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북’ 신공항 밀당 정치 막전막후

뻔한 사업에 10조 베팅

[일요시사 정치팀] 설상미 기자 = 가덕도 신공항 추진이 내년 재보궐선거의 변수로 떠오르면서 정치권이 요동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PK 지역 의원들은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을 냈다. 공항 사업에 타당성이 있는지 따져보는 ‘예비 타당성 조사’ 면제를 골자로 한다. 여야의 대권 주자들은 한술 더 떠, 대구와 광주 신공항 특별법 추진을 요구하고 있다. 백년대계인 대형 국책 사업이 ‘포퓰리즘’에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 더불어민주당 부산, 울산, 경님 지역 의원들이 지난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가덕신공항 건설 특별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선거 정국이 되자 ‘신공항 정치’의 막이 올랐다. 국무총리실 검증위원회가 지난 17일 김해공항 확장안을 사실상 백지화하자,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선제적으로 나섰다. 민주당은 지난 26일 가덕도 신공항 건설 예비타당성조사(이하 예타)를 면제하는 가덕도 신공항 관련 특별법을 공동 발의했다. 민주당은 연내 입법을 목표로 하고, 내년 초에는 이를 통과시키고자 한다. 하지만 정부·여당이 4년간 끌어온 국책사업을 손바닥 뒤집듯 번복했다는 비난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손바닥
뒤집듯

가덕도는 경남 밀양과 함께 ‘동남권 신공항’ 사업의 유력한 후보지였다. 동남권 신공항은 2004년 참여정부 시절부터 논의된 사안이다. 2007년 대선 정국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이 영남 지역의 신공항 건설을 공약하면서 본격화됐다.

TK지역은 밀양을, PK지역은 가덕도를 밀었다. 하지만 이명박정부의 입지평가위원회는 두 후보 모두 경제적 타당성에서 부적합하다는 입장을 냈다. 정계에선 TK와 PK 사이에 지역 갈등이 불거지자 정부가 손을 뗐다는 말이 흘러 나왔다.

이후에도 지역주민들에게 희망고문은 계속됐다. 2012년 대선 정국에서 신공항 카드가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면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부산 지역 유세를 돌면서 가덕도 신공항에 힘을 실어줬다.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에도 지역 갈등이 계속되자, 프랑스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이하 ADPi)에 신공항 사업 타당성 검토를 의뢰했다. ADPi는 세계 3대 공항 설계 회사다. 당시 정부는 용역비 20억원이라는 거금을 투자했다. 불 붙은 지역 갈등에 객관적인 평가로 종지부를 찍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김해신공항 사실상 백지화…왜 가덕도?
복잡해진 국민의힘 특별법 두고 내홍

하지만 결과는 가덕도도 밀양도 아니었다. ADPi는 김해공항(818점), 밀양(683점), 가덕도(635점) 순으로 총점을 매겼다. 김해공항이 공항 운영, 접근성, 경제성 등 대다수의 평가항목에서 나머지 후보를 월등하게 앞섰다. 가덕도는 비용 측면에서도 경쟁력이 낮았다. 산을 깎고 바다를 메워야 하는 입지조건으로, 10조원에 이르는 비용이 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해신공항 건설에 드는 4조원보다 훨씬 더 큰 비용이었다.

결국 ADPi 검토에 따라, 박근혜정부는 김해공항에 활주로 1본을 더 짓는 방안으로 결론을 냈다.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는 새누리당의 텃밭인 영남지역의 반발에 의해 제3의 장소를 선정한 것이라는 비판이 거셌다. 반면 국내 항공·도시 전문가들은 “합리적인 결론이 도출됐다”고 평가했다.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상황은 또 뒤집혔다. 국토교통부는 2018년 김해 신공항 확장 안을 토대로 정부 기본계획안을 수립했다. 하지만 부산·울산·경남 단체장들은  ADPi 배점과 평가 기준이 정치적으로 조작됐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김해신공항안의 재검증을 요구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김해공항 확장안 재검토를 지시하면서 가덕도 신공항 건설에 힘을 실었다.

2019년 12월 출범한 김해신공항 검증위원회(이하 검증위)는 “근본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로써 신공항 문제는 14년 만에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뜨거운 감자
여야 셈법은?

여당은 ‘선거용 카드’가 아니라며 선을 그었다. 물류·국토 균형발전 측면에서 신공항이 필요하다는 논리였다. 민주당 송영길 외교통신위원장은 “PK 지역은 조선, 기계, 설비 등 산업에서 AI, 로봇, 항공부품 등 첨단산업으로 전환을 준비 중”이라는 계획을 밝혔다. 24시간 운행 가능하며, 대형화물기 이착륙에 위험이 없는 안전한 가덕도 신공항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가덕도 신공항 카드는 여당의 보궐선거 전략이라는 게 정계의 중론이다. 당내에서도 가덕도 신공항 건설 추진이 내년 부산시장 보궐선거의 변수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내년 부산시장 선거는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권력형 성범죄를 심판하는 선거다. 민주당은 당헌을 고치는 무리수까지 뒀다. 내년 재보궐선거가 다음 대선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 김해신공항 백지화 규탄대회 갖는 통합신공항 대구시민추진단 관계자들

민주당으로서는 간절한 선거지만, 뾰족한 수가 없다. 게다가 PK 지역은 국민의힘의 강세 지역이다. 국민의힘에서는 부산 시장은 ‘따 놓은 당상’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의 전략은 성공적이었다. 신공항 카드를 내자, 지역 민심이 후끈 달아올랐다. 그만큼 신공항 문제는 부산시민들의 오래된 숙적이다. 민주당으로서는 지역균형발전을 위해 표를 읍소할 수 있는 대의적인 명분이 생겼다. 국민의힘은 정치 지형상 분열을 보일 수밖에 없다. 가덕도 신공항은 민주당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꽃놀이패’인 셈이다.

보궐선거
앞두고…

반면 국민의힘의 셈법은 더 복잡하다. 국책 사업 뒤집기를 비판하면서도 부산 민심의 눈치를 봐야한다. 당내 ‘자중지란’의 모습도 잠시 보였다. 검증위의 발표 직후 TK 의원들은 반발한 반면, PK 출신 의원들은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가덕도 신공항에 대한 긍정적인 시그널을 보냈다. 반면 주호영 원내대표는 감사원 감사를 통해 이번 검증 과정이 합당했는지 따져봐야 한다고 했다.

부산 시장 출마에 나선 이언주 전 의원은 가덕도 신공항 찬성에 나섰다. 민주당에서는 국민의힘의 분열을 두고 “학생회보다 못하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여권의 갈라치기 전략에 국민의힘이 제대로 말려든 것이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여기에서 무너지면 당은 사실상 미래가 없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국민의힘이 가덕도 신공항 카드를 덥석 물자, 민주당 이낙연 대표는 한술 더 떴다. 이 대표는 반발이 극심한 대구와 광주에서 요구하는 신공항 특별법 추진을 제안했다. ‘지역 균형 발전의 획기적인 계기’라고 했지만, 이는 사실상 대구와 광주의 민심을 달랠 카드다. 해당 지역 공항 건설에 대한 국비 지원을 특별법으로 보장해, 지역 민심을 다잡겠다는 계산으로 해석된다.

이 대표는 차기 대선을 준비 중이다. 지역 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서 영남과 호남 지역 민심을 잡으려는 포석이라는 게 정치권의 지배적인 시선이다. 신공항 정치에 뛰어든 대권 주자는 이 대표뿐만이 아니다. 대구가 지역구인 무소속 홍준표 의원은 ‘대구·경북 신공항 특별법’을 발의했다.

마찬가지로 공항 사업에 국비 지원을 요청하는 내용이다.

각지 공항 적자 시달리는데…
선거철만 되면 되풀이 논쟁


홍 의원은 4대 권역별로 공항을 만들 것을 제안했다. 부산과 대구·광주 신공항 특별법을 처리해 인천을 엮는 전국 4개 거점을 4대 관문 공항으로 만들자는 것이다.

일각에선 여야의 신공항 포퓰리즘의 폭주가 이어지면서, 백년대계인 대형 국책 사업을 뿌리째 흔들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정치인은 선거 때마다 지역균형 발전을 외치며 대규모 SOC 건설을 약속했다. 표와 직결돼 선거를 승리로 이끌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공항 사업은 정치권력과 연관이 깊다. 지어진 공항마다 정치인 이름이 붙을 정도다.
 

▲ 하태경(사진 오른쪽)·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안과를 찾아 부산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을 제출하고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전국 15개 공항 중에서 10개 공항이 매해 적자 상태다. 매해 만성적자에 시달리는 ‘한화갑공항(무안공항)'이 대표적이다. 타당성 검토 없이 공항 사업을 ‘선거용’으로 사용한 대표적인 예다.

가덕도 신공항 사업이 추진되면, 국책 사업에 대한 타당성 조사도 없이 10조원이 넘는 국비가 투입된다. 게다가 코로나19의 확산으로 항공업계와 공항이 큰 타격을 입은 상황이다. 리스크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 된다.

4년마다
선심성 사업

정의당은 “가덕도에 이어 대구·광주신공항특별법에 집권여당 대표를 필두로 국민의힘 지역 기반 정치인까지 합세하고 있다”며 “백년지대계가 아닌 선거지대계”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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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빅텐트 타령 국민의힘, 왜?

또 빅텐트 타령 국민의힘, 왜?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이 당심 반영 비율을 늘린 지방선거 경선 규칙을 발표했다. 이어 장동혁 대표를 필두로 지방선거 전략으로 ‘반명 빅텐트론’을 지난 대선에 이어 또 거론했다. 국민의힘이 6년째 내리 실패한 전략을 또 끌고 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민의힘이 지난달 25일 지방선거 경선 규칙을 발표했다. 국민의힘 지방선거 총괄기획단 대변인을 맡은 조지연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진행된 기획단 회의 후 “내년 지방선거 경선에서 당원투표 비중을 기존 50%에서 70%로 늘리기로 했다”고 밝혔다. 민심보다 당심으로? 국민의힘 지방선거 공천은 당원투표 70%와 국민 여론조사 결과 30%가 혼합돼 결정된다. 만 44세 이하 청년은 가점을 부여받고, 여성 신인은 만 45세 이상이어도 가산점이 부여된다. 광역의원 비례대표 후보자는 청년 인재 오디션을 거쳐 선출해 최우선 순위로 당선권에 배치할 예정이다. 지난 2022년 지방선거 당시 국민의힘 대표였던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시행했던 공직 후보자 기초 자격 평가는 기초자치단체장·기초의원 후보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국민의힘 지방선거 총괄기획단장은 5선 나경원 의원이 맡고 있다. 나 의원은 서울시장 출마 후보군 중 1명으로 거론된다. 현 시점에선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로 오세훈 서울시장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일각에선 “나 의원이 사심 때문에 경선 규칙을 정한 것 아니냐”고 의심한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대중적 인기는 높지만, 당내 기반은 약하다”는 평가로부터 비롯되는 의심이다. 새로 정한 경선 규칙에 대해선 당내에서도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았던 김용태 의원은 지난 25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내년 지방선거를 시작으로 실질적인 수권 전략을 실현하려면, 공직선거 후보자 선출 규칙은 국민경선 100% 제도를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도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비판했다. 윤 의원은 “민심이 곧 천심이고, 민심보다 앞서는 당심은 없다”며 “민의를 줄이고 당원 비율을 높이는 것은 민심과 거꾸로 가는 길이고, 폐쇄적 정당으로 비칠 수 있는 위험한 처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최근 사법부 압박 논란과 대장동 항소 포기 문제까지 있었는데도 우리 당 지지율은 떨어지고 여당 지지율이 오르는 이유는 무엇이겠느냐”며 “여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진정성 있는 성찰과 혁신 없이 표류하는 야당에 대한 국민적 실망이 더 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라고 강조했다. 한국갤럽이 지난 18일부터 20일까지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정당 지지도 여론조사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지지율은 43%였고,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4%였다. 지난 7월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만 18세 이상 100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전화 면접 여론조사 당시 국민의힘 지지율이 19%를 기록했던 것에 비하면 높지만, 두드러진다고 보긴 어렵다. 내부 비판 이어지는데 당심 비중↑ 비상계엄 사과 두고도 ‘옥신각신’ “국민의힘의 지지율이 당분간 크게 오르긴 어렵다”는 일각의 예측도 있다. 다음 달 3일은 비상계엄 1주년이라서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재임 중 실정과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불참 ▲윤 전 대통령 체포 저지 시도 ▲심야 대선후보 교체 시도 등 지난 1년 동안 국민의힘이 여론으로부터 비난을 받았던 행보들이 다시 주목받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국민의힘 일부 소장파 의원들은 비상계엄 사과 등을 통한 윤 전 대통령과의 확실한 절연을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지난 24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좀 더 명확한 메시지를 낼 필요가 있다는 얘기가 당내에서도 나온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역사와 국민 앞에 누군가 사과해야 할 상황이고, 국민의힘이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예측할 수 없었던 돌발적인 계엄이 있었고, 탄핵에 이어 정권을 잃은 후 국정의 주도권을 넘겨줬다”고 강조했다. 반면 같은 당 김재원 최고의원은 같은 달 26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일회성 사과로 과거의 잘못을 끊어내고 새로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사과를 자꾸 하는 것은 오히려 현 상황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어떤 정치를 할 것인지 고민하는 게 필요하다”며 “사과하는 것보단 앞으로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는 게 더 낫다”고 역설했다. 장 대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히고 있다. 그는 같은 달 25일, 경북 구미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방문한 후 “사과 메시지를 내는 것은 지금 말씀드릴 단계는 아닌 것 같다”며 “국민의힘이 지금 싸워야 할 대상은 무도한 이재명정권과 의회 폭거를 이어가는 민주당”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구미역 광장에서 진행된 민생 회복·법치 수호 경북 국민대회에 참석해 “저들이 똘똘 뭉쳐 우리를 공격하고 손가락질할 때, 우리가 우리를 향해 손가락질·비판하는 게 부끄럽다”고 목소리 높였다. 그러면서 “대한민국과 자녀 세대를 위해 소리치는 우리가 아스팔트 세력이라고 손가락질당하는 게 부끄러운 게 아니라, 나라가 쓰러져가는데도 한마디도 못하는 게 부끄러운 것”이라고 강조했다. 해당 발언은 “사과해야 한다”는 일부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풀이된다. 돌발적인 계엄이다? 이재명 대통령·민주당에 대한 투쟁을 강조하는 장 대표의 주장은 빅텐트론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나 의원도 지난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대통령과 민주당을 비판하면서 “국민의힘은 네 탓 공방을 벌이면서 분열에 빠져 있다”며 “정당의 뿌리를 흔드는 내부는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하나로 뭉쳐 민주당의 독재 완성 계략에 단호히 맞서야 한다”고 했다. 국민의힘에선 각종 선거와 정국에 대응할 때마다 빅텐트론이 거론됐다. 시작은 황교안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가 재임했던 지난 2019년이다. 이듬해엔 “각 정당·정파가 참여하는 통합추진위원회를 구성해 모든 자유민주 세력과 손을 맞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 전 대표는 “통합 없이는 절대 이길 수 없단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며 “이 나라를 망치려는 사람들은 통합을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황 전 대표가 주장했던 빅텐트론은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란 헌법 가치를 공유한다면, 태극기 세력부터 중도 보수 인사까지 아우른다”는 것이었다. 그의 주장을 토대로 자유한국당은 미래통합당으로 바뀌었다. 황 전 대표는 제21대 총선 패배 후 물러났다. 이 대표는 빅텐트론에 일관적으로 반대하면서 세대 포위론을 토대로 지난 2022년 대선을 지휘했다. 지난 6월 대선에 출마했던 이 대표는 국민의힘 등 보수 각계로부터 후보 단일화 요구를 받았다. 이 대표는 당시에도 국민의힘 등에서 주장했던 ‘반명 빅텐트론’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대선을 완주했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의 빅텐트론을 놓고 “혁신 요구가 나올 때마다 제기되는 주장”이라고 비판한다. 빅텐트론의 핵심은 통합이다. 통합은 정치권에서 반대 계파·의견을 억압하는 수사로 활용되는 예가 잦다. 빅텐트의 핵심은 조정 능력이다. 여기엔 다양한 계파·의견을 조율해 갈등을 최소화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장 대표는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체제 전쟁 깃발 아래 모일 수 있는 모든 우파가 함께 모여서 이재명정권이 사회주의 독재체제로 가려는 걸 막기 위해 연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주장하는 ‘체제 전쟁’의 근거는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민주당의 배임죄 폐지·대법관 증원 시도 등이다. 장 대표는 공식적으로 국민의힘과 관계없는 황 전 대표가 지난 12일 내란 선동 혐의를 받아 내란 특검에 의해 체포되자 “우리가 황교안이다”라는 구호를 외쳤다. 이어지는 재탕 삼탕 이어 “국민의힘만으로 이재명정부·민주당과 싸우긴 어렵다”며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주도하는 자유통일당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주도하는 자유민주당 ▲새누리당 조원진 전 의원이 주도하는 우리공화당 ▲황 전 대표가 주도하는 자유와혁신 등을 연대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들은 모두 부정선거론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그에 반해 개혁신당과 이 대표는 부정선거론을 강하게 비판한다. 장 대표가 주장하는 빅텐트론은 김문수 전 대선후보 등이 주장했던 빅텐트론과 큰 차이가 없다. 당시 김 전 후보는 “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이기기 위해선 어떤 경우든 힘을 합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덕수 전 총리 ▲황 전 대표 ▲이낙연 전 총리 ▲이 대표 등을 통합 대상으로 지명했다. 권성동 당시 원내대표는 김 전 후보·한 전 총리의 단일화를 지지하면서, 당시 당내 주류와 불화했던 국민의힘 김상욱 당시 의원(현 민주당 의원)에게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라”고 요구했다. 이는 장 대표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에게 당원 게시판 의혹 관련 압박을 가한 것과 비슷하다. 당시 권 전 원내대표는 “당원 대부분은 민주당 이 후보에게 대항하기 위해선 반명 빅텐트가 필요하단 의견을 갖고 있다”며 “지도부는 당원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는 부정선거론을 주장하는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연대를 주장하면서, 개혁신당과의 연대설도 공개적으로 부정하진 않는다. 일각에선 “오 시장이 장 대표·이 대표의 가교 역할을 한다”고 관측하고 있다. 오 시장은 지난 9월 “개혁신당과의 연대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한 이후 꾸준히 개혁신당과의 연대를 주장하고 있다. 이후 정치권 일각에선 “오 시장이 서울시장으로 다시 출마하고, 이 대표가 경기도지사 야권 단일 후보로 출마하면 수도권에서 보수 진영이 선전할 수 있다”는 기대를 하고 있다. <미디어토마토>가 지난달 28일부터 이틀 동안 서울특별시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무선·ARS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오 시장은 보수 진영에서 민심 27.5%·당심 50.3%의 지지를 얻어 서울시장 후보 중 가장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민주당이 서울시장 후보를 선출한 후 ‘여당 프리미엄’을 앞세워 오 시장에 대한 공세를 이어간다면, 재선을 장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국민의힘이 중도층의 민심을 끝내 얻지 못하면, 오 시장으로선 힘겨운 선거가 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체제 전쟁” 명분으로 사과 거부 홍 “국힘은 보수 참칭 사이비 레밍” 당내에서도 나 의원 등 막강한 경쟁자가 있어 본선행을 확실하게 장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대표는 지난달 23일 “국민의힘 내부에서 변화·쇄신 목소리가 전혀 안 나온다”며 “연대를 함께할 가능성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은 지난 대선에 이어 1990년대식 ‘뭉치면 이긴다’ 구호만 내세운다”며 “그 전략으로 패배한 사람은 황 전 대표였는데, 같은 선택을 하면서 다른 결과가 나오길 기대하는 건 이해가 안 간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내부에도 연대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국민의힘 지도부에서 강경 보수의 주장을 가장 강하게 내세우는 김민수 최고위원은 같은 달 25일, 채널A 유튜브 채널 ‘정치시그널’에 출연해서 “이 대표는 당내 많은 분쟁을 가져온 사람이라서 화합을 해칠 가능성이 있다”며 “개혁신당과의 연대는 득보다 실이 더 많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김 최고위원의 주장은 오 시장의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해석되고 있다. 김 최고위원은 “개혁신당은 보수 정당인지, 진보 정당인지 모르겠고, 그 사이에 있다고 생각한다”며 “저는 최고위원이 되기 전부터 우측으로의 연대를 주장했다”고 설명했다. 대선은 기동전·총력전 성격이 강한 반면, 지방선거는 진지전 성격이 강하다. 선거의 성격이 다르지만, 국민의힘에선 똑같이 ‘반명 빅텐트’라는 구호를 거론하고 있다. 역사엔 위기 상황에서 변화를 거부했다가 돌이킬 수 없는 위기를 맞이한 사례가 다수 기록돼있다. 변화를 거부하는 세력이 그 집단을 주도할 때, 이 사례는 더욱 빈번하게 재현된다. 중국 청나라에선 수구파를 이끌던 서태후가 변법자강운동을 주도하던 광서제에게 반대해 정변을 일으켜 성공한 후 광서제를 유폐했다. 중국 정부가 지난 2008년 광서제의 능을 공식 발굴 조사한 결과, 광서제는 급성 비소 중독으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어 3세 나이로 즉위한 청나라 황제는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영화 <마지막 황제>의 주인공인 선통제다. 선통제는 영화 제목 그대로 마지막 황제였다. 광서제의 개혁 시도는 청나라의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 취사 선택해 그 정보를 근거로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고, 불리한 정보는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성향을 확증편향이라고 한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지역구 관리에만 능하고, 기득권·이익 추구에만 관심을 두는 의원들이 당을 주도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언더 찐윤’이란 집단이 거론된다. 확증편향 소탐대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이 변화·혁신에 거부감을 느끼면서 같은 선택을 반복하는 핵심 이유로 언더 찐윤을 거론한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지난 6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은 이념도 없는, 보수를 참칭한 사이비 레밍 집단”이라고 주장했다. 이미 여러 번 선거에서 패배한 전략임에도 확증편향·소탐대실을 근거로 같은 선택을 고집한다면, 무리 지어 절벽에서 떨어지는 레밍과 비교되는 수모를 또 겪을 수도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에선 또 빅텐트론이 반복되고 있다. 빅텐트는 국민의힘 주변을 배회하는 유령인 걸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