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한폐렴 공포’로 직격탄 맞은 재계

가뜩이나 죽을 맛인데 ‘설상가상’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국내 여러 업종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의 직격탄을 맞게 됐다. 메르스와 사스의 공포를 겪었던 터라 ‘초긴장’ 상태다. 중국 관광객들이 주고객인 면세점과 호텔, 여행업계, 극장 공연업계에서는 소독 강화와 직원 마스크 착용 의무화 등을 통해 피해 방지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 본 사진은 특정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유커(遊客·중국인 관광객)의 귀환으로 모처럼 훈풍이 부는 듯했던 면세점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에 직격탄을 맞을 위기다. 면세점과 호텔은 유커 방문이 집중되는 시설로, 유동인구가 많아 만약 방문객 중 보균자가 있을 경우 연쇄 감염의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유커 귀환에 환호
다시 초상집으로

국내 면세점의 주요 고객은 중국인이다. 면세점 업계에 따르면 고객 중 중국인 비중은 약 80%에 달한다. 대부분 보따리상으로 불리는 따이공(代工)들이다.

지난 설 연휴는 면세점서 따이공을 찾기 힘들었다. 대부분 중국 춘절을 맞아 한국을 떠나 중국서 연휴를 보냈기 때문이다. 중국 춘절 연휴는 지난 2일까지였다. 따이공들은 연휴가 끝난 뒤에야 다시 한국을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지난 수년간 중국 당국이 한반도 내 사드 배치를 이유로 한한령(限韓令) 기조를 유지하면서 발길이 끊어졌던 따이공들이 최근 다시 한국을 찾는 분위기였다.


면세점 업계는 ‘유커의 귀환’을 반겼다. 각 면세점들은 춘절을 맞아 중국으로 돌아가는 따이공을 대상으로 각종 할인과 사은품 증정 등 행사를 펼치며 연휴가 끝난 뒤 다시 발걸음을 해달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하지만 우한 폐렴 사태로 곧 돌아올 유커들을 환영하지도 내치지도 못하는 상황이 됐다.

이에 각 면세점들은 대표이사 등을 위원장으로 한 비상대책위원회를 가동하고 대응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롯데면세점은 전 직원 일일 발열 체크와 매장 및 인도장의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고 방역 활동을 강화했다. 임산부와 만성질환 직원들은 휴직도 실시할 예정이다.

신라면세점도 비상대응 태스크포스를 가동했다. 영업장 입구에 오가는 사람들의 발열 여부를 체크하기 위한 열화상 카메라를 설치하고, 직원들은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했다. 소독도 매일 실시하며 고객에게는 마스크를 나줘주고 있다.

사스·메르스에 이어 실적에 직격탄 우려
면세점 대표들 직접 비상대책위원회 꾸려

현대백화점 면세점도 비대위를 꾸리고 전 직원 마스크 착용과 발열 체크를 의무화하고 영업장의 수시 소독에 나섰고, 신세계 면세점도 모든 직원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고객에게도 마스크를 나눠줬다.

한 면세점 관계자는 “중국 춘절 연휴가 끝난 뒤가 진짜 문제”라며 “질병관리본부 등 정부의 대응에 따라 유기적인 대응에 나설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한 폐렴은 과거 다른 감염설 질병과 달리 잠복기에도 타인에게 전염이 가능하다고 해서 걱정”이라며 “중국 상황이 진정될 때까지는 유커들이 입국을 못해도 문제고 입국을 해서 영업장을 찾아도 문제”라고 덧붙였다.


중국 여행을 계획했던 국내 여행객 취소가 잇따르면서 국내 여행업계에도 비상이 걸렸다. 게다가 중국 정부가 지난달 27일 자국민의 단체 해외관광을 전면 중단하면서 방한 관광 시장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한국관광공사가 유치했던 중국인 인센티브 관광객 2500여명이 지난달 28일 내한을 전격 취소했다. 2월 방한 예정이었던 이들이 여행 일정을 취소하면서 중국 단체 관광객 발걸음이 2016년 ‘금한령’ 때처럼 뚝 끊기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확산 중이다. 

2018년 2월 방한했던 중국 관광객은 45만3000여명이었다. 개별 관광객 숫자가 압도적인 상황(2018년 기준 92.4%)을 감안하더라도 감소가 확실한 것으로 판단되는 올 2월 중국 단체관광객 숫자는 3만여명에 달한다.

국내 여행업계에도 직격탄이 떨어졌다. 국내 최대 여행사인 하나투어는 현재 중국 상황을 2012년 메르스 때보다 심각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하나투어 관계자는 “중국 여행을 계획했다가 취소하는 고객이 급격히 늘고 있는 상황이라 1월은 물론 2월 예약자 7000여명 전원이 취소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현재 주요 도시 관광지까지 폐쇄한 중국의 상황은 메르스 때보다 심각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중국인 투숙 여부
고객 문의 폭주

하나투어는 1∼2월 예약 취소 고객에 대해 취소수수료를 받지 않기로 했다.

모두투어 역시 설 연휴 전날까지 중국여행 취소자가 4000명을 넘어선 것으로 조사됐다. 이 회사의 연평균 2월 중국 여행 상품 예약자가 1만 5000명∼2만여명인 점을 감안하면 예약 취소자 숫자는 앞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늘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 이외의 타지역도 제한적이긴 하지만 취소자가 생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모두투어 관계자는 “설 연휴 직후 중국 주요 관광지가 통제 또는 폐쇄돼 진행 예정이던 중국 본토 관광상품의 경우 일괄 취소를 결정했다”며 “2월 이후 행사도 비슷한 수순을 밟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모두투어 역시 2월 말까지 홍콩, 마카오 등을 포함한 중국 여행 상품에 대해 취소수수료를 받지 않기로 결정했다.

한국으로 들어오는 중국 단체 관광객의 경우 중국계 여행사를 이용하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다. 따라서 국내 업계의 직접적인 피해는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중국 관광객 숫자의 90%가 넘는 개별 관광객이다. 
 


아직 정확한 입국 통계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현재와 같은 추세가 이어질 경우 개별 여행객들의 여행 심리도 움츠러들 것이 뻔해 전체 중국 관광객 숫자 역시 역대 최저치까지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비상 상황은 극장과 공연업계도 매한가지다. 영화, 연극, 무용, 음악회 등이 펼쳐지는 극장과 공연장은 밀폐된 공간서 적게는 수십명, 많게는 수천명이 넘는 인파가 모여 장시간 작품을 감상하기 때문에 전염에 대한 우려도 클 수밖에 없다.

중국 관련 업체
하나같이 불똥 

지난달 28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정규 9집 발매를 앞둔 슈퍼주니어는 경기도 고양시 일산 빛마루 방송지원센터서 이날 오후 3시와 7시30분에 회당 팬 400여명 앞에서 컴백쇼를 녹화할 예정이었으나, 소속사는 이를 비공개로 전환했다.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는 전날 슈퍼주니어 팬 페이지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관련한 상황으로 ‘슈퍼주니어 더 스테이지’의 모든 녹화는 비공개로 진행된다”고 공지했다. 중국서 예정된 가수들의 행사 일정 조정도 검토되는 분위기다. 

보이그룹 SF9은 오는 3월14일 중국 칭다오에서 팬 사인회가 예정됐다가 팬들이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을 우려해 이를 취소하거나 연기하라고 SNS를 통해 목소리를 높였다. 


세종문화회관, LG아트센터, 경기도문화의전당 등 공연 관련 기관들은 오전 대책 회의를 진행했다. 유인택 예술의전당 사장은 “손 세정제를 배치하고 마스크를 준비하는 등 기본적인 조치는 준비하고 있다”며 “메르스 때 있었던 매뉴얼을 참고해 대책을 마련 중이며 다른 공연장과의 공조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연극, 뮤지컬 업계도 촉각을 곤두세우기는 마찬가지.

신시컴퍼니 관계자는 “공연을 안 할 수도 없고 정말 걱정”이라며 “메르스 사태 때는 손 소독제를 곳곳에 비치하고 배우들 건강에 특별히 유의했는데 이번에도 비슷한 분위기가 재연될 것 같다”고 말했다.

CJ ENM 관계자도 “메르스 때는 사람이 모이는 곳을 피하라고 하니까 관객이 많이 줄었다”며 “아직 티켓 예매나 판매에는 영향이 나타나지 않지만 긴장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인기 공연 줄줄이 취소…공연업계 울상
2∼3월 중국 여행예약 대부분 취소되기도

CGV, 롯데시네마 등 대형 극장들도 직원들에게 감염 예방을 위해 안전 예방 수칙을 준수하도록 독려 중이다.

롯데시네마는 직원들에게 근무 전에 체온을 반드시 체크하도록 했으며, 손 소독제와 마스크 사용을 독려했다. 극장 내에도 손 소독제를 비치해 관객들이 사용하도록 했다. 극장과 공연업계서 겨울방학 성수기에 이 같은 사태가 발생해 관객 감소를 우려하고 있는 가운데 인터넷과 SNS서도 극장이나 공연장, 쇼핑몰 등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은 가지 말자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극장 관계자는 “설 연휴가 끝났지만, 겨울방학이어서 가족 단위 관객의 극장 나들이가 많은 시기인데 ‘우한 폐렴’ 여파로 관객 발길이 뜸할 것 같다”고 우려했다. 2015년 메르스 공포가 정점을 찍은 6∼7월 두 달간 연극, 뮤지컬 티켓 판매액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27%나 급감한 적이 있다.

호텔도 비상이다. 중국 제일재경망에 따르면 지난해 12월30일부터 지난달 22일까지 약 3주 간 우한서 출발한 탑승객 중 6430명이 한국을 찾았다. 지금까지 국내서 발생한 확진자 모두 이 시기에 한국을 찾았으며 일부 확진자는 호텔에 숙박했다.

호텔업계에 따르면 각 호텔에는 중국인 투숙 여부를 물어보는 고객의 문의가 이어지는 상황이다. 내국인 예약은 10% 넘게 취소됐다. 이 같은 우려에 각 호텔업계도 대응에 들어갔다. 소공동 롯데호텔서울은 열화상 카메라를 설치해 오가는 사람들의 발열 여부를 체크하고 전 직원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했다. 서울신라호텔도 열화상 카메라 설치와 직원들의 마스크 착용, 프런트 데스크와 화장실 등에 손 소독제를 비치했다.

언제까지∼
이제 시작?

각 호텔들은 발열 등의 이유로 미리 예약을 취소하지 못하고 노쇼를 하더라도 수수료 없이 취소해주기로 했다. 한 호텔 관계자는 “최근 중국인 관광객이 증가하는 추세라 반가웠는데 뜻밖의 악재를 만났다”며 “내국인 고객 문의와 항의가 잇따르고 있지만 오는 사람을 강제로 막을 수는 없어 난처한 때가 많다”고 전했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대선 전’ 친윤 대숙청 시나리오

‘대선 전’ 친윤 대숙청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후보는 당원들의 도움으로 대선후보 지위를 유지했다. 확실한 명분을 쥔 김 후보는 설령 대선서 패배하더라도 당권 장악을 위한 투쟁을 이어가야 한다. 김 후보가 당내 주도권 다툼서 이기는 방법은 무엇일까?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후보는 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원내대표 등 친윤(친 윤석열)계의 대선후보 교체 시도를 당원들의 반대로 진압한 후에야 선대위를 구성했다. 김 후보는 지난 11일 대선후보로 등록했고, 대선후보의 당무우선권을 발동해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을 같은 날 진행된 의원총회서 새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임명했다. 갑툭튀 위원장 권 전 비대위원장이 후보 교체 시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했기 때문이었다. 일각에선 권 원내대표의 사퇴도 강하게 요구했지만, 김 후보는 권 원내대표를 유임했다. 이날 진행된 의원총회엔 의원 107명 중 50명만 참석했다. 후보 교체 시도에 가담한 친윤계 의원들은 대거 불참했다. 이어 지난 12일엔 국민의힘 비대위 회의가 개최됐다. 국민의힘은 이날 회의서 김용태·주호영·권성동·나경원·안철수·황우여·양향자 등 7인 공동 선대위원장 체제를 발표했다. 김 후보는 후보 교체 시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국민의힘 이양수 의원을 대신해 박대출 의원을 사무총장으로 임명했다. 박 의원은 선대위서도 총괄지원본부장을 맡았다. 이틀 동안 확정·발표된 인선 중 가장 주목받은 것은 김 비대위원장 임명이었다. 30대 중반 막내 초선 의원을 당 대표격 직책에 임명했기 때문이었다. 김 비대위원장은 비대위원으로서 후보 교체 시도에 강하게 반대했다. 김 비대위원장은 지난 2021년 전당대회서 청년 최고위원으로 당선돼 이준석 당시 대표가 이끌던 지도부에 참가했다. 이어 황우여 전 비상대책위원장 시절에도 비대위원으로 발탁됐던 경험이 있다. 이 전 대표 시절엔 소장파 ‘천아용인’ 중 1명으로 거론됐던 적이 있고, 이 전 대표가 탈당해 개혁신당을 창당한 이후에도 돈독한 친분을 이어가고 있다. 일각에선 김 비대위원장 발탁을 놓고 “개혁신당 이준석 대선후보와의 단일화를 대비한 것”이라고 평가한다. 다만 김 비대위원장에 대해선 “소장파로서의 행보가 약하다”는 평가도 있다. 그래서 김 비대위원장이 적극적으로 권한을 행사할 수 있을지 회의적으로 보는 시선도 있다.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은 지난 12일 MBC 라디오 <권순표의 뉴스하이킥>서 “친윤계가 김 비대위원장을 화살받이·방패막이로 앞세워서 상황을 돌파하려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이어 김 비대위원장의 역량을 인정하는 기준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와의 결별 및 출당을 제시했다. 함께 출연한 장윤선 정치 전문 기자는 “제일 고통스러운 사람은 김 비대위원장 자신일 것이란 얘기가 있다”며 “대선서 크게 패배하면, 그 책임을 김 후보가 아닌 김 비대위원장이 지는 방식으로 정리하기 위해 허수아비로 세워놓은 것 아니냐는 얘기도 있다”고 거들었다. 친윤계는 의원총회 불참으로써 김 비대위원장 지명에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김 후보는 당원투표로써 친윤계의 후보 교체 시도를 진압했기 때문에 명분을 확보했다. 국민의힘의 주도권을 휘어잡을 기회를 얻었다고 볼 수도 있다. 30대 초선 비대위원장 총알받이? 방패막이? 김 후보가 대선후보 지위를 굳힌 후 먼저 교체한 사람이 이 전 사무총장이란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전 사무총장은 당 선거관리위원장 자격으로 김 후보 선출 취소 공고와 새 후보 등록 신청 공고를 발표했다. 후보 등록 신청 공고에 제시된 등록 신청 기간은 지난 10일 오전 3시부터 4시까지였고, 등록을 위해 준비해야 할 서류는 총 32종이었다. 등록 장소는 국회 본관 228호 비대위 회의실이었다. 이 황당한 상황은 한 편의 코미디로 남았다. 이날 오전 3시부터 4시 사이엔 공고를 본 후 국회를 방문해 “국민의힘 대선후보로 등록하러 왔다”면서 국회 경비대에 “문을 열어달라”고 요구하는 조롱성 방송을 진행한 유튜버도 있었다. 이 전 사무총장은 소동이 끝난 후 의원 단톡방에 김 후보를 비판하고 권 전 비대위원장을 두둔하는 취지로 어느 정치평론가의 칼럼을 게재했다. 이어 친한(친 한동훈)계인 국민의힘 정성국 의원으로부터 “총장님 입맛에 맞는 정치평론가의 글을 단톡방서 읽을 이유는 없다”고 비판받았다. 김 후보로선 사태가 끝난 이후에도 후보 교체 시도를 정당화하는 이 전 총장을 유임시킬 이유가 없었다. 선거를 목전에 두고 있으므로 권 원내대표까지 교체해 파문을 확대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김 후보가 당의 주도권을 확실히 휘어잡을 기회를 잡은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실질적으로 선대위를 움직일 당 사무총장은 빨리 교체해야 했다. 김 후보는 권 원내대표를 유임시켜 ‘휴전’ 메시지를 보낸 후 친윤계와의 암묵적 합의를 거쳐 김 비대위원장을 임명했다. 이어 실권을 행사하는 사무총장을 신속하게 확보했다. 국민의힘 대선후보 교체 시도는 1991년 8월 발생한 소련 공산당 보수파의 쿠데타를 연상시킨다. 보수파는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대통령을 몰아내기 위해 쿠데타를 일으켰다. 이 쿠데타는 KGB 알파그룹과 전차부대 등이 동원돼 신속하게 진행된 군사작전이었다. 쿠데타는 실패했고, 소련은 해체됐다. 이처럼 정치적 기획을 군사작전처럼 몰아쳐 진행하는 성향이 있는 사람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다. 윤 전 대통령은 이런 식으로 당 대표 2명과 비대위원장 1명을 쫓아낸 적이 있다. 더불어민주당 황정아 대변인은 지난 10일 “윤석열 지령, 국민의힘 연출로 시작된 대선 쿠데타”라고 주장했다. “행보가 약하다” 윤 전 대통령도 본의 아니게 자수 아닌 자수를 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 11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김 후보 지지를 호소하는 글을 올렸다. 그런데 이 게시글엔 “김 후보를 지지하셨던 분들도 이 과정을 겸허히 품고 서로의 손을 맞잡아야 한다”는 문장이 있었다. 김 후보의 패배를 기정사실로 한 게시글을 수정 없이 그대로 올렸다. 김 후보와 친윤계의 대결이 ‘휴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암시하는 게시글이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 등 친한계는 지도부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김 후보를 거들었다. 이 중 친한계 좌장 6선 조경태 의원은 김 후보와 한덕수 전 국무총리의 단일화 논란이 분분했던 지난 9일에도 “무책임한 외부 인사 영입을 통해 대선을 치를 거라면, 경쟁력 있는 이재명 후보를 데리고 오는 게 빠른 거 아니냐”면서 김 후보를 두둔했다. 이를 두고 “당원투표서 김 후보 교체 시도가 부결됐던 이유 중 하나는 친한계 당원들의 반대 움직임”이라고 보는 일각의 평가도 나왔다. 하지만 김 후보와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및 탄핵 등 여러 사안서 의견이 엇갈렸다. 두 사람은 국민의힘이 대선서 패배하면 다시 진행될 가능성이 큰 당권 투쟁의 잠재적인 경쟁 상대다. 김 후보는 56.53%를 얻어 대선후보로 선출됐다. 한 전 대표가 얻은 43.47%도 무시하긴 어려운 수치다. 친한계 일원인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은 지난 12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한 전 대표의 선대위 참여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 전 대표는 지난 1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비상계엄 및 탄핵 반대에 대한 사과 ▲윤 전 대통령 부부와의 절연 ▲한 전 총리와의 단일화 약속을 내걸고 후보로 선출된 것에 대한 사과 등 자신의 선대위 참여 조건을 제시했다. 김 전 최고위원은 이를 언급하면서 “김 후보가 하나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렇듯 김 후보는 당내 유력 계파들인 친윤·친한과의 불씨를 두고 있다. 두 계파 모두 앙숙이기 때문에 김 후보로선 두 계파 모두를 포섭하기도 쉽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아울러 2026년엔 국회의원들의 ‘대목’이라고 볼 수 있는 지방선거가 진행된다. 불씨가 들불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최소한 선거 상황에선 김 비대위원장이란 완충지대가 필요했을 가능성도 있다. 김 후보도 바보가 아닌 한 대선 승리 가능성이 크지 않단 것은 잘 알고 있다. 그 자신도 친윤계의 쿠데타로 인해 정당하게 선출된 후보직을 잃을 뻔했다. 대선 이후엔 곧바로 당권 투쟁이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김 후보가 대선 이후에도 정치적 영향력을 잃지 않고 당을 장악하려면 당권 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김 후보에게도 우군이 필요하다. 남겨놓은 갈등 불씨 김 후보는 지난 2020년 1월 국민의힘의 전신 자유한국당을 탈당한 이후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와 돈독한 친분을 유지했다. 같은 해 8월 발생한 사랑제일교회 코로나19 집단감염 사건 이후에도 경찰이 자가격리 조치를 어기고 집회에 참석한 사랑제일교회 일부 신자를 연행하려고 하자 이를 막는 등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다. 당시 김 후보는 “내가 김문수인데, 왜 가자고 그러느냐”라거나 “내가 국회의원을 3번 했다”는 등 호통을 치는 등 경기도지사 재임 당시 119에 전화해 갑질했던 ‘도지삽니다’ 사건을 연상시키는 언행으로 물의를 일으켰다. 전 목사는 후보 교체 시도를 격렬하게 비판했다. 전 목사가 주도하는 대한민국 바로 세우기 국민운동본부(이하 대국본)는 지난 10일 국민의힘을 규탄하는 집회를 개최했다. 전 목사는 이날 “멀쩡하게 뽑아놓은 김문수를 아웃시키고, 한덕수를 영입했다”며 “국민의힘이 사기 치는 것 봤죠? 이건 완전 불법”이라고 주장했다. 대국본도 같은 날 배포한 입장문서 “국민의힘은 종북 좌파와 맞서 싸우겠다는 애국 보수만 나타나면 알레르기 반응부터 보인다”고 비판했다. 김 후보는 지난 8일 관훈토론회 초청 토론회서 “광장 세력과도 함께 손잡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금은 기독교의 교회 조직과 말씀 때문에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가 버티고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전 목사 등 강경보수 성향 일부 교계를 극찬했다. 당내 지분이 전혀 없는 상황서 친윤·친한 모두와 경쟁해야 하는 김 후보로선 우군이 절실하다. 김 후보는 강경보수 세력 내부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와도 돈독한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김 후보는 지난 4월24일 전씨의 유튜브 채널 ‘전한길뉴스’에 출연했다. 전씨는 전 목사의 경쟁자로 통하는 손현보 세계로교회 목사와 연결돼있다. 전씨는 김 후보의 선거 전략을 분석하면서 “김 후보가 기득권 정치와 차별화된 이미지를 구축하고, 호남 지역 표심을 공략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TV 토론서 압도적 존재감을 발휘하고, 막판에 보수 우파가 단합하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전 목사와 전씨는 윤 전 대통령 탄핵 국면서 보수 진영 내부의 막강한 영향력을 확보했다. 두 사람의 영향력은 인원 동원 능력으로부터 비롯된다. 이들을 국민의힘 내부에 유입시켜 전당대회서 승부를 본다면, 김 후보가 국민의힘을 장악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지방선거서 급한 일은 의원들의 지역구 내 지방선거 공천에 개입하는 일이 될 가능성이 크다. 지역구 국회의원의 영향력 아래서 손발 노릇을 하는 기초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을 장악하면, 의원들의 손발을 묶어둘 수 있다. 후보 교체 시도 5적 지역구서 공천 전쟁? 김 후보와 충돌할 가능성이 큰 의원은 ▲권 전 비대위원장 ▲권 원내대표 ▲이 전 총장 ▲성일종·박수영 의원이다. 이 중 이 전 총장을 제외한 4명에 대해선 홍준표 전 대구시장이 지난 11일 자신의 페이스북 게시글서 ‘4적’이라고 주장했던 적이 있다. 홍 전 시장은 “경선을 혼미하게 한 책임을 지고, 의원직 사퇴·정계 은퇴하라”고 주장했다. 이들 중 지도부였던 ▲권 전 비대위원장 ▲권 원내대표 ▲이 전 총장은 후보 교체 시도를 직접 진두지휘했다. 성 의원은 김 후보와 한 전 총리의 단일화에 가장 적극적이었다. 박 의원은 김 후보의 캠프에 참여했지만, 김 후보가 단일화와 관련해 신경전을 이어가자 “김 후보 주변 운동권 출신 인사들이 ‘한 전 총리는 가라앉고, 김 후보가 단일후보가 될 것’이라는 식의 논리를 퍼뜨리고 있다”고 비난했다. 또 김 후보를 일컬어 “전형적인 좌파식 조직 탈취 시도를 하고 있다”는 비난도 이어갔다. 김 후보는 대선후보 자격이 취소됐던 지난 10일 기자회견을 개최해 스스로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 김문수”라면서 지도부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이어 캠프 내 측근들과 함께 국민의힘 중앙당사를 방문해 대통령 후보실을 점거했다. 이를 놓고 일각에선 “왕년의 투사 김문수가 돌아온 것이냐”고 반응했다. 이날 김 후보의 대응을 돌아보면, 대선 이후 당권 투쟁서 물러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독자 영역을 구축한 친윤·친한과 달리 김 후보는 외부 세력을 당내에 유입시키기 위한 명분부터 구축해야 한다. 대선서 패배하더라도 의미 있는 득표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홍 전 시장은 자유한국당 후보로서 대선에 출마했지만, 보수 정당이 분열됐던 여파를 극복하지 못했다. 그래서 불과 785만여표(약 24%) 득표에 그쳤다. 이는 역대 대선 직선제 2위 후보 중 당선자와 최다 표차 낙선과 보수 정당 최저 득표율이었다. 홍 전 시장은 대선 패배 이후 약 3주 동안 미국을 방문한 후 전당대회에 출마해 당 대표로 당선됐다. 예나 지금이나 당내 세력이 미약한 홍 전 시장은 당의 하락세를 막지 못했고, 지난 2018년 지방선거 패배 책임 차원으로 당대표직서 물러났다. 대선서 많은 득표를 하지 못했던 것도 홍 전 시장의 지도력에 힘이 붙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였다. 따라서 김 후보로선 대선 결과와 상관없이 당을 장악하기 위해선 패배하더라도 최대한 많은 득표를 해서 명분을 쥐는 것이 중요하다. 이 후보와의 단일화 시도를 완전히 접지 않은 것도 그 이유 중 하나라고 해석할 수 있다. 하한선 35% 무너지나 YTN이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지난 11~12일 이틀간 무선 100% 전화 면접 방식으로 진행했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김 후보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보다 13% 뒤처진 33%의 지지를 얻었다. 김 후보가 설령 대선서 패배하더라도, 국민의힘을 장악하려면 40% 이상의 독자 지지율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최저 하한선은 35%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김 후보에겐 승패 여하를 떠나 많은 것이 달린 대선일 수밖에 없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