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핵화 담판’ 문재인 1월 승부수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20.12.28 10:20:27
  • 호수 13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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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평화 불씨 살릴 마지막 기회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북한 비핵화는 과연 새로운 전환점을 맞을 수 있을 것인가. 바이든 행정부가 내년 1월 출범하는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은 북핵 협상대표를 교체하는 승부수를 띄웠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내년 1월로 예정된 제8차 노동당 대회와 최고인민회의 개최 후 바이든 행정부에 대한 입장을 낼 전망이다. 북한 비핵화 담판의 분위기가 띄워졌다. 
 

▲ 문재인 대통령 ⓒ고성준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북핵 협상대표를 교체했다. 노규덕 청와대 평화기획비서관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으로 임명했다. 차관급인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를 목표로 북핵 외교를 담당하는 외교부의 핵심 보직이다. 노 신임 본부장은 ‘북미통’ 인사로 주미대사관 공사참사관을 거친 뒤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인 지난 2013년부터 1년여간 한반도평화교섭본부 평화외교기획단장을 지냈다.

북핵 협상
핵심 보직

노 본부장의 후임으로는 김준구 전 주호놀룰루 총영사를 낙점했다. 김 신임 비서관 역시 ‘북미통’이다. 외무고시 26회로 지난 1992년 공직에 입관했다. 외교부에서 그는 북미2과장, 주미대사관 공사참사관, 북미국 심의관 등을 지냈다.

외교가 안팎에서는 문 대통령이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미국의 새로운 대북정책과 정부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사이의 공조를 염두에 둔 인사라고 해석한다. 노 본부장과 김 비서관 모두 주변 4대 열강과의 다자외교에 능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우리 정부를 대표해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북핵 6자회담 당사국과 대북 정책을 공조하는 일을 담당한다.


바이든 행정부는 내년 1월 출범한다. 미국의 북핵 수석대표, 남북의 카운터파트(대응 관계에 있는 사람)는 아직 발표되지 않았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의 북핵 수석대표인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특별대표의 임기는 내년 1월까지다.

미국의 북핵 수석대표가 교체되는 만큼 우리 정부도 이에 발맞춰 북핵 협상대표를 교체한 것으로 읽힌다. 

지난 2018년 한반도에는 훈풍이 불었다. 북한이 평창동계올림픽 참여를 알렸기 때문이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은 북한 고위급 대표단의 일원으로 방남해 문 대통령에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평양 초청 친서를 전달했다. 북한의 6차 핵실험으로 한반도 정세가 엄중했던 지난 2017년과 비교하면 극적인 반전이었다.

‘미국통’ 북핵 협상대표팀 전면 대비
비건 곧 임기 종료, 카운터파트는?

그해 4월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판문점의 평화의집에서 만났다. 당시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에게 북측 땅을 밟아보라며 제안했고, 문 대통령은 잠시 월경(국경 등의 경계선을 넘는 일)을 했다. 이후 두 정상은 손을 맞잡은 채 군사분계선(MDL)을 함께 넘어왔다.

남북 정상이 MDL에서 조우한 일은 당시가 처음이었며, 북한 최고 지도자가 남한 땅을 밟는 일 역시 최초였다.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에게 “지난 시기처럼 아무리 좋은 합의나 글이 나오고 발표돼도 제대로 이행되지 못하면 기대를 품었던 분들에게 더 낙심을 주는 것”이라며 “잃어버린 11년 세월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수시로 만나 걸린 문제를 풀어나가자”고 말했다.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조선중앙통신

문 대통령은 “오늘의 이 상황을 만들어낸 김 위원장의 용단에 대해 다시 한 번 경의를 표한다”며 “오늘 통 크게 대화하고 합의에 이르러서 모든 분들에게 큰 선물이 됐으면 좋겠다”고 화답했다.

남북 정상은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 합의문을 공동발표했다. 합의문에는 ‘2018년 내 종전 선언’ ‘완전한 비핵화로 핵 없는 한반도 실현’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회담 개최’ ‘문 대통령의 올 가을 평양 방문’ ‘8·15 남북이산가족 상봉’ 등 파격적인 내용이 실렸다.

또 남북 정상은 합의된 내용들을 실천하기 위해 고위급 회담 등을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과도기에
전격 교체

지난 2018년 한반도 정세는 숨가쁘게 흘러갔다. 그해 6월 싱가폴에서는 북미정상회담이라는 역사적 이벤트가 열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당시 취재진에게 “우리(북미)는 굉장한 대화를 나눌 것”이라며 “우리는 아주 훌륭한 관계를 맺을 것이다.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에 김 위원장은 “여기까지 오는 길이 그리 쉬운 길이 아니었다”며 “우리한테는 우리 발목을 잡는 과거가 있고, 또 그릇된 편견과 관행들이 우리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있었는데, 우리는 모든 것을 이겨내고 이 자리까지 왔다”고 밝혔다.

9·18 남북평양정상회담은 백미였다. 남북 정상은 평양공동선언문에 합의하며 한반도 평화가 머지않았음을 전 세계에 알렸다. 합의서에는 ▲핵시설 폐기 등 완전한 비핵화 협력 ▲남북군사공동위원회 가동 ▲이산가족 상설면회소 개소 ▲보건의료 협력 즉시 추진 ▲2032년 하계올림픽 공동유치 협력 ▲연내 동서철도·도로협력 착공 ▲김 위원장의 서울 방문 등이 핵심 내용으로 포함됐다. 

남북 정상이 핵시설 폐기 등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협력에 합의했다는 점이 대서특필됐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백두산 천지에 올라 손을 맞잡는 모습은 한반도 평화가 머지않았음을 기대하게 했다.

분위기는 2019년에도 이어졌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하노이에서 제2차 북미정상회담을 열기로 한 것. 특히 북미 정상 간에 한반도 비핵화 문제가 논의될 것이라는 기대감에 우리 언론은 물론 외신까지 장밋빛 전망을 내놨다.
 

▲ 조 바이든

그러나 북미정상회담은 별다른 합의 없이 종료됐다. 세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두 정상은 비핵화와 경제 주도 구상을 진전시킬 다양한 방식에 대해 논의했다”며 “현 시점에서 아무런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1년 동안 급물살을 탔던 한반도 비핵화를 향한 여정이 암초에 걸린 것이다.

얼어붙은
한반도

한반도 정세는 급랭했다. 한미 간 논의는 이루어졌지만, 북미 간 대화는 재개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11일 청와대에서 열린 외교안보 분야 원로·특보들과의 오찬 간담회에서 “지난해 북한과 미국의 하노이 회담이 결렬된 것이 너무 아쉽다”는 취지로 말했다.


이는 문재인정부 초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인 이도훈 전 본부장 임기 동안 이뤄진 일이다. 그는 트럼프 행정부에서 비건 대표와 탄탄한 소통 채널을 구축해 2차 북미정상회담이라는 성과를 냈지만, 하노이 회담 결렬을 기점으로 북미 간 대화가 중단되는 악재를 맞았다.
 

▲ 노규덕 한반도교섭본부장

결국 문 대통령은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하는 시점에 맞춰 노 본부장을 새로운 북핵 협상대표로 임명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노 본부장에게 주어진 최우선 과제는 바이든 행정부와의 대북 정책 조율 및 소통 채널 구축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 문제에 대한 우리 측의 입장이 미국의 대북 정책에 반영되도록 바이든의 외교·안보 라인과 접촉, 빠른 시일 내에 북미 간 대화가 재개되도록 하는 것이 핵심과제다.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정책 기조는 아직 불투명한 상태다.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올 수 있는지 여부도 중요하다. 북한은 아직 바이든 행정부 출범에 대해 구체적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외교가 안팎에서는 그 이유로 내년 1월로 예정된 당 대회 준비를 꼽는다.

북한 노동당 대회 임박
김여정 지위·실권 격상

제8차 노동당 대회와 최고인민회의 개최가 예정돼있다. 김 위원장은 바이든 당선 이후 열린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내부 현안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대외 메시지는 1월 당 대회 이후 발표될 공산이 크다. 


한미의 경우처럼 북한 역시 새로운 대미 협상팀을 구성할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인 바이든 행정부와의 대화는 공화당인 트럼프 행정부 때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 북한이 새로운 대미협상팀을 구성하는 시기 역시 내년 1월로 예상된다. 

트럼프 행정부에서는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을 비건 대표의 카운터파트로 상정해왔다. 대미 협상의 핵심 인물이다. 그러나 북한의 인사는 예측 불가능하다는 것이 외교가의 정설이다. 북한은 올해 대남라인에서 자주 모습을 보였던 리선권을 외무상으로 임명한 바 있다. 대미협상팀 구성을 쉽사리 예상하기 힘든 이유다. 

김 위원장의 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은 올해 초부터 대남·대미 등 대외 사안을 총괄하고 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코로나19 확진자가 없다는 북한의 주장을 “믿기 어렵다”고 하자 김 부부장은 ‘강경화의 망언을 두고두고 기억할 것’이라는 담화를 발표한 바 있다. 

주목할 점은 통일전선부, 외무성 등이 아닌 김 부부장이 직접 대응했다는 점이다. 내년 1월 당 대회를 통해 김 부부장의 지위와 실권이 격상될 것이라는 전망이 외교가 안팎에서 들려온다.

한미 양국은 북한의 대미협상팀 구성 이전에 비핵화 논의를 시작할 전망이다. 노 본부장은 지난 22일 비건 대표와 전화로 상견례를 겸한 첫 한미 북핵 수석대표 협의를 가졌다. 외교부에 따르면 노 본부장은 비건 대표로부터 북미 대화 재개를 위한 미국의 의지를 재확인했고, 우리 정부와 대북 정책 조율 및 협력을 위한 협의에 나서겠다는 뜻을 전달받았다.

북미 대표
교체 앞둬

또 비건 대표는 바이든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발생한 과도기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며 한미 간 소통·협력을 지속해나갈 것을 약속했다. 두 사람은 축적한 성과와 경험을 바탕으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 정착을 목표로 진전을 이룰 수 있도록 양국 간에 긴밀한 공조를 이어가기로 했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국제사회 논란 ‘대북전단살포금지법’ 왜?

유엔과 미국 의회, 행정부에 이어 영국 의회, 일본 언론까지 우리 국회에서 통과된 대북전단살포금지법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앞서 더불어민주당은 해당 법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강행 처리한 바 있다. 

크리스 스미스 미국 하원 의원이 해당 법안을 두고 표현의 자유와 북한 주민의 인권을 억압하는 악법이라고 주장하면서 사태는 시작됐다.

미국 의회는 내년 1월 관련 청문회 개최를 준비하며 국민의힘 등 우리 측 야당 및 탈북단체 등과의 공동 작업을 요청했다.

미국 국무부 역시 해당 법안의 취지와 배치되는 공식 입장을 밝히는 등 사태는 확대되는 추세다.

반대 여론이 확산되자 정부여당은 전방위적인 해명에 나섰다.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인 더불어민주당 소속 송영길 의원은 미국의 북한 전문 매체 ‘38노스’에 기고문을 보내 “군사분계선의 풍선 날리기는 사실상 북한 정권 타도를 목표로 한 군사적 심리전”이라며 “법률적으로 전시 상황인 한반도에서 심리전 수행을 방치하며 북한에 핵무기 개발 포기를 설득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했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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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 밥도 아닌 트럼프 따라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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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을 밑바탕 삼아 용꿈을 현실화하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장 대표에게 영감을 준 것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공화당 장악·대권 도전 과정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30년 넘게 이어진 미국의 문제점과 유권자의 불만을 꿰뚫었다. 장 대표도 과연 그럴 수 있을까?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빙글빙글 정치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장 대표와 국민의힘 지도부는 지난 6일 광주를 방문해 5·18 민주묘지를 참배하려고 했다. 그러자 광주전남촛불행동 등 광주 시민단체 회원들과 일부 시민들은 장 대표 일행의 참배를 막았다. 결국 장 대표 일행은 추념탑 앞에서 5초 동안 묵념한 후 발길을 돌려야 했다. 같은 콘셉트 다른 행보 장 대표의 참배 시도엔 ▲국민 통합 ▲호남 구애 및 지역 현안 해결 ▲강경 보수 이미지 희석 등 이유가 담겨있었다. 하지만 장 대표의 이후 행보는 참배를 시도했던 이유에 대한 의문을 자아낼 가능성이 있다. 광주북부경찰서는 장 대표 등의 참배를 막은 시민들에게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재물손괴 등 혐의를 적용해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국민의힘 광주시당은 지난 18일 광주시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당일 집회는 신고되지 않은 불법 시위였고, 각종 욕설과 모욕으로 일관된 폭언·폭력이 난무한 아수라장이었다”며 “시민을 가장한 과격 단체와 특정 인사들이 국민의힘 당 대표의 참배를 거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는 지난 12일 내란 특검에 체포됐다가 이틀 후 구속영장 청구가 기각돼 석방된 황교안 전 국무총리를 두둔했다. 황 전 총리는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당시 자신의 페이스북에 “우원식 국회의장을 체포하라. 대통령 조치를 정면으로 방해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도 체포하라”는 내용의 비상계엄 동조 게시글을 올리는 등 행동으로 말미암은 내란 선전·선동 혐의를 받고 있다. 장 대표는 국회에서 대장동 항소 포기 규탄대회를 진행하던 중 황 전 총리 체포에 대해 “전쟁이다. 우리가 황교안이다. 뭉쳐 싸우자”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선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비판이 이어졌다. 황 전 총리가 활발하게 부정선거론을 주장했기 때문이었다. 비판이 이어지자, 장 대표는 지난 13일 의원총회에서 부정선거론에 선을 그으면서 “전략적으로 한 발언”이라고 해명했다. 장 대표·황 전 총리의 행적을 되새겨보면, “우리가 황교안이다”라는 구호는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이 구호는 미국 정치 드라마 <웨스트윙>에서 크게 화제가 됐던 대사 “나는 민주당원이다”와 대비되기 때문이다. <웨스트윙>에선 미국 민주당 대선 경선후보 매튜 산토스가 상대 후보 에릭 베이커의 약점을 감싸는 연설을 한다. 에릭 베이커는 부인의 만성 우울증을 숨겼다. 이 때문에 논란이 발생하자, 매튜 산토스는 “어차피 우리는 모두 망가져 있는데, 아닌 척 위선을 할 뿐”이라며 “지도자에게 완벽하다는 환상을 요구하면, 이는 단지 거짓을 종용하는 것”이라고 연설했다. 이어 “완벽한 후보·특혜를 줄 후보가 아니라 이상·희망·꿈을 공유하는 후보에게 투표해야 한다”며 “그렇게 하면 우린 자랑스럽게 ‘나는 민주당원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고 호소했다. 광주 방문 시도 이어“우리가 황교안이다” 트럼프 당선엔 30년 밑밥…어설픈 표절? “나는 민주당원이다”는 상대의 약점을 감싸면서 정치의 본질을 호소하는 이상적인 정치인의 상징으로 통한다. 하지만 황 전 총리는 윤 전 대통령의 뜬금없는 비상계엄 선포를 두둔하면서 폭력적인 정적 숙청을 요구했다. “우리가 황교안이다”는 “나는 민주당원이다”와 극단적으로 대비될 수밖에 없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지난 9월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장동혁 대표에 대해선 충청도에서 몇 안 되는 용꿈을 꾸는 분이란 평이 있었다”며 “그 용꿈을 망상에 가깝다고 보기엔 유연하게 정치를 한 분”이라고 주장했다. 장 대표는 대표 취임 후 김도읍 정책위의장 임명 등 중도 보수 성향 유권자를 의식한 행보를 보였다. 하지만 그에게서 ▲장외 집회 집착 ▲황 전 총리 두둔 ▲한 전 대표 퇴출 시도 등 강경 보수 성향 유권자들이 좋아할 만한 행보가 더욱 두드러졌다. 이 때문에 그는 빙글빙글 회전하는 것처럼 보인다. 광주 5·18 민주묘지 참배와 황 전 총리 두둔이란 극단적인 행보를 불과 며칠 사이에 보인 것도 장 대표 특유의 빙글빙글 정치를 상징한다. 강경 보수에 더욱 치중하는 것처럼 보이는 장 대표의 행보는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 과정과 비교할 만하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 과정엔 미국 민주당에 모여 정치적 올바름에 집착하는 리버럴 엘리트들에 대한 보수 성향 유권자들의 반발이 큰 역할을 했다. 국민의힘 박민영 대변인은 지난 12일 유튜버 감동란의 개인 방송에 출연해 같은 당 시각장애인인 김예지 의원을 원색적으로 비판했다. 친한(친 한동훈)계로 알려진 김 의원은 윤 전 대통령 탄핵 표결 당시 찬성표를 던졌고, 특검법 3개에도 모두 찬성했다. 박 대변인은 “김 의원은 눈 불편한 것 빼고는 기득권인데, 장애인이라서 배려받는 걸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며 “장애인에게 너무 많은 할당을 하는 게 문제”라고 주장했다. 이어 “한 전 대표가 김 의원을 일종의 에스코트용 액세서리 취급을 했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지난 17일 박 대변인을 경찰에 고소했다. 하지만 장 대표는 박 대변인에게 엄중하게 경고할 뿐, 징계는 하지 않았다. 박 대변인의 발언과 장 대표의 미지근한 대응은 김 의원에게 강한 반감을 갖는 강경 보수 성향 유권자를 의식함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시각장애인이자 여성이란 김 의원의 정체성과 그에 대한 박 대변인의 공격은 미국에서 만성 구조화된 정치적 올바름 논쟁의 흐름과 정확히 일치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권 쟁취는, 진보 진영이 신자유주의·정치적 올바름을 추진하면서 민주당이 월스트리트와 강하게 연계하자 국민이 여기에 반감을 갖게 된 것으로부터 비롯됐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딕 체니 전 부통령·도널드 럼즈펠드 전 국방부 장관으로 상징되는 네오콘에 대한 반감도 큰 역할을 했다. 드라마 대사 표절?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재임 당시 강하게 추진된 신자유주의로 인해 산업 패러다임은 제조업에서 금융업으로 바뀌었다. 월스트리트의 힘이 더욱 막강해졌고, 미국 내 제조 기업은 비용 절감을 위해 인건비가 저렴한 해외로 이전하는 흐름이 가속화됐다. 지난 2008년 발생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미국 내 중산층 몰락에 쐐기를 박았다. ‘테러와의 전쟁’을 명분으로 막대한 세금을 대외 전쟁에 쏟아부었던 네오콘도 유권자의 큰 반감을 사서 몰락했다. 고립주의를 선호하는 미국 보수의 전통적인 흐름과 달리, 네오콘은 막대한 세금을 쏟아부어 미국의 가치를 퍼트리는 것을 선호한다. 하지만 그 “막대한 세금을 쏟아붓는다”는 것 때문에 네오콘은 오래 지나지 않아 몰락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구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엔 미국 특유의 고보수주의가 함축됐다. 미국의 역사는 이주·개척의 역사다. 지금과 같은 세계 경찰의 위상은 제2차 세계대전 승전 이후 확보했다. 제1차 세계대전 이전엔 지역 강국 정도의 위상을 가졌고, 현재의 미국 영토를 개척하는 과정에서 주로 얻었다. 이 때문에 미국에선 서부 개척 시대를 다룬 영화가 흔하게 제작된다. 미국인이 광적으로 열광하는 시리즈 <스타트렉>과 <스타워즈>도 미국의 서부 개척 시대를 은유해 제작됐다. 건국 신화가 따로 없는 미국에선 이 양대 시리즈가 신화로 통한다. 미국 고보수주의의 핵심은 다른 나라의 전쟁·정치 개입에 반대하는 외교 정책이다. 아메리카 대륙을 인위적으로 고립시켜 대륙 내 미국의 기득권을 지키자는 것이다. 미국의 국력이 지금과 같지 않았던 19세기엔 생존이 걸린 문제였다. 미국 제5대 대통령 제임스 먼로 전 대통령은 1823년 “유럽은 아메리카에 새 식민지를 만들지 말고, 미국은 유럽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먼로 독트린을 발표했다. 이어 ‘명백한 운명’이란 구호하에 서부 개척에 몰두했다. 트럼프 대통령·JD 밴스 부통령은 지난 2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면서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왜 감사하단 말을 하지 않느냐”고 몰아붙였다. 미국이 지난 2022년 2월 이후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지원 규모는 약 820억달러(약 113조4880억원)이고, 전비는 670억달러(약 98조4591억원) 규모로 확인된다. 미국 상원은 지난해 4월 608억달러(약 89조3480억원) 규모의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을 승인했다. 이에 따라 첨단 무기 등 대규모 군사 지원이 계속되고 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이 바라는 바가 아니다. 이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지지자들을 달랠 거대한 쇼가 필요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상징 중 하나는 제1기 행정부 당시 멕시코 국경에 설치한 거대한 장벽이다. 미국 내 블루칼라들이 갖는 불만 중 하나는 “멕시코 불법 이민자들이 일자리를 잠식한다”는 것이었다. 아울러 미국·멕시코 접경지역에선 멕시코 마약 카르텔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이를 실질적 효과와 정치적 이벤트를 모두 거둘 수 있는 일거양득 상황으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크다. 로망의 정치화 트럼프 대통령의 고보수주의 성향은 우리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월 우리에게 방위비 분담금 100억달러(약 14조6942억원)를 요구했다. 내년에 우리가 부담해야 할 방위비 분담금은 1조5192억원이다. 지난 14일 공개된 한미 정상회담 조인트 팩트시트엔 주한미군에 대한 330억달러(약 48조4948억원) 규모의 종합적 지원 내용이 담겨있다. 또 우리는 오는 2030년까지 미국산 군사 장비 구매에 250억달러(약 36조7385억원)를 지출해야 한다. 일본도 지난 5월부터 미국으로부터 주일미군 분담금 인상 압박에 시달려 매년 증액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부터 캐나다·그린란드·파나마 등 아메리카 대륙과 그 인근 지역으로 사실상 영토를 확장하려 하고 있다. 미국인에겐 영국·멕시코 등과 전쟁하면서 중·남부로 영토를 확장했던 19세기의 재림으로 인식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대통령의 고보수주의 성향은 각국에 안기는 관세 폭탄에서도 잘 드러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그린란드 주민이 투표를 통해 미국 편입·독립을 결정한 상황에서 덴마크가 이를 방해하면 덴마크에 고액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관세를 군사·외교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단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에 대해 “포퓰리즘”이란 지적이 이어지는 이유는 관세 폭탄에서 잘 드러난다. 공화당은 지난 6일 진행된 뉴욕시장·버지니아 주지사·뉴저지 주지사 선거에서 참패했다. 선거의 핵심 쟁점은 생활비 부담이었다. 뉴욕시에선 주거비가 급등했고, 뉴저지주에선 전기요금이 연 20% 상승했다. 특히 버지니아주에선 트럼프 대통령의 연방정부 인력 감축 방침과 셧다운 여파로 공무원들이 급여를 받지 못했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4일 커피·바나나·쇠고기·견과류 등 생활필수품에 대한 상호 관세를 면제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부과 방침 이후 생활필수품 물가가 급상승한 여파로 선거에서 패배하자 뒤늦게 상호 관세를 면제한 것이다. 특히 쇠고기는 미국 축산농가의 반발을 무시하면서 관세를 면제했다. 장 대표는 이 같은 트럼프 대통령의 ‘겉’만 빌리는 것으로 해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1990년대 이후 미국 정치권이 주도한 변화의 여파로 서민의 삶이 악화한 흐름을 날카롭게 찌르면서, 이들의 바람을 선동적 언어로 표현해 대권을 거머쥔 것이다. 불만 조직화한 트럼프 지지율↓ 원인 장동혁 30년 넘게 진행된 신자유주의·개입주의에 대한 반감 때문에 강경 보수가 대규모 조직화한 영향도 트럼프 대통령의 대권 도전에 날개를 달아줬다. 하지만 국내에선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전한길씨 등이 주도하는 강경 보수에 대한 대중의 거부감이 매우 크다. 이들의 언행은 강경 보수의 틀을 벗어나면, 조롱 대상이 될 뿐이다. 아울러 미국에선 민주당이 신자유주의 질서를 주도했다. 이 때문에 공화당은 미국 특유의 고보수주의를 표방하는 트럼프 대통령을 통해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면서 정권을 잡을 수 있었다. 반면 국민의힘은 시장경제·기업 경영의 자유 등 신자유주의 질서를 지지하는 의견을 유지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재임 당시부터 신자유주의 성향의 경제 정책을 유지했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양당의 의견은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아울러 양당은 특히 젊은 남성들이 민감하게 여기면서 비판하는 각종 검열을 적극적으로 진행한다. ▲셧다운제 도입 ▲확률형 아이템 규제 ▲게임물관리위원회 검열 논란 등 검열 논란은 정당을 불문하고 꾸준히 일어났다. 미국에선 민주당과 지지자들이 주도하는 정치적 올바름 논쟁이 영화계로 이어져 <백설공주>와 <인어공주> 등 영화에 유색인종 주인공이 발탁돼 큰 논란으로 확산했다. 이런 논란을 주도하면서 서민을 훈계한 대표 세력은 월스트리트·각계 엘리트·언론이었다. 이 논란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대권 도전 과정에 큰 영향을 줬다. 국민의힘은 각종 검열 논란과 관련해 더불어민주당과 별 차이가 없다. 이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처럼 젊은 보수 성향 유권자들을 유인하기가 쉽지 않다. 아울러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 세력 중엔 불법 이민을 통해 미국에 입국한 멕시코인을 경계하는 기존 유색인종 유권자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대선에서 ▲흑인 중 8% ▲히스패닉 중 28% ▲아시아계 중 27% 등 득표율을 보였다. 지난해 대선에선 ▲흑인 중 13% ▲히스패닉 중 46% ▲아시아계 중 40%가 그에게 투표했다. 반면 장 대표는 지난 6일, 광주에서 5·18 민주묘지를 참배하지 못했고 국민의힘은 장 대표를 비난하는 시위를 한 시민들을 강하게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공화당을 완전히 장악해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지만, 장 대표는 국민의힘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언더 찐윤(진짜 친윤)’에 의해 옹립된 재선 의원에 불과하다. 국민의힘은 장 대표 취임 이후에도 지지율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 한국갤럽이 지난 11일부터 13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4%였다. 이는 전주보다 2% 낮아진 수치며, 지지율 42%를 기록한 민주당보다 18% 낮다. 심지어 전통적인 표밭 대구·경북에서도 지지율 42%를 얻는 데 그쳤다. 표밭도 위험하다 어설픈 표절은 죽도 밥도 안 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30여년 동안 누적된 미국의 문제점과 유권자의 불만을 꿰뚫은 후 유권자들이 향수를 느끼는 옛 로망을 자극해 대권을 거머쥐었다. 정치에 대한 유권자의 불만을 투표로 연결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진정한 ‘트럼프 벤치마킹’은 아닐까? 장 대표는 꾸준히 정체되고 있는 국민의힘의 지지율에서 뭘 보고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