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경제팀] 김설아 기자 = 최근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이른바 ‘우유주사 살인사건’ 피의자인 산부인과 의사. 이번엔 그가 근무했던 서울 강남의 ‘A사’가 진정성 없는 사과문을 게재해 구설수에 올랐다. 신사동에 위치한 이 병원은 지난 30여 년간 강남권 산모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며 명성을 이어 온 곳. 그러나 병원 측이 금전전 혜택으로 사태를 무마하려고 하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땅에 떨어진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파격 할인을 내건 병원. 직접 찾아가 분위기를 살펴봤다.
약물 투여로 사망한 시체를 유기한 혐의를 받고 있는 산부인과 전문의 김모(45)씨가 근무하던 서울 강남의 A사. 이번 사건으로 인해 하늘을 찌를 듯 위세를 떨쳤던 A사의 위상은 땅으로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끔찍한 사건 내용과 함께 병원 이름이 오르내리며 명예 실추는 물론 실질적인 환자 감소로까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돈 벌이에만 눈이 먼
파문이 확산되자 A사는 지난 11일 병원 인터넷 홈페이지 게시판에 사과문을 올렸다. 병원 측은 게시판을 통해 “병원에 고용된 봉직의사 한 명이 발생시킨 사건으로 병원에 오신 산모 및 환자 여러분들께 심리적 부담과 걱정을 끼쳐드려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올립니다”라며 “고용된 의사 한 명의 비상식적인 잘못으로 성실히 쌓아온 병원의 명예가 훼손돼 저희들도 비통하고 참담한 심정”이라고 밝혔다.
사과문에는 병원의 관리소홀로 수면유도제 등이 유출되는 등에 대한 책임을 언급한 내용은 없었다. 다만 “오늘부터 내원하시는 모든 분들의 진료 및 출산에 대해 파격적인 대우를 통해 용서를 구하겠다”는 혜택을 내걸었다. 이번에 병원 측에서 내건 혜택은 진료비 30%, 입원비 20% 할인이다. 상담실장은 “기간을 따로 정해두지 않았다”며 “10월 말 정도까지는 할인이 가능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해당 사과문이 게재되자 온라인상에서 적잖은 논란이 일어났다. 병원 측의 관리소홀에 대한 사과 대신에 해당 의사에게만 책임을 떠넘긴 채 사태를 해결하려 하느냐는 것이다. 또 병원 관계자들이 경찰에서 조사받는 상황인데 금전적인 혜택으로 무마한다는 점 또한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지난 14일 해당병원을 찾았을 때도 관계자들은 이런 여론의 분위기를 의식한 듯 보였다. 관계자는 사과문에 대해 묻는 기자의 질문에 “잘 모른다. 그게 다다”라며 말을 아꼈다.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사건발생 후 환자수 감소를 묻는 질문에는 “없을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과거에 비해 환자수는 확실히 감소한 듯 보였다. 30분 정도의 간격으로 병원을 찾는 산모들이 하나 둘 눈에 띄었다. 35주가 넘었다는 한 산모는 “병원에 불미스러운 사건 때문에 계속 다니기 찝찝하긴 했지만 그 일을 계기로 환자에게 더 신경을 쓰겠지 싶어 안 옮기고 다니고 있다”며 “병원까지 옮기려면 또 검사기록이며 뭐며 다 카피해서 가져가야 하고 안하고 옮긴다고 하면 처음부터 다시 검사해야 하고 여간 귀찮은 게 아니더라. 담당의사가 다른 사람이라 믿고 계속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병원관리 소홀로 사람 죽여 놓고 진료비 할인?
2007년엔 화재로 산모와 아이들 대피하기도
반면 임신 21주차에 들어선 산모는 병원을 옮기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이 산모는 “내심 불안 불안하면서도 옮기는 것도 불안하고 그래서 그냥 다닐까도 했지만 믿음이 깨져서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며 “나는 괜찮다고 해도 주변에선 임신하면 장례식장도 안 가는데 그런 사건이 일어난 병원이라면 출산하는 날까지, 또 애가 태어나서도 병원이름이 꼬리표처럼 따라 다닐 것 같다면서 옮기라고 재촉한다”고 전했다.
이어 이 산모는 사과문과 관련해서도 “사건을 수습하려는 병원의 태도에 믿음이 더욱 안 간다. 잘못을 인정하고 노력하는 모습이 아니라 외적인 탓으로만 돌리면서 진료비 할인이라니…. 과연 진료비 할인을 받기위해 이 병원을 찾는 산모가 몇이나 되겠냐”고 되물었다.
A사는 지난 1985년 개원한 이래 강남권 산모들로부터 굳건한 명성을 쌓아온 곳이다. 탤런트 고(故) 최진실씨를 비롯해 축구선수 이동국 등 유명 연예인들과 김주하?최윤영 아나운서 등이 이용할 정도로 강남 일대에서 ‘책임분만제’로 인기를 끌었다. 책임분만제란 담당의사가 당직이 아닌 날이라도 산모가 한밤중에 오면 달려와서 분만을 봐주는 시스템이다.
특히 병원은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에 걸쳐 내부를 리모델링하고 지난 6월에는 환자와 보호자용 침대를 교체하는 등 환경개선에 나섰던 터라 이번 사건으로 더욱 큰 타격을 입게 됐다.
대피 소동 벌어지기도
한편 병원은 지난 2007년 말 화재가 발생해 산모와 아이들이 대피하는 소동을 겪기도 했다. 지하 1층 휴게실에서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불이 나 수십명이 긴급 대피한 것이다. 이날 불로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불이 나자 병원 직원 및 환자, 보호자 등 60여 명이 긴급 대피하고 그 중 21명은 인근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다. 병원으로서는 화재에 이어 두 번째 고비를 맞고 있는 셈이다.
30년간 쌓아왔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병원 측이 향후 어떤 대응을 할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과거보다 앞으로의 행보가 해당 병원에 대한 산모들의 평가를 이뤄내는데 더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잘 하면 내 탓, 못 하면 도구 탓’으로 사건을 무마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병원 측은 잊어선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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