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 영화제’ 대종상 무용론

고마해라! 욕 마이 묵었다 아이가∼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국내서 가장 오래된 영화제인 대종상 영화제(이하 대종상)가 코로나19 여파로 밀리고 밀리다 지난 3일 개최됐다. 대종상의 권위는 90년대부터 약 30년간 서서히 떨어졌다. 이번의 경우 개최조차 불투명했으나 우여곡절 끝에 명맥을 이을 수 있었다. 촌극이나 다름없었던 2018년에 비하면 배우 참석률이나 실수의 빈도서 나아진 측면이 있긴 하나, 국내 최고령 영화제로서의 위상은 여전히 멀기만 해 보인다. 
 

▲ ⓒ문병희 기자

‘대종상 영화제’는 1958년 정부서 ‘우수국산영화 시상제’라는 명칭으로 출발했다. 1962년 명칭을 대종상으로 변경했다. 그 과정서 국산 영화상 기간은 대종상 수상 약력서 제외다. 그런 이유로 63년의 역사를 지닌 영화제는 2020년이 56회가 된다. 

어용?

첫 단추부터 정부가 세운 영화제다 보니 공정성과는 담쌓은 후진국형 행사였다. 시상식서 수상자나 수상작에 논란이 생기는 것은 칸 국제영화제를 비롯해 아카데미 시상식 등 권위 있는 시상식서도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대종상은 정도가 지나쳤다. 

과거에는 유일무이한 영화제로서 권위가 있었고, 특히 국내서 유일하게 언론사가 아닌 영화인들이 직접 꾸리는 시상식이라는 점에서 상징성 있는 시상식으로 평가받기도 했다.

한편 정부서 주도하는 관제 행사였던 탓에 ‘어용 영화제’로도 불렸다. 의식 있는 영화인에게 있어 대종상은 적폐나 다름없었다. 


특히 사회 비판적인 영화가 수상하는 일은 전무했다. 사회 부조리를 다룬다거나, 유력 인물을 비판하는 작품은 아무리 작품성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더라도 수상은 커녕 후보에도 오르지 못했다. 1980년대까지 대종상 수상작은 대부분 반공영화가 차지했다.

유신시대에는 정부 주도로 수상을 통제했을 뿐 아니라 ‘우수 반공 영화상’을 따로 개설해 시상할 정도였다.

더구나 대종상 수상작을 만든 제작사는 막대한 이권이 주어졌다. 해외 영화 수입권을 대종상 최우수 작품상과 우수 작품상 수상작을 내놓은 영화사에 수여했다. 반공영화가 쏟아져 나온 이유도 이 때문이다.

외화 수입권은 당시 기준으로 억 단위로 거래되고 있었으니 대종상의 입맛에 맞는 영화가 나오는 것이 이상할 일도 아니었다. 1984년이 돼서 외화수입 자유화가 이뤄지면서 반공영화 제작이 줄어들었다. 돈 주고 상을 구입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대종상의 비리는 90년대부터 만천하에 드러난다.

1996년 ‘애니깽 사태’는 영화 <애니깽> 연출자인 김호선 감독을 밀어주고자 편집조차 완성되지 않은 영화에 최우수 작품상을 수여한 사건이다. 대종상 최악의 흑역사로 꼽힌다. 이 영화는 영화 제작 단계부터 안기부가 후원한 영화라는 소문이 돌았고, 본선 시상식은 <애니깽>의 싹쓸이로 끝났다. 

상징적인 영화제? ‘적폐’였던 과거
내세울 것 하나 없는 오래된 시상식

인터넷이 발달한 2000년에 들어와서도 대중이 이해하지 못할 행보는 지속됐다. 2011년 <써니>로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배우 심은경이 불참을 선언하자, 그를 후보서 제외시키기도 했으며, 2012년에는 <광해: 왕이 된 남자>에 15개의 상을 몰아주는 기현상도 있었다. 


2015년에는 조근우 집행위원장이 시상식 전 기자회견서 “국민이 함께하는 영화제기 때문에 대리수상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참석이 불가능하면 상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물의를 일으켰고, 대부분의 배우들은 물론 감독과 제작자 및 스태프까지 대거 불참하는 파행으로 이어졌다. 

2017년에는 이준익 감독이 모욕을 느낄 만한 최악의 실수를 저지르는가 하면, 2018년에는 대리수상 향연이 이어졌다. 특히 영화 <남한산성>의 사카모토 류이치가 음악상을 수상할 때 영화와 전혀 무관한 트로트 가수 한사랑이 무대에 오르는 황당한 상황도 연출됐다.

거론된 것은 굵직한 이슈다. 비교적 작은 잘못들까지 일일이 열거하기엔 너무 많다. ‘정말 가지가지 한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기본조차 갖추지 못한 대종상은 한국 영화 100년이었던 지난해에는 열리지도 않았다.
 

▲ 대종상 영화제에 참석했던 가수 박봄 ⓒ문병희 기자

올해만큼은 쇄신하겠다면서 개최 시기도 2월로 옮기는 등 혁신을 다짐했다. 하지만 베일을 벗은 대종상은 가수 박봄의 몸매와 패션만 화제가 되며 마무리되는 모양새다. 

영화제의 주인공이나 다름없었던 <기생충>의 주역들은 대다수 참석하지 않았다. 감동의 수상 소감 대신 하나마나한 내용의 신속한 대리수상이 빈자리를 메웠다.

칸 국제영화제부터 아카데미 시상식까지 전 세계를 뒤집어놓은 <기생충>은 대종상 5관왕에 올랐지만, 봉준호 감독과 정재일 음악 감독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제작사인 바른손 E&A 곽신애 대표와 공동 각본가로 상을 받은 한진원 작가가 수상을 대신했고, 배우 중에서는 여우조연상을 받은 이정은만이 홀로 참석했다. 

2011년부터 MC를 맡았던 신현준 대신 예능인 이휘재와 모델 한혜진이 진행을 맡은 것도 이색적이다. 영화상의 경우 배우들이 진행을 맡는 것이 관례였는데, 영화인이 아닌 다른 업계 종사자가 나온 것도 위상이 떨어진 것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참석자가 적어 무관중으로 진행된 올해 대종상은 더욱 쓸쓸했다. 연이은 대리수상 탓에 기억에 남는 수상 소감은 없었다. 

주요 부문인 여우주연상의 정유미, 남우조연상의 진선규 등은 불참했다. 대종상의 권위가 떨어졌을 뿐 아니라, 시상식에 임박해서 섭외하는 졸속 행정으로 인해 일정 조율이 어려워 불참하는 경우도 많다는 게 관계자들의 말이다.

올해도 대종상 측은 시상식 축하무대에 옥주현이 나온다고 보도자료를 돌렸다가 불참한다는 소식에 재배포하기도 했다. 섭외 요청한 뒤 결정이 나지 않았는데도 발표한 탓이다. 이슈로 남은 건 다소 달라진 외형의 가수 박봄뿐이다. 영화인들 행사에 가수의 자극적인 내용만 회자되는 것이 대종상의 현주소다. 

그나마 배우 이병헌·이정은·정해인·진서연·김소진·박해수 및 장준환 감독 등 이름 있는 영화인들이 꽤 참석했던 점이 유일한 위안으로 보인다. 

엉성


2018년부터 공정성 시비가 불거진 출품제를 폐지하고, 개봉작을 대상으로 심사하는 변화를 꾀했다. 올해도 시상식을 2월로 옮기면서 한 해 개봉한 영화만을 심사하며 영화계를 결산하도록 노력을 기울였지만, 코로나19 사태의 악재를 넘기는 것도, 이미 바닥까지 떨어져버린 위상을 되돌리는 것도 역부족이었다. 오래된 시상식 외에 내세울 것이 없고, 여전히 엉성함이 가득한 대종상이 재기할 수 있을지, 씁쓸함만 감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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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검찰의 대장동 항소 포기 후폭풍이 거세다. 더불어민주당과 검찰의 시각이 크게 엇갈리면서 서로를 향해 날을 겨누는 형국이다. 검찰청은 내년 9월 폐지될 시한부 운명이지만, 더불어민주당은 ‘검찰개혁’을 필두로 이참에 검찰의 뿌리를 뽑겠다는 방침이다. 국민의힘을 등에 업고 버티기에 나선 검찰의 반발 또한 만만치 않아 당분간 양측 간의 힘겨루기가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 7일 서울중앙지검이 대장동 사건에 대한 항소 시한을 넘기면서 논란에 불이 붙었다. 서울중앙지검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을 비롯해 ▲남욱 변호사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 ▲정민용 변호사 ▲정영학 회계사 등 대장동 일당에 대한 1심 판결에 항소하지 않은 것이다. 꺾이거나 되치거나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면서 ‘불이익변경 금지 원칙’에 따라 피고인에게 더 무거운 형을 선고할 수 없게 됐다. 대장동 개발 비리로 발생한 범죄수익의 국고 환수 규모가 축소될 것이란 해석에도 힘이 실린다. 화살은 곧바로 이재명 대통령에게로 향했다. 이 대통령은 대장동 사건에서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혐의 등을 받는데, 이미 대장동 민간업자 재판에서 무죄가 나온 만큼 항소 포기로 인해 추가로 다툴 여지를 차단했다는 게 국민의힘의 설명이다. 여기에 대통령실이 항소 포기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재명 면죄부’라고도 주장했다. 국민의힘 곽규택 대변인은 “대통령실 민정수석실 비서관 4명 중 3명, 법무부 장관 정책보좌관, 법제처장, 국정원 기조실장까지 모두 이 대통령의 변호인 출신”이라며 “이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동기인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대장동 사건 주요 피고인 정진상, 김용, 이화영 등을 특별 면회하면서 ‘검찰은 증거가 없다’는 발언으로 회유를 시도한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보수 성향인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 역시 “국가의 유례없는 사법 정의 포기 사태는 이재명정부의 책임”이라며 “공소 사실의 핵심에 무죄 선고가 난 사건에 검찰이 항소를 포기한 전례를 찾기 어렵다. 대통령의 어깨가 한결 가벼워진 것은 부인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부 출범 이후 대검찰청 차장검사로 승진한 노만석 검찰총장을 겨냥해서는 책임론이 불거졌다. 법조계에 따르면 항소 시한을 앞두고 서울중앙지검은 대장동 일동에 대해 일부 무죄가 선고되는 등 다툼의 여지가 있는 1심 판결에 대해 “관행대로 항소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지만, 이를 전해 들은 대검 수뇌부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에 노 대행은 지난 9일 “대장동 사건은 일선 검찰청의 보고를 받고 통상의 중요 사건의 경우처럼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후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대행인 저의 책임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의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 역시 대장동 일동에 대해 검찰의 구형량보다 높은 형량이 선고된 만큼 항소 포기가 ‘적절한 판단’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항소 포기 지시는 없었다”고 일축했다. 화약고에 불붙인 ‘항소 포기’ 후폭풍 이재명·노만석·정성호 몽땅 도마 위로 정 장관은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 회의에 출석해 ‘(이진수) 법무부 차관에게 대장동 사건 관련으로 어떤 지시를 했느냐’는 국민의힘 배준영 의원의 질문에 “노 검찰총장 직무대행에게 지휘권을 행사할 수도 있으니 항소를 알아서 포기하라는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이어 정 장관은 총 3번 정도 대장동 사건에 관해 이야기했다고 언급하며 “(두 번째인) 11월6일 목요일에는 국회에서 예결위 종합질의가 있어 국회에 왔는데, 예결위 끝나고 대검에서 항소할 필요성이 있다고 한 의견을 들었다”며 “당시 ‘중형이 선고됐는데 신중한 판단을 해야 하지 않는가’란 정도의 이야기만 하고 돌아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음 날인 11월7일에도 마찬가지”라며 “저녁에 예결위가 잠시 휴정돼 검찰에서 항소할 것 같다는 구두 보고를 식사 중에 받았고, 그날 저녁 예결위가 끝난 후 최종적으로 항고하지 않았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부연했다.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대목을 놓고 국민의힘은 “신중한 검토(판단)가 곧 항소 포기인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며 법무부가 사실상 외압을 행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이 8글자에 모든 것이 함축적으로 들어가 있다”며 “법무부 장관이 개인적인 견해임을 전제로 하며 검찰에 지시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대장동 사건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일선 검사를 중심으로 반발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김영석 대검찰청 감찰1과 검사는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를 통해 “검찰 역사상 일부 무죄가 선고되고 엄청난 금액의 추징이 선고되지 않은 사건에서 항소 포기를 한 전례가 있었나”라며 이번 결정으로 대장동 일당 등 민간업자에게 수천억원 상당의 범죄수익이 돌아간 점을 꼬집었다. 대장동 사건의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강백신 대구고검 검사도 “항소 포기로 남욱·정영학을 상대로는 범죄수익을 단 한 푼도 환수할 수 없게 됐고, 김만배를 상대로는 당초 예상 금액의 1/10에 불과한 금액만 추징 선고가 이뤄졌음에도 이를 묵과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기막힌 타이밍 검찰 안팎에서 책임론이 확산하자 결국 노 대행은 항소 포기 논란이 불거진 지 닷새 만에 사의를 표명했다. 그러자 일선 검사들은 ‘검찰총장 권한대행께 추가 설명을 요청드린다’는 제목의 글을 통해 항소 포기 과정에 대한 상세 설명을 요구하는 입장문을 냈다. 해당 입장문은 박재억 수원지검장을 비롯해 ▲박현준 서울북부지검장 ▲박영빈 인천지검장 ▲박현철 광주지검장▲임승철 서울서부지검장 ▲김창진 부산지검장 등 검사장 18명 명의로 작성됐다. 이들은 “서울중앙지검장은 명백히 항소 의견이었지만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항소 포기 지시를 존중해 최종적으로 공판팀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을 상대로 항소 의견을 관철하지 못하고 책임지고 사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면 검찰총장 권한대행이 어제 배포한 입장문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의 항소 의견을 보고받고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뒤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책임 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하담미 수원지검 안양지청장 ▲최행관 부산지검 동부지청장 ▲신동원 대구지검 서부지청장 등 8개 대형 지청을 이끄는 지청장들도 집단 성명을 냈다. 이들은 “이번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지시는 그 결정에 이른 경위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면 검찰이 지켜야 할 가치, 검찰의 존재 이유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라며 “그간 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입장문, 법무부 장관의 설명만으로는 항소를 포기한 구체적 경위가 설명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법적·행정적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정치 검사들의 반란을 분쇄하겠다”며 검찰의 집단 반발을 ‘항명’이라고 규정하고 이에 대한 징계를 예고했다. 현재 일반 공무원은 6단계 징계 처분(파면·해임·강등·정직·감봉·견책)이 가능하지만, 검사는 파면에 해당하는 징계 규정이 없다. 검사에 대한 징계는 검사징계법에 따라 이뤄지는데, 이를 ‘검사 특혜법’이라고 지적하며 폐지하겠다는 설명이다.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는 “정치 검사들의 반란에 철저하게 책임을 묻겠다”며 사실상 검찰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김 원내대표는 “정 법무부 장관께 강력히 요청한다. 항명 검사장 전원을 즉시 보직 해임하고 이들이 의원면직하지 못하게 징계 절차를 바로 개시하라”며 “항명에 가담한 지청장과 일반 검사들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이후 김 원내대표가 검사징계법 폐지 법률안·검찰청법 개정안을 각각 국회에 제출하면서 사실상 검찰 징계는 당론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항소 포기 논란 이후 박재억 수원지검장에 이어 송강 광주고검장이 연달아 사의를 표명했지만 민주당은 “사표를 수리하지 말고 징계 절차를 밟아야 한다”며 퇴로를 막았다. 항명? 투쟁? 법무부 내부에서 집단행동에 나선 일부 검사장을 대상으로 평검사 보직이동을 하거나 국가공무원법 위반 등으로 형사 처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지면서 또 다른 문제가 불거졌다. 검찰 측에서는 “보복용 강등”이라는 거센 반발이 나오지만 법무부는 “검사장은 직급이 아닌 보직”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강등·징계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검사장의 집단행동을 비판하며 징계의 타당성을 주장했지만, 일선 검사들은 항소 포기 판단 경위에 대해 추가 설명을 요청한 것이 어떻게 항명이냐며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그동안 민주당 의원들이 앞다퉈 일선 검사장을 향해 “빨리 나가라”고 윽박지르던 것과 달리 최근 지도부는 숨 고르기에 돌입한 모양새다. 국민의힘이 계속해서 이정부와 대장동을 엮어 공격하는가 하면, 이 대통령의 UAE(아랍에미리트) 순방 성과가 묻힐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톤 조절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김병기 원내대표는 이 대통령이 순방을 떠난 17일부터 이틀간 공개 석상에서 검사 항명, 징계 등 관련 현안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 등 일부 최고위원이 내란전담재판부 도입을 주장했으나 당은 “지도부 차원의 의견은 아니”라며 거리를 뒀다. 정 법무부 장관 역시 지난 18일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검사장 징계 검토 관련 질문에 “어떤 것이 좋은 방법인지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건 국민을 위해 법무부나 검찰이 안정되는 것”이라며 신중한 자세를 택했다. 낮은 볼륨을 유지하는 지도부와 달리 의원 개개인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한 라디오를 통해 정 법무부 장관의 ‘검찰조직 안정’ 발언에 대한 질문에 “아무 일 없었던 듯이 넘어가는 것이 조직의 안정을 위해서 도움이 되는 방법은 아니”라고 답했다. 이어 “정 법무부 장관은 법무부와 검찰 전체를 총괄하는 수장이기 때문에 고민이 있으신 것 같다”면서도 “다만 중요한 것은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현재 민주당이 내세우는 원칙은 항명 검사에 대한 징계로, 그 원칙을 지키는 것이 국민 여론이라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몰아붙이던 지도부 잠시 숨 고르기 이제는 각개전투…검사들도 ‘부글’ 민주당이 다수 석을 차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에서는 ‘집단 항명 검사장 18인’ 전원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항소 포기 결정에 반발하는 검사장 18명을 겨냥해 “헌정 질서의 근본인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과 검찰조직의 지휘 감독체계를 정면으로 무너뜨린 사건”이라고 비판하며 법적 조치에 나선 것이다. 지난 19일 법사위 여당 간사인 김용민 의원은 조국혁신당·무소속 의원과 함께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밝히며 “검찰의 집단 항명은 정치적 집단행동으로 헌정 질서를 훼손하는 중대 범죄”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들의 행동은 단순한 의견 개진이 아니었으며 법이 명백히 금지한 공무의 집단행위, 즉 집단적 항명”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피고발인 18명은 모두 각 검찰청을 대표하는 검사장급 고위 공무원으로서 정치적 중립성이 누구보다 강하게 요구되는 위치에 있다”며 “그런데 이들은 서로 합의해 공동성명을 작성하고 이를 동시에 내부망과 언론에 공개했다. 이는 다수가 결집해 실력으로 주장을 관철하려는 집단적 압력 행위”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압박이 거세지자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뒤 검사들이 반격에 나설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권력이 교체됨에 따라 검사의 태도 역시 손바닥 뒤집듯 바뀌고, 만일 보수 세력에게 정권이 넘어갈 경우 검사의 날이 다시 이 대통령을 향할 것이란 점에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내년 10월 해체 예정인 검찰청이지만 막강한 권력을 지니던 시절의 관행을 버리지 못한다면 이들을 중심으로 정치 검찰의 모습을 한 또 다른 집단이 탄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실은 “검사 인사권은 법무부에 있다”며 이번 사안에 직접 개입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논란의 중심으로부터 최대한 거리를 유지하며 대통령실이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는 점을 부각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 민주당 관계자 역시 “‘대통령실 외압’은 궁지에 몰린 국민의힘의 프레임”이라며 “만약 5년 뒤에 검찰이 반기를 들면 그때는 (이 대통령의 거취를) 국민 여론에 맡기면 된다. 지난 몇 년간 수십번의 압수수색과 조사가 이뤄졌고, 그 결과를 전부 국민이 지켜봤다”고 설명했다. 피바람 과도기 이 모든 과정을 놓고 최요한 정치 평론가는 “과도기”라고 설명했다. 최 평론가는 <일요시사>를 통해 “검찰이 하나의 권력으로 등장해 민주주의를 유린했다. 그 대상을 개혁하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문제고, 이정부는 그걸 시스템으로 헤쳐나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개혁은 혁명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혁명은 싹을 자르면 되지만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라며 “검사 징계, 검찰개혁을 놓고 같은 진보라 하더라도 결이 다르지 않나. 다양한 논의와 의견을 두들겨 맞춰서 하나의 안을 만드는 게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개혁안은 보수도 일정 정도 동의를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시스템 개혁이라는 건 단칼에 두부처럼 잘리는 게 아닐뿐더러 이정부가 끝날 때까지 (개혁을) 시도하는,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일일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