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얽히고설킨’ 남북경협 현주소와 앞날

엄동설한 속 군불 지피기?

[일요시사 취재1팀] 김정수 기자 = 한반도 평화 무드부터 경색 국면까지 남북경제협력은 롤러코스터를 탔다. 국내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앞다퉈 대비했지만 잠잠한 분위기다. 문재인 대통령은 불씨를 키워나가고자 한다. 환경은 녹록치 않다. 남북경협은 힘을 받을 수 있을까.
 

▲ 신년 기자회견 갖는 문재인 대통령

“제한된 범위 내에서 남북 간에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 관계 개선을 국정 목표로 제시했다. ‘제한된 범위’는 대북 제재다. 남북경제협력이 줄곧 한계에 부딪히는 벽이다. 문 대통령은 5대 협력 사업을 제안했다.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재개 ▲남북 철도 및 도로 연결 ▲비무장지대(DMZ) 일대 국제평화지대화 ▲남북 접경지역 협력 ▲스포츠 교류 등이다.

범위 내
얼마든지∼

문재인정부는 남북정상회담을 잇달아 성사시켰다. 북미정상회담까지 이어졌다. 남북경협에도 불이 붙었다. 국내 유수 기업들의 참여가 점쳐졌다. 삼성, 현대자동차, SK, LG 등이 이름을 올렸다.

삼성은 사업 경험이 있다. 계열사 삼성전자는 20여년 전 평양서 TV를 생산했다. 삼성물산은 개성공단 입주사에서 상품 일부를 납품 받은 바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남북 간 철도 연결과 도로 확장의 적임자로 언급됐다. 현대건설, 현대제철, 현대로템 등은 현대화 사업, 인프라 구축을 모색할 만한 계열사로 꼽혔다.


SK그룹은 SK텔레콤과 SK건설, LG그룹은 LG전자가 거론됐다. LG전자는 지난 2009년까지 평양서 TV를 생산하는 등 남북경협은 급물살을 타는 듯했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다. 북미 관계가 교착상태에 접어들었다. 미국은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를 못박았다. 북한은 미사일 도발로 응수했다. 남북 관계도 예전 같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신년사를 통해 남북경협을 강조했다. 배경도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북미 대화 교착 속에서 남북 관계 후퇴까지 염려된다”며 “북미대화 성공을 위해 노력해나가는 것과 남북 협력을 증진시켜나갈 현실적인 방안을 모색할 필요성이 더욱 절실해졌다”고 진단했다.

살아있는 불씨, 키우려는 ‘문’
관계 개선 여부, 재개 ‘시금석’

남북경협의 상징은 ‘개성공단·금강산 관광’인데 개성공단은 지난 2016년 폐쇄됐고 금강산 관광은 2008년 중단됐다. 문 대통령 당선 뒤 4·27남북정상회담이 열렸다. 남북경협 기대도 커졌다. ‘판문점 선언’은 모멘텀이 됐다.

KT는 얼마 지나지 않아 ‘남북협력사업개발TF(테스크포스)’를 신설했다. 정상회담 이후 약 한 달 뒤였다. KT는 대북사업 재개 시 통신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계획이었다. KT는 과거 비슷한 대북사업을 진행했다. 지난 2005년 12월 개성지사를 열었다. 남북 간 민간 통신망(700회선)을 연결했다. 약 10년간 개성공단에 직원이 상주하며 통신지원 업무를 수행했다.
 

▲ 문재인 대통령(사진 오른쪽)와 현정은 현대 회장

기대는 컸지만 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남북 관계가 반전되면서 사업 추진에 제동이 걸렸다. 개성공단 재입주를 희망하는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개성공단 비상대책위원회는 문 대통령 신년사에 대해 “공단 재개를 위한 구체적 실천 방안이 없다”며 실망감을 드러냈다.


금강산 관광도 같은 맥락이다. 관광 재개 가능성은 위기로 뒤집어졌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해 10월 남측 금강산 관광시설 철거를 지시했다.

김 위원장은 ‘시설 완전 철거 및 문서 협의’를 요구했다. 이어 “부질없는 주장을 계속한다면 일방적으로 철거를 단행한다”고 최후통첩을 날렸다. 정부는 ‘대면 협의와 일부 노후시설 정비’라는 입장이다. 현재 당국 간 협의는 사실상 중단된 상태로 전해진다.

개성공단
금강산

금강산 관광을 상징하는 기업은 현대그룹으로 정주영 명예회장의 ‘소떼방북사건’이 가장 대표적이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신년사서 남북경협을 언급했다. 현 회장은 지난 2일 “남북경협을 위한 든든한 자산은 바로 신뢰”라며 “우리 발걸음은 2008년 이후 멈췄지만 희망을 잃지 말자”고 독려했다.

현대아산은 금강산 관광 재개에 대비 중이다. 다만 북측 반응이 걸림돌이다. 현대아산은 초기 당혹스럽다는 입장을 보였지만 이내 차분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금강산 관광은 남북경협 사업 중 가장 먼저 궤도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지난 14일 신년 기자회견서 “금강산 개별 관광은 국제 제재에 저촉되지 않는다”며 “충분히 모색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기관도 즉각 움직였다. 김연철 통일부장관은 이튿날 개별 관광 추진 의사를 밝혔다.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곧장 미국으로 떠났다. 이 본부장은 지난 15일(현지시각) “(미국 측과) 한번 이야기해보려고 한다”며 “허심탄회하게 서로의 입장을 이야기하고 상대의 이해를 구하는 게 지금 제일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남북 간 철도 및 도로 연결 사업’에도 눈길이 간다. 문 대통령은 신년사서 “남북 간 철도와 도로 연결 사업을 실현할 수 있는 현실적 방안을 남북이 함께 찾아낸다면 국제적인 협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기대를 모았다. 관광은 북한서 집중하는 사업 모델인 점도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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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는 이미 관련 TF를 구성했다. 대우건설은 지난해 6월 ‘북방사업지원팀’을 조직했다.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이 분위기를 이끌었다. 대우건설은 철도, 도로 등 SOC 인프라와 전력생산발전소 등 플랜트 분야까지 준비했다. 대우건설은 북한서 철도, 도로 사업을 진행한 경력이 있다.

비슷한 시기 포스코도 움직였다. 최정우 포스코 회장은 “남북 관계가 좋아지면 포스코그룹이 남북경협의 실수혜자가 아닌가 생각한다”며 기대를 드러냈다. 실제로 포스코건설은 TF를 구성했다.

이해한다지만…
여전히 간극?

최 회장은 포스코켐텍이라는 계열사 사장이었다. 당시 북한서 마그네사이트를 수입하려다가 남북관계 악화로 중단된 바 있다. 포스코는 북한서 철광석을, 북한은 포스코서 건설과 철강 투자를 받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었다.


GS건설도 선제적으로 나섰다. 사업부는 인프라와 전력으로 나뉘었다. 이 외에도 삼성물산, 대림산업, 한화건설 등이 동행했다.

비무장지대와 접경지역 협력에는 실제 예산이 투입된다. 지난해 2월 행정안전부는 접경지역에 13조20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크게 ‘남북교류·협력 기반 구축’ ‘균형발전 기반 구축’ ‘생태·평화 관광 활성화’ ‘생활 SOC 확충’ 등 4대 전략이다.

2030년까지 225개 사업에 국비 5조4000억원, 지방비 2조2000억원, 민자 5조6000억원을 투입된다.

2022년까지 비무장지대 인근에 도보여행길이 조성된다. 456㎞(인천 강화∼강원 고성)에 달하는 길이다. 해당 지역 사업을 위해선 지뢰 제거가 동반돼야 한다. 그 연유로 관련 사업을 추진 중인 기업들이 테마주로 이름을 올렸다.

남북경협 구상은 단숨에 고속도로를 타기 어려울 전망이다. 대북제재를 확고히 한 미국의 반응은 긍정적으로 보기 어렵다.

지난 14일(현지시각) 한미 외교장관 회담서 강경화 외교부장관은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한반도 정세 등에 이야기를 나눴다. 강 장관은 문 대통령이 직접 밝힌 ‘남북협력 구상’을 폼페이오 장관에게 설명했다.


재계 TF, 정부만 바라보고…
미, 개별 관광 부정 기류도

강 장관은 “남북 간 중요한 합의들이 있었다”며 “제재 문제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고, 예외 인정을 받아서 할 수 있는 사업들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미국도 우리의 의지와 희망 사항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는 온도차를 보였다. <로이터통신>이 서울발로 전한 보도에 따르면 해리스 대사는 외신 간담회서 “향후 제재를 촉발할 수 있는 오해를 피하려면 한미 워킹그룹을 통해 다루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또 “문 대통령의 지속적 낙관론은 긍정적인 일”이라면서도 “그 낙관론에 따라 움직이는 것에 있어서 미국과 협의를 통해 진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 강경화 외교부장관과 폼페이오 미 국무부장관 ⓒ외교부

정부는 강행하는 분위기다. 통일부는 지난 15일 브리핑서 미국 정부가 대북 개별관광에 보인 반응에 대해 “남북 협력사업에 한미 간 협의할 사항이 있고, 남북 간 독자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영역이 있다”며 “남북 관계는 우리 문제인 만큼 현실적인 방안들을 강구하며 적극적으로 추진해나간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남북경협 TF를 구성한 기업들은 정부만 바라보고 있다. 실제로 해당 TF들은 제자리걸음을 반복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뚜렷한 방향을 제시하기보다 동향, 사업 정보 수집에 그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상 개점휴업이라는 시각도 있다.

상황 주시
대기 상태

업계 관계자는 “기업들이 구성한 TF 뿌리는 남북미 관계에 있다”며 “뿌리가 흔들리니 줄기가 뻗어나갈 수 없는 노릇”이라고 평가했다. 평화 무드의 순풍을 타고 꾸려진 TF들이 현재는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그렇게 많지 않다. 주시하고 있을 뿐”이라며 “다른 쪽 상황도 마찬가지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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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진법사 ‘5000만원 관봉권’ 미스터리

건진법사 ‘5000만원 관봉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건진법사 전성배씨의 ‘5000만원 관봉권’ 출처를 두고 소문이 무성하다. 검찰은 대통령실 특활비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전씨는 그저 ‘기도비’라고 진술 중이다. 검찰이 김건희씨까지 수사 대상에 올린 점을 보면 전씨의 진술은 허위일 가능성이 크다. 전씨가 전방위 로비를 벌인 사실까지 드러나면서 김씨의 소환조사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윤석열 일가를 향한 수사는 그간 서울중앙지검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건진법사 전성배씨의 로비 사건은 중앙지검이 아닌 ‘여의도 저승사자’로 불리는 서울남부지검 가상자산범죄합동수사부(부장검사 박건욱)가 포문을 열었다. 전씨는 통일교와 캄보디아 사업 및 정·재계를 가리지 않고 돈을 받았다. 윤석열 일가와의 친분을 과시하면서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다. 수상한 증거들 남부지검은 전씨를 수사하기 이전에 한 가상자산 사기 사건을 수사 중이었다. 최근 정식 부서로 신설된 가상자산범죄합동수사부는 지난해 7월 ‘퀸비코인(QBZ)’ 관계자 이모씨 외 3명을 사기 등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이들은 사업 진행 능력이 없음에도 허위 자료를 제출해 스캠 코인을 상장했다. 1만명이 넘는 투자자로부터 가로챈 금액은 300억원에 육박한다. 남부지검은 수사 과정서 퀸비코인 관계자 이씨가 2018년 1월 자유한국당 경북 영천시장 후보 경선에 나선 정모씨를 전씨와 연결한 정황 및, 이들 간 수상한 자금 흐름을 포착했다. 취재를 종합하면 당시 정씨는 전씨 법당을 찾아 1억원을 건넸다. 이 사실을 파악한 남부지검은 지난해 12월 전씨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체포하고 그의 법당과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두 달여 전에는 경기 성남의 카카오 판교 서버를 압수수색해 전씨의 카카오톡 기록까지 확보했다. 전씨는 2022년 제20대 대통령선거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 대선캠프 네트워크본부서 상임고문으로 활동했다. 그의 처남으로 알려진 ‘찰리’ 김모씨도 전씨와 같이 활동했다. 전씨는 김건희씨가 운영하던 전시기획회사 코바나컨텐츠의 고문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전씨의 딸도 잠깐이지만 코바나컨텐츠서 근무한 이력이 있다. 남부지검은 전씨가 윤 전 대통령과 김씨와의 친분을 이용해 로비 행위를 벌였다고 보고 수사를 시작했다. 실제 전씨가 로비 창구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남부지검은 지난달 30일 윤 전 대통령 사저인 아크로비스타를 압수수색했다. 압수수색 영장에는 “피의자들이 2022년 4월부터 8월 사이 공직자의 직무와 관련해 공직자의 배우자에게 선물을 제공했다”고 적시됐다. 청탁 사유로 ▲캄보디아 메콩강 부지 개발 ODA(공적개발원조) 사업 ▲YTN 인수 ▲유엔 제5사무국 한국 유치 ▲교육부 장관 통일교 행사 참석 ▲대통령 취임식 초청 등이 담겼다. 이 압수수색은 전씨를 통해 통일교 세계본부장 출신이자 2인자였던 윤모씨가 수천만원 상당의 그라프(Graff) 다이아몬드 목걸이, 샤넬 가방, 천수삼 농축차 등을 김씨에게 전달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절차였다. 남부지검은 윤씨가 지난 2022년 7월 전씨에게 ‘김 여사가 물건(천수삼) 잘 받았다더라, 건강이 좋아지셨다고 한다’고 보낸 문자메시지 내용을 확보하기도 했다. ‘한국은행’ 찍혔는데…통상 정부 예산 활용 금융권 “개인이 갖고 있을 수 없다” 일축 검찰이 지난 3일 전씨를 청탁금지법 위반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한 만큼 김씨에 대한 소환조사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 남부지검 수사팀 내부에서는 김씨를 대선 직전에 소환조사해 실마리를 풀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전씨는 “목걸이와 명품백을 잃어버렸다. (김 여사가 잘 받았다는 문자는) 거짓 문자”라고 부인하는 상황이다. 김씨 측도 “전씨로부터 금품을 받은 사실 자체가 없다”는 입장이다. 우선 검찰은 윤씨가 전씨에게 윤석열정부의 캄보디아 ODA 사업 추진을 청탁했는지 여부를 들여다보는 중이다. 검찰은 윤씨가 “윤 전 대통령과 독대했고 국가 단위 ODA 연대 프로젝트에 동의했다”는 취지의 말을 한 것을 확인했다. 검찰은 지난 2022년 3월 윤씨가 당선인 신분이었던 윤 전 대통령과 김씨를 인수위서 만난 뒤 캄보디아 사업을 추진하려 했다고 보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통일교는 같은 해 메콩강 핵심 부지에 ‘아시아태평양유니언 본부’를 건립하는 사업을 추진했다. 윤씨는 훈센(Hun Sen) 당시 캄보디아 총리와도 이 사업을 논의했지만 자금난으로 추진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윤씨는 2022년 5월 한 통일교 행사에서 “3월 22일 대통령을 만나 1시간 독대를 하면서 이 나라가 가야 할 방향을 이야기하고 암묵적 동의를 구한 게 있다”고 말했다. 이어 “ODA는 비영리기구(NGO)가 펀딩 가능하고 국가가 지원한다”고 말한 바 있다. 검찰은 이 직후인 2022년 6월 기획재정부가 제4차 한-캄보디아 ODA 통합 정책협의서 대(對)캄보디아 대외경제협력기금(EDCF) 차관 지원 한도액을 기존 7억달러에서 15억달러로 늘리는 기본 약정을 체결한 점을 주목했다. 한도액이 늘면 중기후보사업 승인 절차가 간소화돼 ODA 사업 수주가 쉬워지기 때문이다. 비슷한 시기에 김씨가 나토 순방 당시 착용했던 6000만원대 반클리프 앤 아펠 목걸이와 관련해 재산 신고 누락 논란이 불거지자, 윤씨는 전씨에게 “김 여사에게 빌리지 말고 하고 다니라”며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건넸다. 검찰은 지금까지 김씨 명의 휴대전화 3대를 확보했다. 이 중 1대는 김씨가 지난달 11일 서울 한남동 관저서 나오면서 보안 비화폰(안보폰)을 반납한 뒤 개통한 휴대전화다. 나머지 2대는 옛 코바나컨텐츠 사무실서 사용하던 휴대전화로, 사실상 공기계로 알려졌다. 자택 압색 그 이후… 검찰은 100여개에 달하는 압수 대상에 윤씨 선물 명목으로 전씨에게 제공했다는 그라프 다이아몬드 목걸이와 샤넬 가방, 인삼주 등도 적시했지만 확보하지 못했다. 법조계에서는 윤씨의 청탁이 성사됐거나 윤씨와의 직무 관련성 등이 입증된다면 김씨가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받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부장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 와의 전화 통화에서 “카톡 기록과 전달됐거나 전달되려 했던 물품들은 이미 수사팀이 확보했으니 김씨가 대면 조사를 피하긴 힘들다”며 “남부지검서도 성역 없이 수사 의지가 강하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현행법상 공직자의 배우자를 청탁금지법으로 처벌할 수 없으니 직무 관련성 입증이 관건”이라며 “입증만 된다면 알선수재 혐의 적용이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가장 중요한 건 전씨의 자택을 압수수색할 당시 발견된 5000만원 관봉권이다. 앞서 검찰은 지난해 12월 서울 서초구 전씨의 집을 압수수색하면서 5만원권 3300매(1억6500만원)를 확보했는데, 이 중 5000만원은 비닐 포장이 벗겨지지 않은 상태였다. 검찰은 전씨에게 이 관봉권의 출처에 대해 집중적으로 추궁했다. 관봉권은 ‘제조권’과 ‘사용권’ 두 종류로 나뉜다. 제조권은 한국조폐공사에서 한은이 받아온 신권으로 돈다발에 십자 형태의 띠를 두르고 비닐로 싸 압축한 형태다. 사용권은 한은이 시중은행서 회수한 돈을 검수해 낡은 돈은 폐기하고 사용하기 적합한 돈만 골라낸 것이다. 발견된 돈다발 김씨와 전씨 사건서 등장하는 관봉권은 모두 사용권이다. 전씨 자택서 발견된 5000만원 관봉권 돈다발은 한은이 적힌 비닐로 포장돼있었고, 비닐엔 기기 번호와 담당·책임자 일련번호도 적혀 있었다. 그러나 김씨 측이 옷값을 치를 때 썼던 관봉권은 비닐 없이 띠지만 둘러져 있는 돈다발 형태였다. 관봉권은 국가 예산으로 편성되는 대통령실(청와대)과 검찰, 국가정보원 등 사정기관의 수사나 조사에 필요한 특수활동비로 쓰이기도 한다. 과거 정부에서는 이 특활비가 로비 자금으로 악용됐다. 한은은 전국에 16개 지역 본부를 두고 금융기관에 관봉권을 보낸다. 서울엔 남대문 본점 및 강남본부 등 두 곳이 있다. 이 중 강남본부가 대통령실과 사정기관 등에 예산 조달을 담당해 왔다. 다만 민간인의 집에서 관봉권이 발견될 수 없다는 게 금융권의 시각이다. 대개 일반 정부 예산은 관봉권 형태가 아닌 계좌이체 등을 통해 전달된다. 금융권 관계자는 “수천만원 상당의 관봉권이 묶인 채로 남아 있는 건 영수증 내역도 남지 않는 특활비”라며 “통상 정보와 사정기관이 ‘돈의 주인’”이라고 말했다. 실제 검찰도 전씨의 자택서 발견된 5000만원 관봉권이 강남본부서 나왔다고 보고 있다. 이 관봉권에는 ‘2022년 5월13일’이라는 날짜가 기재돼있다. 윤 전 대통령 취임일 사흘 뒤다. 전씨는 검찰 조사에서 주로 돈은 ‘기도비’ 명목으로 받아왔지만 관봉권은 정확하게 누구에게 받은 돈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한은 방문 이후 전씨의 집에서 발견된 관봉권에 적힌 ▲기기번호 ▲담당자 ▲책임자 ▲발권국 항목 등의 의미를 확인했다. 기기번호의 뜻은 정사기(검수기) 기기번호와 기기호수를 뜻하고, 발권국 정보에는 정사 업무를 담당하는 발권국 화폐관리1팀을 의미하는 숫자인 것으로 전해졌다. MB 때 국정원 ‘입막음·로비’ 용도로 사용 검·정보 “이번엔 아니다”…남은 건 용산 포장지에 적힌 ‘2022년 5월13일 오후 2시5분59초’는 한은이 검수를 마친 시각이라고 한다. 다만, 한은은 개별 사용권이 어느 시점에 어느 금융기관으로 지급됐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고 한다. 금융기관서 화폐를 요청하는 경우 ▲지급한 금융기관명 ▲지급일자 ▲권종 ▲금액 등만 기록할 뿐, 어떤 사용권 묶음을 제공했는지는 별도 기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 관봉권이 지난 대선 기간 전씨가 운영했던 윤 전 대통령 선거캠프 운영비일 수 있다고 보고 금융 흐름을 추적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올해 초 당시 네트워크 본부장으로 있던 오을섭씨를 소환조사하면서 양재동 캠프의 운영비 출처를 물어본 것으로 전해졌다. 법조계에서는 해당 관봉권 출처가 불분명한 만큼 특활비일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금융범죄 수사 경험이 풍부한 한 변호사는 “출처를 확인하기 어려운 한은 뭉칫돈은 대부분 특활비”라며 “특활비라면 한은 검수 이후 수천만원 상당의 돈이 필요한 곳은 보통 사정기관이다. 일반적으로 정부 예산은 뭉칫돈으로 전달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결국 사정기관 담당자들을 불러 확인해봐야 하는데 정보기관에서는 특활비 활용 자체가 보안으로 분류돼 확인도 어려울 것이다. 출처 규명에 꽤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분석했다. 와 접촉한 복수의 사정기관 관계자들은 ‘국정원 특활비’는 아니라고 단언했다. 앞서 이명박정부 청와대는 국정원 특활비를 상납받은 바 있다. 지난 2011년 장진수 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은 국정원의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을 폭로했는데, 당시 국정원은 관봉 형태의 특활비 5000만원을 장 전 주무관에 ‘입막음비’로 전달했다. 이 같은 내용은 검찰 수사와 공판 등을 통해 청와대서 국정원 특활비를 받아 장 전 주무관에 전달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불분명한 출처 어디? 한 정보기관 관계자는 “과거 국정원 특활비와 흡사해 보이지만 2022년 이후의 특활비 활용이나 대통령실을 통해 쓰인 ‘국정원 특활비’ 등에 대해서 들여다봤을 때 불법적이거나 위법하게 쓰인 사실이 없다. 한 개인에게 갈 일은 더더욱 없다”고 못 박았다. 검찰 관계자도 “남부지검서 수사 중인 사안에 대해 자세히 말할 순 없지만 검찰 특활비는 아니다. 남부지검 수사팀도 검찰과는 상관없는 관봉권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