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통 큰 여장부 이수영 광원산업 회장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0.08.03 11:00:20
  • 호수 128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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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나온 김에…노벨상 가즈아~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천사가 나타났다. 과학 인재들을 위해 ‘통 큰’ 기부를 한 그 주인공은 바로 이수영 광원산업 회장이다. 이 회장은 “과학이 미래”라고 강조하며 과학 인재들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 이수영 광원전자 회장 ⓒKAIST

이수영 광원산업 회장이 지난달 23일 한국과학기술원(이하 KAIST)에 676억원을 기부했다. 지난 2012년(80억여원)과 2016년(10억여원) 미국 부동산을 유언으로 증여한 것에 이은 세 번째 기부다. 이번 기부로 KAIST 개교 이래 최고액인 766억원으로, 이 회장은 기부 여왕이 됐다. 

교육재단 설립
연구기금 사용

이 회장은 KAIST 대전 본원 학술문화관서 열린 기부 약정식서 676억원 상당의 부동산을 출연해 ‘이수영 과학교육재단’을 설립하기로 했다. 이 수익금은 KAIST 싱귤래러티 교수 지원을 통한 노벨상 연구 기금으로 사용된다. 

싱귤래러티 제도는 과학 지식의 패러다임을 바꾸거나 새로운 분야를 개척할 수 있는 교수, 인류 난제를 해결하고 독창적인 과학 지식과 이론을 정립할 수 있는 교수를 선발해 지원한 제도다. 

싱귤래러티 교수로 선정되면 10년간 임용기간 동안 연구비를 지원 받고 논문·특허 중심의 연차 실적 평가가 유예된다. 임용 기간 종료 시 연구 진행 과정 및 특이점 기술 역량 확보 등 평가에 따라 지원 기간을 추가로 10년까지 연장할 수 있다. 


국가 발전을 위해 과학기술이 중요하다고 본 이 회장의 생각이 ‘통 큰 기부’로 이어진 것.

이 회장은 “나는 과학을 모르지만, 과학의 힘이 얼마나 큰지는 잘 알고 있다. 한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과학 기술 인재를 키워주시기 바란다. 바라는 것은 그것 하나뿐”이라고 말했다.

KASIST 역대 최고액 766억 쾌척
2012년, 2016년 이어 올해 세 번째

이 회장이 KAIST와 처음 인연은 맺은 건 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결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상속할 사람이 없었다. 그때부터 자신의 재산을 기부할 곳을 찾았다. 2012년까지 서울대 법대 장학재단 이사장을 맡아 장학사업을 진행했지만, 모교인 법대는 학업은 잘해도 사회에 공헌하는 부분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다른 곳을 찾다가 우연한 기회에 서남표 KAIST 총장이 출연한 TV 인터뷰를 접했다. 

서 총장의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 국민이 호응해달라”는 이야기에 감명받은 이 회장은 과학기술만이 우리나라가 살 길이라고 생각한 것. 좋은 연구를 통해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고, 국가 발전에 기여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시작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진 것이다.
 

▲ 이수영 회장 ⓒKAIST

노벨상은 세계가 인정하는 권위적인 상이자 과학기술을 대표하는 분야다. 이 회장은 국내 과학기술의 위상을 높이려면 노벨상 수상이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추가 기부 계획에 대해 이 회장은 “KAIST를 계속 지켜보려 한다. 연구를 잘하지만 경영능력은 상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재단이 금액을 관리해 KAIST가 이익잉여금을 쓰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동안 몸이 좋지 않았던 이 회장은 재산이 의미 있게 사용되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으며, 신성철 KAIST 총장의 뜻에 공감해 임기 동안 KAIST 발전의 기회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KAIST에는 대한민국 1호 한의학 박사인 고 류근철 박사(578억원), 정문술 전 미래산업 회장(515억 원), 김병호 전 서전농업 회장(350억원), 고 김영한 여사(340억원) 등의 기부자들이 고액의 발전기금을 기탁했다. 

사시 낙방
신문사로

해방 이전인 1936년 8남매의 막내로 태어난 이 회장은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영특했다. 아들보다 강하고 씩씩하게 성장하길 바랐던 부모님의 바람대로 그는 당대 최고 명문이었던 경기여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법대로 진학한다. 하지만 1년간 열심히 공부해 도전한 사법고시에 낙방한 뒤 몸과 마음이 모두 망가졌다.

겨우겨우 몸과 마음을 추스른 그는 영어학원에 다니기 시작한 어느 날, 학원 게시판서 공고문 하나를 본 뒤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다. 그 공고문은 <서울신문>서 신입 기자를 뽑는다는 안내문이었다.

1963년 <서울신문> 10기 수습기자로 언론계에 발을 디딘 그녀였지만 ‘따돌림’ 등으로 4개월 만에 사직서를 쓰게 된다. 이에 대해 자서전서 ‘서울대 법대 출신의 자그마한 여기자가 하나 들어와서 고개 빳빳이 들고 편집국을 다니는 내 모습이 곱게 보였을 리 없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후 <한국경제신문>을 거쳐 1969년 <한국일보> 자매지였던 <서울경제신문>에 뿌리를 내렸다. 1980년 전두환정부가 <서울경제신문>을 강제 폐간할 때까지 몸담아 총 17년 동안 기자로 일했다. 이 회장은 스스로 “나는 아직도 <서울경제신문>을 친정으로 생각한다”고 말할 정도로 그 시절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기자 시절 그는 10원 정도 하는 안양 땅 5000평을 매입해, 돼지 2마리와 암컷 한우 3마리로 목장을 시작했다. 농장이 커지자 낮에는 신문사서 일하고 밤에는 경기도 안양의 목장서 돼지와 소를 키웠다. 목장과 서울을 오가느라 하루에 한 시간 남짓 차 안에서 잠깐씩만 눈을 붙이면서 생활을 이어갔다.
 

기자를 그만두고 나서 본격적으로 농장 일과 사업을 벌였다. 선친이 딸의 결혼 비용 등으로 남긴 50만원짜리 적금 통장 2개가 사업 초기자본금이었다. 돼지 2마리로 시작한 목장은 돼지 100마리, 소 10마리로 규모가 커졌고 전국에 소개될 만큼 주목받기 시작했다.

돼지 출하 과잉으로 가격이 폭락했을 때는 국군장병 위문품으로 돌려 이익을 남겼고, 우유가 남아도는 ‘우유파동’ 때는 농림부에 초등학생 우유 무료 제공을 건의해 판로를 뚫었다.

지난 2018년
자서전 출간


목축으로 시작한 이 회장은 모래채취 사업으로 본격적인 부를 일궜다. 1988년 부동산 사업을 시작하며 광원산업을 세우고, 여의도백화점 일부 매입 등을 통해 사업을 확장했다. 덕분에 미국의 연방정부가 세 들어 있는 빌딩의 건물주가 됐다.

이 회장은 “성조기가 펄럭이는 건물의 주인이 된 것 같아 뿌듯했다”고 말했다. 이게 바로 KAIST에 유언으로 증여하며 처음으로 인연을 맺게 된 건물이다.

이 회장은 80년 넘게 독신으로 살다가 2018년 서울대 법대 동창이자 첫사랑이었던 김창홍 변호사와 결혼했다. 남편은 대구지검 지청장을 지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재력가의 기부에는 으레 가족들의 반대가 따를 수 있지만 이 회장은 “남편이 오히려 ‘이왕 마음먹은 거 빨리 하라’며 기부를 독려했다”고 전했다.

이 회장은 2018년 11월 자서전 <왜 KAIST에 기부했습니까?>를 출간했다. 이 책은 이 회장의 일대기를 담은 책으로 KAIST발전재단이 출판하고 이 회장이 직접 썼다. 이 회장의 어린시절, 학창시절, 기자 시절, 만난 사람들, 기업가, 기부자 등 6부로 구성된 책이다. 
 

▲ 왜 KAIST에 기부했습니까?

1936년생인 이 회장이 늦게나마 펜을 들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기록한 이유는, 자신이 가장 많이 들었던 세 가지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다.

첫째, 당시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뒤 법조인의 길을 걷지 않고 기자의 삶을 선택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가? 둘째, 여성의 몸으로 결혼도 하지 않고 혼자 살면서 어떻게 그렇게 돈을 모을 수 있었는가? 셋째, 왜 기부를 결심하게 됐고 그것도 KAIST에 기부했는가? 이 회장은 자신의 삶을 하나씩 되돌아보며 이 질문의 답을 찾는다.


서울대 법대 졸업 후 신문기자 생활
땅 사놓은 게 잘 풀려 사업가로 변신

책에는 재계 인사들 관련 일화와 취재 뒷이야기가 눈길을 끈다.

삼성그룹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과는, 소장하고 있던 골동품을 취재하기 위해 어렵게 만난 이야기가 담겼다. 또 정양모 전 국립중앙박물관장과 함께한 이병철 회장 인터뷰는 이후 한·일 국교 정상화 10주년 기념 전시로 이어졌다. 당시 ‘한국미술 5000년전’에 이 회장은 삼성서 소장하고 있던 국보급 보물을 대거 공개해 전시를 빛냈다.

과자로 시작해 시멘트 회사까지 인수하면서 국내 10대 기업으로 회사를 키운 이양구 동양그룹 창업주는 한때 빚쟁이들에게 쫓기는 신세였다. 평소 그가 ‘근면과 성실의 결정체’임을 알고 있었기에, 잠적한 그를 설득했다. 마침내 새벽 5시에 만나겠다는 전화를 받고 나간 자리서 “내게 시간을 달라고 전해달라”며 “채권자들이 어떤 피해도 보지 않게 하겠다”는 이 창업주의 말을 기사로 전했다.

그는 모든 것이 정리된 후 “이수영 기자가 나를 살렸다”고 말했다.

이 회장의 기부 행위를 두고 안종수 단국대학교 보건학 박사는 <뉴스토마토> 칼럼서 “비과학자 출신이 노벨 과학상에 대한 염원을 담아 큰 액수로 기부하는 건 놀라운 일이다. 이 회장이 이런 행위는 두 가지 측면서 정말 의미가 크다. 하나는 우리 사회 부자들의 기부문화를 성찰하게끔 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과학 입국의 중요성을 일깨워주었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과학 중요성
일깨워준 행위”

이어 “우리나라가 미국, 유럽 선진국들에 견줘 크게 모자라는 것이 바로 갑부들의 기부문화와 노벨 과학상 수상이다. 서민들이야 기부하고 싶어도 그럴 만한 재산이 없어서라는 이유를 댈 수 있지만, 수백억원 이상의 자산가들도 수두룩한데 이들 가운데 대부분은 사회 기부보다는 자식들에게 물려주는 데 골몰하고 있다. 기부하더라도 대부분 장학재단 등으로만 내놓지 과학기술 입국 목적으로 내놓은 경우는 희귀하다. 이 회장의 기부가 정말 뜻 있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고 덧붙였다. 
 

<9do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또 다른 기부왕’ 고 송금조 이사장

이수영 회장 말고도 노벨상 수상을 위해 재산을 아끼지 않았던 또 한 명이 있었다. 그 주인공은 고 송금조 경암교육문화재단 이사장이다. 평생 모은 돈을 지역 교육 문화 발전에 바친 송 이사장이 7월21일 오후 6시14분에 별세했다. 향년 98세. 

송 이사장은 지난 2004년 전 재산인 1000억원을 사회에 환원하며 순수 공익재단인 경암교육문화재단을 세웠다. 그전에는 2003년에는 부산대학교의 양산캠퍼스 설립에 305억원을 기부 약정하고, 195억원을 쾌척하기도 했다. 개인 기부금 사상 최고액이었다.

1923년 경남 동래군 철마면 송정리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송 이사장은 늘 배움에 목말라 있었다. 가난 탓에 17세가 돼서야 겨우 국민학교를 졸업했다. 중학교에 가지 못해 친구의 집에 놀러가 몰래 교복을 입어봤다는 일화도 있다. 교육열이 울혈처럼 맺혔다.

군 복무 시절, 돈이 없어 면회를 온 어머니에게 설렁탕 한 그릇 못 사드린 게 한이 돼서 돈을 벌기 시작했다. 소소한 점원부터 안 해본 일이 없었다.

이후 1974년 금형 사출공장인 ‘태양사’를 설립해 유럽 전역과 미국에 식기 세트를 수출했다. 봉제공장 ‘태양산업’, 플라스틱 사출공장 ‘태양화성’ 등도 성공시켰다.

1987년에는 ‘1000만 달러 수출탑’을 수상했고 1986년에는 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대통령 산업훈장을 받기도 했다.

악착같이 수천억원대의 재산가가 됐지만, 근검절약 정신은 몸에 배어 있었다. 부인이 세수한 물을 대야에 뒀다가 화장실용으로 사용할 정도로 아끼고 아꼈다.

그렇게 모은 돈은 오직 지역사회 교육에 썼다. 1985년 학교법인 태양학원을 설립했고, 이듬해 경혜여고를 설립해 중등교육 육성에 매진했다.

2000년 봉황장을, 2002년 국민교육유공자로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전 재산을 환원할 당시 송 이사장은 “뭐가 아까우냐.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구>


<기사 속 기사> 대한민국 기부왕은?

100세를 눈앞에 둔 이종환 삼영화학그룹 회장은 한국의 기부왕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은 한 언론 인터뷰서 “돈을 버는 데는 천사처럼 할 수 없어도 돈을 사용하는 데 천사처럼 하겠다”는 자신의 기부 철학을 알렸다. 

그는 1959년 삼영화학공업 주식회사를 세운 뒤 2000년 1조원의 사재를 털어 관정이종환교육재단을 설립했다. 세계 100대 자선재단 순위서 90위에 속하는 아시아 최대 규모 장학재단이다.

가구업체 한샘의 창업주인 조창걸 한샘 명예회장은 2015년 자신이 보유한 한샘 주식 절반인 260만주(당시 종가 기준 약 4400억원)를 한샘드뷰재단에 내놓기로 약속했다. 조 명예회장은 2015년 60만주, 2017년 100만주를 기부했으며 나머지 주식의 재단 증여도 순차적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이준용 대림산업 명예회장도 재단법인 ‘통일과 나눔’의 통일나눔펀드에 개인자산 전액인 약 2000억원을 기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와 더불어 이 명예회장은 1995년 대구 지하철 공사현장 폭발사고(20억원), 2017년 경북 포항 지진 (10억원), 2020년 코로나19(20억) 등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일에 꾸준한 기부를 이어왔다.

예술계 스타들도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며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원로배우 신영균씨는 2010년 명보아트홀과 제주 신영영화박물관 등 500억원 규모의 사유재산을 한국 영화 발전에 써달라며 쾌척했다. 모교인 서울대에도 시가 100억원 상당의 대지를 발전기금으로 기부했다.

그는 한 언론 인터뷰서 “나중에 내 관 속에는 성경책 하나 함께 묻어주면 된다”며 앞으로 남은 재산도 환원하겠다고 밝혔다.

신씨는 서울대 출신의 잘나가는 치과의사이자 사업가, 배우, 국회의원 등으로 다양한 삶의 궤적을 그린 인물이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극단서 활동하다 어머니의 반대로 1995년 서울대 치과대학에 진학했다. 1960∼1978년 영화에 출연해 얼굴을 알린 이후 15·16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배우 장나라는 정확한 액수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이미 2009년 130억원이 넘는 금액을 기부한 바 있다. 대부분의 광고 수익을 기부하는 그는 “사람들에게 장미를 나눠주니 내 손에 장미향이 남았다”는 가훈을 가슴에 담아 선행을 실천한 것.

기부천사로 알려진 가수 션도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그가 아내 정혜영과 각종 재단에 개인으로 기부한 금액은 55억원이 넘는다. 그는 한 방송 프로그램서 “한 단체서만 아이 400명 정도 후원을 한다. 총 1000명 정도 후원을 한다”고 말해 놀라움을 안겼다.

또 가수 하춘화도 45년간 200억원이 넘는 기부를 했으며, 가수 조용필도 매년 수억원씩 기부하며 2013년 미국 경제지 포브스 선정 ‘아시아 기부영웅 48인’에 이름을 올렸다.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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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도이치 브로커’ ‘청담동 사기꾼’ 연결고리 추적

[단독] ‘도이치 브로커’ ‘청담동 사기꾼’ 연결고리 추적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김건희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의 핵심 인물인 이준수가 3년간 수백 차례 연락에 사용한 휴대전화를 특검팀이 확보했다. 이준수는 주식·코인 주가조작으로 수백억원의 부당이득을 챙기다 구속된 이희진에게 오광수 전 청와대 민정수석을 소개한 인물이다. 앞서 이희진이 구속된 2016년에도 그를 옹호하는 영상을 웹사이트에 올려 친분을 과시했다. 이준수는 과거 무자본 인수합병(M&A) 혐의 등으로 여러 차례 형사처벌을 받았던 인물이다. 그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당시에도 김건희 계좌와 연관된 거래를 한 정황이 드러나 검찰 수사를 받았지만, 불기소 처분된 바 있다. 같은 부류 서로 옹호 지난 7월15일 김건희 특검은 김건희와 이준수가 주고받은 문자메시지 내용에서 단순한 투자 조언을 넘어선 사적 관계가 확인됐다고 밝혔다. 2013년부터 2016년까지의 메시지에는 주식 매매 관련 대화뿐 아니라, 사적인 감정 표현과 비공식적 만남 정황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포렌식 결과 이준수는 김건희에게 건진법사 전성배씨를 처음 소개한 인물로 드러났다. 2013년 이준수는 김건희에게 보낸 문자에서 “무당이라기보다는 거의 로비스트에 가깝다. 정치권 네트워크가 막강하다”고 표현하며 전씨를 추천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검은 이 관계를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이준수→건진법사→김건희’로 이어지는 핵심 연결고리로 보고 있다. 특히 건진법사가 윤석열 전 대통령 당선 후에도 대통령실 인사들과 접촉하고 영향력을 행사 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만큼, 특검은 이 라인과 김건희의 대선 이후 행보와의 연속성을 주시하고 있다. 이후 특검은 이준수의 최근 행적 단서를 발견했다. 지난해 10월, 이준수가 음주 운전 혐의로 적발됐는데, 경찰 조사에서 “가까운 지인이 검찰 수사에서 무혐의를 받아 술을 마셨다”고 진술했다는 것이다. 당시 ‘무혐의’를 받은 인물은 도이치모터스 사건에서 불기소 처분을 받은 김건희를 의미한다. 경찰 조사 조서에는 ‘지인’이라고만 기록됐지만, 특검은 실제 진술 내용과 시점을 대조해 그 ‘지인’이 김건희임을 확인했다. 이는 2023년 말까지도 김건희와 이준수 간에 연락이 이어졌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특검은 수사 과정에서 이준수가 차명계좌 등을 통해 거래에 참여한 정황을 새롭게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그는 음주 운전 혐의로 경찰에 수배된 상태였으며, 특검팀은 지난달 압수수색 현장에서 그를 발견하고 체포를 요청했으나, 경찰이 도착하기 직전 건물 2층에서 뛰어내려 달아난 것으로 전해졌다. 이준수는 김건희의 금융 거래와 밀접한 인물로 여러 차례 거론됐다. 특히 2022년 대선 당시 김의겸 의원은 김건희가 2010년 4월 주가가 급등락하던 태광이엔씨 주식을 대량 매수한 뒤 하루 만에 1000만원이 넘는 이익을 보고 매도했다며,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투자 의혹을 제기했다. 이준수, 김건희-건진법사-도이치모터스 핵심 코인판으로 진화한 주가조작 조직 ‘VIP’까지 당시 태광이엔씨를 실질적으로 인수해 주가를 띄우고 회사 자금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돼 징역형을 확정받은 인물이 바로 이준수였다. 김건희가 이준수로부터 미공개 정보를 받아 주식을 사고 팔았던 것 아니냐는 과거 의혹이 재조명되고 있다. 김건희 측은 이에 대해 “이준수가 일방적으로 투자와 관련해 연락을 취한 적은 있으나, 김건희는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적이 없으며 이준수와 밀접한 관계도 아니”라고 반박했다. 또 “이준수와 지난해까지 연락을 주고받았다는 주장도 사실이 아니”라며 선을 그었다. 이준수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의 핵심으로 불린다. 과거 증권사 애널리스트 출신으로 유명한 그는 여러 투자자 명의 계좌를 동시에 관리하며 시세조종에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김건희의 계좌 출고 명령을 직접 수행했다는 내부 증언도 있었다. 그러나 당시 검찰은 그를 기소하지 않아 ‘봐주기 수사’ 논란이 불거졌다. 이준수는 “주가조작 전과 4범, 닉네임 ‘새강자’”로 유명했다. 이희진 주가조작 사건 당시 검찰 전관 변호사 오광수 전 청와대 민정수석을 중개했다. 해당 사실은 이준수가 이희진에게 변호사를 알선하고 대가를 받아 챙긴 혐의를 받으면서 드러났다. 이희진은 지난 2016년 9월 무인가 투자매매사를 설립했고, 2014년 7월부터 2016년 8월까지 1600억원대의 주식을 판매해 자본시장법·유사수신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 이희진과 조기축구 모임에서 친해진 이준수는 2016년 8월 이희진에게 오광수 등 변호사를 알선하고 그 대가를 받거나 약속받은 혐의를 받았다. 당시 이희진은 증권방송 회원들에게 비상장 주식을 매도한 의혹 등으로 수사를 받고 있었다. 끼리끼리 축구 모임 이희진은 수사기관에서 이준수가 검사·수사관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변호사들을 소개하고, ‘착수금’ 2000만원과 불구속 수사를 받을 경우 성공 보수 5000만원을 달라는 요구를 했다고 진술했다. 이준수의 혐의에 관한 증거는 대부분 이희진의 진술에서 비롯됐다. 이희진에 따르면 이준수는 “변호사들에게 적지 않은 선임료를 주는데 나도 그동안 너를 위해 열심히 노력했으니 돈을 달라. 변호사들은 앞선에서 일하고 나는 뒷선에서 일을 볼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이를 승낙한 이희진은 자신의 주거지에서 이준수에게 현금 1000만원을 줬다. 또 며칠 뒤 이준수는 이희진에게 “검찰 수사관에게 알아보니 너 골인(구속)될 것 같다. 약속한 1000만원을 달라”고 해 나머지 1000만원을 더 지급했다고 한다. 이에 관해 이준수는 “1000만원은 비상장 주식을 담보로 한 담보대출을 추진하기 위해 수고비 명목으로 받았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이희진의 공소 사실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됐다고 보기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진술을 그대로 믿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재판부는 이희진과 다른 증인의 진술이 상반된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재판부는 “이희진은 변호사를 선임하고 이준수와 돌아오는 차 안에서 착수금·성공 보수를 요구받았다고 했지만, 해당 차량 운전사는 이 같은 말을 들은 사실이 없다고 진술했다”고 짚었다. 이희진의 진술은 동생 이희문의 말과도 일치하지 않았다. 이희진은 동생과 이준수에게 돈을 지급할지, 깎을지 상의했다고 했지만, 동생은 “당시 변호사 소개비 등 명목으로 2000만원을 줬다는 것은 전혀 알지 못했고 나중에 들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2017년 2월14일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동수사단은 이희진과 그의 동생을 사기 혐의 등으로 추가 기소했다. 검찰은 이들이 2015년 4월부터 지난해 4월까지 피해자 28인에게 허위, 과장된 내용을 말하며 대략 41억원 상당의 비상장 주식을 판매한 혐의를 받고 있다고 전하며 추가 조사를 이어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미인가 금융투자업을 영위하며 비상장주식 종목을 추천한 뒤 선행 매매한 주식을 판매해 122억6000만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로 2020년 2월 징역 3년6개월, 추징금 122억6000만원이 확정됐다. 최근 이씨 형제는 현재 가상화폐(피카코인) 시세조종 사건에 연루돼 구속 상태로 재판받고 있다. 국가권력으로 범죄 네트워크 이희진의 절친이자 김건희와 주가조작 사건의 공범으로 지목된 이준수는 주가조작 전담 브로커로서 “증권사 내부망 접근, 차명계좌 운용, 대포폰 관리” 등을 통해 시세조작을 총괄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는 이희진 코인 사건의 자전거래 구조 및 주식시장 조작 방식과 유사하다. 통정·자전 거래 구조가 동일하다. 차명계좌·직원을 동원해 리딩방을 운영하고, 허위 보도자료·루머형 호재를 유포하는 패턴도 동일하다. 지난 2016년 이준수는 웹사이트를 통해 이희진을 두둔하는 영상을 올리기도 했다. 그는 해당 방송에서 “언론이 사건을 과장했다”며 혐의 전반을 축소하고, “1600억 허가 안 받은 것뿐이지 큰 죄는 아니”라고 말했다. 이어 “유사수신죄는 원금 보장 약속이 있어야 성립한다. 계약서엔 그런 말이 없다”며 기소 자체의 정당성을 부정했다. 또 이준수는 “주가가 4배, 5배 간다고 했다가 떨어졌다고 죄는 아니”라며, 주가조작을 단순한 ‘예측 실패’로 치부했다. 또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이 목표가를 제시하는 것도 죄냐”고 반문하며, 이희진이 진행했던 거래를 “시장 참여자의 일반적 행위”로 표현했다. 영상에서 이준수는 전환사채 거래와 내부자 정보 이용 혐의를 언급하며 “브로커들이 조작했고, 희진이는 오히려 그 사실을 검찰에 말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IS동서 전환사채권은 큰 잘못이지만 희진이는 계약 불이행 피해자”라며 범죄의 고의성을 부정했다. 이는 공소장과 재판기록상 사실과는 상충되는 주장이다. 수백억 먹은 이희진 절친 전 청와대 민정수석 소개 또 다른 발언에서 그는 “사기적 부정거래는 회사가 거짓말로 주식을 파는 행위”라며 “이희진은 단지 회사 공시를 믿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올리패스 등 현재 상장폐지된 기업을 언급하며 “공시가 취소됐다고 사기라 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이는 금융감독 규정상 ‘허위 공시 정보 활용’과 ‘공모 행위’의 구분을 의도적으로 축소한 해석이다. 영상 말미에서 이준수는 피해자들의 법적 구제 가능성마저 부정했다. “이희진한테 피해 입었다고 나라가 받아주지 않는다. 민사·형사도 성립 안 된다”며 “다 변호사들이 사기 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법조계를 “돈에 눈먼 집단”이라 비난하며, 피해자들의 소송을 “쓸데없는 짓”이라 재차 강조했다. 한편, 이준수가 옹호한 주가조작범 이희진은 코인 시세조종 혐의로 기소된 상태다. 서울남부지방검찰청이 2023년 10월4일자로 제출한 공소장에 따르면, 피고인 이희진과 이희문은 A, B, C 토큰을 이용한 대규모 가상자산 시세조종·사기 조직을 운영한 혐의로 기소됐다. 공소장에 따르면, 두 형제는 실체가 불분명한 ‘스캠(Scam) 코인’을 발행해 거래소 상장을 추진하고, 허위 공시와 자전거래(봇 프로그램 활용)를 통해 시세를 인위적으로 부풀린 뒤 투자자들에게 고점 매도를 유도하는 ‘물량 털기(Pump & Dump)’ 방식으로 약 700억원대의 피해를 입혔다. A 토큰 피해자는 1만564명으로 피해액은 약 217억원, B 토큰 피해자는 4342명, 피해액은 약 341억원, C 토큰 피해자는 1만5641명, 피해액은 약 339억원이다. 김건희 특검의 휴대전화 포렌식 결과는 그의 단순한 과거 인연을 넘어, 사적 네트워크가 실제 정치권력의 형성 과정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특검은 현재 ‘김건희·이준수·건진법사’로 이어지는 삼각관계의 실체를 밝히는 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을 종합하면 이희진과 이준수는 변호사·브로커 인맥을 공유하고, 자전거래 기술을 활용해 주식과 코인 양쪽의 시장 조작 기술도 공유했다. 이희진과 김건희의 접점은 없으나 이준수를 경유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는 상황이다. 현재까지 이희진 형제는 ‘코인판 사기’ 혐의로 기소됐지만, 이준수에 대한 직접 수사는 진행되지 않았다. 그러나 공소장과 언론 보도를 교차 검증할 때 자전거래 시스템, 차명계좌 운용, 허위 호재 유포 패턴 등이 모두 이준수의 과거 주가 조작 수법과 유사하다는 점에서, 검찰의 보강 수사 필요성이 높다. 국정으로 연결 범죄 네트워크 이씨 형제의 범행은 과거 주가조작 사건의 복제판이며, 그 배후에는 이준수 같은 ‘조작 기술자’가 존재한다는 정황이 공소장 등에서 확인된다. 김건희 계좌가 활용된 도이치모터스 사건과의 연계가 입증될 경우, 이 사건은 단순한 금융 사기가 아닌 ‘국가권력과 민간 조작 네트워크의 교차 지점’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