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1년, 미국의 권위 있는 잡지 <포춘>지에 한 장의 사진이 실렸다. 1894년에 열린 1회 미국 아마추어 골프대회였다. 1894년 에버레트 헨리라는 화가가 그린 것으로, 1931년 E.커리어라는 일러스트에 의해 판화로 색상이 칠해진 후 잡지에 실리게 됐다. 37년이 지난 후였다.
불순한 의도
하지만 이 대회는 1895년에 열린 제1회 US 프로 오픈보다 1년 앞서 열린, ‘미국 최초의 공식 골프대회’라는 역사적인 가치가 있음에도 공식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었다. 왜 그럴까. 37년이라는 뒤늦은 시점에 갑자기 그림이 세상에 나온 것은 무슨 의도였을까. 그림 속으로 한번 들어가보자.
왼쪽에 파이프를 물고 있는 사람은 ‘미국 골프의 아버지’로 불리는 존 리드이다. 그의 표정은 심각하게만 보인다. 가운데 클럽을 들고 있는 선수는 이 대회 우승자인 스토다르트이다. 다시 말해 미국 최초의 골프대회에서 우승한 골퍼라는 뜻이다. 티샷을 하는 선수는 2위를 기록한 찰스 맥도널드이다.
상식적으로는 우승자가 주인공이 돼야 할 텐데 우승자는 뒤에서 엑스트라 역할을 하고 있고, 오히려 준우승자의 티샷이 그림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왜 그랬을까.
화가는 그림을 통해 무언가에 항변하려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더욱 믿기지 않는 사실은 그 다음에 벌어진다. 미국골프 역사에서 이날 대회의 2위였던 찰스가 제1회 US아마추어 대회의 우승자로 기록돼 있다는 것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두 번 치른 첫 US아마추어 오픈
공식 인정받지 못한 진짜 1회 대회
1887년 존 리드가 미국으로 처음 골프를 들여 온 지 7년이 지난 1894년, 아직까지 골프를 이끌 협회는 구성되지 않은 시기였다. 그해 9월 로드아일랜드주의 뉴포트골프장과 10월 뉴욕주의 세인트 앤드루스골프장에서 각각 20명과 27명이 참가한 공식적인 아마추어대회가 거의 동시에 개최된다.
이 중 10월에 열린 세인트 앤드루스골프장에 제1회 아마추어대회라는 명칭이 붙는다. 그림에서 티샷의 주인공인 찰스 맥도널드 역시 두 대회 모두 출전하게 된다. 스코틀랜드의 세인트앤드루스 대학에서 유학을 한 골프 실력자 찰스가 걸음마 수준의 미국에서 당연히 우승을 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두 대회 모두 2위에 그치고 말았다.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미국 골프의 발전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던 그는 자존심이 구겨질 대로 구겨졌다. 이때부터 골프계를 향한 찰스의 갑질이 시작된다. 그는 두 대회 모두클레임을 걸었다.
이유인즉, 2명의 우승자 모두 대회가 열린 골프장 클럽의 프로 출신이었다며 초청 경기에 불과한 두 대회를 미국의 공식적인 대회로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의 갑질은 한 걸음 더 나갔다. 보이콧 이후 두 달 만인 12월22일 자신의 시카고 클럽(시카고)·세인트 앤드루스클럽(뉴욕)·더 컨트리클럽(메사추세츠)·뉴포트 클럽(로드 아일랜드)·쉬네콕 힐스클럽(롱 아일랜드 뉴욕) 등 영향력 있는 5개 클럽의 맹주들을 소집해 미국골프협회인 USGA를 창설하고, 우격다짐으로 초대 회장직을 고집했다.
갑질 때문에 벌어진 사달
2위가 우승자로 기록된 촌극
하지만 참석자들의 눈총으로 마지못해 부회장에 취임한다.
이듬해인 1895년 10월 그는 지난해 대회가 열렸던 바로 그 굴욕적인 뉴포트 골프장에서 ‘제1회 미국 아마추어 대회’라는 공식 이름을 건 대회를 다시 개최하면서 선수로 출전을 한다.
그의 갑질이 효과를 본 탓인지 찰스는 결국 상대 선수에게 한 타차로 우승을 차지한다. 우승자 찰스는 기어코 이 대회를 미국 최초의 US아마추어 대회라고 명한 뒤 자신의 이름을 미국 최초의 아마추어 대회 우승자라고 기록하는 데 성공했다.
이에 그의 갑질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본 화가 에버레트가 1894년에 열린 대회를 그리면서 그림 아래 설명서에 찰스가 2위라고 뚜렷이 명시를 한 것이다. 그림 왼편에는 미국 골프계에서 명망 있는 존 리드를 마치 감독관처럼 그렸다.
이 그림을 통해 화가는 ‘왜 미국 골프의 전설적인 인물이 지켜보는 1894년 대회를 원년으로 인정하지 않고 찰스는 멋대로 갑질을 했냐’라는 다분히 의도적이고 암시적인 메시지를 던진 것은 아니었을까.
금수저 가문의 찰스 맥도널드가 갑질을 마음대로 할 수 있었던 배경은 과연 무엇일까. 스코틀랜드 출신이었던 할아버지 덕분에 그는 유서 깊은 세인트 앤드루스대학에서 유학을 한다.
올드코스가 있는 골프의 메카에서 유학 중 골프에 입문한 그는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한다. 영국 골프의 아버지라 불리는 올드 톰 모리스와 조우한 것이다. 찰스는 본격적으로 모리스에게 골프 사사를 받는 것은 물론이고, 영국의 천재 골퍼였던 톰의 아들 영 모리스와 함께 친구처럼 라운딩을 하는 행운까지 누릴 수 있었다.
화려했던 유학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와 주식 투자로 갑부가 된 그는 곧 초창기 미국 골프의 선구자 중 한 사람으로 미국 골프 개척에 앞장섰다. 실제로 그는 일리노이주 시카고 교외에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현존하는 시카고골프클럽이라는 미국 최초의 18홀 골프장을 건설했다.
골프 선수로도 활약한 그는 골프장, USGA(미국골프협회) 창설 등 미국 골프 산업의 여러 방면에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미국 골프계의 대부 위치를 굳건히 한다.
제 마음대로~
독선적이고 고집스러우면서 타협을 하지 않는 성격으로 인해 그는 골프계에서 종종 마찰을 일으켰다. 하지만 그의 여러 갑질에도 불구하고 미국 골프계는 한 평생 골프에 종사하면서 수십 군데의 골프장을 건설한 그의 공을 인정해 ‘골프장 건설의 아버지’라는 칭호를 붙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