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신혜선 “요즘 연기에 카타르시스 느껴요”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코로나19로 영화계 역시 침체된 상황에 영화 <결백>이 간판을 건다. 2월 개봉 예정이었지만, 더는 미룰 수 없어 내린 결정이다. 관객이 얼마나 들지 모르는 최악의 시기에 용기를 낸 작품. 그 <결백>의 주인공은 신혜선이다. 영화로는 첫 주연을 맡은 그는 놀라울 정도로 깔끔한 연기를 선보인다. 담백하고 절제된 모습으로 극중 관찰자의 역할을 훌륭히 소화한다. 영화를 언론에 공개한 지 하루 뒤인 지난 5일, 두려움과 설렘 사이에 있는 신혜선을 만났다. 
 

▲ 배우 신혜선 ⓒ문병희 기자

배우 신혜선은 고속 성장 중이다. KBS2 <학교 2013>으로 데뷔해 tvN <오 나의 귀신님>으로 얼굴을 알린 후 KBS2 <아이가 다섯>으로 40%가 넘는 시청률을 찍었다. 영화 <검사외전>에서는 짧지만 강렬했던 신스틸러였고, JTBC <비밀의 숲>을 통해 배우로서 발판을 다졌다. 처음으로 주인공으로 나선 KBS2 <단, 하나의 사랑>도 비교적 성공적으로 마쳤다. 

우려와 기대

6∼7년 동안 쉼 없이 달려왔고, 작품을 끝낼 때마다 위상이 높아졌다. 이제 영화 <결백>의 주인공으로 나섰다. 우려와 기대가 공존했던 그의 첫 주연작. 하지만 그는 흠잡을 데 없는 연기력으로 작품을 이끈다.

영화를 언론에 처음으로 공개하는 것은 배우나 감독에게 부담이 큰일이다. 애지중지 만든 영화가 첫 관객이나 다름없는 언론과 영화 종사자들에게 어떤 평가를 받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결백>으로 첫 주연을 맡은 신혜선에게도 그 부담감은 막중했다. 

“영화관서 포스터 볼 때부터 긴장됐어요. 아침에도 얼떨떨했어요. 간담회 했을 때도 너무 떨렸어요. 다들 마스크를 쓰고 계셔서요. 그나마 지금은 가까이서 얼굴을 봐서 한결 낫네요. 관객들이 어떻게 봐주실지 너무 떨려요.”


<결백>은 어린시절 폭력적인 가정서 가출한 ‘정인’(신혜선 분)이 변호사로 성공한 상황서, 뉴스서 경찰에 잡혀 들어가는 모친 ‘화자’(배종옥 분)를 보고 고향 집으로 돌아오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화자의 남편 장례식장서 막걸리를 먹고 여러 명이 목숨을 잃었고, 대천시장 ‘인회’(허준호 분)도 죽다 살아난다.

심지어 화자는 딸을 기억하지도 못하는 치매에 걸렸다. 어린 동생은 자폐증을 앓고 있다. 모친을 병보석으로 풀려나도록 하기 위해 직접 변호를 맡은 정인이 그 과정서 커다란 진실을 알게 되고, 엄청난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혜선이 연기한 정인은 영화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화자이자 관찰자다. 그의 귀가 관객의 귀고, 그가 바라보는 곳이 관객의 시선이다. 치매에 걸린 엄마 화자, 능구렁이같이 비밀이 많은 인회 사이에 숨겨진 진실을 그는 찾아낸다. 담담하게 그리고 현실적으로 인물을 표현한다. 그에게는 쉽지 않은 숙제였다. 

“사실 정인이를 쉽게 이해하지 못했어요. 정인의 삶 자체가 안개가 낀 느낌이랄까요. 전반적으로 모호하고, 분명한 게 많지 않잖아요. 왜 이런 결정과 행동을 하는지 명확하게 정리가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연기할 때 뭔가 자신감이 없고 힘들었어요. 숨 쉬는 것조차 맞는 건지 아닌지 헷갈리더라고요. 현장서 배우들과 호흡하고, 물리적인 도움을 받으면서 하나하나 풀어나갈 수 있었어요.”

힘든 숙제일 때 오히려 고도의 집중력이 발휘되기 때문일까. 신혜선은 힘들었다고 토로했지만, 그의 연기는 정인이라는 명확한 선을 가진 인물을 잘 표현해냈다. 매 순간 침착하고 신중하다. 모친의 결백을 위해 안간힘을 쓰는 과정서 억지스러운 감정은 없다. 캐릭터에 대한 올바른 해석 덕분인지, 신혜선은 엄청난 분량 속에서 자연스러운 흐름을 만든다. 첫 주연으로는 성공에 가깝다. 

“내 어릴 적 야망은 TV 주인공”
“배종옥은 향수, 허준호는 비린내”

“원래 사람이 속이 시끄러우면 겉으로는 조용한 편이잖아요. 그래서 더 냉철하고 이성적으로 보이려고 했어요. 진실을 알고 나서부터는 주체할 수 없지만요. 서울 엘리트가 시골에 가는 거잖아요. 이방인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영화는 정인과 화자, 인회가 주축이다. 특히 치매에 걸린 화자를 연기한 배종옥은 특수분장 때문에 얼굴 근육을 자유자재로 활용하기 힘든 상황서 눈빛만으로 복잡한 감정을 표현한다. 허준호는 그동안 대중매체에 잘 보이지 않았던 충청도 인물의 가이드를 제시한다. 두 배우 사이서 배운 게 많았단다. 배우들의 연기만으로도 돈이 아깝지 않을 작품이다. 

“배종옥 선배님이 정말 큰 도움이 됐어요. 특히 감정신은 복불복이 심해요. 그날도 걱정을 많이 했죠. 촬영 들어가기 전에는 선배님 얼굴도 안 보고 있었어요. 편안한 상황이 방해될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카메라 앞에 딱 서서 선배님 눈을 보는데 왈칵 터지더라고요. 선배님이 진짜 엄마 같은 눈을 갖고 계시니까, 감정이 확 올라왔어요.” 
 

▲ 배우 신혜선

“허준호 선배님께는 제가 기가 죽었어요. 연기하는데 확 눌리더라고요. 맞붙어야 하는데 그러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뒤에서 일부러 째려보고 선배님 보면서 분노하고 그랬어요. 허 선배님은 비린내가 나는 연기를 하시더라고요. 비릿하다는 말 외에는 표현할 수 없어요. 어마어마했어요.”

어릴 적부터 연기하고 싶었고, 예고에 입학해 음악과 연극을 배우다 세종대학교 영화예술학과에 진학했다. 딱히 소속사도 없을 때 <학교 2013>에 출연했고, 그 이후로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7년 사이에만 20편에 해당하는 필모그래피를 쌓았다. 1년에 2∼3편. 학생으로 치면 성실한 모범생이다. 

“모범생이요? 학교 다닐 때 모범생이 아니어서 그런지, 정말 좋네요. 누구나 그렇겠지만 저 역시도 연기할 때 최선을 다하려고 해요. 살면서 어떤 일에 몰두한 경험이 없었거든요. 영혼과 몸을 다 바쳐야 하는 직업인데, 그러다 보면 카타르시스도 있어요. 제 어릴 적 야망이 주인공이었어요. TV에 나오는 주인공요. 서른이 돼서 야망을 이뤘어요. 하하.”

사랑과 암투

영화 주인공으로 120분의 시간을 이끈 신혜선이 이번엔 tvN <철인왕후>로 나선다. 그가 타이틀롤이다. 조선의 25대왕 철종의 왕비인 철인왕후를 소재로 한 타임슬립 드라마다. 그동안 스릴러나 정통 멜로 등 비교적 무거운 장르를 소화한 그가 이번에 향한 곳은 코미디다. “아직 이 드라마는 밝혀지면 안 돼요. 사랑과 암투, 음모가 있는 작품입니다. 이번에도 배종옥 선배님과 함께 찍어요. 영화는 너무 무거워서 선배님이랑 친해지지 못했는데, 드라마는 가벼운 편이라 기대가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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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