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가 삼킨 대형 이슈들

정치부터 문화까지 ‘싹 다 묻혔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슈는 이슈로 덮는다.’ 대형 이슈가 생기면 다른 이슈는 관심서 밀려나게 마련이다. 현재 한국 사회의 최대 화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다. 중국발 바이러스가 정치·사회·경제·문화·외교 할 것 없이 모든 분야의 이슈들을 잠식하고 있다. 그에 가려진 이슈를 <일요시사>가 짚어봤다.
 

▲ 최근 국내 이슈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에 쏠려 있는 가운데 선거개입, 국제 관계 등 대형 이슈들마저 빨아들여버린 형국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신종 코로나)으로 전 세계가 들썩이고 있다. 국내서도 지난달 20일 중국 우한서 입국한 35세 중국 여성이 확진 판정을 받아 첫 번째 확진환자가 발생했다. 그로부터 불과 23주 만에 한국 사회는 신종 코로나 이슈로 뒤덮였다. 식을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전염병 발발
시민들 촉각

2019년의 마지막날, 중국 보건당국은 1100만명이 거주하는 우한서 원인 불명의 폐렴 환자가 27명 발생했다고 세계보건기구(WHO)에 보고했다. 열흘 뒤인 지난달 9일 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는 폐렴의 원인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라고 발표했다. 같은 날 중국서 첫 사망자가 나왔다.

이후 20여일 만인 지난달 31일 중국 전역서 신종 코로나 확진환자가 1만명을 넘어섰다. 국내서도 확진환자가 늘어나면서 시민들은 전염병 공포를 호소하고 있다. 영화관, 식당 등 유동인구가 많던 장소에 사람들의 발길이 줄어들었으며 마스크와 손 세정제는 품귀현상마저 보이고 있다.

문제는 신종 코로나의 여파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여부다. 지난 1일과 2일 양일에 걸쳐 서울서 자체적으로 실시한 신종 코로나 시민 인식 설문조사서 응답자의 77%매우 불안하다고 답했다. 이들 중 68.4%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는 불확실성을 신종 코로나의 최대 불안 요인으로 꼽았다.


홍콩대 전염병 역학통제센터 게이브리얼 렁 교수는 신종 코로나가 4월 하순과 5월 초에 절정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위샤오화 독일 괴팅겐대 교수는 전염병 확산 모델을 활용해 분석한 결과 신종 코로나가 3월 초에 절정에 이르렀다가 5월 초에 소멸할 것이라는 관측을 내놨다. 신종 코로나 사태가 최소 한두 달가량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두 달 남은 총선 관심 없어
포털 실시간 검색어 도배

그러면서 시민들의 관심사가 신종 코로나에 집중되고 있다. 확진환자의 전염 경로와 동선을 비롯해 정부와 국제사회의 대응, 예방 물품, 예방법에 관심을 쏟고 있는 것. 실제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실시간 검색어와 기사에서 많이 언급한 화제의 키워드를 정리해 보여주는 뉴스토픽은 지난 5일 기준 신종 코로나 관련 내용으로 도배됐다.

4·15총선= 415일 치러지는 21대 국회의원 선거가 두 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 사태로 총선에 대한 관심도가 뚝 떨어졌다. 정치인들의 출마·불출마 선언, 격전지 출마 예상후보, 정당 간의 이합집산, 공천룰 등으로 후끈 달아올랐어야 할 선거 분위기가 좀처럼 뜨지 않고 있다.

정치권에선 선거 일정에 맞춰 진행하려던 행사들도 미루고 있다. 대신 신종 코로나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선거보다는 신종 코로나 사태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특히 예비후보들은 공약과 정책 이슈가 잠식돼 멘붕상태다. 시민들에게 선거운동 차원서 인사를 건네는 것도 조심스러운 형편이다.
 

▲ 윤석열 검찰총장

검찰·법무부 갈등= 지난해 8월 조국 전 법무부장관 논란으로 시작된 검찰 정국도 신종 코로나 사태 여파로 한풀 꺾인 모양새다. 지난달 20일 신종 코로나 첫 확진환자가 발생하기 전까진 검찰과 법무부의 갈등이 계속되던 차였다. 조 전 장관의 후임으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취임하면서 갈등 수위는 최고조로 치솟았다.

검찰 고위간부 인사 기습 단행(18), ·경 수사권 조정 법안 국회 본회의 통과(113), 검찰 중간간부 인사(123), 최강욱 청와대 공직비서관 기소(123),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관련자 13명 기소(129) 등 검찰과 법무부는 건별로 입장을 내놓고 정면으로 대립했다.


여야 모두
코로나 정국

지난 5일에는 추 장관이 청와대 하명 수사·선거개입 공소장을 국회에 제출하지 않기로 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야권에선 법무부의 결정에 일제히 반발했고, 참여연대서도 공소장 비공개를 두고 비판했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 사태와 맞물려 검찰과 법무부의 갈등은 당분간 소강상태에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이국종 vs 아주대= 이국종 교수와 아주대병원의 갈등은 지난달 13일 유희석 아주대의료원장이 과거 이 교수에게 때려치워 이 XX등 욕설을 한 내용이 담긴 녹음파일이 보도되면서 불거졌다. 이 교수와 아주대병원은 이미 수년 전부터 병실 배정과 인력 부족 등의 문제로 갈등을 빚어왔다. 여기에 지난해부터는 새로 도입한 닥터헬기 운용 문제가 더해졌다.

이 교수는 지난달 29일 외상센터장 사임원을 냈고 아주대병원은 지난 4일 이를 수리했다. 지난 5일 이 교수는 병원으로부터 돈(예산)을 따오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그게 너무 힘들었고 이젠 지쳤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병원은 저만 없으면 잘될 것이라는 입장인 것 같은데 나도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고 싶은지 잘 모르겠다고 허탈해했다.

 

▲ 이국종 아주대 교수

이 교수와 아주대병원의 갈등은 권역외상센터의 고질적인 문제점을 드러냈다. 의료계에선 권역외상센터의 적자 문제가 이번 사태의 원인이라고 보고 있다. 중증외상환자의 응급수술과 치료를 할 수 있는 권역외상센터는 전국에 17곳이 운영 중이다. 수익성을 무시할 수 없는 민간병원 입장에서는 권역외상센터 운영이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정부 부처
대책 마련

싹 묻힌외교 현안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달 30일본 수출규제 및 중동 관련 관계장관회의가 취소됐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장관이 주재하려던 회의였다. 이날 회의에서는 미국과 이란의 갈등에 따른 국내 경제의 리스크 점검,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에 대응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대책 등이 논의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 사태에 정부의 모든 행정력이 집중됐다. 공항과 항만의 방역 강화, 신종 코로나 대응을 위한 예산 운용, 우한 교민 수송을 위한 중국과의 외교적 협의, ··고등학교 개교 일정 연기 등 정부의 논의 대상은 신종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한 주제로 도배됐다.

미국과 이란의 갈등이 국내에 미치는 영향은 단순히 경제 상황에 그치지 않는다. 정부가 지난달 21일 독자 파병을 결정하면서 청해부대 31진 왕건함이 현재 호르무즈 해협에 나가 있다. 미국과 이란의 대립이 심화될 때마다 한국과 이란 사이의 군사·외교적 갈등 수위 또한 높아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남북·북미 문제도 뒷전이 됐다. 현재 북한과 미국의 관계는 고착상태다. 지난 4(현지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국정연설서도 북한은 등장하지 않았다. 국정연설은 대통령이 한 해의 분야별 국정운영 청사진을 밝히는 자리로 트럼프 대통령이 국정연설서 북한을 언급하지 않은 건 3년 만에 처음이다.

반면 문 대통령은 남북 협력과 북미 대화에 대해 꾸준히 언급하고 있는 상황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4일 훈센 캄보디아 총리를 면담한 자리서 지금은 남북 협력과 북미 대화가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라면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성공을 위해 캄보디아와 아세안 각국의 적극적 지지와 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부 각종 외교 현안 뒷전으로
북한, 일본, 이란…수면 아래로


북한도 신종 코로나 사태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기관지를 통해 주변국의 신종 코로나 확산 상황을 빠르게 전하며 전염병 확산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 있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확대되고 있는 신형 코로나 비루스(바이러스) 감염증 피해, 그에 대처하기 위한 노력이라는 특집 기사로 관련 내용을 보도했다.

올해 상반기로 예정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 일정도 오리무중이다. 청와대는 시 주석의 방한이 6월로 잠정 연기됐다는 <조선일보>의 보도에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한 상태다. 한정우 청와대 부대변인은 상반기에 확정적이라고 지난 연말 공식적으로 밝혔고, 시기는 밝힌 바 없다. 한중 간 협의 중인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전수 발열검사를 실시하고 있는 인천국제공항

현재 중국은 말 그대로 국가 비상사태다. 정부는 지난 40시를 기해 중국 후베이성 여권 소지자와 지난 14일간 후베이성서 체류한 바 있는 모든 외국인의 입국을 금지하고, 중국서 입국하는 모든 내외국인에 대해서도 국내에 연락 가능한 연락처가 없을 시 입국을 금지하는 특별 입국절차를 시행하고 있다.

시 주석은 지난달 28일 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예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과 만난 자리서 신종 코로나와의 전쟁서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고 말하는 등 자신이 직접 상황을 지휘하겠다고 나선 상태다. 하지만 확진자와 사망자 수가 급격하게 증가하면서 시 주석의 리더십에도 균열이 감지되고 있다.

“최소 1∼2달
이어질 것”

문화계 초토화= 영화·연극·공연 등 문화계는 신종 코로나 사태에 아예 잠식됐다. 영화관 1일 관객 수는 절반 이하로 뚝 떨어졌고 일부 국내영화는 개봉 일정을 연기했다. 쇼케이스는 줄줄이 취소, 게임 대회도 무관중으로 치러지는 등 신종 코로나 여파로 큰 타격을 입고 있는 모양새다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더 프린세스>는 개봉일을 잠정 연기하는 초강수를 택했다. 심지어 오는 25일로 예정된 대종상 영화제도 연기됐다. 영화 개봉 시기와는 별개로 최근 신종 코로나 사태로 극장가를 찾는 사람의 수 자체가 줄고 있어 피해 상황을 가늠할 수 없는 상황이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