” 등 다양한 유행어를 만들며 방송가를 휘젓는 예능 블루칩으로 떠올랐다. 

‘가짜사나이’ 제작진은 CGV를 통한 관람을 비롯해 왓챠와 카카오TV 등 OTT 플랫폼과 계약을 맺으며 몸집을 불리는 등 빠른 행보를 선보이며, 새로운 콘텐츠 시대를 여는 듯했다. 

하지만 시즌2가 시작되는 과정에서 아이콘이나 다름없었던 이근 대위의 사생활 논란이 불거졌다. 또 더 많은 훈련생이 참가한 ‘가짜사나이’ 시즌2는 지나친 가혹행위와 함께 포기를 유도하는 훈련 방식을 보여주어 부정적인 여론도 들끓었다. 

여기에 추가로 교관 중 일부가 퇴폐업소를 방문하고 성 착취 행위를 저질렀다는 논란까지 일었다. 신드롬에 가까웠던 인기가 한순간에 물거품처럼 사라진 것. 이 프로젝트를 기획한 김계란은 온갖 논란에 휘말리다 급기야 시즌2 방영 중 모든 방송 공개를 중단하기로 했다.

떨어진 별

올해 국민을 가장 아프게 한 소식 중 하나는 개그우먼 박지선의 사망일 것이다. 언제나 긍정적인 언행으로 많은 사람을 즐겁게 한 박지선은 지난 11월2일 생을 마감했다. 올해 나이는 36세로 한창 아름다운 나이에 하늘로 떠난 박지선을 향해 예능계의 지인들은 물론 많은 국민이 함께 슬퍼했다. 고인은 생전 피부질환으로 힘들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 고 박지선 ⓒSNS

잇따른 성 추문으로 얼룩진 한국 영화계의 거장 김기덕 감독도 사망했다. 김 감독은 지난달 20일 라트비아에 도착했다가, 지난 11일 코로나19 합병증으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칸과 베를린, 베니스영화제 등에서 수상하며 거장의 반열에 오른 김기덕 감독은 2017년 미투 논란에 휩싸인 이후 실추된 이미지로 인해 주로 해외에서 활동했다. 워낙 성추문 논란이 많은 탓에 그의 죽음에 대한 여론의 반응은 냉담한 편이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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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