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 폭탄’ 둘러싼 국민의힘 노림수

밑져야 본전 “꿀리면 꿇어라”

[일요시사 정치팀] 설상미 기자 = 라임·옵티머스 사태를 다룰 특별검사 도입 여부를 두고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팽팽한 줄다리기가 계속되고 있다. 국민의힘은 이번 사태를 ‘권력형 게이트’로 규정하고, 특검 도입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특검이 아닌 공수처에서 이를 다뤄야 한다는 입장이다.
 

▲ 발언하는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고성준 기자

정치권에 라임·옵티머스 사태를 둘러싼 파장이 일파만파 퍼지고 있다. 야당 정치인들과 현직 검사들에게도 로비를 했다는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의 초대형 폭로로 여야의 공세는 전환됐다.

일파만파
정치권 요동

여권 인사 연루 의혹으로 궁지에 몰렸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김 전 회장의 폭로를 ‘공작수사’ 의혹으로 규정하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1호 수사대상으로 삼자고 주장하고 있다. 김 전 회장이 검사와 수사관들에게 로비했다고 폭로한 만큼, 당사자가 아닌 공수처가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검찰 비위 의혹은 정부여당이 주장해왔던 ‘검찰 개혁’의 필요성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로 볼 수 있다. 관련 의혹을 제기한 것 자체만으로 그가 정부의 검찰개혁 명분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셈이다. 민주당은 검찰 개혁의 필요성을 여론에 환기시켜, 야당에 공수처 출범 협조를 얻어 낼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 역시 라임·옵티머스 사태에서 주도권을 선점하기 위해 전방위적인 공격 태세를 취하고 있다. 당은 이번 사태를 ‘권력형 게이트’로 규정하고, 특검 도입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현재 라임·옵티머스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검과 남부지검에는 추미애 장관과 가까운 인사들이 두루 포진돼있다. 이를 근거로 명확하고 객관적인 규명을 위해 특검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역설했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특검 지시를 제안했다. 그는 “특검 이외엔 다른 방법이 없다”며 “이 사태는 대통령께서 보다 더 관심을 가지시고 반드시 특검을 통해서 명백하게 밝혀질 수 있도록 지시 내려 주시길 부탁 드린다”고 말했다.

김봉현 옥중 폭로…검찰 개혁 부채질
이참에 공수처·특검 동시 추진 전략

김 위원장은 정부 검사와 비정부 검사가 따로 있다는 소리를 듣는 마당에 검찰의 신뢰도가 떨어졌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또 국민의힘은 라임·옵티머스 특검과 민주당에서 요구하는 공수처 출범을 동시에 처리하자는 의견을 내놨다. 사실상 특검 관철을 위해 공수처 출범에 협조하겠다는 배수진을 친 셈이다. 민주당이 지금까지 요구해온 공수처를 큰 틀에서 수용함과 동시에 특검 압박 강도를 높이려는 전략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은 지난 24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처장 후보 추천위원을 내정했다. 하지만 야당 공수처장 추천위원들이 비토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실제 공수처 출범까지는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현행 공수처법상 추천위원 7명 중 6명이 동의해야 공수처장 후보 추천이 가능하다.

국민의힘이 계속해 시간을 끈다면, 민주당이 법안심사소위를 가동해 법 개정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국민의힘이 지연책을 쓰면, 법 개정을 통해 공수처 출범을 밀어붙이겠다는 계획이다. 민주당은 현재 야당의 추천권을 무력화할 수 있는 공수처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 라임특위 기자회견 갖는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

여야로 2명씩 나뉜 추천위원 선정 권한을 국회 4명 몫으로 바꿔 사실상 민주당이 4명을 추천할 수 있는 개정안이다.

또 국민의힘은 독소조항을 제거한 공수처법 개정안을 독자적으로 발의해 출구를 마련했다. 유상범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은 직무 관련 범죄를 수사대상에서 제외하고, 부패범죄로 수사대상을 한정했다. 또 공수처 검사의 기소권도 삭제했다.

헌법적 근거가 없는 공수처 검사에게 기소권을 부여하는 것은 헌법 원리에 반할 뿐 아니라, 수사와 기소 분리라는 검찰개혁 방향에도 모순된다는 판단에서다. 또 범죄 수사 강제이첩권과 재정신청권을 제외했다.

개정안
내용 보니…

민주당은 이 개정안이 필수조항을 삭제한 점을 들어 비판했다. 국민이 원했던 공수처의 기능이 빠져 고위공직자의 비리를 수사하는 본연의 역할을 없앤 ‘식물 공수처’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유 의원의 공수처법 개정안으로 국민의힘과 정의당의 협업은 물 건너가게 됐다. 애당초 국민의힘은 야권 공조를 통해 민주당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자 했다. 정의당은 특검 도입과 공수처 출범을 동시에 하자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국민의힘의 독소조항을 제거한 공수처법으로 인해 함께 하지 못하게 됐다.

정의당 정호진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공수처법 개정을 전제로 한 특검·공수처 동시 처리는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며 “공수처장을 추천하라 했더니 난데없이 출범조차 못한 공수처법에 칼부터 들이대겠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심보인가”라며 비판했다.

국민의힘은 라임·옵티머스 사건 전반을 수사할 특검 법안을 마련한 상태다. 여야를 막론하고 엄정한 수사를 통해 철저한 진상규명을 하겠다는 의지가 돋보인다. 지난 22일 발의된 이 법안에 담긴 특검은 과거 ‘최순실 특검’의 1.5배로 꾸린 ‘메머드급’이다.

법안은 파견 검사 30명, 파견 공무원 60명 이내로 특검을 구성하도록 했다. 최순실 특검의 경우 파견 검사는 20명, 파견 공무원은 40명 이내 수준에 그쳤다. 아울러 그동안 검찰 수사 과정에서의 직권남용과 직무유기, 이와 관련된 고소·고발 사건까지 총망라한 범위를 수사할 예정이다.
 

▲ 굳게 닫힌 옵티머스 자산운용 출입문

또 국민의힘은 오는 29일로 예정된 국회운영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관련 사태를 집중적으로 파헤칠 예정이다. 당일에는 기관증인으로 김종호 청와대 민정수석과 김조원 전 민정수석 등이 출석한다.

하지만 야당이 별다른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문재인정부의 ‘대형 스캔들’로 번질 수 있는 큰 사안임에도 여론의 큰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민주당은 이번 사태를 겪으며 급락했던 지지율을 최근 회복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국민의힘 지지율은 떨어지면서 양당 격차가 크게 벌어진 상태다.

“제대로 해야
대접 받는다”


지난 22일 <리얼미터>가 TBS 의뢰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민주당 지지율은 35.3%, 국민의힘 지지율은 27.3%로 나타났다. 민주당 지지율이 전주보다 3.1%포인트 올랐고, 국민의힘 지지율은 2.3%포인트 하락한 수치다. 국민의힘이 국정감사에서 옵티머스 사태에 관한 ‘결정적 한방’을 터뜨리지 못한 결과로 보인다. 게다가 김봉현 전 회장이 야권과 검찰에 로비를 했다고 폭로하면서 야당의 지지율이 오히려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이 특검 제안을 계속해서 거부한다고 해도 뾰족한 수가 없다. 민주당은 야당이 주장하는 특검을 ‘시간 끌기용 전술’로 간주하며 야당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있다. 특검을 시행하려면 특검법이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돼야 한다. 176석의 슈퍼여당이 압도적 다수인 상태에서 민주당이 반대하면 특검 시행은 불가능한 셈이다.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원내협상 외에는 특검을 관철할 마땅한 방법이 없는 상황이다.

무소속 홍준표 무소속 의원은 “드루킹 특검 때와는 다른 이 좋은 호기에 라임·옵티머스 특검을 받아내지 못한다면 야당은 문을 닫아야 한다”며 “야당은 국민의 분노를 대신해야 제대로 된 야당 대접을 받는다”고 역설했다. 국민의힘 당력을 총동원해 당 지도부가 전면에 나서 라임과 옵티머스 특검을 반드시 관철하라는 주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장외투쟁 카드를 꺼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장외투쟁으로 대여투쟁력을 최대한 끌어 올려 정국을 주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야당은 상임위원장 배분, 맹탕 국정 감사 등 정국마다 여당에 휘둘려 별다른 수를 쓰지 못하고 있다. 이번 특검까지 관철되지 못하면 야당의 투쟁 동력이 급격하게 꺾일 가능성 역시 높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지금까진 원내투쟁을 포기하는 장외투쟁이 많았는데, 원내에서 최선을 다하겠지만 안 되면 국민께 직접 호소하는 방법도 강구하고 있다”며 장외투쟁을 시사하기도 했다.

문정부 레임덕, 이대로 게이트?
초대형 빅딜…민주당 움직일까


당 안팎의 요구에 따라, 김 위원장이 장외투쟁을 선택할 가능성도 높다. 김 위원장은 지금까지 장외투쟁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보여왔다. 하지만 갈수록 지도부를 향한 당내 불만들이 악화되면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비대위를 끝내야 한다는 극단적인 의견도 제기된다.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은 “현재의 비대위로서는 더 이상 대안세력, 대안정당을 기대할 수 없다”며 비대위를 끝내고 전당대회를 통해 대안정당으로 거듭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 비상대책위원회의서 옵티머스 라임 사태 관련 발언하는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고성준 기자

다만 장외투쟁이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면 오히려 김 위원장에게 자충수가 될 공산도 높다. 국민의힘의 전신인 자유한국당은 지난해 황교안 전 대표 주도로 장외투쟁을 무리하게 진행하다 오히려 민심의 역풍을 맞은 적이 있다.

또 장외투쟁 국면이 오히려 김 위원장의 리더십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장외투쟁을 할 경우 지지기반과 조직력을 갖춘 당내 중진들이 더 힘을 받을 수밖에 없다. 당 쇄신을 이끌던 비대위의 동력이 약화될 수 있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과거 드루킹 특검처럼 전격 합의가 이뤄질 수도 있을 거라는 관측도 나온다. 야당 정치인의 연루 의혹도 나온 데다, 문재인 대통령이 의혹 해소를 지시해 민주당이 마냥 미루지 못할 것이라는 계산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6일 옵티머스 펀드와 관련해, 검찰 수사와는 별도로 정부 차원의 조사까지도 지시한 바 있다. 앞서 라임·옵티머스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에 청와대 등이 적극 협조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이 사건이 권력형 게이트로 비화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자, 선제적으로 진상규명을 할 것을 지시한 것이다.

잡느냐
잡히느냐

라임·옵티머스 사태가 장기화되면 내년 재보궐선거에서 여권이 더 불리해질 수 있다. 의석 수로 밀어붙이는 게 한두 번이 아닌 데다, 사태가 심각한 만큼 여론의 역풍도 심상치 않을 것이란 판단에서다. 아울러 문정부의 레임덕까지 겹치면서 정부발 악재가 계속해 터지고 있다. 라임·옵티머스 사태가 국정감사를 거쳐 ‘게이트’로 번질 조짐을 보이면서, 여야의 팽팽한 줄다리기는 올해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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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