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아트스페이스 휴에서 이상현 작가의 개인전 ‘조선 그대는 어디에 있는가’ 전을 준비했다. 이상현은 한국 근현대를 헤집어, 정치 체제의 갈등 속에서 비극적인 운명을 맞게 되는 인물들을 연구해 이를 영상으로 구현하는 작업을 해왔다. 이번 개인전은 2011년 이후 8년 만에 갖는 전시다.
우리나라 정토신앙의 근본 경전으로 불리는 아미타경에 나오는 공명조는 현재 한국의 상황과 닮았다. 공명조는 하나의 몸통에 머리가 두 개 달린 새를 말한다. 하나가 죽으면 다른 하나도 따라 죽는 공동체다.
남과 북, 두 체제의 대립, 좌우 두 진영의 대립과 갈등은 결국 한 머리가 다른 머리에 독을 먹여 같이 죽게 되는 공명조의 운명을 떠올리게 한다. 조선에 자리한 그 무엇이 두 머리를 가진 비극의 피조물을 탄생시킨 것일까.
공명조 같은
이상현 작가는 1980년대 프랑스와 독일서 퍼포먼스와 설치를 기반으로 하는 실험적인 작업을 시작으로, 빅뱅과 별의 여행, 인공위성, 사하라 사막에 태양광으로 작동하는 외계 통신용 인공 달 기지를 세우는 작업 등 공상과학 기반의 설치미술로 주목받았다.
1999년 이상현은 장선우 감독의 영화 <거짓말>에 출연하면서 작가로서의 삶이 완전히 뒤바뀌는 경험을 한다. 영화에 쏟아진 비판은 배우였던 이상현에게로 고스란히 이어졌다. 당시 이상현이 경험한 한국사회는 배타적인 하나의 조직집단이었다. 그 뿌리의 번민과 성찰은 현재 그가 작업하고 있는 조선 시리즈의 배경이 됐다.
영화 <거짓말> 출연 후 뒤바뀐 삶
한국사회에 대해 번민하고 고민해
이상현은 “같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나 한 몸통을 가졌으나 두 개의 머리를 가진 공명조는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며 서로를 못 잡아먹어서 밤낮으로 으르렁거리며 끝없는 갈등과 분열 속에서 하루하루 상대가 파멸할 날을 노리며 살아간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러던 어느 날 한 머리가 다른 머리의 먹이에 독을 탔고, 죽어가는 다른 머리 역시 복수의 독을 뿌렸다. 1950년 6월25일, 6·25가 그날이었고, 2019년 오늘은 더 진화한 좌우 두 머리가 서로 독을 먹이려 노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작품 ‘조선신연애’는 1913년에 발표된 장한몽(일명 이수일과 심순애)을 통해 한국의 근현대사를 객관적 시각으로 보게끔 하는 작품이다. 일제 식민시기를 거쳐 1960년대 이후 고도 경제성장으로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비약한 한국 경제 기적의 뒤안길에 남은 개개인의 인생은 무엇이고 지금 어디에 서있는지, 또 우리가 이룬 이 공동체는 무엇인지 성찰하는 내용이 담겼다.
작품 ‘조선문답’은 영·정조 때의 실학자인 홍대용이 쓴 <의산문답>서 제목을 따왔다. <의산문답>은 제자인 화자가 250년을 살아남아 스승이 남긴 화두를 푸는 서사구조다. 이상현은 홍대용이 살았던 18∼19세기 조선 실학파들이 가졌던 한계를 생각하면서 이 작업을 시작했다.
그는 “당시 실학자들은 대국인 중국과 소국인 조선 사이서 방황했다. 아마 지금의 진보 엘리트들의 딜레마와 비슷할 것”이라며 “말로는 미국을 제국주의라고 비난하면서 자신의 자식들은 미국 영주권을 따게 하고, 미국 물건을 좋아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고 전했다.
정치 체제의 갈등에 주목
비극적 인물에 초점 맞춰
이어 “조선의 의식구조는 두 가지, 현실과 이상이 충돌하고 배신하는 이중구조로 이뤄져 있다. 조선실학의 한계는 있었지만 조선의 주류가 이들을 받아들였다면 조선의 19세기와 20세기가 그렇게 비참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작품 ‘서해별곡’은 1954년 2월 마릴린 먼로가 백령도서 미군 위문공연을 하는 아카이브를 바탕으로 만들었다. 당시 먼로는 영화 <나이아가라>의 성공과 야구선수 조 디마지오와의 결혼으로 행복한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그녀는 2월의 추위 속에서도 여름 드레스를 입고 나무판자로 만들어진 임시무대에 올라 노래했다. 당시 지리산에선 전투가 계속되고 있었다.
‘제국의 눈물’은 의친왕의 맏아들이자 고종의 친손자인 이건을 다룬 작품이다. 이건은 대한제국이 망하지 않았다면 왕위 계승서열로 두 손가락 안에 들었을 인물이다. 그는 12세 때 일본으로 보내졌다가 1945년 일본이 패망한 이후 평민이 됐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이건은 지인에게 “나에게는 돌아갈 나라도 가족도 없다. 그저 여기저기 다니다 죽겠다”고 했다 한다.
2019년 한국
아트스페이스 휴 관계자는 “이번 전시는 2000년대 이후 조선 시리즈가 나오게 된 배경에 주목하고 있다. 2011년 개인전 이후 8년 만에 진행하는 전시에서는, 드물게 소개됐던 그간의 영상작업과 이와 관련된 아카이빙 자료들을 통해 작업의 이면을 보다 면밀히 살피려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고종의 친손자인 이건, <제3인공위성>을 쓴 백석, 중립국을 선택한 최인훈의 소설 <광장>의 이명준처럼 정치 체제의 대립과 갈등으로 인한 한 개인의 비극적인 삶에서 이상현은 공감과 위로를 구하고자 했을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전시는 12월31일까지.
<jsjang@ilyosisa.co.kr>
[이상현은?]
이상현은 1953년 경기도 강화서 태어났다. 1982년 파리서 국립장식미술학교를 다니던 무렵, 다키스의 ‘Toris Totem’을 접하고 현대미술로 진로를 정했다. 이후 독일로 넘어가 베를린 국립조형미술대학 입체조형과 동대학원서 멀티미디어 클래스를 졸업하고 마이스터 슐러 학위를 받았다.
1999년 장선우 감독의 영화 <거짓말>에 주연으로 출연했다. 이후 몇 년간 도서관에 다니며 <조선왕조실록>등 역사책과 자료들을 보았고, 전국의 문화 유적지와 풍수를 찾아다녔다. 2005년부터 조선역사 연작을 시작으로 ‘제국과 조선’ ‘구운몽’ ‘조선의 낙조’ ‘선인기우도’ ‘삼천궁녀’ ‘낙화의 눈물’ 등과 같이 비디오와 디지털 이미지 작업, 영상설치 등을 하고 있다. <선>