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김설아 기자] 인터넷을 통해 16만 편의 음란물을 유통시킨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15년 동안 쉬지 않고 봐도 다 못 본다는 사상 최대 규모다. 일당 중엔 70대 노인과 대학교수도 끼어 있었다. 음란물에 중독돼 가고 있는 우리사회. ‘헤비 업로더’의 실체를 추적했다.
영화나 동영상 등을 내려 받을 수 있는 인터넷 파일공유 사이트. 사이트 내 음란물 전용클럽에 들어가자 옷을 거의 입지 않은 여성들의 낯 뜨거운 영상들이 줄줄이 이어진다.
국적과 주제별로 정리 돼 있는 목록에는 새로운 음란물이 쉴 새 없이 등록되고 누군가 이를 내려 받는다. 최근 3년 동안 음란물 16만 편이 여기서 퍼져 나갔다.
데이터 양으로 극장용 영화 7만편 용량인 97테라바이트. 하루 24시간 쉬지 않고 15년을 봐도 다 볼 수 없는 엄청난 규모다. 문제는 사이트 업체가 이 클럽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다는 데 있다.
‘야동본좌’ 잡고 보니…
이 사이트 대표와 클럽운영자들은 음란동영상을 꾸준히 올려 방문자들이 돈을 지불하고 내려 받게 했다. 경찰에 검거된 사이트 대표 이모(44)씨는 최근 1년 동안에만 무려 2억원 가까운 수익을 챙겼다.
이씨는 또 클럽 다운로드 활성화로 운영난 타개를 모색하면서 클럽에 음란물을 많이 올린 이른바 ‘헤비 업로더’를 조직적으로 관리하면서 수천만원의 활동비를 주기도 했다. 그 결과 클럽은 사이트 전체 매출의 30%에 이를 정도로 쏠쏠한 수입을 안겨줬다.
이씨는 ‘시샵’이라 불리는 클럽 운영자에게 매달 150만원을 주고 클럽운영에 관한 모든 권한을 줬다. 그러면서 감시도 잊지 않았다. 사이트 운영자들은 관리자 페이지를 통해 수시로 업로드 양을 확인해 독려했다.
클럽에 관한 모든 권한을 가진 시샵은 댓글과 음란동영상 업로드 개수 등 평소 회원들의 활동량을 지켜보다가 왕성한 활동을 하는 회원에게 ‘부시샵’(카페 부운영자) 자리를 맡겼다. 부시샵은 등급에 따라 게시판 접근 권한이 다른 이 카페 사이트에서 모든 영상을 볼 수 있는 특권을 가졌고 정액권을 지급 받았다.
음란물을 대량으로 올린 헤비 업로더 가운데는 대학교수와 무역업 임원을 하다 은퇴한 70대 노인, 대기업 직원도 포함돼 있었다. 대부분이 오프라인에서는 지극히 평범한 가장이거나 직장도 번듯한 사회인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신분이 노출되지 않는 온라인상에서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됐다. 자신의 성적 욕구를 마음껏 표출하는 익명의 한 남성이었던 것이다. 이들은 자신이 올린 음란영상물과 게시글에 달린 댓글들을 보며 영웅심에 젖기도 했다.
대학교수, 직능단체 임원 출신, 대기업 직원 등 각양각색
“음란영상 올린 뒤 폭발적인 반응 보면서 희열 느꼈다”
낮에는 교수로, 밤에는 야동의 본좌로 활약한 서울 소재 4년제 대학교수 A씨는 “내가 올린 음란물을 보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에 희열을 느꼈다”고 범행 동기를 밝혔다. 그가 올린 영상은 무려 2000개다.
노익장인 70대 B씨도 경찰에서 “현실에서는 일도 하지 않고 힘도 없는 노인에 불과하지만 온라인에서는 기다려 주는 팬들도 있고 막걸리 값도 생겨 좋았다”고 말했다. 그는 ‘충격 12세 소녀’, ‘일본-11세’ 등 아동·청소년이 등장해 성관계하는 일명 ‘로리타 동영상’ 940여건을 비롯, 모두 4000여건을 게시했다.
또 뛰어난 일본어 실력을 바탕으로 일본 음란동영상에 자료 설명을 곁들여 수백명의 팬(?)을 보유하기도 했다. 4~5년 전부터 ‘취미’로 야동을 즐기다 ‘야동 마니아’가 된 것으로 알려진 B씨는 아동?청소년이 등장하는 음란물 외에도 3000여건의 음란물을 확보하고 있었다고 경찰은 밝혔다.
취업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헤비 업로더가 된 30대도 있었다. 2년째 국가고시 시험을 준비하다가 수차례 낙방한 C씨는 경찰에서 “나이도 많고 집에 손 벌리기도 어려운 형편이라 고시원 총무 생활을 하던 중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로 성적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음란동영상을 올렸다”고 진술했다.
경찰 관계자는 “파일공유 사이트 내 아동?청소년 음란물을 대량 게시한 헤비 업로더 검거는 이번이 처음”이라며 “이들은 자기를 따르는 추종세력들에서 얻어지는 자기만족을 상당부분 느끼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이처럼 성범죄를 부추기는 음란물이 사회 전반에 넘쳐나다 보니 이에 따른 우려의 시각도 적지 않다. 언제 어디서나 음란물을 접할 수 있는 인프라가 구축돼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최근엔 손 안의 인터넷인 스마트폰을 이용해서도 손쉽게 음란 동영상을 볼 수 있다. 스마트폰 어플은 성인 인증이 필요 없는데다 무료로 배포되고 있어 청소년들에게도 어김없이 노출된다. 전문가들은 청소년들이 음란물에 중독될 경우 포르노와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고 실제 성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 최근 행정안전부가 실시한 ‘청소년의 성인물 이용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음란물을 본 청소년 중 5%는 성추행·성폭행 충동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음란물 이용 후 음란채팅, 야한 문자나 사진 전송, 몰래카메라 촬영 등의 부적절한 행동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음란물 천국으로 변질
황서종 정보화기획관은 “새로운 인터넷 서비스와 스마트폰 이용 확대로 청소년들의 성인물 이용이 보편화되고 있고, 일부는 성적 일탈행동 경험도 나타나 청소년의 정신건강이 매우 우려된다”며 “성인물의 폐해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해 적극적인 성인물 차단 대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음란물 유포죄로 적발돼도 처벌이 약하고, 처벌 뒤 다시 인터넷 카페를 운영할 수 있어 근절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음란물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는 것이 청소년이 멍드는 사태를 막고 최근 빈발하는 엽기적인 성범죄를 예방하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어른들이 먼저 보여줘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