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연산군 일기 1495년 1월1일의 기록을 인용한다.
『옛적에 임금이 돌아가시면 백관이 총재의 명령을 받는다 하였습니다. 지금 전하께서 왕위를 계승하여 애통해 하시는 때이어서 무릇 명령하실 것을 감히 독재(獨裁)하지 못하시고 한결같이 총재에게 의탁하시니, 총재의 책임이 평일보다 더욱 중합니다.』
상기 기록은 1494년 12월24일 아버지인 성종이 세상을 떠나자 슬픔에 빠져 정사를 제대로 보지 않던 연산군에게 홍문관 부제학 성세명(成世明)이 아뢴 내용 중 일부로, 동 기록에 등장하는 총재는 이조판서를 의미하나 조선조에는 원상(院相)의 직으로 국왕이 정상적인 국정 수행이 어려울 때 재상들로 구성된 국정을 의논하던 임시 관직을 지칭한다.
여하튼 필자는 두 가지 이유로 상기 기록을 인용했다. 먼저 독재란 단어의 등장과 관련해서다. 필자는 이 글을 쓰는 순간까지 우리 역사에서 독재란 단어가 자주 등장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동 단어는 그 전까지 전혀 사용된 적 없었고, 연산군 시절 딱 두 차례 등장하고는 이후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즉 조선조 통틀어 연산군 시절에만 등장했던 단어가 독재라는 말이다.
하여 왜 그런 현상이 벌어졌는지 곰곰이 생각해봤다.
결국 전제주의 국가에서도 독재란 단어는 금기시 될 정도로 부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추측해본다.
다음은 연산군과 독재에 대해서다.
우리 역사는 연산군을 가리켜 연산군이란 묘호보다 먼저 폭군이란 용어를 사용하고는 한다.
폭군은 말 그대로 흉포한 군주를 지칭하는데, 연산군이 재위 내내 폭군은 아니었다.
조선왕조실록 편찬은 후임 임금 치세 시 기록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연산군을 깎아 내리기 위해 일부러 독재란 단어를 사용한 듯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산군의 엽기적 행각을 살피면 독재와 폭군, 즉 폭정은 동일 개념으로 간주해도 무방하다.
각설하고, 최근 윤석열 검찰총장이 대검찰청에서 열린 신임검사 신고식서 “헌법의 핵심 가치인 자유민주주의는 평등을 무시하고 자유만 중시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이는 민주주의라는 허울을 쓰고 있는 독재와 전체주의를 배격하는 진짜 민주주의”라고 발언한 내용을 살펴본다.
동 발언은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필두로 자신을 제거하려는 집권 여당을 향한 의도된 발언인데, 문재인정권이 민주주의를 가장하여 독재와 전체주의를 지향하고 있다는 이야기로 돌려 해석할 수 있다.
필자가 살필 때 그저 남의 주머니를 털어 생색내는 일만을 경쟁력으로 지니고 있는 문 정권이 정말 그런지는 차치하고, 윤석열이 언급한 헌법의 핵심 가치인 자유민주주의에 대해 초점을 맞춰본다.
자유민주주의는 인간의 존엄성 실현을 위해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며, 권력의 분리와 견제를 지향한다.
그런 이유로 대한민국은 3권 분립 제도를 채택하여 상호간 견제·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윤석열이 수장으로 있는 검찰이 그럴까. 천만에다. 이 나라 검찰은 전 세계서 유일무이하게 수사권과 기소권 모두를 독점하고 있고, 외부로부터 견제 받지 않는 기이한 조직으로 이는 자유민주주의 이념을 정면으로 위반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윤석열은 독재를 언급할 자격이 없다.
필자가 살필 때 이는 ‘똥 묻은 개가 재 묻은 개 나무라는 격’, 혹은 그 반대, ‘재 묻은 개가 똥 묻은 개 나무라는 격’이다.
그저 함구하고 검찰을 자유민주주의 이념에 따라 스스로 혁신하는 일이 우선이다.
※본 칼럼은 <일요시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